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는 왜 노을을 사랑하는가 [여행]

글 입력 2018.10.21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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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15/Firenze, Italy)



언제부터인가 여행 계획을 짤 때면 항상 일몰시간과 시야가 넓은 높은 장소를 함께 찾았다. 그곳까지 가는 시간, 노을을 기다리는 시간 등은 결코 짧지 않았지만 다른 것들을 포기하면서까지 유독 노을에 대한 애착은 강했다. 아침에 숙소를 나서며 하늘을 바라보고 "오늘의 노을은 어떻겠군." 생각하는 것도 다반사였다.


높은 곳에 올라가 자리를 잡고 태양이 하강하는 기다림은 긴 시간만큼이나 다채롭다. 쳐다보기 힘들 정도로 환한 햇빛은 낮게 자리할수록 붉어지고 선명해진다. 파란 하늘은 검게 그을릴 때까지 형형색색의 변화를 보여준다. 이렇게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의 노을도 다양한 매력을 지니는데 내가 어찌 다른 날, 다른 장소의 노을을 쫓지 않을 수 있을까.


함피에 머무는 7일 동안 매일을 같은 장소에 올라 노을을 기다렸다. 그 기다림엔 언제나 새로운 노을이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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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06/Hampi, In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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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23/İstanbul, Turkey)



노을을 바라보면 많은 생각이 든다. 집에 있을 가족들, 사랑했던 여인, 지나가버린 추억들. 혹은 이 붉은 아름다움에 취해 그저 가만히 멍 때리기도 한다. 노을이 잘 보이는 장소에는 항상 사람들로 붐빈다. 이들은 무얼 보기 위해, 누굴 떠올리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일까.

누군가 빨리 해가 떨어지기를 바라며 불평하는 소리를 듣고 한 번은 이런 생각이 들었다. 다큐멘터리에서 종종 보여주는 빨리 감기. 24시간의 풍경, 365일의 풍경 혹은 한 생명체의 탄생부터 소멸까지. 그 영상을 보면 단 몇 초 만에 그 과정을 빠르게 보여준다. 하지만 그 장면을 본 우리는 과연 그것을 온전히 이해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인내의 시간이 왜곡된 축약은 얼마나 의미가 있는 것일까.그들은 이 노을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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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26/Santorini, Gree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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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15/Okinawa, Japan)



바다에 비친 햇살의 수많은 반짝거림은 잔잔한 물결과 함께 점차 소멸한다. 마치 오늘 하루의 바빴던 수많은 일상의 마무리를 화려히 보여주는 듯하다. 아주 찰나의 화려함이나, 수많은 찰나가 모여 광활한 노을의 일부를 완성한다. 그리고 그 반짝임이 줄어들수록 노을은 더욱 익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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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18/Jodhpur, Imdia)



가장 많은 노을을 맞이한 곳은 인도에서였다. 혼자 떠난 여행이었기에 내가 원하는 대로 노을을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홀로 지는 해를 바라보고 있자면 종종 사무치게 외로워지기도 한다. 영화 '김종욱 찾기'의 배경이 된 이곳 조드푸르에서 난 누구를 기다리고 있었던가.


왜 나는 노을을 사랑하는가? 처음은 한 친구 때문이었다. 그 친구는 쉽게 감성에 젖었고 황홀한 풍경을 사랑했다. 그래서 그는 노을을 사랑했고 난 그와 함께 있었다. 노을이 가지는 매력은 그때그때 다르다. 그리고 그 매력을 그 순간에만 느낄 수 있음이 소중하다. 나는 이제 그와 함께 있지 않아도 노을을 찾는다.


석양

바닷가 횟집 유리창 너머
하루의 노동을 마친 태양이
키 작은 소나무 가지에
걸터앉아 잠시 쉬고 있다
그 모습을 본 한 사람이
'솔광이다!'
큰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좌중은 박장대소가 터졌다

더는 늙지 말자고
'이대로!'를 외치며 부딪치는
술잔 몇 순배 돈 후
다시 쳐다본 그 자리
키 작은 소나무도 벌겋게 취해 있었다
바닷물도 눈자위가 볼그족족했다

(허형만,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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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09/Langtang Lirung, Nepal)


[정영동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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