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베세토 페스티벌 - 오장군의 발톱(libido:)

글 입력 2018.10.23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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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 세 토 페 스 티 벌

오장군의 발톱

libi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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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SeTo Festival with ACC



한국, 일본, 중국을 매년 순회하며 진행되고 있는 축제, 베세토 페스티벌. 한국 현대사의 역사적 유물과 현대적 공간이 공존하는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만나는 첫 번째 베세토는 일본 극단 libido:의 연극 <오장군의 발톱>이다. 역사적 의미가 깊은 이 충장로 한 가운데에 위치한 ACC(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전쟁의 아픔을 이야기하는 극을 보게 되니 감회가 남다르다. 낯설지만 낯설지 않은 이야기를 들고 온 극단 libido:의 연극을 소개한다.



포스터 오장군의 발톱.jpg

 



줄거리



<오장군의 발톱>은 시골에서 평범하게 살던 오장군이 입대하며 그와 그의 가정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로 1994년 서울에서 열린 제1회 베세토 축제에서 참여를 했던 작품이다.


시골에서 농사만 짓고 어머니와 암소인 먹쇠와 함께 평화롭게 살던 오장군에게 어느 날 징집영장이 날아온다. 애인인 꽃분이에게 징집사실을 전하고 두 사람은 입대 전에 결혼한다. 입대한 오장군은 훈련을 무서워하고 군대생활에 적응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전투 상황이 어려워지자 훈련기간을 단축하여 전선으로 보내지게 된다. 최전선에 투입되기 전 날, 전쟁터에서 전사했을 때를 대비해 머리카락과 손톱을 잘라두라는 말에 오장군은 발톱까지 깎는다.


오장군과 수많은 병사들이 죽음을 미리 예약하면서 깎아둔 손톱과 발톱이 고향집으로 전달되며, 고향에 남아 있는 어머니와 꽃분은 오장군의 발톱과 손톱, 머리카락을 받아들고 오열한다. 비정한 전쟁의 속성과 인간의 잔혹함은 동화 같은 진행 속에서 리얼하게 드러나며 전쟁이라는 현실적인 소재 속 동화적이면서도 희극적인 분위기는 이 작품만이 갖는 특이함이라 할 만하다.


- 베세토페스티벌 소개 책자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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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공간을 연극하다



<오장군의 발톱>은 참으로 즐거운 연극이다.


극의 마지막은 오장군의 죽음으로 끝나 비극적이지만 극이 진행되는 내내 희극적인 요소가 가미되어 극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극의 소품마저 즐거움을 위한 것이었다. 극장에 불이 꺼지고 무대에 첫 조명이 비춰졌을 때, 배우들은 웃으면서 무대를 만들고 있었다. 연극의 시작이 무대를 만드는 모습이라니. 천장에서부터 내려오는 그물망이 무대의 배경이고, 그물망에 여기저기 옷가지가 걸려있거나 무대를 준비하는 배우들이 옷가지를 걸어두기도 했다. 무대 한 쪽의 사다리에는 나뭇잎이 붙어 있고, 바닥에는 천이나 옷가지가 널부러져 있었다.


배우들은 웃고 떠들며 무대의 옷가지를 정리하는 듯, 더 어지르는 듯 극의 시작을 준비했다. 한 쪽 구석에 한 남자배우가 거울을 보며 립스틱을 바르는 데, 나는 정말이지 립스틱을 바르는 게 입술보호를 위해선 줄 알았다. 그저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긴장을 푸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가 극의 역할 중 먹쇠라는 것을 알고 정말 크게 웃었다(먹쇠는 암소였다.). 배우들이 연주를 하고 북으로 피리로 배경음악을 깔아주며 극의 음악적 요소를 만들어 갔다. 장면마다 소품은 옷가지, 사다리, 책상 등 쉽게 구할 수 있는 소품들이었고 배우들은 무대 위에 올라가져 있는 이 소품들을 때마다 활용했다.


극의 내용은 사실 낯설지 않다.(더 주관적으론 흥미롭지 않다.) 주인공은 시골 마을의 순진한 농사꾼이고 사랑하는 가족과 사랑하는 여인을 두고서 전쟁에 끌려 갔다가 결국 살아돌아오지 못하게 된다는 내용인데, 이렇게 놓고 보면 마냥 슬픈 이야기이지만 이 연극은 내용이 전부가 아니다. 배우들과 소품의 협업이 조화를 이루는 연극이다. 장면마다 배우들이 직접 소품을 옮기고 준비하는데 어수선하다는 느낌이 들기 보단 배우들끼리 호흡이 굉장하다는 느낌이 크게 들었다. 분명 일본에서 온 극단임에도 불구하고 낯선 무대 공간을 마치 매일 연극했던 무대인 냥 자유롭게 이용하고 극을 즐겼다. 이런 다양한 이유 때문에 이번 연극은 모두가 즐길 수 밖에 없는 즐거운 연극이었다.


나는 연극의 주요소는 단연 각본과 각본을 잘 살려 연기하는 배우라 생각했다. 하지만 각본과 배우의 연기가 뛰어나더라도 이를 뒷받침하는 무대, 배경, 조명이 잘 갖추어져 있지 않다면 성공한 연극, 잘 연출된 연극이라 말 할 수 없다는 것을 <오장군의 발톱>을 보고 난 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배우가 무대를 잘 활용하는 것 또한 능력이고 철저한 준비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무대 연출가와 무대 위에서 연기하는 배우가 서로 소통하지 않고 '내 역할만 잘하면 되니까.'라는 마인드로 극에 참여한다면 관객이 느끼기에도 매우 어색할 것이다. 하지만, <오장군의 발톱>에서는 배우가 연출가이고 악단이고 작가였기에 어색함보다 완벽함을 느낄 수 있었다. 배우들이 공간을 잘 알고 내용을 어떻게 표현할까를 깊게 고민한 흔적들이 여기저기서 보이니 언어라는 장벽은 그리 큰 장벽도 아니었고 그들의 프로다움이 느껴져 오랜만에 좋은 경험을 하게 되었다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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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지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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