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로 사는 방법을 찾고 있나요?

글 입력 2018.10.22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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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주체적인 삶과 자존감에 대한 열망이 아주 크다. 나서길 좋아하지 않으며 사람들과 적당히 어울릴 줄 알고, 주변시선도 좀 신경 쓰는 ‘보통’의 한국 사람인 나에게 자존감과 주체적인 삶은 현실의 나에게는 존재하지 않지만 언젠가 도달해야 할 목표였었고, 학창시절부터 시작된 아주 오래된 목표이자 고민이었다.


근데 이 오랜 목표로 한가지 강박관념이 생겨버렸는데, 바로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지 말아라”라는 주체성에 대한 기준이었다. 이 문장을 보는 누군가에게는 “나답게 살기 위해서는 당연한 거 아니야?”라는 질문이 먼저 머릿속에 떠오를 수도 있지만, 나에게는 아주 오랫동안 고통의 고뇌(?)와 괴리감을 안겨주었던 명제였다.






이 긴 고민의 발단은 나에게서 시작된다. 나는 나의 자존감과 주체성을 지키기 위해서 타인의 시선에 대해 아주 근본적인 거부감을 가졌고, 그건 좀 더 발전되어서 ‘사회가 인정하는 기준과 가치들에 대한 거부감’으로 이어졌다. 나에게 나다운 삶은 그 누구의 기준도 아닌 독보적인 ‘나만의’ 기준으로 사는 사람이었다. 안정적인 삶은 주체적인 삶과 반대되는 수동적인 삶이라는 이미지였고, 안정적인 삶을 위해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들은 나의 꿈을 포기하고 현실과 타협하는 주체적이지 못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나는 주체성에 대한 열망이 컸기 때문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한다 라고 되뇌었지만, 반대로 안정적이기도 싶었고, 그 안정적인 삶은 사회의 시선에서 인정받는 성공이라는 기준을 수반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이 연결고리 사이에서 큰 괴리감을 가졌었다.


그러다 유튜브에서 일명 사회적으로도 인정받는 안정적인 삶을 살며 주체적인 삶을 사는 사람의 인터뷰를 보고, 순간 확 머리가 맑아졌다. 그 사람은 사회가 요구하는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 ‘전형적인’ 삶을 살고 있었지만, 그의 모든 눈빛과 몸짓에서 (자만심 말고) 자존감이 높고 주체적인 그의 삶의 색이 아주 찬란하게 뿜어져 나왔다. 사실 아주 당연한 이야기다. 그렇다. 주체적인 삶은 안정적인 삶, 현실적인 삶과 이분법적인 반대개념이 아니다. 양립할 수 있다. 그런데 나는 이 당연한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우리 사회에서 매체는 ‘자신의 삶을 사는 멋진 사람’을 ‘현실과 남의 시선에 타협하지 않고, 자신의 꿈과 이상을 쫓아 떠나, 심지어는(플러스 알파로) 성공까지 한 엄청난 사람’으로 묘사한다.


예를 들자면 주로 이런 식이다.



“꿈에 다가가기 위해

다른 사람의 시선과 이겨내고

어려운 시절을 겪으면서도

꿈을 놓지 않는 엄청난 사람들”



최근에는 다양한 분야에서 자신의 삶을 살며 멋있는 삶을 사는 사람들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인 ‘리틀빅히어로’라는 프로그램의 예고편에서 “안정적인 삶보다는 즐거운 삶”이라는 문구를 보기도 했다.


매체의 표현방식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매체에서 주체적인 사람을 표현하는 방식에서 우리는 주체적인 삶에 대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와 개념을 볼 수 있다. 위에 적은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는 저 화려한 수식어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우리가 얼마나 주체적인 삶을 동경함과 동시에 거리감을 느끼는지 알 수 있다.


*


주체성을 현실, 안정, 타인의 시선과 정반대되는 또 다른 ‘완벽한’것으로 여기는 흐름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나’라는 가치에 대해 무지했는지에 대해 보여주는 반증일지도 모른다. 개인보다 집단이 우선시되어온, 그래서 ‘내’가 없는 집단주의적 삶에 진절머리가 난 나를 포함한 사람들은 시대가 변함과 함께 이제는 자존감과 주체성을 강하게 열망한다. 동시에 나에게 없는 것이기에 자존감과 주체성에 하나 둘 기준을 부여하고, 보다 완벽한 것으로 생각해버린다. 내가 쉽게 닿을 수 없고, 어려운 준비기간과 결단력이 필요한 것이라고. (우리는 우리에게 없는 그리고 멀게 느껴지는 것들에 대해 얻을 가능성이 없다 여겨, 자주 여우와 신 포도이야기처럼 대상을 하찮게 보거나 혹은 반대로 신격화한다.) 그리고 자존감과 주체성을 강하게 열망하는 사람일수록 ‘완벽한 그것들’에 대해 본인이 세운 ‘좋게 말하면 기준, 나쁘게 말하면 틀’을 자기 자신에게 씌운다. 타인의 시선과 사회의 시선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졌던 나처럼 말이다. 정작 우리는 ‘나’를 찾으면서까지 나에 대한 틀과 기준을 벗어 던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우리는 주체적인 삶이라는 가치에 대한 고민을 너무나도 쉽게

1. ‘내’가 없어진 집단에서 현실에 끌려 다니며 살거나,

2. 집단의 모든 기준에서 벗어나려 완벽한 주체성을 위해 살거나

라는 단, 2가지 선택지 중에서 한다.


선택지를 두 개로 놓는다면 나는 뭘 생각하든 두 개의 선택지 '안에서' 생각할 수 밖에 없다. 주체적이기를 포기한 1번이나, 주체적이기 위해 나의 주체성에 기준을 정하는 2번이나 어차피 우리는 진정으로 자유롭지 못한 틀에 갇혀 있을 뿐이다. 나의 경우를 봐보자. 타인의 시선을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면서 어떻게 완전히 타인의 시선 밖에서 생각할 수 있을까. 이미 타인의 시선이란 모호한 개념에 대해 기준을 만들고 판단하고 재단하면서.


애당초 ‘주체성’과 ‘자존감’이란 ‘대상’이 아니다. 나의 밖에 있는 무언가가 아니라는 소리다. 몇몇 가치와 선택지들의 반대지점에 있는 것도 아니다. 사회와 문화에 따라, 개개인에 따라 어떤 가치와 비교적 자주 대립하게 될 때도 있지만 그것이 ‘주체성’의 가치와 개념이 대상화 될 수 있다는 결론을 이끌어내진 않는다.


 우리는 나다운 삶을 위해 쉽게 현실적인 무엇인가를 포기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다시 한번 우리 자신에게 묻고 싶다. 주체적인 삶이 저 ‘조건’들을 충족해야만 가능한 것인가. 혹은 어떤 ‘방법’으로 가능한 것인가.






나 역시도 그랬다. 계속해서 아주 오랫동안 주체적인 삶, 나다운 삶을 꿈꿨지만, '틀'이 있었다. 나는 주체적으로 살아야 한다고 말하면서, 정작 그 시작점을 나에게 두지 않고, 주체적으로 사는 내가 되고 싶어서, 방법과 기준을 밖에서 찾아 다시 나에게 들이댔다. 가장 간단하게는 타인의 시선과 사회적 기준에 대한 강한 거부감이 그 기준 이였다. 결국 타인의 시선에 대한 강한 거부감은 내 맘속 깊은 곳에 있는 스스로에 대한 질문으로 귀결된다.


“너는 얼마나 나다운 사람이니?”


나는 나답기 위해서 얼마나 나다운가에 대해 스스로를 검열의 잣대에 올리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주체성(자존감)에 대한 이 길고 긴 고민에서 한가지 결론을 내렸다. 주체적인 삶이란 내 삶의 모든 것의 시작이 나인 사람이다. 진정 주체적인 삶을 사는 것은 단순히 남들의 시선을 신경 쓰고 안 쓰고의 차이가 아니라 내 주위에 있는 모든 틀 '밖'에서 생각하는 것이다. "이래야 해서"라는 시작점이 하나도 없이 오롯이 나를 시작점에서 두었을 때 가능하다.


‘나’를 선택지가 아닌 시작점으로 두었을 때, 내 세계의 완벽한 중심이 나일 때 나는 보다 단단하고, 유연하게 세상을 바라볼 수 있고, 넓은 시야를 가질 수 있다. 주체적인 삶은 우리가 다가가야 할 ‘대상’이 아니라 ‘중심’이 되어야만 가능하다. 어떤 기준과 방법으로 도달 가능한 것이 아닌 내 모든 삶의 가장 기본적인 바탕이 되어야 한다. 마치 선분의 양 끝 중 한 끝점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아닌 원의 중심처럼.


혹여나 위에서 예시로 든 사회가 자주 말하는 ‘주체적인 완벽한 삶’을 목표로 하는 것이 부정적인 것이라고 오해는 마시길.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진짜 중요한 건 “나의 삶이 얼마나 주체적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내 삶에 대한 고민과 나의 선택과 답이 “남을 신경 쓰든 안 쓰든, 현실과 타협하든 아니든, 사회의 기준에 부합하든 아니든, 안정적이든 도전적이든, 일상을 벗어나든 일상 속에 남아있든, 변화하든 변화하지 않든” 진정으로 나에게서 나온 답이냐는 것이다.


‘내가’ 가치들을 고민하고 선택하고, 진짜 ‘내가’ 내 삶의 길들을 선택하는 것.

내 삶의 모든 시작이 진짜 ‘나’인 것. 이게 내가 내린 주체적인 삶에 대한 답이었다.






나는 더 이상 나에게 “얼마나 주체적이니?”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고, “남의 시선을 벗어나야만 해”라는 기준을 강요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정말 신기한 게 그 모든 주체성에 대한 틀을 내려놓고, 그냥 단순히 '나'에 대해서부터 모든 선택에 대한 고민과 생각을 시작하니, 오랫동안 고민해왔던 삶의 여러 문제들에 대해 나만이 낼 수 있는 ‘내 삶에’ 최적화된 답이 너무 쉽게 나왔다.


나답게 살기 위해 스스로를 ‘나다운 삶이라는 이름의 평가대’에 올리고 있는 나와 같은 고민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누구나 어떤 상황에서도 나답게 살 수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그냥 스스로로 살아가면 된다. 언제나 답은 가장 심플하다.



[이민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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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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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다
    • 좋은 글 감사합니다 도움이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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