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Carpe Diem [기타]

글 입력 2018.10.27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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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살의 나는 자기 계발서를 좋아하는 아이였다. 책 안에 있는 이야기는 더 나은 삶으로 나를 이끌어주는 것 같았고, 그 안에 존재하는 사람들은 모두 과거에서 한 뼘 더 성장했다. 읽는 동안에는 내가 마치 그들이 된 것 같았다. 읽은 게 전부였지만 나도 함께 성장하는 기분이 꽤나 좋았다. 스펜서 존슨의 '선물'은 십 년이 더 지난 지금에도 '현재(Present)가 바로 선물(Present)이다'라는 메시지가 또렷이 기억난다.


지금은 'Carpe Diem', 'Seize The Day'로 더 많이 이야기는 되는 지금 이 순간에 대한 이야기들. 12살의 나는 그 메시지를 전해 받고 감동했다. 그리고 그 말을 가슴에 품고 책을 덮고 세상으로 나가는 순간에도 잊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하지만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과거나 아주 먼 미래에 맞춰놓고 살아갔다. 내가 현재에 발을 딛고 서 있는 순간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느끼고 살아가는 일이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참 이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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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 고등학교를 지나오면서 단 한 번도 현재를 충실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당장 해야 하는 일 보다 멀리 있는 일을 생각하며 걱정하거나 설레했고, 과거에 있었던 어두운 일을 들추며 나를 안쓰럽게 여기거나 남을 미워했다. 과거의 몇몇 달콤했던 순간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파리지옥이 뿜어내는 향기에 홀려 덫에 걸린 파리처럼 돌아갈 수도 없는 과거를 그리워했다. 그러다 문득 '현재를 살라'라는 말이 뻔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지겨웠다. '죽은 시인의 사회'의 키팅 선생님이 외치던 'Carpe Diem'을 듣고도 전혀 마음이 움직이질 않았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현재를 살고 싶지 않았다. 지금 당장 해결해야 하는 문제, 지금 느껴야만 하는 두려운 감정, 그런 것들로부터 도망가고 싶었다. 그렇게 현재에서 도망치는 일을 반복하자 즐겨야 하는 순간에도 제대로 느끼질 못하고 과거와 미래를 생각하며 내 머릿속은 엉뚱한 시간에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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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시계 속 시간과 다른 시간대를 살아가며 영화 '우리의 20세기'를 봤다. 아들 제이미의 사춘기를 걱정하며 엄마 도로시아는 자신의 집에 세 들어 사는 애비와 윌리엄, 그리고 제이미의 친구 줄리에게 제이미가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부탁한다. 그 과정에서 도움을 받는 제이미 뿐만 아니라 나머지 네 사람 모두 한 뼘 더 성장한다. 다섯 사람이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도 꽤 가슴 따뜻했지만, 무엇보다 영화의 마지막이 참 멋졌다. 영화의 결말 부분엔 시간이 흐른 뒤 그들의 모습을 짧은 영상과 대사로 보여준다. 나는 그들의 요약된 삶에서 '예측할 수 없는 인생'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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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과거를 그리워하고, 미래를 바라보며 현재를 살지 못하는 데에는 인생이 가진 '예측할 수 없다'라는 특징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항상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사실 때문에 불안했고, 그래서 자꾸 미래만 생각하게 됐다. 과거에 어떤 행동을 하지 않았더라면 또는 했더라면 달라질 수도 있었다는 사실 때문에 또 바꿀 수 없음에도 자꾸 과거를 바라보게 됐다. 이렇게 과거도 어쩔 수 없고, 미래도 어쩔 수 없다면 '어떻게 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인 현재에 사는 게 좋은 방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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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회의적이던 줄리는 사랑에 빠져 파리로 떠난다. 자궁무력증으로 아이를 낳을 수 없을 거라 선포 받은 애비는 결혼 후 아이를 낳는다. 전쟁이 나서 파일럿이 되지 못한 도로시아는 경비행기 여행권을 선물받아 그녀의 생일마다 비행기를 운전한다. 자신은 진짜 사랑에 빠질 리가 없다고 믿던 사람도 사랑에 빠지게 만들고, 의학적으로 아이를 낳을 수 없을 거라던 사람도 아이를 낳는다. 이건 기적이라기보다는 인생을 예측할 수 없음이 주는 묘미였다. 카르페 디엠을 들으면서도 현재에 충실히 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 영화의 엔딩을 보고 나는 현재를 충실히 살고 싶었다. 이제 어쩔 수 없는 것들, '과거와 미래'를 손에서 놓아주고 어쩔 수 있는 시간에 살아가고 싶어졌다. 예측할 수 없음을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고,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하고 싶다. 느낄 수 있는 것을 충분히 느끼고,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과거를 그리워하지도, 미래를 떠올리지도 않으며. 과거는 이미 어쩔 수 없고, 미래는 예측할 수 없다. 더 나아질 수도, 더 나빠질 수도 있다. 그래도 지금 나는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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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시아는 이렇게 말했다. "행복한지 따져보는 건 우울해지는 지름길이야." 행복의 유무를 따지지 않고 슬픔을 충분히 느끼고, 즐거움을 충분히 느끼며 현재를 살아가고 싶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예측할 수 없는 미래에 진짜 도착해있겠지. 아주 빙빙 돌아서 10년이 더 넘는 시간이 걸렸지만, 이제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그토록 강렬하게 사람들의 머릿속에 박혔던 'Carpe Diem'이라는 말을 조금은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김하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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