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안녕, 낯선 옛 그림

도서 옛 그림 읽는 법
글 입력 2018.10.30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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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그림은 어떻게 보는 건가요?’


*



그림이 막 좋아진 무렵, 저 역시 그랬습니다. 갸웃거리며 묻게 되었죠. ‘어떻게 하면 그림을 잘 볼 수 있을까요?’ 그러면 이렇게들 이야기합니다. 시작이 반이다, 보다 보면 실력이 쌓이는 거다. 옳은 말입니다. 그래도 이 답만으로는 길을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시작이 반인 건 알겠는데, 그 시작은 어떻게 하면 되는 겁니까? 그걸 물어보고 싶었던 거죠. 알기 쉽게, 궁금한 것을 꼭 집어주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고. 무엇보다도 어디에서 이 그림 ‘읽기’를 시작해야 하는지 알려 주면 좋겠다고 말이지요.


그때의 제 마음을 따라가며 이 책을 썼습니다.


- 머리말 中






[도서]

옛 그림 읽는 법

_ 이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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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SS]

안녕, 낯선 옛 그림



<프롤로그>


“이번에는 무슨 책을 읽어볼까”라는 여유로운 고민은(이것저것 바쁘면 책보다 일이 급한 게 늘 일상인지라) 가벼운 관심사 혹은 사소하게 숨어있던 호기심을 슬쩍 꺼내게 하는 통통거리는 듯한 힘이 있다. 그리고 결국 어떤 책을 만나 처음 책을 펼치고 그것의 끝 페이지에 이르러 감상을 남긴 글까지 완성하는 멋진 과정의 시작이기도 하다. 이번 달 프레스로 새로운 도서를 만나고 향유하는 과정은 유독 더 그랬던 것 같다. 작고 아주 잠깐의 호기심으로 시작했다. 한결같이 ‘미술’이라는 관심사를 또다시 뱅글뱅글 돌다가 아주 잠깐 그런 생각이 든 것이다 “음, 한국 미술사?”라면서.


사실 이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도 이런저런 생각이 든다. 한국의 옛 회화작품들, 동양화에 대해 언급하는 것이 다른 미술 장르들보다 상대에게 얼마나 흥미로울까라는 생각 말이다. 이 글을 읽고 계시는 여러분들에게도 얼마나 흥미로울지 궁금하다. 반대로 잠깐 내 마음을 풀어보자면, 이번 달에 이 도서를 선정한 나의 입장은 “우리는 한국인이니까 한국 미술을, 동양화를 알아야 해!” 따위의 억지스러운 주장을 슬쩍이라도 해보려는 것이 전혀 아니다. 오히려 “이번에는 우리 이런 미술에 대해 한번 살펴볼까요”라는 가벼운 마음이 지금의 내게 더 어울리는 것 같다.


그러니까 미술이란 게 정말 많잖아요. 서양과 동양, 시대로는 몇천 년 전 고대부터 현대까지, 수많은 사조들과 지역만의 특징적인 미술들과, 그 속의 수많은 작가들과 그들에게서 나온 수많은 작품들. 그 사이에서 이번에는 ‘한국’이라는 동양의 예술, 그중에서 ‘미술’ 여기에 ‘옛’이라는 수식어를 단 미술 이야기를 이번 프레스 기회를 통해 한번 건네드려 볼까 해요, 혹시 정말 흥미로울지도 모르잖아요? 그런 마음이 리뷰를 시작하면서 들길래 미리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아, 갑자기 글의 말투가 바뀌었죠? 왜냐하면, 지금 이후의 내용은 이렇게 이어가고 싶어서요.




<첫인상>



[2018.10.24]


오늘 박물관에 왔다. 왜 왔는지가 중요하기보다는 일단 시간이 생겨 이곳에 온 만큼 만날 수 있는 작품들을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아마 이곳은 한국의 옛 미술 작품들이 전시된 곳인가 보다. 발걸음을 일단 옮겨 봤다. 가장 먼저 눈에 걸린 작품 앞에 갔다. 그 앞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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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으로 그림을 더듬더듬 살펴본다. 더듬더듬, 왜냐하면 우선 나는 이 작품을 잘 알지 못하고, 생각해보면 동양화나 한국 회화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이다. 이유를 모르겠지만 서양의 작품들보다 뭔가 어색한 느낌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머릿속에서 무슨 생각이 정해지는지도 모르고 천천히 살펴봤다. 그래도 작품을 만나지 않았는가, 뭐라도 느껴보고 싶어서 계속 살펴보다가 작품 아래에 걸린 명제표가 보였다. 



정선鄭敾(1676~1759), 「만폭동」萬瀑洞

18세기, 견본담채絹本淡彩 , 33.2x22cm

『겸현신품첩』謙玄神品帖 중



작품명이 「만폭동」이구나. 음…. 한자가 많다, 정선이라고? 들어본 이름인 것 같다. 그래도 조금 더 작품에 대한 정보를 얻었다. 그러다가 결국 낯선 작품 앞에 섰을 때 늘 기억하던 소원을 여기서 또다시 꺼낸다.



‘작품의 내용을 조금 더 알고 싶은데...’



지금 내 곁에는 아무것도 없어서 늘 그랬듯이 여기까지만 하고 다음 작품으로 발걸음을 옮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 무의식은 이렇게 외치고 있겠지, 아마 다음 작품들도 이렇게만 넘어가 버리는 게 아닐까.



“이 작품이 어떠세요?”



네? 저자가 말을 걸어왔다. 이 작품이 어떠냐고? 음음음. 입을 뗄 수가 없다.



“어…”

“그래도 꽤 오래 서 계신 걸 보니 마음이 가셨나 봐요”



그런 것 같아요. 사실 그림에서 뭐라도 읽어보려고 서 있던 것 같은데 건진 게 없네요 하하, 라고 속으로 말한다. 겉으로는 간신히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보니 더 알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는 건 관심이 생긴 게 아닐까? 궁금했던 마음이 순간적인 거라 해도 있던 건 확실한 것 같다.



“그럼 그림을 천천히 살펴볼까요?"


 

보시면, 이 그림에서 화면 전체를 주도하는 것은 산과 나무네요, 여기에 그 산을 휘감아 도는 물이 보이지요. 시원한 물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오는 듯해요. 그렇게 느껴지시나요? 그렇다면 이 그림은 산과 물, 즉 ‘산수’를 그려 넣은 거라고 할 수 있겠네요.


여기 작지만 사람도 등장하네요, 아마 그들의 걸음이 이 그림이 태어난 배경인가 봐요. 아마 멋진 산수를 즐기기 위해 여기까지 올라왔을 거예요. 인물들의 크기로 볼 때 그림의 주인공은 그들을 둘러싼 공간인 산과 물이겠네요.


화면에는 빈 공간이 없어요. 빽빽하다 싶을 정도예요. 여백의 미를 운운하던 여느 옛 그림과는 제법 거리가 느껴지네요. 조금 비워 두었나 싶은 자리에는 한자로 무언가를 적어 넣기까지 했어요. 그런데 그렇다고 답답하지는 않은 것 같아요. 오히려 짙은 먹색이 묘한 청량감마저 부르는 것 같아요.


- 20p 내용



신기했다, 나도 저자도 똑같은 걸 보고 있지만, 저자가 설명해주니 작품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고 있던 내게 저자가 명제표를 같이 보자고 한다. 나도 고개를 살짝 숙여 작은 명제표로 시선을 다시 옮겼다.



정선鄭敾(1676~1759), 「만폭동」萬瀑洞

18세기, 견본담채絹本淡彩 , 33.2x22cm

『겸현신품첩』謙玄神品帖 중




이 정도만 해도 작품에 대한 정보는 충분한 것 같네요. 이 간단한 해설을 보자면 정선이 그린 「만폭동」이라는 제목의 작품이네요. 비단에 담채를 사용하여 그렸다고 해요. 크기를 보니 대략 노트 정도의 크기인 걸 보아 아담한 크기의 작품이네요. 그리고 이 작품이 화첩 가운데 한 점이라고도 알려주고 있어요. 여기『겸현신품첩』은 겸재와 현재, 그러니까 정선과 심사정의 빼어난 작품을 모은 화첩이랍니다


- 21p 내용



“어때요? 조금 더 친해진 것 같나요?"


네! 정말로요. 어쩌면 당연하게도 정말 더 많이 다가간 느낌이다. 저자의 설명이 조금 더해진 것뿐인데 이것만으로도 더 많이 알게 된 것만 같다. 그리고 알게 된 만큼 더 알고 싶은 것도 생겼다. 정선은 누구이며, 같이 말씀하신 겸재? 현재? 는 또 누구인지 그리고 그림 저 위에 적힌 글은 무엇인지 말이다.


“차분히 살펴보면 좋겠지요,

먼저 화가에서 시작해볼까요?”




<프롤로그 비하인드>



이번 달 프레스로 콘텐츠를 조사할 때는 처음부터 한국 미술을 이야기하는 도서를 조사했어요. 생각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다가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도서가 많이 없었더라고요(아니면 저의 조사력이 부족했을 수도 있겠지만요). 아무래도 ‘옛’이라는 수식어를 다니 더 그랬던 것 같아요.


글의 처음에서는 아주 잠깐 그런 생각이 들었다며 리뷰를 시작했지만 사실 더 긴 꼬리를 물고 있었어요. 왜 우리는 한국 미술에 대해 잘 모르지, 왜 그것에 뭔가 어색한 느낌이 드는 걸까, 그래도 더 가까이에서 쉽게 원작을 만나 감상할 수 있는 작품은 동양화가 아닌가, 단순히 옛 작품들이라 어색한 느낌이 드는 걸까. 무작위로 떠오르는 질문이 생각보다 정말 많았어요. 나름대로 한국 미술사를 배운 나조차도 여전히 어색한 기분이 가시지 않은 것 같다며 질문의 꼬리를 질질 끌면서 이리저리 배회하다가 이 책을 만나게 되었어요. 예상과 사뭇 다른 방식과 마주했는데 오히려 더 편한 마음으로 도서를 만날 수 있었어요. 이 '편한 마음'이라는 것을 위의 글처럼 ‘첫인상’이라며 표현해보았어요. 제가 책을 처음 만났을 때의 느낌이 잘 전달되었을까요?




<옛 그림 읽는 법>



가서 그림만 보고 좋다고 할 때면, 좋아하면 됐지 어렵게 생각할 것 없다고 호기롭게 굴다가도 문득문득 그림 곳곳에 숨은 이야기가 듣고 싶어집니다. 좋다면 뭐가 좋은지, 나쁘다면 뭐가 나쁜 건지 알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지나가던 관람객이 말하는 소소한 지식이라도 들으면 눈이 번쩍 뜨이곤 하지요.


(중략)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라는 말이 있듯이 한 폭의 그림에서 한 걸음씩 제대로 나아가 보자는 제안입니다. 화가는 독자 여러분이 어디선가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이름인 겸재 정선이고, 작품은 그가 그린 만폭동입니다.


- 보도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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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내용에 대해 조금 더 설명해보자면 바로 ‘명제표’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우리가 가장 쉽게 미술관이나 박물관에서 접할 수 있는 명제표가 말하는 정보에 감상을 도와줄 수 있는 내용을 더하는 방향으로 책이 이어지고 있어요. 그렇게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저자와 「만폭동」을 감상하며 동양화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진답니다.


명제표 속 “정선”에서 화가에 대해 알아보고, “만폭동”이라는 제목에서 당시에는 무엇을 왜 그렸는지, “견본담채”라는 말에서 그림은 무엇으로 그리고 어디에 그렸었는지, “작품 크기”를 통해 당시 화가들이 어떤 이유에서 이런 크기와 모습의 화면을 선택했는지, “겸헌신품첩”이라는 정보에는 이런 작품들이 어디에 담겨 있었는지 차근차근 설명해주고 있어요. 또 첫인상의 작품 「만폭동」은 책의 큰 줄기로 자리 잡고 있어서 한 작품을 한 권의 책이라는 깊이로 감상할 수 있었답니다.

 

동양화를 낯설어하는 사람에게 눈높이를 맞추어 다가가고자 했던 저자의 마음은 책의 끝에서도 나타났어요. 우선 감상의 기반이 되는 개인의 안목과 취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에 대해 짚어주셨어요. 그리고 더 감상해볼 수 있는 15점의 동양화 작품 추천까지! 이리저리 설명하고 마무리하는 것이 아닌 그 끝을 조금 더 여유롭게 늘여서 감상의 완성을 도우려는 저자의 세심한 부분은 괜히 감동이 느껴졌어요. 정말 ‘처음’을 위한 마음을 가지셨다는 것을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느낄 수 있었어요.




<에필로그 : 지식과 감상 사이>



눈길을 끌고 발길을 잡는 그림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이 그림 멋지다, 진짜 잘 그렸다 하며 감탄을 합니다. 이런 감탄은 화가의 이력이나 작품의 역사적 의의 때문이 아닙니다. 그림 자체가, 그 화면이 마음에 드는 겁니다. 그림 자체가 마음에 들어서 거꾸로 그 배경을 묻게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우리도 ‘멋진 그림이로군’ 하는 호기심으로 만폭동의 제목이며 화가를 살펴보기 시작했으니까요


- 83-84p



왜 그림을 감상하는지 그 이유를 떠올려 볼 시간입니다. 무엇 때문일까요? 연구자 등 소수의 관련자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감상자는 말 그대로 그림을 보고 느끼고 아름다움을 즐기기 위해 미술관으로 갈 것입니다. 그림을 감상하는 이유가 단지 그림을 잘 알기 위해서는 아닙니다. (중략) 모른다면 볼 수 없겠지만 안다고 해서 모두 보이지도 않는다는 점이 그림 읽기의 어려움이자 즐거움일 것입니다. 마지막 조각은 자신만의 감상으로 채워야 합니다. 안목이라고도 하지요. 사실 그림 보는 재미는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 198p



지식과 감상. 두 단어를 나열하니까 그 관계가 괜히 궁금해지는 것 같기도 해요. 둘 사이가 필연적인 것일까? 아니면 감상 그 자체만 존재할 수 있을까? 우선 드는 생각은 지식이 있으면 당연히 감상이 더 원활하게 될 것만 같아요. 저는 그렇게 생각해왔는데 이번에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으로 생각해봤어요. 정말 지식만 있으면 되는 걸까?


지식과 감상 사이라는 건 책의 목적인 옛 그림을 읽는 방법을 배우는 것을 넘어선 범위에서 제가 가장 크게 느낀 부분이었어요 했어요. 저는 사실 미술사를 배우는 학생이라서 옛 동양화에 대한 지식을 이미 충분히 배웠어요. 전공이다 보니 학부생이었어도 배우는 지식이 나름의 깊이가 있었고요. 근데 여전히 어색한 거예요. 동양화 앞에 서서 감상하려니 어떤 ‘느껴지는바’가 아니라 이건 이런 준법이고, 이건 이런 주제를 그린 것이고, 이 화가는 어떤 사람이고 라고 알고 있는 지식만 꺼내고 있던 것이었어요. 단순히 지식 배웠다는 것이 내가 정말 동양화라는 작품을 읽는 법을 알게 된 것일까?


그리고 저자의 감상과 지식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글을 읽으면서 내가 지식만 준비되어있고 이것을 감상에 잘 끌어오지 못했다는, 그 지식과 감상 사이의 거리가 이번에 처음으로 보였어요. 이런 저만의 이야기가 조금 애매할 수도 있지만 모호하더라도 그런 사이가 보였다는 건 미술을 좋아해서 지금껏 바라봐온 제게 너무 색다른 인식이었어요. 너무 미술사학과적인 감상이 될까요? 어찌 됐든 이 사이를 그대로 둘 순 없기에, 학문으로서의 미술, 느끼고 감상하는 것으로서의 미술 모두 제가 앞으로도 진하게 마음을 두고 있을 것들이니 이제는 이 둘을 잘 맞물려보는 시간을 가지기 시작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어요. 그리고 이렇게 기대와 다르게 더 넓은 범위에서 작품을 대하는 마음에 대해 생각할 수 있어서 더 좋았던 독서였고 그래서 더 좋은 만남이었던 도서였다는 생각이 이 과정의 끝에서 들어요.


*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갔을 때 옛 그림을 주마산 격이 아니라 찬찬히 제대로 맛보고 싶은 분께 권합니다. 저자의 말처럼 두어 시간짜리 수업이라 생각하고 읽고 나면, 동양화가 문득 성큼 눈앞에 다가와 있음을 깨닫게 되실 겁니다.


- 보도자료


이런저런 생각을 나열한 듯한 리뷰가 되어버렸지만, 저처럼 언젠가 동양화에 작은 관심이 슬쩍슬쩍 움직인 적이 있었다면 혹은 제 글을 읽으며 괜히 없던 관심이 생겼다면 이 책을 잡는 것이 꽤 멋진 시나리오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어쩌면 우리에겐 어색한 장르가 있다기보다는, 아직 알 수 없던 새로운 세계가 기다리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어떨까 싶어요. 어떤가요 새로운 세계, 그래도 '어색한'이라는 말보다는 조금 더 설레는 것 같지 않나요? 동양화라는 미술의 세계도 많은 분들에게 이렇게 다가갈 수 있었으면, 그렇게 모든 문화 예술의 장르에 향하는 마음이 저 또한 늘 그랬으면 좋겠다는 바람과 함께 리뷰를 마칩니다.






[도서 정보]


"하나를 알면 열이 보이는 감상의 기술"

『옛 그림 읽는 법』


옛그림읽는법 표지(입체).jpg


저자
이종수

분야
예술/인문

발행일
2017년 11월 14일

가격
14,000원

출판사
유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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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예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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