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위플래쉬 : 매혹적인 광기 [영화]

글 입력 2018.10.22 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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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플래쉬 포스터.jpg
 

<위플래쉬>를 처음 본 날이 아직도 생생하다. 영화에 대한 사전정보 없이 영화관에서 적당한 시간대의 영화를 골라서 보게 된 것이 바로 이 영화였다. 전혀 예상치 못한 스토리에 당황하는 것도 잠시, 곧 영화에 정신없이 빨려 들어갔다. 영화가 끝난 후에 필자가 뱉은 말은 “대박”이었다. 난데없이 날라든 펀치에 얻어맞은 듯 머리가 얼얼했고 온 몸에는 전율이 일었다.
 
<위플래쉬>는 재즈를 메인으로 한 음악영화이다. 음악영화인 만큼 영화를 보는 내내 좋은 음악들로 귀 호강을 할 수 있다. 평소에 재즈에 관심이 없던 사람이라도 영화를 보고 나면 음악 재생 목록에 영화 대표곡인 ‘whiplash’ 와 ‘caravan’을 넣게 될 것이다.
 
음악영화하면 떠오르는 몇 작품들이 있다. <비긴어게인>, <원스>, <싱 스트리트> 등이 그것이다. 이 영화들은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만나서 음악을 하며 성장해가는 따뜻한 이야기들이다. 뜬금없이 다른 음악영화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위플래쉬>에서도 이런 내용을 기대한다면 다른 영화를 찾아보라고 조언해주기 위해서이다.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만나서 음악을 하는 내용까진 맞지만 욕설과 폭언이 난무하며 정상의 범주에서 벗어난 사람들이 음악을 하는 내용이니 말이다.



폭군, 미친 지도자

플레쳐.jpg
 
 
플레쳐는 항상 검은색 티를 입고 다니며 시간을 초 단위까지 맞춘 정각에 다니는 인물이다. 그의 이런 완벽주의 성향은 그가 맡고 있는 밴드를 지휘할 때 더욱 확연히 드러난다. 그는 연습 중에 조금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으며 완벽한 연주를 위해 단원들에게 인신모욕, 패륜적인 욕, 의자를 던지는 것과 같은 폭력적인 행동도 서슴지 않는 사람이다. 사연 없는 악역은 없는 법일까. 그의 이런 괴팍한 행동에도 나름의 이유가 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난 정해진 한계를 뛰어넘게 하고 싶었어" 상대를 한계까지 몰고 가 한계를 뛰어넘게 만드는 것. 그의 행동의 기반이 되는 신념이다. 그만의 방식으로 그는 제 2의 천재 연주자 찰리 파커를 찾고 있었다.



최고를 갈망하는 드러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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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드류는 친구도 없고 자신이 속한 밴드에서 드러머 보조 역할을 하는 눈에 띄지 않는 학생이다. 이런 그의 인생이 극 초반에는 그래도 술술 풀리는 듯 보인다. 드러머 보조가 메인드러머을 제치고 플레쳐의 밴드에 발탁되고 호감 가는 여학생에게 한 데이트 신청도 성공하니 말이다. 이제 핑크빛으로 가득할 것만 같았던 그의 앞날은 ‘사이코’같은 플레쳐와의 첫 연습 이후로 예상과는 다른 방향으로 흐르게 된다. 그는 최고 드러머가 되고 싶다는 강한 열망에 사로잡힌다.
 


피의 흔적을 따라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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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는 예로부터 인간의 역사에서 다양한 상징적 의미를 가져왔다. 피는 모든 인간의 몸 속 혈관에 흐르고 있지만 다치지 않는 한 육안으로 볼 수 없다. 그렇기에 마주했을 때 신비롭고 때론 공포감마저 드는 피는 많은 예술작품에서 매력적인 소재로 사용되었다. 이는 <위플래쉬>에도 적용된다. 피는 이 영화에서 중요한 장면마다 등장하는 소재이다. 강렬한 붉은색의 피는 드럼에 대한 그의 욕망, 갈증을 효과적으로 시각화한다. 영화 속 피의 흔적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앤드류의 감정의 흐름을 읽을 수 있다.

#1
첫 연습에서 플레쳐는 앤드류에게 폭언은 물론이거니와 박자가 맞지 않는다고 앤드류의 뺨을 때리며 박자를 맞추게 한다. 이런 모욕적인 일을 당한 후 앤드류는 드럼 연습에 매진한다. 드럼스틱을 잡는 엄지와 검지 사이가 찢어져 상처가 나지만 그는 밴드를 붙이고 다시 연습을 한다. 이윽고 밴드에도 피가 비치고 밴드가 떨어져 나간다. 그는 밴드를 하나 더 붙이고 연습하지만 그 밴드마저 떨어져 나간다.
 
영화에서 처음으로 피가 등장하는 장면이며 앤드류의 드럼에 대한 욕망과 갈증이 본격적으로 드러나는 순간이다. 물론 이 이전에 그의 욕망과 갈증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다만 전에는 욕망과 갈증이 크게 드러나지 않고 내제되어 있었다면 여기서는 플레쳐의 채찍질이 동기부여가 되어 그 존재감이 표출된다.

#2
여전히 앤드류는 연습에 매진한다. 앤드류는 뜻대로 되지 않는 드럼 연주에 욕설을 하고 드럼을 부숴버린다. 드럼을 부순 손에서 피가 나고 앤드류는 손을 얼음물에 담근다. 얼음물이 새빨갛게 피로 물든다.
 
앤드류는 이전에 비해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모습을 보여준다. 드럼을 치는 그의 모습은 무언가에 쫓기듯 조급해 보인다. 이는 이 장면에 앞서 발생한 두 가지 사건에서 기인한다. 친척들과의 만남에서 활달하고 성적이 좋은 사촌들과 비교 당하고 인정받지 못한 그는 열등감을 느낀다. 그런 상황에서 플레쳐는 앤드류가 속해있던 이전 밴드의 메인 드러머 라이언을 데려와 그를 앤드류와 드러머 자리를 놓고 경쟁을 시키며 앤드류를 더욱 자극한다. 이런 자극제에 자라난 욕망은 피가 얼음물을 붉게 물들인 것처럼 앤드류를 점차 잠식해간다.

#3
‘caravan’ 의 드러머 자리를 놓고 앤드류, 라이언, 원래 메인 드러머였던 태너 3명이 경쟁하게 된다. 플레쳐의 마음에 드는 연주를 하는 사람이 나올 때까지 경쟁은 몇 시간이고 계속된다. 플레쳐가 주는 위압감 속에서 이어지는 테스트는 지옥을 연상케 한다. 그 상황 속에서 마침내 앤드류는 연주를 성공해낸다. 연주를 성공한 그의 손뿐만 아니라 드럼, 스틱 또한 피범벅이다. 말 그대로 피를 토해낸 연주 끝에 그는 메인드러머를 따낸다.

#4
앤드류는 공연을 가던 중 예기치 못한 일로 공연에 늦게 된다. 제 시간에 맞춰 공연에 오지 않으면 앤드류는 공연에 오를 수 없는 상황. 앤드류는 공연에 오르기 위해 급하게 운전을 하다가 결국 교통사고를 당하게 된다. 차가 뒤집어지는 큰 사고로 부상을 입은 앤드류는 위급한 상황에서 가장 먼저 시간을 체크한다. 그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더 이상 앤드류 본인이 아니다. 오직 드럼, 재즈이다. 그는 부상도 아랑곳 하지 않고 피로 온몸에 뒤집어 쓴 채 공연장으로 뛰어간다. 결국 공연에서 드러머 자리를 지키게 되지만 연주는 부상으로 인해 망치게 된다. 교통사고를 당하고도 병원이 아닌 공연장으로 정신없이 뛰어가는 그의 모습은 상식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다. “미친 거 아니야?”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그의 행동은 광기 그 자체이다. 앤드류의 욕망은 선을 넘어 광기가 되어있었다.

#5
앤드류는 자퇴를 하는 동시에 플레쳐를 학교에서 해고당하게 만든다. 그 후 재회한 둘은 플레쳐가 앤드류에게 복수하기 위해 계획한 공연에 함께 서게 된다. 이 공연에서 앤드류는 한 마디로 물 먹게 되지만 이에 굴복하지 않고 플레쳐에게 엿 먹으라며 막무가내로 ‘caravan’ 을 연주한다. 완벽 그 이상으로 신의 경지에 오른 연주를 선보이는 앤드류. 연주가 드럼 독주 부분에 들어가며 최고조에 이를 때 그의 손에 다시 피가 비친다.
 
이를 위해 지금까지 달려왔다고 해도 무방한 영화 마지막 10분간의 ‘caravan’ 연주 장면이다. 두 사람은 서로 원한을 품고 있음에도 ‘caravan’을 연주하는 그 순간에는 모든 걸 잊고 음악에 집중한다. 심지어 이 10여분 동안 두 사람은 여느 영화의 스승과 제자의 관계처럼 보이기도 한다. 차이가 있다면 두 사람의 연결고리는 인간적인 관계에서 형성된 끈끈한 어떤 것이 아닌 같은 목표를 향해 달리는 사람들이 갖는 교감이라는 점이다.
 
앤드류는 10분 동안 드럼과 그야말로 혼연일체가 된다. 플레쳐의 무수한 채찍질이 앤드류의 광기를 만들어냈고 그 광기가 또 다른 찰리 파커를 탄생시킨 것이다. 이는 그 누구보다도 그들이 잘 알고 있다. 연주가 마무리되기 직전 영화에서 처음으로 마주보며 미소를 짓는 그들의 모습에서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인간이 삶을 살면서 영혼을 바칠 정도로 무언가를 사랑하는 일이 몇 번이나 있을까. 아니, 애초에 그런 기회 자체가 모든 인간에게 주어지지 않는지도 모른다. 본인이 좋아하는 일을 찾는 것조차 생각만큼 쉽지 않으니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삶에 치여서 자기가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그저 인생이 흘러가는 대로 살아간다. 이것이 앤드류와 플레쳐의 광기가 매혹적으로 다가오는 이유이다. 어차피 한 번 사는 인생, 그들처럼 미쳐보는 것도 나쁘지 않지 않을까.


[정지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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