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食일담] 자연을 닮은 디저트, 자연을 담은 디저트

다섯 번째 후식일담, 밴프(Banff)의 디저트
글 입력 2018.10.25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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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에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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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산악인은 로키 산맥을 가리켜 스위스를 100개 쯤 합쳐 놓은 듯한 자연이라고 했다. 스위스에 안 가봤어도 로키 산맥을 보면 그 말이 마음 깊은 곳까지 와 닿는다. 눈 닿는 곳마다 한 폭의 유화였고, 카메라를 대는 곳마다 작품이 찍혔다. 거대한 산맥이 끝없이 이어지고, 눈 덮인 봉우리는 상상할 수 없이 많았다. 이름처럼 거친 바위산인 로키는 태곳적 이 땅이 솟아오를 때를 연상케 하는 원시 자연의 모습을 그대로 갖고 있었다. 그런 산세, 그런 자연은 태어나서 처음 보는 풍경이었다. 세상이 넓다는 말을 피부로 체감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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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서쪽에는 광활한 로키 산맥이 있고, 로키 산맥 아래에는 밴프(Banff)라는 작은 마을이 있다. 로키 산맥을 여행하는 여행자들의 베이스캠프와 같은 역할을 하는 곳인데, 그 자체도 그림같이 예쁜 마을이다. 그래서인지 험준한 로키산맥 속에 있지만 관광지로 개발이 잘 되어있는 편이다. 큰 쇼핑몰도 있고 은행도 있고 박물관도 있고 있을 건 다 있다. 로키 산맥이 워낙 유명한 여행지이기에 전 세계에서 관광객들이 몰려들고, 특히 아시아인이 많다는 점에서 비교적 위화감이 적은 곳이기도 하다. 음식 역시 그 국적이 상당히 다채롭다. 이곳만의 특산물이나 꼭 가 봐야할 맛집이랄 곳은 없지만, 아무 식당에나 들어가도 실패 확률이 적을 정도로 음식 수준들이 훌륭하다.

물론 디저트 탐방 역시 빼놓을 수 없는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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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프에서만 먹은 디저트만 해도 이렇게 많고 캐나다를 여행하며 먹은 디저트를 합치면 훨씬 더 많지만, 그 중에서도 밴프만의 특별한 디저트 세 가지를 소개해보고자 한다. 이미 인터넷에서 유명한 곳들이기는 하나, 개인적으로도 맛있게 그리고 재미있게 먹은 디저트들이다. 혹시 캐나다에, 그 중 밴프에 가게 된다면 꼭 들러보시길. 로키 산맥의 대자연이 고스란히 녹아든 디저트들이다.



비버 테일(Beaver Tai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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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인상은 평범하다. 그냥 넓적하게 만든 츄러스같다. 한 입 물어도 생각이 딱히 달라지진 않는다. 튀긴 반죽도 그 위에 뿌려진 시나몬 가루도 입 위로 우수수 떨어지는 설탕도 모두 낯설지 않다.

그러나 그 위에 신선한 레몬즙을 뿌리면 모든 것이 달라진다. 새콤한 레몬즙과 설탕과 시나몬가루의 조합이 이렇게나 환상적이었다니. 상큼하고 찐득한 이 모순적인 조합이 바삭하게 튀긴 빵과 만나면 천국이 된다. 한 입 먹자마자 뇌가 번쩍이고, 정신 차리고 나면 벌써 뱃속으로 사라져 버리고, 어느 새 한 개 더 사러 가게를 향하게 되는 마법의 디저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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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먹어본 건 가장 기본 맛이었고, 누텔라나 잼을 바르고 갖가지 토핑이 올라가는 등 베리에이션도 다양하게 있다. 그런 메뉴들은 맛보다도 우선 비주얼이 화려해서, 한국에서도 어느 방송을 통해 소개되어 잘 알려져 있는 듯하다. 그러나 감히 장담하건대, 악마의 잼이라 불리는 누텔라도 캐나다 명물인 메이플 시럽도 그 어느 조합도, 저 환상의 cinamon, sugar & lemon을 따라갈 수는 없을 것이다. 글 쓰면서도 자꾸 생각나 당장 비행기 타고 가서 먹고 싶어진다. 하나 밖에 못 먹은 게 그렇게 서러울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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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이름이 비버 테일인 이유는 말 그대로 비버의 꼬리를 닮았기 때문이다. 비버가 오리발같이 물갈퀴를 갖고 있는 건 알았지만 꼬리 모양마저 수중 생물을 닮았다는 건 밴프에 와서 처음 알았다. 밴프 자연사 박물관에 가면 디저트 비버 테일의 기원이 된 실제 비버 꼬리를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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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닮았나요?
 

잠시 밴프의 숨어있는 명소 추천 : 대자연 속에 있는 마을답게 밴프의 자연사 박물관은 역사도 길고 전시 수준도 상당히 높은 편이다. 무엇보다도 동물 박제가 잘 되어있어서 동물에 딱히 관심 없는 사람까지도 흥미롭게 구경할 수 있다.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곰, 무스, 엘크를 비롯한 수많은 동물들을 실제 크기로 만나볼 수 있는 박물관이다. 하나 특이한 점은 박물관의 역사가 워낙 길어서 박물관의 옛날 모습과 연구들도 전시하는 자기 전시(?)를 볼 수 있다는 점. 100년 넘는 시간을 지나온 오래된 전시품들에서 이곳만의 굳건한 자부심이 느껴졌다. 보통 이런 여행지에서 박물관까지 챙겨 가기란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비버 테일을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꼭 한 번 들러보시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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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Fudgery


이름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퍼지(Fudge) 가게이다. 캐나다에선 어딜 가도 흔하게 볼 수 있는 게 퍼지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조금 생소한 간식인 것 같다. 원래 퍼지란 설탕, 우유, 버터를 한 데 녹여 굳힌 것으로, 적당히 찐득하고 녹아내리는 식감에 달달한 설탕 맛을 내는 캔디의 일종이다. 초콜렛과 카라멜의 중간 정도 되는 신기한 질감에 맛도 천차만별인 재미있는 간식인데, 그러나 사탕을 싫어하는 나로서는 사실 아직도 저렴한 불량식품처럼 느껴지기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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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대부분의 퍼지 가게는 퍼지뿐만 아니라 각종 견과류를 섞은 초콜릿이나 캔디 애플(막대기에 꽂은 통사과에 카라멜 등을 입힌 간식) 등도 함께 판매하는 경우가 많아서, 들어가서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시간가는 줄 모르곤 했다. 밴프의 대표적인 퍼지 가게인 Fudgery 역시 다양한 간식들을 팔고 있는데, 로키의 퍼지 가게답게 그 이름부터 자연을 닮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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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efields, Glaciers, Rocky Road, … 로키 산맥과 관련된 대표적인 이름들은 다 붙었다. 심지어 BearPaws(곰 발바닥)이라는 이름의 간식도 있는데, 다크, 밀크, 화이트 등 초콜렛 종류별로 하나씩 발바닥을 만들어 놨다. 재미있는 이름들을 구경하며 무얼 살지 한참 동안 고민하다가 Icefields와 White BearPaws를 사들고 나왔다. 작은 봉지 안에 로키 산맥이 가득 들어간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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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hite Bearpaws / Icefields
 

White BearPaws는 이름처럼 정말 하얀 곰 발바닥같이 생겼다. 화이트 초콜릿을 별로 안 좋아해서 큰 기대 없이 샀는데 예상치 못하게 너무 맛있어서 당황스러울 정도다. 캐슈넛(견과류의 일종)에 화이트 초콜릿을 잔뜩 입힌, 꽤나 단순한 디저트 같아 보이는데 이렇게 맛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했다.

한편 Icefields는 피칸에 화이트 초콜렛과 밀크 초콜렛, 그리고 카라멜을 함께 범벅한 간식이었다. 전날 바로 아이스필즈 파크웨이(Icefields Parkway)에서 돌아온 터라 그 벅찬 감동을 복습하며 먹을 수 있었다. 이름만큼의 감동은 없었지만 단 맛과 고소한 맛이 묘하게 중독성 있어 야금야금 자꾸 먹게 되는 마성의 간식이었다. 캐나다산 아이스와인 티와 곁들여 먹으니 더욱 훌륭한 조합.

사실 많이 달아서 다 못 먹고 귀국하는 날 비행기에까지 같이 탔는데, 감기 걸린 몸에 건조한 비행기 공기가 들어와 기침이 끊이지 않던 나를 구원해주어 더없이 고마운 간식이었다. 역시 목감기에는 호올스도 유자차도 아닌 카라멜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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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는 로키 산맥을 등지고 아기자기한 밴프의 거리를 걷다 보면 어느 새 나타나는 달콤한 가게 The Fudgery. 험한 산 속 여행에 지친 심신을 달래주기에 제격인 퍼지 한 조각과 함께 잠깐의 진득한 휴식을 선물받는 곳이다.



Co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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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아이스크림까지 맛집이 있나, 싶겠지만 있다. 진짜 맛있는 아이스크림이 있다. 물론 하겐다즈나 고디바 초콜릿 아이스크림만큼 고급스런 맛은 아니지만, 배스킨라빈스와 비슷한 컨셉인데 훨씬 더 맛있다. 겉으로만 봐선 색소 잔뜩 섞은 불량식품처럼 보이는데, 막상 먹어보면 재료 본연의 맛이 살아있는 게 반전이다. 초콜릿이면 초콜릿, 바닐라면 바닐라, 레몬이면 레몬. 인공 첨가물이나 합성착향료가 느껴지지 않아 반갑고도 신기한 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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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매력 포인트는 바로 아이스크림 이름이다. 이 동네 가게들은 다들 작명 센스가 탁월하다. Cow’s라는 가게 이름에 걸맞게 ‘Cow’nadian mint, ‘Moo’York Cheesecake 등 익숙한 이름을 비틀어 놓는 센스가 마음에 든다. 이름 구경에 정신 팔리다가 겨우 아이스크림을 골라서 사고 나오니, 거리에 지나가는 사람들도 다들 노란 아이스크림 컵 하나씩 들고 가며 먹고 있었다. 10월부터 폭설 경보가 내리는 이 추운 곳에서도 얼어붙은 손으로 바닥까지 긁어 먹게 되는 매력적인 아이스크림이었다.
 




물론 앞서 소개한 디저트가 하나도 없고 모든 음식이 정말 형편없이 맛없다 하더라도 로키 산맥은 꼭 가봐야 할 곳이라고 생각한다. 유치하지만 ‘죽기 전에’라는 말도 붙이고 싶다. 로키의 장엄한 아름다움에는 디저트가 있든 없든 상관없이 기꺼이 경의를 표하게 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많은 것을 느끼고 생각하게 하고, 또 나의 많은 것을 변화시킨 여행지이기도 했다. 이 아름다운 로키 산맥에, 게다가 맛있는 디저트까지 있으니 그곳은 내게 그저 천국이었다. ‘죽기 전에’ 최소한 한 번은 더 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 비버 테일 한 개 더 못 먹은 게 아쉬워서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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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봐요!
 

사진 해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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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랑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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