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환상적인 세계, <USS 칼리스터> [드라마]

글 입력 2018.10.30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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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내가 넷플릭스를 통틀어 가장 재미있게 본 드라마 ‘블랙 미러’를 소개하고 싶다. 이 드라마를 접한 지는 꽤 오래되었지만, 아직도 뇌리에 박혀있을 정도로 신선하고 나의 취향을 저격한 작품이다. 최근 시즌 4의 첫 번째 에피소드인 <USS 칼리스터 (USS Callister)>가 에미상 시상식에서 최고 TV 영화상, 각본상, 편집상, 음향효과상을 받으며 그 독창성을 인정받은 바 있다. 내가 정말 재미있게 봤던 에피소드가 각종 상을 받았다는 소식에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그래서 내가 그 에피소드를 보며 느꼈던 점과 요즘 정치학을 공부하며 드는 생각을 조금이나마 글로 남겨두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국 드라마인 ‘블랙 미러’는 가까운 미래의 첨단 기술이 인간의 욕망을 실현해주면서 벌어지는 특별한 상황들을 영국 특유의 어두운 상상력으로 풀어낸 SF 드라마이다. 각 에피소드는 독립된 스토리로 구성되어, 각 편마다 완결된 하나의 영화를 보는듯한 느낌을 준다. 모두 다른 주제, 스토리, 캐스팅이지만 모든 에피소드는 공통적으로 우리에게 ‘미래에 대해 상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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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S 칼리스터 (USS Callister)> 에피소드는 ‘가상현실’에 대한 상상을 그리고 있다. 칼리스터사의 최고기술책임자인 로버트 데일리는 ‘인피니티 게임’의 개발자다. 이 게임은 인간이 가상현실 속으로 로그인하여, 직접 게임의 주인공이 되어 플레이할 수 있는 게임이다. 이것을 개발한 데일리는 천재 프로그래머이지만, 현실에서 그는 회사 직원들에게 무시당하는 소심한 상사이다. 그러나 그에겐 다른 세상이 존재한다. 회사 칼리스터가 아닌, 자신이 만든 게임 속 우주함대 칼리스터이다. 데일리는 인피니티 게임 비공개 개발 버전을 만들어, 자신이 좋아하는 고전 드라마를 게임 속에 구현했다. 그리고 그는 마음에 안 드는 회사 직원들의 DNA를 몰래 훔쳐 게임 안에 디지털 복제를 만들어내, 함장 놀이를 하며 직원들을 괴롭히고 있다. 퇴근 후 자신의 컴퓨터 앞에 앉아 ‘게임 시작’이라고 말하면 가상현실은 시작된다.


여기서 독특한 점은 디지털로 복제된 회사 직원들은 지금까지의 기억을 모두 가지고 들어온다는 것이다. 평범한 회사생활을 하던 어느 날 눈을 떠보니 데일리의 게임 속 인물이 되어 있었다. 물론 현실 세계에 그들은 똑같이 존재한다. 그들은 데일리의 게임 속에 자신들의 복제가 갇혀서 영원히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또한 디지털 복제들은 인간과 똑같은 고통을 느낀다. 그러나 데일 리가 죽이지 않는 한 죽지 않고 고통만을 느낀다. 말 그대로 그들은 게임 캐릭터이고, 그 세계에서 데일리는 신이다. 모든 게임 플레이어가 그렇듯.


이 에피소드의 주 내용은 회사의 신입사원 ‘나넷 콜’이 게임 속으로 복제되면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나넷은 이 말도 안 되는 곳에서 탈출해야 한다고 직원들을 설득한다. 그렇게 데일리의 부하 직원들이 똘똘 뭉쳐 이 게임을 삭제하는 긴박한 여정을 그리고 있다. 재미있게도 그들을 도와주는 건 현실 속 나넷이다. 사실 도와준다기보단 자신의 복제에게 협박을 당한다. 그녀의 클라우드에 있는 사진을 해킹해 유포한다고 협박했더니, 현실 속 나넷은 위험을 무릅쓰고 데일리의 집에 잠입한다. 이는 우리가 사생활이라고 생각했던 영역이 얼마나 쉽게 무너져 세상에 공개될 수 있는지, 그리고 그것에 대한 인간의 두려움을 잘 건드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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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과학과 컴퓨터 프로그래밍이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USS 칼리스터>가 반향을 불러일으킨 이유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이런 세상이 금방 가능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뇌에 전기신호를 보내는 작은 디스크를 머리에 붙이면 프로그래밍 된 가상현실로 들어가는 그런 세상 말이다. 이것이 가능해진다면 인간은 대부분의 욕망을 가상현실 속에서 해소하지 않을까? 현실에선 자신의 내밀한 욕구를 실현하기엔 장애가 너무나 많다. 일하느라 시간이 부족하고, 회사 상사에겐 당연히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없고, 소심한 성격 때문에 할 말도 못하고 살고, 먹고 싶은 것도 살찔까봐 못 먹는다. 이 모든 것을 다른 현실에서 전부 풀 수 있다고 상상해보자. 그럼 그 현실은 어떤 모습일까? 사랑이 넘치는 이상적인 세상일까? 끔찍한 폭력이 자행되는 세상일까? 그럼 가상현실 속에선 윤리가 지켜지지 않아도 될까?
 

디지털 복제는 생명일까? 그들에게도 ‘인권’이 지켜져야 할까? 가짜인데? 하지만 디지털 복제가 인간과의 똑같이 생각하고 고통을 느낀다면? 디지털 복제가 아니라, 인간의 생명 연장을 위한 수단으로 만들어진 복제 인간(human clone)은 인간과 구별하기가 더 어려울 텐데 어떻게 할 것인가? 이렇듯 가까운 미래에 여러 질문이 생길 것이고, 이 에피소드는 그런 질문들을 잘 풀어냈다고 생각한다. 인간만 부여받은 ‘천부인권’의 지위가 과연 미래에 어떻게 변할지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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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S 칼리스터>의 결말은 충격적이다. 직원들은 결국 게임 업데이트가 되기 전 웜홀을 통과해 진짜 ‘인피니티 게임’ 속으로 들어가지만, 데일리는 개발 버전 게임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 그 게임이 삭제되어버린다. 그래서 영원히 암흑 속에 갇힌다.


인피니티라는 말처럼 컴퓨터 현실 안에선 어디든 갈 수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무한한 능력이 인간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인간은 그곳에 영원히 갇힐 수도 있다. 단지 프로그램이 방화벽에 걸려 삭제되었다는 이유로 말이다.


드라마 블랙 미러는 이처럼 인간이 만들어낸 첨단기술 세상 속에서 반대로 인간이 몰락해가는 모습을 그린다. 인간이 창조한 세계이지만 그 세계가 인간을 지배하고 통치하는 불편한 모습들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볼 때마다 인간의 미래가 걱정되지만, 한편으론 이런 상상을 해내는 인간의 능력에 감탄하게 되는 작품이다.



[김초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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