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나도 불어보고 싶다, 트럼펫 <2018 치히로 야마자키+루트14밴드 내한공연>

글 입력 2018.10.26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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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쉬운 악기는 없지만 관악기는 현악기보다 더 큰 심리적, 물리적 거리감이 있었다. 관악기는 전적으로 감상을 위한 악기이지 나의 학습욕을 자극하는 악기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관악기보다 손과 활로 연주하는 현악기를 선호했다. 호흡과 목소리를 사용하여 노래를 부르는 아주 간편한 방법이 있는데 애써 비슷한 형식의 악기를 배울 필요가 없다는 까닭이었다. 지금이야 편협하고 무지한 사고방식이라는 깨달음을 얻었지만 본디 아무것도 모를 때가 가장 용감한 시절 아니겠나.


불다 보면 침이 줄줄 흘러 악기를 닦아줘야 하는 일은 귀찮고 집중하고 나면 머리가 어질어질한 것도 선호 요인이 아니었다. 그저 어렵고 까다로운 악기라는 인식이 먼저였다(현악기 관리와 연주법도 못지않게 세심한데 말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공연은 내 안에 남아있던 관악기와의 거리감을 없애준 공연이었다. 트럼펫의 음색에 매료되어 저 음을 내 입으로 한번 내보고 싶다는 욕구를 잔뜩 불러일으켰다. 공연이 끝난 후에도 며칠째 트럼펫을 검색하는 중이니까.



[아티스트 이미지]chihiro yamazaki_고화질.jpg
 


다채로운 사운드


이 날 연주했던 프로그램 중 seven mile bridge와 japan, Fairy Tail은 재즈 밴드의 정체성이 잘 드러난 곡이다. 각자의 솔로 연주와 합주가 얽혀 만들어내는 사운드에서 공연장을 꽉 채우는 힘이 느껴졌다. 트럼펫은 마치 보컬처럼 주 멜로디 선율을 담당하고 키보드가 재즈 특유의 즉흥적인 리듬감을 도맡았다. 베이스와 드럼, 기타는 안정적으로 멜로디를 받쳐주었다. 펑키한 리듬이 고조될 때는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면서 팝재즈의 색깔이 더욱 뚜렷하게 나타났다. 무엇보다 한 명씩 솔로 파트를 자신 있게 연주하는 모습에서는 자동적으로 환호가 터져 나왔다. 나는 그때부터 이미 리듬에 취하여 옆 사람의 존재는 잊어버린 채 의자에서 들썩거렸다.
  

Ready for the party과 Do it에서는 스탠딩 콘서트장과 다름없는 분위기였다. 특히 새 앨범에 1번으로 수록된 ready for the party는 랩이 포함된 곡이다. 형식에서 자유로운 팝재즈의 특성이 가장 두드러진다. 재즈의 기법 위에 랩을 얹으니 댄스곡에 가까운 음악이 탄생한 것이다. 이렇게 신나는 음악이 코앞에서 들리는데 점잖이 앉아서만 보는 건 오히려 분위기를 다운 시키는 일일지도 모른다. 연주자도 원하고 나도 원하니 몸을 흔들며 함께 즐길 수밖에.

do it, 당근, 새 앨범의 타이틀곡인 your word는 트럼펫이 주는 상반된 감성을 느끼게 해준다. 앞의 두 곡에서는 트럼펫이 선보이는 그루브와 키보드의 스윙 가득한 멜로디가 경쾌하게 울려 퍼지다가 your word에서 전혀 다른 음색을 들려주었다. 트럼펫의 묵직한 음색에서 풍기는 따뜻함과 약간의 블루스적인 감성에 키보드의 청량함이 더해진다. 여기에 베이스와 기타의 리프에서 흘러나오는 날카로움은 풍부한 멜로디를 형성했다. 이런 연주를 듣는다면 누구라도 직접 트럼펫을 연주하고 싶은 욕심이 생길 것이다. 트럼펫은 내면을 파고들어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울림이 있다.



보다(Look)


사실 트럼펫 연주자인 동시에 팀의 리더인 여성 뮤지션을 재즈 음악계에서 본다는 건 흔치 않다. 재즈계의 성별 불균형을 이야기하는 해외에서도 트럼펫, 색소폰, 트롬본 등을 연주하는 여성의 비율이 남성에 비해 턱없이 적다고 말한다. 이런 악기가 여성보다 남성에게 더 적합하다고 여기는 낡은 편견이 잔존하기 때문이다. 창조와 다양성을 강조하는 예술계도 남성 중심 사회의 성 고정관념을 그대로 답습한 공간이라는 점은 누구도 현실의 세계를 벗어날 수 없다는 방증이다. 그렇기에 치히로 야마자키가 재즈를 공부하고 악기를 연주하는 여성들에게 좋은 역할 모델이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분야에서건 여성이 다른 여성을 본다는 건 동기부여가 된다. 다른 여성의 존재와 성취를 눈으로 보고 듣는 경험은 긍정적인 효과를 낳는다. 그 영향으로 나 역시 여유가 생긴다면 트럼펫을 배워보겠다는 결심을 하고 여성 트럼펫 연주자를 더 찾아보게 되지 않았나. 좋은 음악이 주는 즐거움과 동시에 무대 위의 대표성을 생각해보게 된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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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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