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내가 나일 수 있도록

한 발자국 느린 사람의 아트인사이트
글 입력 2018.10.30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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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기 에디터를 마무리하는 자리에서



<문화는 소통이다>라는 모토를 가진 아트인사이트에서 14기 에디터를 하게 된 지도 벌써 4개월이 되어가네요. 정말 시간이 말도 안 되게 빨라요. 7월부터 활동을 하게 되었지만 사실 올해 2018년의 초부터 아트인사이트라는 곳을 알고는 있었어요. 이제 막 4학년이 되어 이것저것 대외활동도 해야 할 것 같아 봉사홛동도 시작하게 되었었고, 부모님의 손을 빌리지 않고자 알바를 시작했었고 평소에 관심있던 큐레이터 활동 등을 도전하던 때였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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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초대란 거, 저에겐 너무나 유혹적인 단어였어요. 5천원, 만원 남들은 아무렇지 않게 쓰는 그 돈의 무게는 저에게 배고픔도 참게 할 정도로 무거웠거든요. 그렇다고 엄청 가난했던 건 아니에요. 대학교 1학년 때는 부모님께서 용돈이 떨어지면 매번 10만원씩 보내주셔서 한 학기 동안 거의 400만원 가까이 지출을 했거든요. 거기에 등록금도 더하고, 6월 쯤에 수술도 해서 병원비도 100만원 정도 나왔었어요. 반년도 안 되는 시간동안 내가 얼마나 많은 돈을 낭비했던건가 자괴감이 많이 들어서 그 뒤로는 알바해서 벌고, 그러면서도 밥 한끼 제대로 먹고 싶은 것 못 먹으면서 보냈어요. 어딜 놀러가도 전시회도 보지 못하고, 그 흔한 방탈출 한번 즐기지 못하고, 배가 고파도 5천원 짜리 밥 하나 사먹지를 못했거든요. 엄마는 밥 좀 사먹으라고 그렇게 말했지만, 이상하게 그게 안되더라구요. 부모님께서 주신 돈을 아무 생각 없이 썼던 그 때의 기억이 있는 한, 전 절대 부모님의 돈을 함부로 쓰지 못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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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할 일이 많아서 아트인사이트에 자기소개서를 쓰다가 포기했어요. 어차피 잘 하지도 못할텐데. 난 또 무책임하게 일을 시작해봤자 중간에 그만두고 나가버릴 게 뻔하다고. 시작도 하지 못했어요. 같은 시기에 많은 것을 도전했어요. 대한건축학회는 1차는 합격했지만 2차 면접을 비몽사몽 보는 바람에 떨어졌어요. 아마 그만큼의 열정은 없었던 거겠죠? 어쩌면 그것도 내 능력이 없는 것에 대해 상처받지 않으려고 하는 자기방어일지도 몰라요.

4학년 1학기는 그렇게 우울하게 흘러갔어요. 전 또 풀리지 않는 과제를 하고, 끝도 없는 다이어트를 하며 스트레스를 받고 사고싶은 옷은 꾹꾹 눌러참으며 화장도 하지 않고 다녔어요. 왜냐하면 꾸며도 입을 옷이 없으니까. 가난은 아니었는데 왜 그렇게 아무것도 없는듯이 살았을까요? 사실은 그게 가장 큰 가난이었던 것 아닐까 요즘은 그런 생각이 들어요.



여러분에게 아트인사이트(ART insight)는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으신가요?


아트인사이트에서 4개월에 한번씩 에디터를 뽑는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2월 한달간 지원서를 받았으니 6월에도 그럴거라 생각해서 6월 1일부터 지원서가 나오기를 기다렸어요. 그리고 다시 한번 그 어려운 질문들에 대답을 해야했어요.

아트인사이트 에디터가 하고 싶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와 같이 누구나 어느 정도 생각하면 대답할 수 있는 질문도 있었지만 한달동안 머리를 쥐어짜서 제출날짜를 며칠 안남기고서야 제대로 글이 나오는 질문도 있었어요.

문화예술은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 자신이 생각하는 현재 문화 이슈는 무엇인가요? 2018-2022년도의 비전과 계획, 그리고 심지어는 2건의 컨텐츠를 사이트에 직접 실어야했어요. 머릿속에는 있지만 너무나 막연한 아이디어 단계에 머물러서 글자로는 표현하지 못하는 것들을 표현하면서 왜 내가 아트인사이트 에디터를 그토록 하고 싶었는지 고민하고 또 고민했어요.

"어떤 학교의 대표자로서 쓰는 글이 아니며, 어디에 사는 누군가의 글이 아닌, 문화예술에 흥미를 갖고 있는 '익명의 존재'로서 글을 써보고 타인과 소통하고 싶어' 지원했다는 게 제 결론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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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키 드 생팔전의 preview에 성폭행으로 인한 상처로 '남성에 대한 총격'이라는 단어를 사용해 <니키 드 생팔전>을 소개했다는 이유로, 저의 무지와 어리석음을 탓하는 댓글을 마주하기도 했어요. 저의 영역, 저의 정체성을 누군가 규정한다는 것은 무척이나 성가시고 짜증나는 일이어서 댓글을 신고하기도 하고, 댓글을 쓸 수 없도록 하기도 했는데 참 웃긴 게, 인터넷 상에서 사람들은 끝까지 따라와서 자기자신을 변호하고, 어떻게해서든 누군가가 굴복하기를 기다리더라고요.

하지만 글을 읽는 사람이 자신의 의견을 끝까지 주장해야겠다면, 그리고 어떻게 해서든 저의 무지를 까내려야겠다고 말한다면 제가 아무리 소통을 원한들, 제 의도가 뭐였든 그게 뭐가 중요하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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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괴로워하는 것을 알고 있는 블로그 이웃분께서 보내 주신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의 한 부분이에요.

누군가 당신에 대해 비난이 포함된 판단을 내린다면, 당신이 알아야 할 점은 첫째, 그건 한 개인의 지극히 주관적인 견해일 뿐 그 사람이 솔로몬이나 프로이트는 아니라는 것. 둘째, 그것이 당신을 향한 비난이라면 해야 할 일은 화를 내거나 슬퍼하는 게 아니라 비난의 진실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는 것.

그래서 마음을 정리하고, 제가 잘 모르는 부분에 대해서는 글을 쓰지 않겠다고 마지막 글을 달았어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이 말한 것처럼 저의 정체는 타인에 의해서 규정되지는 않아요.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어요. 여전히 살인자가 살인을 했는데 자기가 살인자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비유와 제가 성폭행을 한 남성을 증오한다고 한 것이 페미니스트가 아니라고 한 것이 동일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뭐랄까, 아트인사이트의 모토가 문화는 소통이다잖아요? 대표님과 티타임을 가질 때도 대표님은 글마다 저마다의 생각이 존재하고, 그게 옳다 그르다 나눌 수 없다고도 했고요. 누군가의 영역을 침범한다는 것. 공감이나 정당한 비판이 아닌, '어리석다', '우둔하다', '유해한 것들'이라는 감정적인 단어로 제 글을 신랄하게 비난해대니, 글을 쓴다는 행위 자체에 많은 의구심이 생기기도 했어요. 내 글을 읽는 사람이 편협한 생각을 가진다면, 양자가 열려있어야 한다는 전제를 가진 소통은 결국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기에.

저는 인생 자체에서 충돌을 기피하는 성향이 있어요. 예전에도 블로그를 운영했는데 누가 계속 지적을 하더라구요. 이건 잘못된 정보고, 저것도 잘못되었고 너가 생각한 것은 다 틀렸다. 그런 식으로 계속 제 글들을 깎아내리는데, 그게 계속되니 블로그만 들어가도 스트레스더라구요. 그런 일도 있고 여러가지 일들때문에 일년 넘게 가꿔온 블로그를 한순간에 삭제해버렸어요.

왜일까요?
사실은 제 생각에 대해서 확신이 없었기 때문에, 그 비난에 변호를 할 수 없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요?

하지만 그렇게만도 생각할 수 없는 건, 요즘은 정보글과는 전혀 상관없는 식단, 일상에 대해 쓰는 블로그를 하는데 자꾸 스팸댓글을 쓰는 사람 때문에 또 블로그를 그만둘까 생각도 하고 있거든요. 저의 영역에 저를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낯선 누군가가 들어온다는 사실을 못 견디는 것 같아요.

인간관계도 늘 그런 식으로 회피해왔던 것 같아요. 조금만 싸우면 잠수를 타버리기 일쑤였고, 갈등이 생길 것 같으면 조금씩 피하다가 울어버리기 일쑤였던 과거의 저. 지금의 남자친구를 만나면서, 남자친구의 말을 빌리면 '애 하나 키웠다'고 할만큼 사람이 달라지긴 했지만 아직은 자기방어의 개념으로 회피를 많이 하는 것 같긴 해요.

그래도 저 글을 삭제하지 않을 수 있었던 건, 아트인사이트에서 글을 지우지 말라고 했기 때문이에요. 리뷰, 프리뷰 글을 지우지 말라고 했기에 저는 저 댓글을 혼자 참고 이겨내야 했어요. 어떻게보면 정면으로 갈등상황을 이겨내고 스스로의 삶으로 받아내야 했던 거죠.

제 글이 유해한 글인가요? 누군가가 보기엔 유해할 수도, 누군가가 보기엔 공감가고 마음아픈 글이 될 수도 있겠죠. 아이유가 그랬다잖아요. 어떤 사람은 내가 영악해서 싫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그래서 좋다고 한다면 그냥 이게 나인가보다. 받아들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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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아들이는 과정인 것 같아요.

나의 조그만 영역을 누군가에게 사정없이 쪼여가면서, 안 그래도 작은 나의 영역을 조금이라도 지켜보고자 발악하는 과정 같아요. 나는 그래도 나라고, 살아가면서 갖고 있어야 할 자그마한 믿음 하나 끝까지 갖고 가 보겠다고. 그렇게 발버둥치고 있어요.

나가고 싶지 않았는데, 계속해서 나가게 되네요. 안전하고 따뜻한 제 울타리 속에서 이불덮고 하고 싶은 일 하다가, 시간되면 운동도 하고 그렇게만 살려고 했는데 자꾸만 나가야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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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로 보는 몇 만 원 짜리 티켓. 프리뷰 하나와 리뷰 하나만 쓰면 그 티켓을 받을 수 있다는데, 그 공연장에 나의 자리가 있어 앉아서 관람을 할 수 있다는데 누가 하고 싶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사실, 몇번 가보니까 정말 아무것도 모르겠더라구요. 프레디 켐프 리사이틀을 처음 가봤는데 정말 아무것도 몰랐어요. 프레디 켐프가 치는 곡이 무엇인지도 몰랐고, 왜 그가 수도 없이 인사를 하고 들어가는지도 몰랐어요. 미술은 그래도 많이 안다고 생각했는데 샤갈전에 가서도 사랑밖에는 아무것도 모르겠더라구요. 니키 드 생팔전에는 그나마 공감하고 왔는데 신랄한 비판을 당했구요. 판소리 오셀로, 비평가, 집에 사는 몬스터 등의 연극도 난생 처음으로 관람도 했구요. 늘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연극장에 가서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돌아오기도 했어요. 사람들 리뷰를 읽어보면 전문적으로 모든 내용을 분석하고 파악한 것 같은데 나는 왜 정말 아무것도 모를까 회의감도 많이 느꼈어요.

근데 이것도 보다보니까 정말 보이더라구요. 어느 순간부턴가 제 오피니언들이 <많이 본 글>에 나오기도 했고, 고양이에 대해서 쓴 글은 카톡 채널 메인으로도 나왔다고 했어요. 제 글이 아무리 편협한 글이라도 읽어주는 사람이 생겼어요. 이젠 연극을, 책을, 뮤지컬을, 전시회를 어떻게 봐야 할 지도 알아요.

결국은 저를 찾게 된 거죠. 저렴한 가격, 공짜표에 휘둘려서 이것저것 다 신청해보고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앉아있다 시간만 채우는 게 아니라, 그 연극을 보기 위해 가기 전의 마음도, 가는 길도, 가서도, 집으로 돌아올 때도 매순간 살아있다고 느껴요. 오로지 생각으로 가득차있어요.

아트인사이트 15기 모집글을 쓸 때도 적었지만, 제 지원서를 읽어보면 지금의 저와 너무 똑같아서 때론 놀래요. 어제 쓴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아직도 그 문장들이 생생해요. 그 때나 지금이나 너무 똑같아요. 그냥 많은 일이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도 나는 여전히 나라는 것. 아트인사이트에서 많은 글을 쓰고 많은 것을 보고, 또 상처도 입었지만 그래도 저는 여전히 저에요. 내가 나일수 있도록, 그 밑바탕에 무언가를 깔아주는 것. 그리고 나에 대해 더 큰 확신을 갖게 해주는 것. 그게 저에겐 아트인사이트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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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보면 여행 같아요. 여행을 가서는 핸드폰도 내려두고,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난생 처음 가보는 길을 걸으며 서로의 속에 있던 이야기를 나누게 되니까요. 평소에는 쉽게 하지 못했던 이야기도 이상하게 여행길에서는 쉽게 나오더라구요. 절대 혼자서는 하지 못했을 이야기들이에요.

내 안에 이렇게나 많은 이야기가 담겨있었나 생각도 들 만큼, 매주 opinion을 작성해도 아직도 다 쓰지 못했는데 어느새 14기 에디터 활동의 마지막 날이 되어가요. 영화에 대해서는 잘 모르니까 아직 쓸 준비가 되지 않았다며 시작도 하지 못한 게 3편은 되는데 아쉽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안심하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기도 해요.

분명 나에 대한 글이 아닌데도, 연극을 보면서도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인데도 저를 발견하고 돌아와요. 그래서 제 글은 늘 이기적이게 되어버려요. 그 연극에 대해서 이야기해야 하는데, 늘 저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게 돼요. 하지만 저는 노르웨이의 숲의 주인공처럼, 글을 써야만 알 수 있는 느린 사람인걸요.



가장 기억에 남는 음식과 그 경험을 나눠주세요.


사실 제3회 아트인사이트를 할 때 질문을 선택하기가 너무 힘들만큼 5가지 질문 모두 매력적인 질문이었어요. 5가지를 다 쓴다고 해도 재밌게 쓸 수는 있지만 그래도 저에게 가장 와닿는 질문에 답을 해보려고 해요. 아마 제가 opinion으로 기고한 글의 절반 정도는 음식에 대한 이야기일 거에요. 음식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삶의 한 고비를 살았던 때였거든요.

그런 섭식장애, 폭식증과 거식증을 약 7개월간 겪은 저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음식은 이에요. 아마 너무 간단한 대답에 실망하실지도 모르지만, 밥을 정말 먹고 싶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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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사진인데, 저 원래 밥을 저렇게 한대접 먹던 사람이었거든요. 밥그릇에 먹으면 밥 먹는 맛이 없으니 대접같이 커다란 그릇에 놓고 밥을 퍽퍽 퍼서 먹었어요. 반찬은 남겨도 밥은 결코 남기는 일이 없었어요. 밥을 먹기 위해 반찬을 먹었다는 말이 더 맞는 것 같아요. 반찬도 그래서 하나 아니면 두 개 정도, 밥이 잘 넘어가는 짭조름한 반찬으로 먹었어요.

그런데 다이어트하면서 밥을 못 먹었어요. 정말 한 숟가락도 제대로 못 먹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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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하면 밥보다 GI지수가 낮고, 칼로리가 낮은 고구마 100g만 한끼 식사의 탄수화물로 먹어야 했거든요. 고구마는 물론 맛있어요. 닭가슴살이랑 먹는 샐러드도 정말 맛있구요. 하지만 밥을 못 먹는다는 것은 엄청난 박탈감을 가져오거든요. 다른 사람들은 다 한끼 식사라고 하면 밥을 먹는데 내 한끼 식사는 늘 이렇게 되어야 한다는 사실이, 엄마에게 당당하게 샐러드를 먹는다고 말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너무 외로웠어요.

1학기에는 알바를 했는데, 저렇게 샐러드먹고 솥뚜껑을 5시간 나르려니 쓰러질 것 같더라구요. 그래서 알바하는 곳에 가서 '일반식'을 먹었어요. 아 '일반식'은 일반 사람들이 먹는 것처럼 밥이랑 나물이랑 반찬, 고기 등을 말해요. 보통 샐러드먹는다고 하면 '식단'이라고 하구요. 근데 알바를 가서도 밥을 못 먹었어요. 고기로 배를 채우고, 나물을 흡입하고 밥은 아마 성인 기준으로 2숟가락 정도를 몇번을 나눠서 깨작거리면서 먹었어요. 밥을 먹으면 바로 살이 찐다는 느낌때문에 견딜 수가 없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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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장을 보러가면 이렇게 돈을 쓰고 왔어요. 여기서 먹은 건 샐러드 믹스와 가자미, 양상추, 무순밖에 없어요. 나머지는 밥 반찬하려고 사놓고서 밥을 못 먹어서 다 상해서 버렸어요. 그냥 밥 떠서 앉혀놓고 끓으면 먹으면 되는건데 그 쉬운 걸 못했어요.

김밥 한 줄이 너무 먹고 싶어서 편의점에 가서 서있기를 30분. 제가 골라 나오는 건 감동란 2개. 아니면 닭다리살 하나. 닭다리살도 닭가슴살이 아니라서 살찔까봐 덜덜 떨어야 했던 그 시간들을 버텨온 제가 너무 대견하고, 또 불쌍해요. 혹시나 편의점 도시락을 사오는 날이어도 밥은 못 먹었어요.

샐러드를 먹고 장을 보러 나가면 분명히 배가 부른데도 분식집에 들어가고 싶었고, 해장국집에 들어갈뻔했고, 늘 음식점 간판만 보고 돌아다녔어요. 있는 편의점은 있는대로 다 들어가보고 어떤 음식이 들어왔는지 확인해서 돌아왔어요. 제 삶은 전부 음식 위주로만 돌아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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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수화물, 단백질과 지방이 잘 어우러진 식단이지만, 절대 보통 사람들이 한끼로 먹는 음식은 아니었어요. 저는 이렇게 먹고도 3시간이 지나면 배가 고파서 늘 돼지라고 욕을 했어요. 4시간이 지나야 다음 끼니를 먹을 수 있다며 스트레스를 받고 괴로워하고 편의점과 마트에서 보내는 시간은 더 늘어났어요. 밥 먹을 시간이 되어 밥을 먹어도 먹을 수 있는 것은 고구마와 계란 2개, 아니면 고구마와 닭가슴살 샐러드 그밖에 없었으니까요.

늘 기절할 것 같고 힘든 시간을 보냈어요. 정신이 아득하게 멀어지려고 해서 비틀거리던 것도 한두번이 아니었어요. 그리고 아트인사이트 14기 에디터를 시작했던 7월쯤엔 그동안 참아온 온갖 비틀린 욕구가 폭발해서 아침 9시가 되면 샌드위치 4조각에 김밥 한 줄에 샐러드까지 먹어치울 수 있는 비정상적인 상태가 되었었어요.

그 당시에는 그래서 연극을 보러가도, 전시회를 보러가도 늘 먹을 생각밖에 없었어요. 몸이 살기 위해서 발악을 하는데 그걸 들어주지 않으니 몇달간의 억눌림이 폭발해서 이성적인 생각이 불가능했었죠. 특히 그게 가장 심했던 날이 <이방인>을 보던 날,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던 방식>을 보던 때였어요. 새로운 장소에 가면 그 증세가 더욱 심각해져서 그 주변에 있는 음식점을 전부 알아야 했어요. 저는 그 연극들이 끝나면 어김없이 빵집을 찾아 돌아다녔고 시식빵을 엄청 주워먹고, 몇개를 사와서 집에 와서 꾸역꾸역 입 속으로 다 집어넣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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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밥을 잘 먹어요. 뼈다귀 해장국이 너무 먹고싶어서 시험이 끝난 날, 뼈를 세토막이나 뜯고 집으로 돌아왔어요. 국물에 밥을 말아먹고 싶었는데 그렇게도 해보고 깍뚜기랑 밥도 먹어봤어요. 남들은 그냥 한끼로 먹는 밥 한그릇이겠지만 저는 아직 저 밥그릇의 1/3도 먹지 못해요. 그런데 저렇게 먹어도 제 속에서는 받아주지 못해서 바로 설사를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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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친구가 많이 도와줬어요. 왼쪽편에 있는 게 제 밥이고, 가운데 있는 밥이 남자친구 밥이에요. 원근감때문에 양이 너무 차이가 나 보이는데, 제 밥은 아마 100g 정도일 거에요. 아마 일반인들은 밥을 무게달아서 먹지 않겠죠? 옛날에 알바할 때 같이 일하던 오빠가 김치찌개 맛있다면서 밥을 한 그릇 더 퍼올때 놀랐어요. 그 오빠는 엄청 말랐는데 밥을 그렇게 많이 먹는다는 사실에 적응이 안되었나봐요.

남자친구랑 저랑 둘 다 좋아하는 수육을 저녁으로 먹기도 했어요. 사실 고기랑 밥을 같이 먹는 게 조금은 두렵지만, 그래도 정말 맛있게 먹을 수 있게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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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로윈 레드문 페스티벌에 갔던 날은 저녁으로 해물순두부찌개와 밥, 고등어구이를 먹었어요. 또 밥은 절반도 못 먹었지만 그래도 한끼 식사로 밥을 먹으니 정말 좋더라구요. 온갖 욕구불만이 해결되는 것 같아요. 근데 확실히 샐러드만 먹다가 나트륨많은 일반식을 먹으니 다리와 얼굴이 퉁퉁 붓더라구요. 스타킹에 치마를 입고갔는데 얼마나 부었냐면 스타킹 밖으로 살이 울룩불룩 다 튀어나와서 다른 사람도 알아볼 정도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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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도 한끼는 밥을 먹으려고 해요. 여전히 100g으로 무게를 달아서 먹지만 좋아하는 생선이랑 엄마가 해준 멸치볶음과 김치를 같이 먹어요. 사실 멸치볶음 두 통이랑 김치 한 통 엄마가 2월 말에 준 건데, 7개월 동안이나 먹었어요. 엄마가 밥 좀 먹으라고 하는데 분명 먹는데 왜 그렇게 오래 먹었을까요?

사실은 밥 말고도 과자, 아이스크림, 샌드위치, 짜장면, 파스타, 피자 등 먹고 싶은 건 너무나도 많은데, 그런 걸 먹어도 인생에 도움되지 않는다는 것쯤 알고는 있는데도 먹고 싶을 때가 있어요. 밥 안먹고 고구마 먹어도 사실 살 수는 있잖아요. 어쩌면 지금처럼 건강하게 먹는게 몸에도 훨씬 좋고 아이스크림, 과자 안 먹는 게 더 좋을 거에요. 근데도, 그런 거 다 알면서도 가끔 먹고 싶을 때 조금씩만 먹는 건 안 될까요?

그래도 저는 믿어요.

글 쓰는 것에도, 삶의 전반적인 면에서도 느린 사람이니까. 남들은 당연스레 하는 밥 먹기도 지금 시작하는 거라고. 그렇게 대책없이, 아무 근거없이 그냥 이번에도 혼자 좋을대로 믿을래요.




[박지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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