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view] 세상 모든 타자들에게 건네는 안부, 도서 <맨땅에 헤딩하기>

글 입력 2018.10.28 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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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인사이트(www.artinsight.co.kr)를 통해 11월을 풍성하게 맞이할 도서를 찾게 되었다. 소설가 고금란의 두 번째 산문집, 도서 < 맨땅에 헤딩하기 >가 바로 그 책이다. '맨땅에 헤딩하듯, 세상 모든 타자들에게 건네는 뜨거운 안부와 축원'이라는 출판사 호밀밭의 표현에 매료되어 이 책이 읽고 싶어졌다. 저마다 각박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와중에, 저자가 어떤 삶의 단면으로 위안을 줄 지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 목   차 >



들어가며

책을 내면서 · 5

1부. 고등골 편지

두껍아 두껍아 · 12
집들이 · 18
자수정의 땅 · 24
언양 장, 빈자리 하나 · 30
민물 매운탕 · 36
우물들은 어디로 갔을까 · 42
나무를 위하여 · 48
상주들과 한판 · 54
사름하기 · 60
장닭을 키운 뜻은 · 66

2부. 내 자유의 크기

고통다루기 1 · 74
고통다루기 2 · 80
매듭 풀기 · 86
에드 윈 · 92
달아 밝은 달아 · 98
쌀밥 한 그릇 · 104
배추 농사 · 110
장 담그는 날 · 116
뱀 이야기 · 122
오카리나를 불다 · 128

3부. 사람, 사람들

그때 그 사람 · 136
지리산 명희 씨 · 142
안동역에서 · 148
푸른 별 김미혜 · 154
막내 이모 · 160
두미도를 아시나요 · 166
당초무늬 그릇 빚어 · 172
빈집 · 178
잃어버린 휴대폰 · 184
알 수 없는 세상 · 190

4부. 어느 갠 날의 기억

흉내 내기 · 198
되로 주고 말로 받다 · 204
이름 값 · 210
시절 인연 · 216
초록 공간 · 222
네스가 되다 · 228
낮은 목소리 · 234
사라지는 것을 위하여 · 240
발자국을 보태다 · 246
노세 노세 젊어 노세 · 252






저자는 살던 집이 재개발 지역으로 지정되는 바람에 지은 지 5년밖에 되지 않은 이층 주택이 공기업인 토지주택공사에 수용된다. 다시 집을 지을 곳을 찾아 도시를 헤매지만 땅을 구할 수 없어 결국 변두리로 밀려나게 된다. 그리고 시골에 전원주택을 지어 이사를 하면서 삶과 인간 존재에 대하여 새로운 성찰을 하게 된다. 시골은 도시에 비해 여유롭고 한적한 공간이 분명하지만 그 이면에는 사람살이의 다양한 면모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곳이기도 하다.


평생 살아온 도시를 떠나 ‘맨땅에 헤딩하듯’ 시골 생활을 시작한 저자에게 시골은 결코 낭만적인 곳이 아니었다. 남편과 네 탓이니 내 탓이니 싸우기 시작했고 지인들은 이사를 잘못했다거나 집터가 세다며 얼마 버티지 못하고 도시로 돌아갈 거라고 쑥덕거렸다. 저자는 이런 모든 얘기들이 기우였음을 보여주기 위해 이를 악물지만 결국 다시 도시로 돌아오는 등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는다. 어느 날 야반도주를 하듯 인도로 떠난 저자는 결국 그 모든 고통들이 자신으로부터 비롯된다는 깨달음을 얻고 다시 시골로 돌아온다.


저자는 된장을 담그고 민물고기를 잡아 매운탕을 끓여먹고 닭을 키우면서 풀숲에 낳아놓은 달걀을 찾아다니는 여유를 누린다. 그리고 햅쌀밥 한 그릇이 주는 행복을 만끽하면서 자연을 따뜻한 시선으로 보게 된다. 봄이면 지인들과 어울려 화전놀이를 하고 겨울이면 가마솥에 끓인 동지팥죽을 나누며 자신에게 주어진 호사를 주변과 나눈다. 무엇보다 가슴에서 나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 소리에 따라 살기 위하여 늘 깨어 있으려고 노력한다.


이와 같은 저자의 모습은 삶이 정답이 없는 각자의 여정이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사실 그 누가 인생을 두 번째 사는가. 모두가 처음 사는 인생, 한 번 사는 인생을 보내고 있다. 아무것도 모르는 길을 개척해나가고 있는 우리 모두가 사실은 정말 응원받아 마땅한 사람들이고 인생들이지 않은가. 지금의 나보다 더 오랜 시간을 겪어온 저자의 글은 단순히 그 시간들을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문장 하나하나에 수많은 외연을 내포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더더욱 그 글을 어서 직접 읽고 곱씹어보고 싶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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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디밭에 홀로 앉아있는데 이유 없이 무서워질 때가 있습니다. 그 두려움은 예전에 공룡에 쫓기던 누군가의 무서움일 수도 있고 먹이를 구하기 위해 사냥을 나가면서 느끼던 어느 원시인의 두려움일 수도 있습니다. 모든 것이 이 마인드에 저장되어 왔으며 지금도 오고 가고 있습니다. 다만 두려움의 대상이 호랑이나 사자에서 취업이나 급락한 주식이나 교통사고 등으로 바뀌었을 뿐입니다. 두려움을 경험하는 방식은 고대와 같지만 대응하고 반응하는 방식은 달라졌습니다. 구조는 같으나 상황이 다르고 경험은 같으나 반응과 강도가 달라졌을 뿐입니다. 이 통찰이 일어나면 다른 사람도 나와 똑같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가 나와 똑같다는 것을 알면 사랑과 연민이 일어납니다. (84쪽)



누군가가 타인에게 측은지심을 갖는 것을 이보다 더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을까.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그 어마어마한 시간을 이렇게 짧은 문장으로 관통하고, 여기서 사랑에 대한 고찰을 더하는 저자의 글은 정말 연륜이 묻어난다. 아주 수많은 시간과 경험이 쌓였기에 저자도 비로소 이런 깊은 글을 쓸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 그의 글들은 이렇게 내가 생각지 않았던 무언가에 대한 성찰의 기회를 줄 것이라 믿는다. 그러나 그뿐만이 아니다.



어느 여름날, 치과에서 어금니 치료를 받고 나오는 길이었습니다.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한쪽 볼이 부어있는 어머니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얘야, 내가 아무래도 치과에 가 봐야 할 것 같다.”

병원비가 필요하다는 뜻이었어요. 나는 지갑에서 돈을 몇 푼 꺼내 주면서 혼잣말로 불평했습니다.

“월말이라 돈 쓸데가 얼마나 많은데... 하필이면 이럴 때 이가 아플까?”

어머니는 돈을 받으면서 미안한 표정으로 웃었지요. 초록색 불이 들어왔지만 나는 길을 건너지 못하고 그 자리에 쪼그리고 앉았습니다. 그때는 치통이 얼마나 아픈 것인지 몰랐었다고, 그때는 자식에게 돈을 얻어 쓰는 부모의 심정을 짐작하지 못했었다고, 당신을 무시하고 원망할 때마다 얼마나 비참한 기분이 들었을지 정말 몰랐었다고 눈물을 뚝뚝 흘리며 용서를 구했습니다. (87쪽)



저자가 쓴 이 대목은, 읽으면서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아직 부모님과의 관계에서 이런 일이 있었던 적은 없지만, 미래의 어느 순간에는 분명 이런 상황이 올 것이기 때문이다. 누구 하나 쉽게 돈을 버는 사람이 없으니 갑자기 큰 돈이 나갈 일이 생기면 부담되는 게 사실이다. 그러니 그 누군들 저런 상황에 처하면 순간적으로 불만스러운 마음이 들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부모님은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나를 먹이고 입히고 기르지 않으셨던가. 내가 하고 싶은 것, 배우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지원해 주셨던 게 얼마나 값없이 주어지는 사랑이었는지를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는 대목이다. 그 상황을 미리 겪은 누군가로부터 이를 생생하게 듣는 것은, 미래의 내가 같은 실수를 범하지 않도록 예습하는 기회가 되는 것이다.


그렇게 나에게 생각할 무언가를 던져주기도 하고 또 나에게 미리 삶의 단면을 엿볼 수 있게 해 줄 도서 < 맨땅에 헤딩하기 >. 무엇보다도 저자의 글에 대해 '모든 타자들에게 건네는 안부이자 안녕을 기원하는 축원문'이라 추천의 말을 남긴 김가경의 표현 덕분에 더더욱 글이 기다려진다. 삶의 풍파를 겪으면서도 품위를 잃지 않고 살아온 저자의 인생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도서 < 맨땅에 헤딩하기 >를, 하루 빨리 만나보고 싶다.



[석미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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