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무대 위 페미니즘, 어디까지 봐야 할까? [공연예술]

글 입력 2018.10.26 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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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공연계에, 이색적인 캐스팅으로 꽤 큰 관심을 받고 있는 뮤지컬이 등장했다. 바로 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다. 스페인 어느 시골 마을에서 벌어지는 한 가정의 이야기를 담은 <베르나르다 알바>는 오로지 여성 배우 10인으로만 이루어진 캐스팅으로, 정영주, 황석정 등의 실력 있는 배우의 귀환과 더불어, 여배우가 남배우의 소모품으로 존재하지 않고 주체성을 가진 캐릭터로 존재할 무대를 기다려온 연극·뮤지컬 팬들의 큰 기대를 한몸에 받았다. 더군다나 남성이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는 무대를 여성 배우가 무려 10명이나 오르는 경우는 흔치 않기 때문에, <베르나르다 알바>는 티켓 오픈 15분 만에 전 회차 전석 매진, 예매 대기 서비스 전석 매진이라는 기염을 토하며 개막 전부터 승승장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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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한편으로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베르나르다 알바>는 집안에서 엄격하게 통제된 여성들이 각자 남성과의 결혼을 통해 얻는 자유를 욕망하다 파멸에 이른다는 내용으로, 페미니즘적 메시지를 전하기에 부적절하며, 오히려 실제 여성들을 가부장제의 감옥으로 몰고 가는 남성과의 결혼을 긍정적인 요소로 그린다는 점에서 안티 페미니즘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나로서는 아직 개막도 않았으니 어떻다 평하기 어렵지만, <베르나르다 알바>가 어떤 극이냐를 떠나 이번 논쟁은 한 가지 생각할 거리를 던져 준다. 공연계 내의 페미니즘 운동을 지지하는 관객의 경우, 극이 가지는 사상 혹은 메시지가 어떻든 간에-심지어는 반 페미니즘적일지라도-, 여성 배우의 설 자리를 제공한다면 무조건적으로 수용해야 하는가? 우리는 여성 위주의 극을 어디까지 수용해야 할까?

 

이 논쟁을 진지하게 생각해 보기 전에는 당연히, 성별에 상관없이 어떤 장르의 어떤 예술 작품이든 비판 없이는 수용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문화예술이란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며 동시에 날카롭게 찌르는 창이어야 한다. 성찰하는 예술은 진보하지만, 비판 없는 탐미주의는 퇴보만을 부를 뿐이다. 더군다나 공연예술이 미디어로서 대중에게 가지는 영향력을 고려하자면 더더욱 그렇다. 결국 반 페미니즘적인 사상을 전달하는 매개로서 쓰인다면, 페미니즘적인 입장에서의 지지가 가당키나 한 말인가?

 

그러나 미술이나 음악, 문학과는 달리 공연은 한 사람의 힘으로는 만들어질 수 없는 장르의 예술로, 하나의 작품인 동시에 그 자체로 시장이기도 하다. 창작의 배경부터 시장의 영향력을 떼어놓고 볼 수 없는 장르라면, 작품을 소비하고 비판하는 데에도 시장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비판적 수용이라는 말도, 결국 비판을 수용할 수 있을 정도의 규모를 갖춘 다음에야 가능한 것이다. 남성 중심의 극과 여성 중심의 극이 그 시장의 규모에서부터 확연한 차이를 가지는 현실에 대해서, 이 둘에게 같은 잣대를 들이미는 것은 한쪽에게는 그를 토대로 성장할 기회를 주는 반면 다른 한쪽에게는 시장의 확보 자체를 방해하는 일일 수 있다.


더해서, 무대는 관객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장소임에 앞서 또 다른 여성 노동자들의 일터라는 점도 잊어서는 안 된다. 대중들의 수요에 발맞춰 높은 수준의 성인지 감수성을 갖추는 것은 비단 여성 위주의 극이 아니더라도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지만, 극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얼마나 정치적으로 올바른지와는 상관없이, 여배우가 무대에 오를 기회는 더 많아야 한다. 실제 삶에서의 성차별을 해소하기 위한 수단으로 페미니즘적 메시지가 필요한 것이라면, 드물게 여성이 중심인 극이 직접적으로 페미니즘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지 않다고 해서 이를 배제할 수 있을까?

 

결론적으로, 지금 당장은 비판의 수용이 불가능할 정도로 현재의 상태는 기형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비정상적인 구조를 부수기 위해서, 때로는 비정상적인 수단이 필요한 순간이 분명히 존재한다. 그것이 설령 예술 작품을 비판 없이 수용하는 일이더라도 그렇다. 거기다 예술계는 철저하게 시장 원리에 의해 돌아가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견고하게 다져진 남성 예술가들의 카르텔을 부수기 위해서는 예술 외적인 부분, 자본주의의 힘을 끌어오는 일이 불가피하다. 간단히, 여성 배우 중심의 극이 ‘돈이 된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움직임은 운동의 차원에서 진행되어야 한다. 탈코르셋 운동에 관해 다룬 지난 오피니언에서도 언급했다시피, 이 ‘운동’은 발걸음이 나아가는 방향만을 보며 걸어서는 안 된다. 그 방향 끝에 어떤 모습이 되어야 하는지, 걸음이 향하는 목적지를 계속해서 상기해야만 한다. 여성 배우, 스텝, 감독들의 작품들이 성별에 제약을 받지 않고, 비판을 수용해 성장할 수 있을 만큼의 시장 규모를 확대하는 것, 이를 위해 소비자가 최대한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싶다.

 

또한 최근 들어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은 여성 캐릭터를 읽어내는 시선이다. 기존의 여성 캐릭터들이 남성의 시선에 맞춰 성녀, 혹은 창녀의 이분법적인 모습으로만 존재가 허용된 것은 사실이나, 고정관념이 위험한 이유는 관념이 아닌 고정에 있다. 관념 자체는 위험한 것도, 부정적인 것도 아니다. 고정이 아니라 관념 자체에서 멀어지려고 한다면 결국은 남성이 정해놓은 여성의 틀 안에서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분홍색을 좋아하는 것, 파란색을 좋아하는 것, 소심한 것, 시끄러운 것, 똑똑한 것, 멍청한 것, 섹스를 두려워하거나 섹스를 좋아하거나 모두 다 여성 캐릭터의 특성이 될 수 있다. 특정 요소에 대해, 그것이 여성 캐릭터에게 고정적으로 강요된다는 점이 아니라 특성 자체에 대해 혐오감을 가지는 것이 기존의 남성 우월적인 시선을 답습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예를 들어, 남성 캐릭터보다 우월하고 똑똑한 헤르미온느 류의 여성 캐릭터가 아니라 부족하고 나약한 여성 캐릭터일지라도, 심지어 때로는 그런 모습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히고 사건의 진행을 답답하게 만들지라도 그를 ‘민폐녀’라고 칭하기보다는 그가 어떻게 성장해나가고 변화하는지에 대해, 주인공으로서 존재하는 남성 캐릭터에게 베푸는 만큼의 관용은 베풀어줘야 하는 게 아닐까. 헤르미온느와 론 위즐리의 캐릭터가 바뀌었다면, 우리는 과연 헤르미온느를 지금의 론 위즐리만큼 사랑해줄 수 있었을까? 무대 위에서든 스크린 안에서든 다양하고 입체적인 여성을 만나기 위해서는 다른 방식으로 존재하는 여성 캐릭터에 대해 다른 시선으로 읽어내는 일 또한 필요하다.

 

페미니즘과 안티 페미니즘이 같은 지점에서 충돌한다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관점에 따라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어려운 주제라고 생각한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현재의 비정상적인 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소비자가 할 수 있는 최대의 역할은 여기까지일 것이다. 여성이 중심이 되는 동시에 높은 성인지 감수성을 지닌 공연들이 남성 중심의 공연만큼 많이 올라오게 되면 쓸모없어지는 고민이기도 하다. 부디 무대를 소비하는 나뿐만 아니라 무대 위에, 무대 뒤에 존재하는 수많은 여성들에게 이런 복잡한 고민이 쓸모없어지는 날이 오길 바라며, <베르나르다 알바>의 베르나르다 알바 역을 맡은 정영주 배우의 인터뷰로 글을 마친다.



여자 10명만 나오는 극은 처음이다. 우리 배우들은 작품 내용을 모른 상태에서 (취지에 공감하고) 여자들의 이야기를 해보자 해서 모였다.

막상 대본을 펼쳤을 땐 우가 당연히 해야 하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그들의 이야기를 더 집중해서 들어야 하고 (여성은) 더 용기를 내어서 자기 이야기를 해야 하는 간이 온 것 같다. 여배우 10명이 치열한 작업을 했고 피를 토하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하지만 젠더에 관해서만 생각하며 보지 마시고 사람에 관한 이야기로 봐주시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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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인터뷰 출처: CARAMEL ENT 공식 블로그



[이채령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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