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폴 오스터가 지은 달의 궁전 [도서]

글 입력 2018.10.22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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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제목은 적당히 몽환적이고 적당히 촌스러워서 로맨틱하다. 원작인 문 팔라스나, 번역된 버전으로서 달의 궁전이 되었을때도 그렇다.폴 오스터는 [리바이어던], [빵 굽는 타자기] 등을 펼쳐 낸, 이미 유명한 작가이며 작품성을 인정받았지만, 베르나르 베르베르나 하루키처럼 이미 너무 알려져서 좋아하는 작가로 꼽았을 때 가벼워보이지 않는다. 도쿄로 떠나는 길에 문 팔라스를 선택한 이유이며 이 서평의 주인공이 된 사연이다 .호떡을 구우며 반 년간 돈을 모으다가 하다가 일본에서 취업을 하려고 준비중인 시기었다. 동경은 끔찍하게 더웠고 방엔 나와 일본어 단어집들 뿐이었다. 계속되는 불합격 소식에 실망하기도 지겨울 지경이었다. 무기력보다 깊은 무엇인가에 빠져들던 그 때, 소설 책 장을 넘기며 창문 틈 사이로 중국집의 ‘Moon Palace’ 네온사인을 보는 일은 내게 더없이 황홀한 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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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장에선 자기 소개 대신 인간이 달 위를 처음 걸었던 시기에 대한 얘기를 꺼내 놓는다. 이내 위태위태한 삶을 살고 싶었으며 갈 수 있는 데까지 가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보고싶었노라고 덧붙인다. 이 무슨 망나니같은. 작가는 주인공이 그냥 울적해 하게 두지 않는다. 대신 ‘꽤나 여러 날 동안 맥없이 돌아다니고, 훌쩍거릴 만큼 훌쩍거리고, 19세기 소설에 나오는 고아 주인공처럼 밤이면 흐느껴 울다가 잠에 들었다’고 여러 번 고쳐 쓰고, 잘 설명하려고 고민한 흔적이 보이는 문장들로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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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적인 줄거리를 보자면 극적으로 주인공이 친아버지와의 첫 만남이 있고, 괴팍한 노인 에핑이 있고, 키티와의 사랑과 이별이 있다. 그다지 끌리는 흐름은 아니다. 3대에 걸쳐 밝혀지는 어마어마한 출생의 비밀은 오히려 주말 막장 드라마를 떠올리게 할 정도. 내가 열광했던 부분은 주인공 포그와 그의 삼촌이 인생을 대하는 태도였다. 이건 당장 오늘까지인 신청일을 맞추기 위해 책의 앞부분만 읽고 쓰는 서평이어서, 또는 집중력이 오래 이어지지 못해서 그런 것과는 전혀 거리가 있다. 그의 삼촌은 뚜렷한 목적 없이 되는 대로 살아가면서 공상에 잠기고, 벼락같이 화를 내고 한참씩 무기력에 빠져드는 기질을 가지고 있으며 결국 그 기질을 극복하지 못한 채 인생을 망친다.구직 활동 중 그동안의 내 이력서를 뒤적여보니, 매번 흥미로운 것들에게 귀를 기울이고 꽁무니를 열성적으로 쫓아다니는, 그러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휙 하고 돌아서 버리는 충동과 혼란의 흔적을 고스란히 남겨둔 내가 보였다. 그런 나를 지긋지긋하게 여기던 중에 읽힌 ‘자신이 직업으로 삼은 음악 외에 다른 것들이 세상에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서 때로는 그들에 치일 지경이었으며 무슨 일인가 하며 늘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이었다’ 며 주인공이 삼촌을 설명하는 문장들은 칭찬의 의도가 전혀 아님에도 너무나 유쾌했다.


*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34페이지 근처에 걸쳐져 있다. 주인공은 삼촌의 유품인 책을 읽어나가기 시작한다. 게걸스럽게 흡수하며 한 권도 빼놓지 않고 차근차근 방 귀퉁이에 읽은 책을 쌓아 올리고, 등교하는 날마다 중고 책방에 팔아내는 과정이 이어진다. 영화에 한 장면처럼 눈에 너무나 선명하게 보일 듯한 그 책장으로 여러 번 돌아가서 다시 들춰 읽었다.


“이 세상의 혼돈에 저 자신을 내맡김으로써 세상이 제게 어떤 비밀스러운 조화, 제가 저 자신을 꿰뚫어볼 수 있는 어떤 형태나 패턴을 드러내 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요점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우주의 흐름에 실려 떠 가자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취업에 매달리는 친구들을 뒤도 돌아보지 않고, 포터 필터를 잡았고 커피 산지인 과테말라로 떠났다가 짐을 다 싸들고 일본으로 이주했다. 나는 내내 거의 늘 혼란스러웠고 치열한 고민 속에서 지냈지만, 사실 제대로 된 많은 것을 염두에 두지 못하고 있어서 일이 생각도 의도도 없던 곳으로 흘러갈 때가 많았다. 새로운 시도들 속에서 오랫동안 고통받았으면서 ‘얼마나 간절하게 원하는지’는 나의 운명에 있어 관심사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바라는 모습과 관계없이 흘러가는 동안 나는 그 흐름의 방향성을 간파해 보겠노라고 정신을 또렷하게 하는 데 집중했고, 후배들은 그런 날 보고 진정한 욜로(YOLO)라는 둥 추켜세웠다.  ‘나는 내가 용기를 가지고 행동한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영락할 대로 영락한 겁쟁이의 모습을 보였을 뿐이다. 세상을 경멸하며 혼자 즐거워하고, 당면한 문제점들을 똑바로 보지 않으려고 한 것이 고작이었다.’ 성찰과 쾌활한 자학의 시간에 이보다 더 좋은 문장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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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최애 캐릭터’의 마지막 대사로 서평을 마무리 지으려 한다. “너도 알 테지만 결국에는 모든 일이 다 잘 풀리고, 모든 일이 다 연결될 거야. 아홉 행성의 궤도, 아홉 행성들, 아홉 번의 이닝, 아홉번의 삶. 그걸 한번 생각해봐라. 조화는 끝이 없다. 하지만 이 실없는 소리는 하룻밤으로 충분해. 이제 시간이 점점 늦어지고 잠이 우리 모두를 부르고 있다. 자, 손을 내밀어 봐라. 그래, 바로 그 거다. 아주 단단히 쥐고, 그렇게. 자, 이제 흔들자. 그래, 됐다. 작별의 악수. 우리를 끝까지 지탱해 줄 악수.“



[조서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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