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영화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x와 f(x)가 만날 수 없듯이

글 입력 2018.10.26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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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이상한 번역이었다. <Lost in Translation>이라는 원제에는 어디에도 사랑이 없었기 때문이다. 7일간의 타지에서 두 이방인의 사랑 이야기라 이 영화를 칭하기에는 상당한 어폐가 있을 것이다. 코미디와 멜로 로맨스? 어디에도 맞지 않는다. 그렇다면 왜, 제목은 이렇게 된 것일까. 결국은 모든 것을 돌아봐야 한다. 무엇이 사랑인지, 무엇을 통역하고자 했는지. 그리고 왜 영화를 보면 사랑보다는 외로움이 깊이 느껴지는지. 사랑과 외로움은 떨어져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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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외로움만큼 뼈저리게 느낄 수 있으면서도 표현하기 어려운 것이 없을 것이다. 멍하니 느끼고 있다가도 그게 사랑인지 외로움인지를 자각하고 인정하는 것은 또 별개의 문제다. 각종 매체와 책에서 보여주는 감정은 일부분에 불과하지만 너무도 강력하다. 이제와보니 너무 많이 본 영화와 드라마가 교과서보다 효과적으로 주입해놓았다. 사랑을 표현해볼까. 남자주인공과 여자주인공이 우여곡절을 겪으며 생겨난다. 손을 잡고 키스를 하고 사랑한다고 말한다. 꿀 떨어지는 눈빛, 부드러운 말투. 배려. 잦은 만남. 웃음과 더 가까워진 거리. 외로움은 가지 각색의 이유로 생기지만 혼자 포장마차에 앉아 변변찮은 안주와 늘어가는 술잔 앞에서 펼쳐진다. 처진 어깨, 느린 걸음. 눈물, 한숨. 사람을 잘 관찰하고 담아둔 건지 외롭고, 사랑할 땐 꼭 그래야 한다고 가르쳐주는 건지 헷갈린다.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에서도 일부러 그런 상황에 주인공들을 배치시킨 느낌이다. 우리로 치자면 말도 잘 안통하는 서구권으로 갑자기 떨어진 느낌. 한때 잘 나가던 중년 배우 밥 해리스, 대학을 갓 졸업하고 결혼한 샬롯이 일본의 한 호텔에서 일주일 간 보낸 시간을 그려냈다. 영화의 마지막 순간까지 그다지 애틋한 사랑이 느껴지지 않는다. 애틋함은 있다. 응원하는 마음. 동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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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그린 일본은 기괴하다. 대배우 밥에게 대하는 모습도. 처음엔 공손하고 깔끔한 인사가 오고 간다. 그러나 광고를 찍을 땐 통역조차 제대로 되지 않고 이상한 디렉션이 난무한다. 밤이 되면 룸에 매춘부를 보내거나 스트리퍼쇼를 보러가자는 등 공감할 수 없는 '예의'를 차리기도 한다. 좋은 '대접'에 성적 만족까지도 어떻게든 해보려는 모양. 엘리베이터에 탄 일본인들은 그들보다 키가 작고 모두 나이가 많았다. 어딜 가나 영어는 잘 통하지 않았고 그들은 계속 일본어로 알 수 없는 말을 했다. 그렇다면 서구권에서 일본으로 대표되는 아시아를 이렇게 보는 것이냐, 오리엔탈리즘의 극치라고 비판할 부분도 있다. 물론 그들이 일본에 대한 편견이 있을 수도 있고, 어떤 부분은 일본 문화에 있었을 수도 있다. 어딜 가나 영어보다 일본어를 주로 하는 모습이 과장되어 보이긴 하지만 전반적으로 묘사된 것들이 아주 없는 얘기도 아니다. 다만 주제를 표현하기 위해 꼭 이런 장면들이 필요했나는 의문이 든다. 그런 전개와 장면 덕분에 그다지 영화를 자주 찾을 것 같지는 않다. 주인공만큼이나 나도 어색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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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어느 나라였든 감독은 그렇게 표현했을 것이다. 밥과 샬롯은 너무나도 이질적이고 이상한 곳에 있어야만 한다. 어디든 좋은 것보단 나쁘고 이상한 것만 보여야 한다. 아예 소통이 어려워야 한다. 그들이 너무도 이방인인 것이 극명해서 둘이 서로를 마주쳤을 때 아무 생각 없이 지은 미소같은 걸로도 그가 그녀를 기억할 수 있어야 한다. 그들이 적응할 수 없는 곳에 있어야 외로움이 더 극대화될 테니까. 그들이 외로워야 잠을 이루지 못하니까. 잠을 이루지 못해야 그들이 마주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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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에 있을 때도 밥과 샬롯은 그리 행복하진 않았다. 고향에서 밥과 샬롯을 여기로 오게 한 사건이 있었다. 밥에겐 거대한 금액의 위스키 광고가, 샬롯은 사진작가인 존과의 결혼. 밥은 집에 돌아가도 혼자다. 아내는 그가 잘 있는 지 보단 집 공사를 더 궁금해해서 사사건건 질문을 팩스로 보낸다. 아이들은 아빠가 없어도 괜찮다. 아빠와 대화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샬롯 역시 남편 존을 따라 오긴 했지만 남편은 바쁘고 그녀는 무엇을 해야할 지 알 수 없다. 호텔 안은 지겹고 일본 문화를 배워본다며 신사에도 가고 꽃꽂이도 하지만 마음을 잡아 끄는 게 없다. 하지만 일본에 오기 전에도 그녀의 마음을 잡아끄는 건 없었다. 친구에게 진심을 담아 전화를 하면 친구는 바빠서 전할 수가 없다. 철학을 전공했지만 그녀는 이렇다 할 하고 싶은 것이 없었다. 그녀가 존을 정말 열렬하게 사랑했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결혼이 그녀의 도피처였을 수도 있다. 혼자가 지겨워서, 덜 외롭고 싶어서 결혼했을 수도 있잖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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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떠나고 싶던 일본에서 밥과 샬롯은 서로 덕분에 조금 더 오래 머물고 싶어지게 됐다. 별대단한 것을 하지 않아도 말이다. 혼자는 가지 못했던 어느 역 근처 초밥을 먹고, 메뉴판에 그림이 다 똑같지만 가격은 다 다르게 보이는 샤브샤브를 먹을 수 있다. 아무도 모르게 샬롯에 발가락에 든 심한 멍은 이제 밥이 알게 되었고 그들은 함께 일본어로만 알 수 없게 말하는 병원에서 진료도 잘 받을 수 있었다. 알 수 없는 TV프로그램 대신 함께 고전 영화를 보고 고민을 나눌 수 있었다. 이 둘이 중얼거리듯 털어놓은 말이, 그들에게 오랜만에 찾아온 깊은 잠이 영화에서 가장 따스한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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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된 일주일이 끝났다. 밥은 타일 색깔은 고민하면서 자신들의 관계는 돌아보지 않는 아내에게로 돌아가야 한다. 로비에는 업무상 관계된 사람들이 있어서 그들은 어색하게 작별한다. 그러다 택시에서 우연히 본 샬롯의 뒷모습에 밥이 성큼성큼 뛰쳐나가고 그제서야 그들은 제대로 작별할 수 있게 된다. 그는 그녀의 귀에 우리는 알 수 없는 말을 속삭였고 둘은 다시 또 애틋하게 웃었다. 그 말이 밥이 샬롯에게 보내는 사랑이라고 변환하는 건 오히려 재미가 없어진다. 그들은 사랑을 입에도 꺼내지 않았을 것이다. 사랑이 깊을수록 그 말은 더욱더 덜커덕거리며 나오게 될테니까. 다시 만나자고 기약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다시 봤을 땐 그들은 그 때와 지금이 다르단 걸 느끼게 될 뿐이다. 무슨 말을 했는지 들렸으면 영화가 더 싫어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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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무슨 말을 했든 중요하지 않은 이유는 어떤 말을 했더라도 그녀에게 제대로 닿았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우리가 생각과 감정을 꺼내어 상대에게 보여준다고 하더라도 상대는 다른 수식과 함수로 이루어져서 자신의 결대로 받아들이게 된다. 누군가 내게도 말한 적 있었다. 내가 x를 말하면 너는 f(x)로 변환해서 이해한다고.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그래서 그게 뭐? 그걸 알고 있으면 결과값이 x가 되도록 바꿔서 다르게 말해주면 (f(?) = x가 되도록) 되잖아, 라고 했지만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수학처럼 되지 않는다고. 그는 절대 그런 값을 찾을 수 없을 것이고, 나 역시 x를 x 본연으로 이해할 수 없을 것이란 걸. 우리에게도 공통점과 차이점이란 게 존재하지만 좁혀지지 않는 무언가는 결국 있다는 걸 말이다.

그건 화가 나고 슬플 수도 있지만 사실이었고 나쁜 것만도 아니었다. 절대 찾을 수 없을 그런 값을 찾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과정이 사랑이라면, 외로움은 우리 각자가 갖고 있는 기본값이다. 맞춰간다는 말은 모든 걸 다 이해할 수는 없으니 어떤 건 이해하지 않고 받아들여보겠다는 다짐이다. 갑자기 마음이 편해졌다. 어차피 우린 다 그렇게 서로를 완벽히 이해하기는 글렀다고. 애는 써보지만 안되도 노력이 부족해서만은 아니라고 해주는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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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시간을 보내도 다르게 기억하고 일일이 하나하나 짚을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수많은 길을 사랑을 찾아 헤매지만 늘 곁에 있는 건 외로움이기도 하다. 일본인이고 미국인이어서가 아니라 눈을 꿰뚫듯이 마주친다 해도 심장이 뛰고 숨이 오르내리는 이 마음에 느껴지는 것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이가 있겠나. 몸으로 언어로 표현하는 이 모든 것은 결국 사람에 갇혀 있다. 보내는 이와 받는 이 사이에 메세지는 벽에 가로막힌 듯 일렁거린다. 거기에 편지, 대화, 전화 다양한 방식에 따라서는 전달력은 그나마도 줄어들 수 있다. 결국 길을 잃은 건 모든 이의 진심이다. 믿기지 않는다고? 누구 하나 나를 정말 완벽하게 알고 이해하는 사람이 있나? 머뭇거린다면 대답은 나온 셈이다. 물론 다 이해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다 이해하고 싶고 이해받고 싶은 순간은 있다.

그래서 영화가 어색했나보다. 기괴하지 않은 곳에 있어도, 언어가 다르지 않아도, 우리는 길을 잃었다. 길을 잃고 외로운데 더 특별한 조건같은 건 없다. 외로움은 심장박동처럼 뛰어논다. 실상 살아있는 것이 외로운 일이다.




[장지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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