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호밀밭의 파수꾼과 반항아 [도서, 영화]

샐린저와 샐린저의 홀든
글 입력 2018.10.31 2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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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난 아득한 절벽 옆에 서 있어. 내가 할 일은 아이들이 절벽으로 떨어질 것 같으면, 재빨리 붙잡아 주는거야. 애들이란 앞뒤 생각 없이 마구 달리는 법이니까 말이야. 그럴때 어딘가에서 내가 나타나서는 꼬마가 떨어지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거지. 온종일 그 일만 하는 거야. 말하자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나 할까. 바보 같은 얘기라는건 알고 있어. 하지만 정말 내가 되고 싶은 건 그거야.”


며칠 전 영화 '호밀밭의 반항아'를 보고 왔다. 영화를 보기 위해 전날엔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었다. 샐린저를 좋아하거나 호밀밭의 파수꾼을 좋아해서 한 행동은 아니다. 친구가 호밀밭의 파수꾼을 무척 좋아해서, 친구에게 선물로 호밀밭의 파수꾼 원서를 준 적이 있어서, 공책에 친구가 보고 싶다던 영화 제목이 남아있어서.


 

"자아에 압도당하지 않은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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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샐린저가 글을 쓰게 되는 배경을 보여주면서 시작한다. 여러 번 퇴학 당했지만, 문학에 대한 열의가 있던 샐린저. 사교계 유명인사인 우나 오닐에게 첫눈에 반하지만, 출판 작이 없어 관심을 받지 못하자 대학에서 문학 강의를 듣기로 한다. 육류업으로 성공한 아버지는 샐린저에게 ‘베이컨의 왕’을 이야기하지만, 어머니는 샐린저 편에 서서 강력하게 학비나 대주라고 한다. (여기서 호밀밭의 파수꾼 첫 장에 ‘나의 어머니께’라고 적힌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대학에 들어간 샐린저는 휘트 버넷 교수를 만나 글 쓰는 법과 거절당하는 법을 배운다.


휘트 교수의 권유로 작품 기고를 위해 투서를 시작했지만 많은 거절을 당했다. 하지만 이내 휘트 교수가 편집장으로 있는 ‘스토리’지에 글이 실리게 된다. 샐린저는 이 일을 두고 ‘잡지를 기다리는 하루하루가 크리스마스이브 같다’고 했다. 호밀밭의 파수꾼에 ‘크리스마스가 오지 않을 것 같’다는 문장이 떠오르는 대목이었다. 이렇게 영화는 책의 내용과 샐린저의 일화를 겹쳐 보여주며 샐린저가 만든 홀든을 이해하게 도와주었다.

 



샐린저의 홀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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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만 쓰던 샐린저는 휘트 교수의 권유로 ‘홀든’이란 인물을 장편소설의 주인공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전쟁터에서, 전쟁의 트라우마의 한 가운데서, 다시 집으로 돌아와서. 그렇게 오랜 시간에 걸쳐 ‘호밀밭의 파수꾼’이 완성되었다. 하지만 출판사의 반응은 예상과 달랐다. 기숙학교 학생의 이야기가 아니냐는 말, 홀든이 술을 많이 마시는데 알코올중독이 아니냐는 말, 홀든이 미친 거 아니냐는 말. 세상은 아직 샐린저의 홀든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기성세대에 반항적이며 허언과 위선의 세상에 냉소적인 16살의 홀든. 자기 고집이 있으며, 저항적이고 염세적이다. 세상에 환멸을 느끼는 퇴학을 앞둔 16세 소년의 이야기는 기존의 문학과 틀을 달리한다. 성장 소설 주인공들은 숨겨진 재능이 있거나 좋은 성품으로 주위 평판이 좋거나 평범한듯하지만 비범하다거나 하는 주인공의 요소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홀든은 그렇지 않다. 불안정하고 어수룩한 10대의 감성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가식적인 걸 싫어하고 진정한 것을 추구한다. 불평불만이 많은 까다로운 청소년으로 보이기도 하는 홀든의 내면에는 아이들의 순수함을 지켜주고 싶어 하는 순수한 마음이 있다. 나는홀든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는 부분을 보고 이 대목을 위해 이 책을 읽었다고 느꼈다.


책에서 홀든의 어린 여동생 피비가 홀든에게 욕하지 말라고 여러 번 이야기한다. 청소년기 남학생들은 험한 말(욕)을 사용하는것이 더 현실적이다. 홀든은 꾸미지 않은 인물이다. 틀에 맞춰 가공되지도 않고, 그럴싸해 보이지도 않는다. 세상이 내게 주어진 것만 같던 청소년기 감정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홀든은 내게 와서 잊혀 가던 10대의 감성을 불러일으켰다.

 



보상과 대가 없는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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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런 보상이나 대가를 받지 못하더라도

평생을 글 쓰는 데에 바칠 수 있겠나?”



영화 초반에 휘트 교수가 샐린저에게 한 말이다. 영화에서는 저 말로 샐린저의 은둔생활을 설명했다. ‘호밀밭…’은 큰 성공을 거두고 샐린저는 대중의 인기를 얻게 되었지만, 일부 열성 팬들은 신변의 위협이 되었다. 성공과 인기가 일상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고, 유명세를 멀리하고 싶었던 샐린저는 사람을 피해서 뉴햄프셔주의 코니시라는 마을로 이사하였고, 그곳에서 생을 마감했다. 모두가 기대하고 기다리는 후속작을 쓰기 위해 가족을 뒤로하고 글에 몰두했지만, 샐린저는 결국 글을 사랑하기에 책을 출판하지 않기로 한다. 그는 세간의 관심, 평단의 인정을 뒤로하고 출판이 없는 글쓰기로 평화를 찾았다.


샐린저가 사생활 노출을 극도로 꺼렸기 때문에 샐린저 평전도 그의 생전에 나올 수 없었다. ‘호밀밭…’의 영화화 역시 홀든이 원치 않을 거라며 거부했다. 그의 삶의 단면을 보여준 ‘호밀밭의 반항아’를 보고 샐린저는 어떻게 생각할까. 나는 영화로 홀든을 다시 한번 생각하고, 이해하는 시간을 가져서 좋았지만, 샐린저가 살아있었다면 이 영화는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 같다. 그가 원하지 않은 본인의 모습이 담기고, 러닝타임을 위해 많은 게 생략되고 흘러가야 할 게 강조되었을 거라 생각한다. 샐린저의 흔적을 하나라도 더 발견하고 그의 의도를 파악해서 홀든을 이해하고 싶은 나에게 영화는 짧은 시간 내에 효율적으로 샐린저의 일부를 보여줬고, 보는 내내 마음이 뭉클했다.


샐린저는 어떨지 몰라도, 나는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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