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달에서 본 지구 [공연]

내가 처음 달을 걷던 그 때
글 입력 2018.10.31 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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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 내가 처음 달을 걷던 그 때.jpg

 


2018 베세토 페스티벌 프리뷰를 쓰면서 '낯선 곳에 도착한 여행자의 마음으로'라는 표현을 사용했었다. '내가 처음 달을 걷던 그 때'를 본 느낌이 바로 그것이었다. 공연을 보는 내내 나는 낯선 사람들 틈에 끼어, 사진으로도 접해보지 못한 낯선 풍경을 보고, 낯선 이의 입에서 나오는 낯선 언어를 듣고 있는 기분이었다. 그 도시에 새겨진 깊은 역사를 알지 못하기에 겉모습만 보고 이야기하는 여행자가 되어 리뷰를 남긴다.


 

내가 처음 달을 걷던 그 때.jpg

 


'내가 처음 달을 걷던 그 때'의 관람석은 우리가 흔히 아는 것과 다르다. 무대보다 3m 높은 곳에 위치한 관람석은 정사각형에 가까워 보이는 무대 형태에 따라 의자가 둘려있다. 의자에 앉아 반대편을 바라보면 다른 관람객의 얼굴이 보인다. 관객들은 모두 고개를 숙여 3m 아래에서 진행되는 공연을 바라본다. 처음에는 잘 느끼지 못했지만 오랫동안 밑을 바라보고 있으니 마치 내가 우주에 떠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관객은 '달'에서 무대라는 '지구'에서 일어나는 일을 멀리서 바라보는 느낌이었다.

 

그 느낌은 마치 '방관자'가 느낄 법한 죄책감이었다. 연극을 보러 가기 전 ACC 홈페이지를 통해 '내가 처음 달을 걷던 그 때'에 대한 짧은 소개글을 읽었다. "우리 모두 전 세계에 생중계되던 닐 암스트롱이 달에 첫걸음을 내딛는 이미지를 기억할 것이다. 베트남 전쟁과 시민권 운동의 배경과는 대조적으로, 그의 성공적인 미션은 영웅적 확신을 남겼다."


연극이 시작하자마자 등장한 것은 흰 천에 가려져 네모난 테이블 위에 눕혀진 사람이다. 하얀 실험복을 입은 사람이 등장하고 천을 거둔다. 팬티를 제외하고 어떤 것도 걸치지 않은 상태의 한 여성이 누워있다, 미동도 없이. 그 뒤에 여성이 누워있던 테이블이 다시 등장하고 그 위에는 아까 그 여성이 아닌 베트남 교복을 입은 사람이 누워있다. 옷을 걸치지 않은 여성, 그리고 베트남 교복을 입은 사람. '누워있는 사람'은 내게 자꾸만 '죽음'을 연상시켰고, 특히 베트남 교복을 입은 사람을 통해서 전쟁으로 인한 학살을 떠올리게 했다.


 

내가 처음 달을 걷던 그 때 (2).JPG

 


높은 위치에서 아래 있는 무대를 바라보는 건, 무대에서 벌어지는 상황에 이입되기보다는 거리를 두게 만들었고, 그 느낌은 곧 지구에서 일어난 전쟁과 운동, 그리고 세계 최초의 달 착륙 사이의 거리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달에 간 최초의 모습은 기억하면서도 베트남 전쟁과 시민권 운동 같은 지구에서 일어난 가슴 아픈 상황에 대해서는 떠올리려 하지 않았던 나를 바라보게 했다.


 

내가 처음 달을 걷던 그 때 (4).JPG

 


우리는 일상에 쫓겨 꿈꾸는 능력을 상실했다. 우리를 속박하는 것은 지표면의 중력뿐 아니라 책임과 생명의 무게다. 관객들에게 책임과 무게, 그 깊은 어둠에서 걸어 나와 천국을 좇고 용감하게 첫 발을 내디뎌 달 위를 걷도록 북돋아 주고 싶다.


(내가 처음 달을 걷던 그 때 소개글 中)



네모난 공연장 바닥에는 여러 영상이 떠오른다. 연극의 흐름에 맞춰 바뀌는 영상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으면 밑으로 빨려 들어갈 것만 같았다. 그때마다 숨통이 조이는 듯한 느낌을 갑갑함을 느꼈다. 그런 순간이 지나면 우주 헬멧을 쓴 사람이 나타나 겁에 질려있고 고통스러워하는 극 속 인물들에게 호흡기를 가져다 대며 숨을 쉬도록 유도한다. 숨통 조이는 듯한 긴장감 다음에 다시 등장하는 우주인, 그리고 호흡. 이건 일상이 주는 압박감에서 벗어나라는 신호였을까? 관객들이 느끼는 개개인의 책임과 무게를 덜어내라는 긍정의 신호였지만, 나는 신호에 응답하지 못했다. 대신 무언가 더 기억하고 책임을 져야 한다고 압박하는 느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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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어느 곳에, 또는 달에 둥둥 떠있는 듯한 느낌을 받기는 했지만, 나는 자유로워지지 못했다. 달에 발을 딛고 서있다는 느낌이 만족스럽지 않았다. 지구에 무언가 잊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것을 두고 온 느낌이었다. 어쩌면 그건 평소 일상에 충실하지 못한 채 꿈꾸듯 살아가는 내가 반대로 이제는 현실에 발을 딛고, 현실의 무게를 생각해야 한다는 개인적인 느낌일 것이다. 현실의 책임과 무게를 공연장 밖에서 여실히 느끼고 있는 사람이라면 나와 달리 공연을 보고 자유를 느꼈을 지도 모른다.

 

'내가 처음 달을 걷던 그 때'를 보며 나는 달을 걷던 순간에 대한 느낌에 집중하기보다 지구를 떠나 하염없이 달에 머물러있는 나를 반성했다. 나는 일상 속에 언제나 지니고 있던 나의 '기적에 대한 열망'을 되돌아봤다. '내가 처음 달을 걷던 그 때'는 아마도 보는 이에게 꿈에 대한 강렬한 욕망과 그것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용기, 그리고 자유를 주려고 했겠지만, 나는 그 안에서 평소 기피해왔던 살아가는 일에 대한 책임과 무게를 느꼈다. '낯선 곳으로 떠난 여행자'는 그곳에서 자유를 찾기보다 '원래 내가 있던 자리'로 돌아와 막연한 꿈보다 현실적인 것들을 바라보기로 다짐했다.



[김하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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