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진짜를 탐한 예술가의 이야기, 연극 <애들러와 깁>

글 입력 2018.10.25 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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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진짜를 탐한 예술가의 이야기
연극 <애들러와 깁>


"감사합니다. 이 영광을 애들러에게 돌립니다."


예술, 소비, 성공, 진짜와 가짜,
예술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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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로 최대한의 효과를 내는 연출, 관객들을 끌어당기는 힘

본 연극의 시작은 꽤 어수선했다. 이제 막 들어와 자리를 잡은 뒷좌석의 관객들이 본 연극이 이런 거라더라 하면서 이야기를 할 때였다. 관객석의 불이 어두워지지 않은 채, 무대 위로 소녀 역의 배우가 등장했다. 무대 위 흙에 사용될 소품을 가져다두자 어수선하던 분위기가 하나 둘 조용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발표 학생이 등장하고 나서야 왜 이 관객석의 불이 켜 있었는지 알게 됐다. 순식간에 강의실이 된 극장은 자연스레 관객들을 공연 안으로 끌어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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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슬라이드요!'라는 학생(학생 때의 루이즈)의 말에 이어서 등장한 2018년의 연기 코치 샘과 배우 루이즈는 서로를 보고 대화하지 않고, 극단적으로 행동이 제거된 채 관객석으로 보고 대화한다. 이는 행동으로 보여지는 감정이나 이야기의 진행이 아니었으며, 무대 위 어떠한 장치들이 관객의 상상력을 보여주지 않았고, 오롯이 관객들의 상상에 모든 것을 맡겨 버렸다고 할 수 있다. 전반적으로 대사로 묘사되는 공간을 상상하고, 소리를 상상하며 라디오 드라마를 듣듯 공연을 보게 됐다. 물론 라디오 드라마에서는 절대 접하지 못할 배우들의 표정이 들어왔다.

행동이 극도록 배제되어 있는 연출이었음에도 배우들의 표정, 말투, 숨소리들이 상황과 감정을 묘사했다. 마치, 최근에 예능에 등장했던 음악을 듣고 몸을 가만히 두어야 하는 게임처럼 연기를 하는 배우에게 요구된 자세가 정자세였다니 그들이 그러한 단순한 행동으로 다양한 감정의 스펙트럼을 나타내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가가 느껴졌다. 또한 무대 역시 단순했다. 가장 단순한 무대 구성이지만 아이디어가 돋보였다. '최소로 최대한의 효과를 내자'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러한 방식이 예술의 자본주의적 소비와 욕망에 대해서 표출한 본 연극에 가장 적합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러한 행동의 절제가 해소되는 연극의 후반부에서 더욱 큰 감정의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묶어왔던 것을 풀어헤치는, 그 과정은 어린 날의 루이즈가 애들러의 예술를 존경했던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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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들의 끝 없는 이야기

여기에 등장하는 깁, 루이즈, 그리고 샘까지 예술가다. 대사 속에 살아있는 '애들러'까지 말이다. '애들러'와 '깁'은 미국 현대 미술계를 뒤흔들었던 사람들이었지만 더 이상의 작품 활동은 의미가 없다며 스스로 예술가로서 소비되기를 멈췄다.

개인적으로 예술을 제 3자의 시선이 있어야 완성된다고 생각한다. 자기 개인의 만족을 위한 예술 활동이 있겠지만 그러한 것들을 떠나 예술은 그 예술을 향유하는 사람들이 존재해야 살아난다. 본 연극에 등장하지는 않지만 가장 정신적으로 무게를 가진 '애들러'는 자신의 병과 삶의 끝이 어떠한 방식이든 소비되는 것을 원치 않았고, 예술가로서 잊혀짐으로 '죽음'을 선택하려 한 것이 아닐까. 그렇게 소비되지 않기 위해 '죽음'을 선택했던 '애들러'와 '깁'에게 진정한 예술을 하기 위해 '루이즈'와 '샘'이 등장한다. 자신이 하는 예술, '연기'의 정점을 찍기 위해 '진짜'가 되려 하는 '루이즈'의 모습은 미친 것처럼 보인다.

'애들러'의 집을 찾아가고 무덤을 파며 진짜가 될 수 있다고 말하는 루이즈의 모습은 극단적이었고, 폭력적으로 보이기도 했다. 자기 자신만을 다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내면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상대적으로 약자가 된 깁에게 그녀의 아픈 사랑을 건드리니, '예술'이란 이름의 폭력 같았다. 그럼에도 그러한 과정 속에서 루이즈가 상을 수상함으로써 예술가로서 성취해냈으니 그 과정의 광기는 정말로 필요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깁'과 '루이즈'의 충돌은 우리가 예술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에 대한 생각을 하게 했다. 소비의 대상인지, 어떠한 이상의 성취인지, 그저 갖고 있는 영감의 표출인지, 그러한 예술의 과정 속에서 예술가, 예술을 향유하는 사람 모두가 폭력적이지는 않는지 생각하게 됐다. '깁'은 말하지 않는가. 철조망이 있다는 건 들어오지 말라는 이야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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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극들을 보면서, 또 여러 예술작품을 접하면서 이해해서 짜릿해지는 경우도 종종 있지만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엄청 많다. 본 연극도 완벽하게 모든 면들을 이해하고 본 연극은 아니었는데, 모든 예술작품이 그런 것이 아닐까. 예술에 대해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어떠한 작품이 조금이라도 감정을 일렁이게 했다면 예술가도 향유한 사람도 성공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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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혜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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