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나는 잘하지 않겠습니다-악!!

가장 잘하기 위해선 잘해야 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글 입력 2018.11.01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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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난 ‘행복’이라는 단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일상생활에서도 그 말을 자주 사용하진 않는다. 이유는 단순하다. 난 인생사는 것이 딱히 행복하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나를 불행하게 만드는 일은 너무나 많다. 돈이 없어서 약속을 못 잡는 등의 작은 일부터 시작해서 닥쳐오는 이별, 누군가가 준 상처, 스스로의 능력치에 대한 의심과 자괴감 등 여러 요소가 시도 없이 밀려오며 나를 힘들게 한다.

세월이 지나 인생이라는 것과 좀 더 친해지면 이런 크고 작은 인생의 역경들을 좀 더 능숙하게 넘길 수 있겠지, 그러면 궁극적으로 행복해질 수 있겠지- 생각도 해본다. 하지만 머지않아 ‘그건 멍멍이 소리!’라는 걸 깨닫는다. 난 나이를 하나씩 먹어갈수록 인생사는 게 점점 더 어렵기 때문이다. 몇 년 전에도 인생은 어려웠고, 현재는 더 어려우니 미래에는 더-더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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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이 이렇다 보니 ‘행복하자’, ‘넌 행복할 의무가 있다.’는 식의 말을 들으면 거부감이 든다. 세상을 살다보면 당연히 좋을 때도 있고 안 좋을 때도 있는 건데 행복만을 기원함으로써 안 좋은 일을 ‘못 볼 것’ 취급하는 느낌이랄까. 어차피 불행이라는 게 삶을 살면서 죽을 때까지 몇 번이고 마주칠 수박에 없는 존재라면 굳이 ‘못 볼 것’ 취급할 필요가 있을까. 그냥 겸허히 받아들이는 게 마음 편하지 않나. 좋은 일이 오면 ‘아~ 왔니?’ 하면서 같이 즐겁게 놀고, 그러다가 나쁜 일이 오면 ‘아~ 너도 왔니?’ 하면서 같이 열심히 울고... 그냥 그게 심신에 더 편하지 않나, 그런 생각이다. 그래서 나는 ‘행복’이라는 워딩을 종종 ‘즐거움’으로 대신한다. ‘난 뭘 하면 행복해’가 아닌 ‘난 뭘 하면 즐거워’로 대체하는 식이다.

굳이 이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내가 아트인사이트에서 얻은 여러 선물 중 가장 큰 것이 바로 ‘강박관념을 버리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의 경우에는 어떤 것을 추구하는 과정에 강박이 끼게 되면 백발백중 전혀 딴 판의 결과를 도출해냈다. ‘시험 잘 봐야 돼!’라고 발을 동동 구르면 정작 실전에 가서 긴장하는 바람에 망해버리거나, 혹은 객관적으로 높은 점수를 받아도 개인적인 기준에는 차지 않아 주관적으로는 낮은 점수를 갖게 되었다.

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였다. 에디터 초반의 글들을 보면 어깨에 힘 빡- 들어간 것이 스스로 느껴진다. ‘잘 써야 돼! 난 에디터니까!’ 하는 생각에서 비롯되었으리라.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 그 잘 써야 한다는 강박이 오히려 글을 더욱 망친다는 것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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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의 상념이 가장 잘 담긴 것이 내 7월 25일자 오피니언, [‘뺑이 치는’ 맛에 사는 거다]이다. 너무나도 뛰어난 필력과 깊은 사유를 품은 다른 에디터 분들의 Opinion과 비교해 내 것이 너무 초라해보였고, 그래서 글을 몇 번이고 뜯어고치다가 엄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던 때가 지금도 생생하게 생각이 난다.

그 후부터 지금까지는 글 전체를 구성할 때나 문장을 만들 때에도 ‘단순함’을 가장 중시하고자 했다. 노트북 앞에 앉았을 때 선뜻 느낌이 오지 않아 날아다니는 말들만 횡설수설 늘어놓고 있을 때는 열에 아홉, ‘좋은 걸 써내겠다.’는 욕심이 앞서있을 때였다. 그 욕심을 깨달을 때마다 ‘그래서 네가 지금 진짜 하고 싶은 얘기는 뭔데?’라고 내면의 소리에 집중했었다. 그렇게 나온 소리를 가지고 나는 매주 오피니언을 꾸려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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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at. 나의 절규...


그래서일까, 내가 내 글을 보면 ‘꽤 솔직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건 일기장인가?’ 싶을 만큼 개인적인 감정을 담은 글들도 있고, 정보전달을 주목적으로 했던 글에도 결국에는 내가 세상을 보는 시선이 담겨있었다. 그것들을 모두 모아보면 내 눈에도 ‘이 인간이 어떤 인간인지’가 대충 감이 온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아트인사이트는 내가 나라는 인간을 좀 더 명확하게 인지하는 장이 되어준 것 같기도 하다.

그 외에도 내가 아트인사이트에서 얻은 건 정말 많다. 우선 문화초대 덕에 다양한 콘텐츠를 접할 수 있었던 것은 정말 좋은 경험이었다. 그 덕에 니키 드 생팔, 샤갈, 사울 레이터와 같은 예술가들도 만날 수 있었고 개성 있는 영화잡지 ‘프리즘 오브’도 만날 수 있었으며 ‘오! 당신이 잠든 사이’를 비롯한 정말 많은 연극과 뮤지컬들을 관람할 수 있었다. 가장 최근에는 아트인사이트 덕에 ‘서울패션페스티벌’에도 가서 쌈디님(♡)과 승리님(♡)도 만날 수 있었으니 나는 아트인사이트에게 정말 많은 경험을 선물 받은 셈이다.

그 뿐일까. 매주 opinion과 프리뷰, 리뷰를 써낸 덕에 무언가를 써내는 것이 습관으로 들여졌다. 덕분에 학교에서 내주는 에세이 과제를 앉은 자리에서 해치워버리는 경이로움 역시 가질 수 있게 되었으며, 솔직히 말하면 글을 쓰는 데 대한 자신감도 붙었다. 재수 없지만 자랑도 조금 하자면, 아트인사이트를 통해 내 글이 포털 메인에 올라가 더욱 많은 대중과 만날 기회 역시 얻을 수 있었다. 나 혼자서는 절대 이루지 못했을 성과이다. 아트인사이트와 함께였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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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감히 말하자면 아트인사이트는 내가 지금껏 경험한 대외활동 중에 나와 가장 코드가 잘 맞는 활동이었으며, 나를 ‘소모’하는 것이 아닌 ‘성숙’시킨 곳이었다. 아트인사이트를 만나기 전과 지금의 나는 분명 조금 더 안정되었으며 조금 더 부드러워졌고 조금 더 풍부해졌다. 한 마디로, 나 좀 용됐다.

음... 쓰다 보니 이걸 마지막으로 떠나는 사람처럼 말하게 되었지만 사실 난 에디터 활동이 끝난 후에도 실무진으로서 아트인사이트에 계속해 몸을 담게 되었다ㅎㅎ 끝내고 싶지 않을 정도로 나는 아트인사이트가 좋았고, 이곳이 나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았기에 더욱 오래 오래 남고자 마음먹게 되었다. 그래서 이글 역시 떠나보내는 아쉬움이 아닌, 새로운 시작을 위한 돌아봄의 느낌으로 쓰고 있다. 이제 곧 전문필진이라는 이름을 달고 세상과 만나게 될 것이다. 각오를 다져보자면 하나이다. 최선은 다하되, 멋은 부리지 말자. 내가 다른 아트인사이트 에디터분들의 글을 통해 좋은 정보습득과 사유의 기회를 얻었던 만큼, 나 역시 내 글을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콘텐츠를 만들어보기 위해 노력하겠다.

아,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가 지금 행복, 아니, 즐겁냐고 물으신다면 당연히 그러하다고 답하겠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날씨가 좋고, 빨간 빛과 노란 빛의 나무들이 아름답기 때문이며, 현재 아트인사이트 글을 기고하기 위해 가장 많이 찾은 공간인 학교 앞 카페에 앉아 내가 그동안 썼던 글들을 돌아보고 있기 때문이다. 아트인사이트와 함께 차차 성숙의 길을 걸어온 내가 나름 대견하기 때문이며, 앞으로 더욱 성숙할 미래를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나름 나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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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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