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태평성대는 이제 시작이라 하오 : 뮤지컬 <1446>

박유덕의 세종, 그저 좋지 아니한가
글 입력 2018.11.01 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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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1446> : 태평성대는 이제 시작이라 하오


*



이도, 그리고 세종


 

뮤지컬 <1446>은 태종의 피바람으로 시작한다. 조선 건국과 왕권 획득을 위해 대대적인 정적 제거에 나선 태종, 그리고 아버지의 비정함을 바라보는 양녕대군과 충녕대군의 모습이 작품의 포문을 연다. 여기에 이 모든 행각의 대의 격인 ‘조선을 위해’라는 울림이 부자지간을 싸고돈다. 웅장한 오프닝넘버가 끝나고 나면, 이 뮤지컬의 제목이 왜 <세종>, 못해도 <세종, 이도>가 아닌지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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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사 HJ컬쳐는 역사 인물, 그것도 주로 예술가를 작품의 주인공으로 내세워왔는데 제목 역시 인물의 이름이 장식했었다. 대개 이런 작품들은 한 사람의 내면을 구심으로 삼아 그의 고통과 희망에 천착하는데, 반면 뮤지컬 <1446>에서 돋보이는 건 ‘앙상블’의 힘이다. 이때의 앙상블은 말 그대로 뮤지컬의 앙상블이기도 하거니와, <1446>의 미덕인 ‘조화’를 뜻하기도 한다.


작품은 15세기 조선이라는 배경 구축에 힘쓰며, 그 안에서 세종을 조명한다. 중요한 건 이 배경 속에서 그가 어떤 신념을 가지고 어떤 행동을 펼쳐나가는가. 그리고 이게 어떻게 의미화되는가이다. 먼저 그가 위치하는 세계가 어떤 곳인지 탄탄하게 깔려야겠고, 세계와 어떤 관계를 맺는지가 그다음으로 구축돼야 하는 거다.


<빈센트 반 고흐>나 <라흐마니노프>의 등장인물이 둘, (중간에 등장하는 멀티 캐릭터 역시 주인공의 과거와 관련된 인물이다) 결국 나아가는 곳이 예술과 개인의 내면인 것에 비해, 세종의 이야기는 인물들을 폭넓게 아우르며, 복잡성을 띤다. 중요한 건 훈민정음 창제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세종의 신념 즉 애민인 바, 15세기 조선과 세종 사이의 관계성이 더욱 부각되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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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작품은 세종과 주변 인물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긴 역사를 정리해나간다. 제 잇속만 차리기 바쁜 사대부들이 전개 곳곳에 단단히 뿌리내리고 있고(세종이 청년에서 노인이 될 때까지 이들은 늙지도 않는 모양이다), 주요 인물들은 특정한 가치를 담지하며 세종과 관계를 맺는다. 아버지 태종은 세종이 벗어나고 싶어 하는 폭력과 피의 역사, 형 양녕은 세종이 탈각한 개인의 자유, 아내 소헌왕후는 임금이기 때문에 지키지 못한 역할, 장영실과 전해운은 조선의 백성을 집약한다. 이 가운데서 세종은 얻고 잃기를 반복하면서 한 시대를 임금으로 살아내게 된다.


세종과 그를 둘러싼 환경을 잘 조화시키다보니 지나친 감상주의는 비켜 나간다. 민관 합동 뮤지컬이기에 어설픈 ‘국뽕’이나 비장한 영웅주의로 치닫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괜한 기우였던 셈. 바야흐로 평안하고 무리 없는 세종의 이야기, '태평성대'의 소리가 열린 것이다.


 

 

박유덕의 세종, 그저 좋지 아니한가


 

무엇보다 이 작품의 1등 공신은 세종을 맡은 배우 박유덕이 아닌가 싶다. 역사 인물을 표현하는 것은 자칫 단순한 재현으로 그칠 위험이 있는데, 그렇다고 살을 붙이며 캐릭터성을 강화하면 엉뚱해지는 것은 물론이요, 허구의 근본적인 한계를 관객들에게 까발리는 것밖에는 안 된다.


심지어 세종이 보통 왕인가? 민주주의를 탄압했던 현대 정치사 속에서 끊임없이 소환된 인물이 세종이고(또 다른 인물로는 정조가 있다), 대중은 세종의 애민정신에 빌어, 진정한 리더의 자격을 물어왔다.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가 2011년에 방영되었다는 것도 흥미롭다. 결국 그해 연기대상은 세종 한석규가 거머쥐었다는 것도.) 사극에서, 교육용 동영상에서, 심지어는 게임에서 세종을 만나온 사람들이 객석에 빽빽이 들어차 있는데, 이렇게 잘 알려진 인물을 캐릭터로 표현하기가 예삿일은 아닐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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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유덕이 표현하는 세종은 <1446>이 구축한 세계 속에서 이도로, 그리고 세종으로 조화롭게 녹아든다. 특히 이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게 인간 이도의 고민과 성군 세종의 애민 정신으로 압축되는 바, 박유덕의 세종은 하나의 캐릭터 속에서 여림과 강인함, 비참함과 숭고함을 동시에 표현해낸다. 이건 주변 인물들과의 관계성을 잘 구축한 덕분이다. 아내인 소헌왕후에겐 미안함과 다정함을, 신하 장영실에게는 장난스러움과 신의를, 아버지 태종에게는 두려움과 기개를, 전해운에게는 경계와 넉넉함을 보여주며 세종은 15세기 조선과 밀접하게 연결된다. 전작 <라흐마니노프>에서 개인의 내면에 날카롭게 집중했던 것과는 또 다른 결로 캐릭터를 만들어낸 거다.


그러다 보니 세종의 변화와 성장은 분명해진다. 세종을 압박하는 사대부, 인물들 위로 끊임없이 울리는 ‘조선을 위해’라는 대의명분, 그리고 민초의 에너지를 형상화한 장면이 1막에 펼쳐지고 이 중심에서 세종은 고민하고 도전하며, 왕으로서 일어서게 된다. 각 인물의 욕망과 고뇌가 하나의 장면 속에 응집되고 성군 세종의 시작을 알리는 1막의 마지막 장면은 쌓아온 에너지를 모두 분출시키며, 새로운 이야기로 나아갈 발판을 마련한다. 여기에 적절한 화려함과 스펙터클까지 갖췄으니 보는 재미도 있다. 탄사가 절로 나오는 건 당연지사다. 아, 그저 좋지 아니한가.


 

 

행간을 조금 더 읽을 수 있다면


 

세종의 애민은 조선만의 하늘 길을 열려던 천문관측기 개발과 조선만의 문자를 만들려던 훈민정음 개발로 구체화된다. 여기엔 조선이 사대의 예의를 갖추던 명나라라는 맥락, 폭력과 자애 사이에서 번민하는 왕의 길, 임금으로서의 선택과 인간으로서의 고뇌가 행간이 되어 깔린다. 좋은 사극은 재현하기를 넘어, 역사의 행간을 읽게 만드는데 <1446> 역시 그럴만한 가능성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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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 너머로 나아가긴 역부족으로 보인다. 문제는 2막에 있다. 2막에서는 세종이 부딪치는 정치의 한계와 사람을 잃은 아픔, 인간으로서의 고민과 괴로움을 서사화하는데, 이때의 행간이 충분하지 않다. 2막의 기치는 ‘백성을 위한다’는 것인데, 이때의 서사화가 빈약하고 세종과 백성의 관계성 또한 명확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민초가 단체로 등장하는 씬은 세 개. '어린 백셩'이기에 여론에 호도되는 1막의 씬, 세종의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인해 만주 부근에서 죽어가는 2막의 씬, 세종의 사후 그의 선정이 빛나는 마지막 엔딩이다. 정작 세종이 민생에 심각함을 느꼈던 패륜 사건 등은 모두 상소문, 다시 말해 입 전개로 처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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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의 위대함을 아는 한국인들이야, 백성이 힘들었겠거니, 세종이 그들을 ‘어엿비여겼’거니 하는 것이지 그 전사가 없었다면 그의 애민이 와닿았을까? 고려에서 조선, 그리고 폭력에서 선정으로. 하지만 바뀌지 않는 단단한 지배층과 지식의 차이 속에서 15세기 백성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어떤 인생을 살았을까. 그 행간을 읽어내긴 쉽지 않더라.


백성과의 관계 구축이 충분하지 않으니, 장영실과 전해운의 캐릭터에도 개연성이 실리지 않게 된다. 2막의 이야기는 양녕대군과 태종이 퇴장하고, 장영실과 전해운의 대비·활약에 무게가 실린다. 두 사람은 새로운 조선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사람이지만, 세종의 곁에서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되는 세종의 백성이다.

 

세종이 사랑했고 세종을 사랑했던 장영실이 현실의 한계 앞에 바스러진 것과 세종을 미워했지만 세종이 사랑했던 전해운이 결국 세종의 애민에 감화된 것. 이 깊이와 대비가 2막에서 분명히 드러나야 하는데 장영실의 죽음도 전해운의 각성도, 세종의 내면과 밀접하게 연결되진 못한 듯하다. 특히 전해운의 이념적, 행위적 대립이 작품 후반부에 치중되어 있으니, 그가 말하는 인간의 본성도, 결국 세종의 헌신에 각성하는 것도 뜬금없이 느껴지긴 마찬가지다.


 


태평성대는 이제 시작이리니


 

엔딩의 감동은 세종이 사랑했던 백성들이 그들을 위해 만든 새 문자를 발화하며 세종의 업적을 기리는 것에서 비롯된다. 모든 캐스트가 나와 성군 세종을 위시하는 장면은 지금도 충분히 웅장하고 감동적이다. 태종, 장영실과 전해운, 소헌왕후. 그리고 세종의 백성 필부필부가 한글과 애민정신으로 봉합된다. 한글로 노래를 부른다는 것 자체가 이렇게 울컥할 수 있구나, 새삼 깨닫게 되는 벅찬 엔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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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딩에서 확인할 수 있듯, 이 작품은 안기는 감동은 세종의 이야기에서 나온다. 세종을 중심으로 뻗어 나간 모든 캐릭터와 이야기가 한 가지 주제로 모일 때. 그게 웅장한 음악과 역동적인 움직임으로 구현될 때. 그때, 익숙한 세종이 이야기도 또 다른 결의 감동으로 다가올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어쩌면, 정말 어쩌면. <1446>이 역사 인물을 내세운 어느 극보다, 대중들의 마음을 오랫동안 사로잡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한 인간의 인생은 고단하게 끝나지만, 이 한 사람의 삶이 당시 평범한 사람들에게, 그리고 오늘날 평범한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2막의 품새만 다잡는다면 세종을 익히 아는 사람에게도, 잘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도 인간 이도의 고민을, 임금 세종의 애민을 감동스럽게 전달해줄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지금도 충분히 감동적이지만. 재공연에 있어 자본의 힘과 제작사의 짬 역시 무시할 것이 못 되니, 초연을 성공적으로 마친 후의 새 만듦새를 기대해본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지어 올린 이야기가 역사보다 위대하리니. 태평성대는 이제 시작이다.


 


공연정보




INTRODUCTION


공연명  뮤지컬 <1446>

공연장 국립중앙박물관 극장 용

공연기간 2018년 10월 5일 (금) ~ 2018년 12월 2일 (일)

공연시간 평일(화수목금) 8시, 토 3시 7시, 일/공휴일 2시 6시 (월 공연 없음)

러닝타임 165분 (인터미션 : 15분)

관람등급 만 7세 이상

출연배우 정상윤, 박유덕, 남경주, 고영빈, 박소연, 김보경, 박한근, 이준혁,

김경수, 최성욱, 박정원, 황민수(얼터네이트), 김주왕, 이지석 외

주최 여주시, (재)국립박물관문화재단, KBS한국방송

주관 (재)여주세종문화재단, ㈜KBS미디어

제작 에이치제이컬쳐㈜

후원 한국관광공사

문의 HJ컬쳐 02)588-7708



CREATIVE STAFFS


프로듀서 한승원 · 김종석

극 본 김선미

작 곡/ 연 출 김은영

작 곡/ 음악감독 임세영

안 무 채현원

무술감독 김은정

무대 디자인 김대한

소품 디자인 김정란

조명 디자인 김준범

음향 디자인 김주한

의상 디자인 이호준

분장 디자인 김숙희

프로덕션 무대감독 김유신

무대감독 진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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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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