[Opinion] 시적인 가사와 함께 : 심규선 [음악]

글 입력 2018.10.20 23:15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Intro



심규선을 언제 만났는지는 자세히 기억나지 않는다. 의미 없는 후크송이 싫어 인디 음악을 막 듣기 시작했던 시기라서 ‘짙은’, ‘화접몽밴드’, ‘알레그로’ 등을 듣다가 만난 것 같다. 어느 날처럼 스트리밍 서비스를 켜고 랜덤으로 음악을 재생하던 때였다. 신비로운 음색 너머로, 낯선 멜로디와 그보다 더 낯선 가사가 들려왔다.


가사들은 실로 문학적이라고 할만 했다. 모든 곡들이 그런 것은 아니어도 대부분의 곡이 그러했다. 좀 더 돌아보고 생각하게 하는, 그러면서도 현학적이지 않은 말들이었다.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다른 곡은 무엇이 있는지 찾아보며 나는 심규선에 쉽게 빠져들었다.


심규선은 누구인가?



꾸미기_심규선.jpg
 


심규선은 2005년 제29회 ‘MBC 대학가요제’에서 밴드 아스코의 보컬로 금상을 수상하며 대중에게 이름을 알렸다. 첫 정규음반인 ‘자기만의 방’은 2011년에 나왔으니 이제 7년이 다 되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그녀는 버지니아 울프의 팬이다. 오마이뉴스 인터뷰(미완성 이야기의 스토리텔러, 싱어송라이터 루시아)에서 앞서 간 선배인 울프의 여성 예술가로서의 삶을 본받고 싶다고 밝혔다.



“제가 노력하고 담아내는 음악의 방향성은 앞서 말씀하신 버지니아 울프의 그것과 맞닿아있어요. 저는 버지니아 울프의 책을 읽으면서 저와 같은 여성이자 예술가이자, 예술로 돈을 벌어야 하는 사람인 그녀에게 해답과 위로를 받는 느낌이었어요.


스스로 강인한 여성 예술가이자 같은 길을 가고 있는 사람에게 위로까지 전해주는 사람. 저와 제 음악도 그랬으면 싶어요.”



이렇게 여성이라는 틀 속에서 요정이나 여신이라는 호칭을 벗어던지고 한 사람의 아티스트로서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는 점이 멋있다. 음악이 놓인 위치도 스스로 생각하기에 인디도, 메이저도 아닌 애매한 영역에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좋다. 자신만의 길을 걸어가며 항상 고민하면서도 끝까지 밀어붙이는 뚝심이 있다. 인디 음악에서 많이 보였던 소소한 삶의 행복, 퇴근길의 풍경 같은 것이 아니어도 심규선 같은 감성이 하나쯤 있어도 좋지 않을까.


위로의 여신이라는 별명이 있던데, 나에게 위로의 감성은 ‘짙은’이 더 강하고 그녀의 노래는 초대처럼 느껴진다. 자신의 세상에서 느꼈던 감정을 문학적인 가사로 포장하여 건네는 것이다. “한 번 들어봐-”하고.


잡지 ize에서 진행한 또 다른 인터뷰(루시아 “계속 싸우는 거다, ‘니가 할 수 있구나’라는 말을 들을 때까지”)에서는 문학적인 가사의 근원을 책읽기로 꼽기도 했다. 특히 고전문학을 좋아해서 쓰는 가사들이 요즘 감성이 아닌 옛날 감성이라고 멋쩍게 말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좋아하고 고전적인 느낌을 살려 메시지나 철학을 전달하는 경향이 있다.


앞으로의 작품이 기대되는 이유는 남들의 방식 대신 자기만의 색깔을 고집했기 때문이다. 책을 좋아하고 메시지 있는 작품을 선호하는 나에게 심규선은 무엇을 듣던 평온하다. 지금까지 읽었던 책들과 써왔던 글들이 그녀의 힘이고 그녀만의 매력이다.


이제, 여러 곡들 중에서 내가 좋아하고 문학성이 짙게 드러나는 몇몇 곡들을 소개해보려 한다.




데칼코마니(Décalcomanie) 2012년 10월 발매



꾸미기_심규선 데칼코마니.jpg


필로소피


내 수많은 질문은 일부러 침묵하는 너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것일지도 몰라요


너의 떨리는 눈꺼풀 그건 자신에 대한

미움과 매일 싸우고 있는 걸 의미해

처음 알게 된 두려움 너는 매일 매일을

혼자 걸어오고 있었다는 것 두요


쉽게 전염되어오는 그대의 필로소피

친밀함과 낯설음 그 한가운데 있어도

불협과 리듬의 혼란 그 속에서마저 달콤해

그대를 보고 있으면

...



이 곡은 단어 선택이 새로워서 듣게 된 곡이다. 필로소피? 철학과에서나 쓸법한 말이 노래에 나올 줄은 상상도 못했다. 철학이라는 뜻 외에, 지혜에 대한 사랑을 의미하는 이 단어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등장했다. 가사를 들으며 여러 가지로 상상해보았다. 두 사람이 어떤 대화를 했고 어떤 생각을 나누었을지, 이런 사랑은 어떤 느낌일지 궁금했다.


반드시 연인 사이라고 가정하지 않아도 우리가 사람을 만날 때 부딪히는 지점들을 떠올려보면 범용성이 높은 내용이다. 세상에 던져져 치열하게 살아오는 동안 싸웠고, 굴복했고, 승리했던 기억들 속에는 항상 타인이 있었다. 그 이름이 가족일수도, 친구일수도, 생판 모르는 남일 수도 있다. 오늘도 우리는 그들과 부딪히며 가끔은 불합리하고 가끔은 지나치게 논리적인 말들 속에는 살아가고 있다.




Light & Shade Chapter.1 2014년 5월 발매



꾸미기_심규선 정규2집.jpg
 


데미안


새들이 날아오를 때

그리운 곳에서부터

바람이 불어오고

문득 고개를 들어

저 하늘을 바라보겠죠


쉼 없이 늘 앞만 보고 달려

다다른 곳 그곳이 어디든

아무것도 없다는 걸

이젠 알게 됐으니

두 번 다시는 흔들리지 말고 가


묶인 것에서 너 자신을

자유롭게 하는 것

멀리 있지 않아요

끝없이 바람과 후회가 밀려와도

추락하면서 날아오르는 새처럼

Go Forward


...


우리가 만든 가면은

우리의 얼굴이 돼요

슬퍼하기에 삶은 덧없이 짧고

후회하기엔 일러요

추락하면서 날아오르는 법을

배우는 새처럼

Go Forward Go, Go- Go Forward


후회로 가득했던

지난 밤은 잊어버리고

달리는 아이처럼

벅차오르는 심장을 다시 한 번,

다시 한 번만



제목에서 드러나듯이 영감의 원천은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다. 성숙과 성장을 다루고 있는 소설이 심규선을 만나 노래로 탄생하였다. “쉼 없이 늘 앞만 보고 달려 다다른 곳 그곳이 어디든 아무것도 없다”에서 끝나지 않고 “두 번 다시는 흔들리지 말고 가”라는 말로 응원하며 용기를 준다. 비관적이지 않고 희망이 깃들어 있어서 좋다. 나는 여기에 더해 흔들릴 수는 있고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높지만, 그럼에도 “추락하면서 날아오르는 법을 배우는 새처럼”, “달리는 아이처럼” 앞으로 나아가려는 자세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좋아하는 작품을 노래로 만드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노래가 아니어도 나만이 할 수 있는 다른 방식으로 재창작을 하고 사람들이 향유하는 것을 공유하고 싶다. 지금은 글을 쓰지만, 나중엔 다른 도구로 ‘나’와 나의 인식을 표현해보려 한다.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예술 분야에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실력은 없지만 언젠가 색다른 것을 시도해볼 것이다.




Bonus) 느와르




부드러운 바람이 물결치듯 부네

이런 밤에 시인은 시를 쓰겠지만

나는 그대를 노래, 노래하는 것으로

나의 모든 표현을 대신하려 해요


처음부터 우리는 서로를 알아보았죠

꿈꿔오던 바람을 그대가 나에게 주네

아픔과 지난 상처를 무색하게 하는 그대

이 세상에 우연한 건 아무것도 없어요


보고 싶어요 만나고 싶어요

매 순간 너에게 난 달려가고 있어요

붙잡고 싶어요 안기고 싶어요

네게 드러내지 못하는 마음 들키고 싶어요


...



심규선은 노래 별로 느껴지는 감성이 독특하기 때문에 이런저런 곡을 찾는 재미가 있다. ‘느와르’는 가사보다는 분위기로 압도하는 곡이다. 늦은 밤 듣다보면 나 홀로 뮤지컬을 듣는 기분이 든다. 평범한 내용인 것 같아도 누가 부르느냐에 따라 참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Light & Shade chapter.2 2015년 11월 발매



꾸미기_정규3집 2.jpg
 


달과 6펜스


달빛에 비친 유리창도

이렇게 반짝이지는 않지

너의 눈물 맺힌 눈

검은 하늘에 아플 만큼

간절한 빛을 내던 별빛도

함께 맞던 아침도

너를 안고 있어도 넌 여기 없고

그을음과 타고난 재만 있잖아

아무래도 좋을 결말 따위

내게 상처 주게 허락 할 테니

다시 걸어보게 해줘 사랑에

난 이미 손 쓸 수 없게 돼버렸지만

멋대로 그대를 원하고 있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냐

난 이미 사랑에 빠져 버렸지만


...



랩을 해보면 가사를 끊는 타이밍이 있다. 이 곡 ‘달과 6펜스’도 마찬가지이다. 가사 일부를 적으면서도 차마 끊을 수 없었던 이유는 노래가 끊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한 문장을 넘어 다음 문장의 단어에서 끊어지는 호흡은 그 엇박자 때문에 순식간에 주의를 끈다. 완성된 한 곡보다 흥얼거리는 말소리에 더 가깝다.


분위기는 히피 같고 내용은 경쾌하게 슬프다. “아무래도 좋을 결말 따위 내게 상처 주게 허락 할 테니 다시 걸어보게 해줘 사랑에” 속에 담긴 마음은 아무리 가볍게 말해도 묵직하다. 상처받는 것은 익숙해질 수 없으므로, 그것을 스스로 원하기까지는 무수한 마음의 전쟁을 치러야 한다.


문득, 동명의 소설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가 궁금해졌다. 대략적인 줄거리는 알고 있었고 중심 갈등이 무엇인지도 알지만 심규선은 어디에서 영감을 받아 이 곡을 만들게 된 것일까.




LUCIA : 꿈결 속의 멜로디 EP.02 2014년 9월 발매



꾸미기_싱글 클래식2.jpg
 


오필리아


그대의 낱말들은

술처럼 달기에

나는 주저 없이

모두 받아 마셔요

내가 하는 말을

나조차 못 믿을 때도

너는 나를 다 믿었죠


어떤 때에 가장 기쁨을 느끼고

어떤 때에 가장 무력한 지

나 자신도 알지 못 했던 부분과

나의 모든 것에 관여되고 있어


나는 녹지 않는 얼음으로

당신을 조각해서

두 팔로 그러안고

절대 놓지 않을 거예요

내 미련함을 탓해도 돼요

가슴이 시려와도

나는 기쁠 거예요


이제 그만 악마가

나를 포기하게 하시고

떠났다가 다시 오라

내게 머물지 말고


부유한 노예 녹지 않는 얼음

타지 않는 불 날이 없는 칼

화려한 외면 피 흘리는 영혼

하나인 극단 그것들의 시


...



오필리아는 셰익스피어의 극 ‘햄릿’에서 우유부단하고 가녀린 미소녀로 등장하며 비극적인 사랑에 괴로워하다 백치가 되는 인물이다. 물가에 끌려 들어가 익사하고 마는 그녀는 수많은 예술가들이 모티브로 삼아 그림으로 남겼다. 심규선은 노래로 남겼지만 지난 흔적과는 다른 방식으로 그녀를 그렸다.


앨범 소개에 쓰여 있던 사랑의 주체라는 표현대로 이 곡의 오필리아는 상황에 끌려 다니지 않는다. 운명이 보여주는 비극 앞에서도 남들이 지탄할만한 사랑을 가슴에 품었다. 첫사랑이기 때문도 아니고 그저 지금 내가 사랑하기 때문에 “부유한 노예, 녹지 않는 얼음, 타지 않는 불, 날이 없는 칼”이 있을 때까지,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도덕을 넘고 타인도 넘어 자신의 사랑을 지킨 그녀는 아름답다.




Outro



심규선은 버지니아 울프의 말을 인용하며 이렇게 말했다. 



“기록되기 전까지는 어떤 일도 진짜로 일어난 게 아니다” - 버지니아 울프


“... 기록하는 과정에서 내 안에 있는 혼란과 고통을 독대하고 그걸 내가 잘 아는 언어로 풀 때야 비로소 진짜로 일어난 삶의 조각이 되는 거라고요. 누구는 일기를 쓰고, 누구는 페이스 북에 올리듯이 저는 가사와 멜로디로 남겨두려고 해요.” - 심규선 (오마이뉴스 인터뷰 인용)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시작되지 않는다. 예쁜 여신이 아니라 여성 뮤지션의 길을 선택한 심규선이 삶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보여주었듯이 나 역시 나의 삶을 나만의 방식으로 증명해야 한다. 무엇을 할지는 구상 단계이지만 그게 무엇이든, 나의 언어로 흡수하고 해석하고 보여줄 것이다.


다른 좋은 곡들이 많아 5개 밖에 소개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 다른 앨범들도 들어보고 자신에게 맞는 감성을 찾아보기를 추천하며 글을 마친다.





아트인사이트_배지원 명함.jpg
 



[배지원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아트인사이트 (ART insight)
E-Mail : artinsight@naver.com    |    등록번호 : 경기 자 60044
Copyright ⓒ 2013-2018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트(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