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괴물의 아이 [영화]

글 입력 2018.11.07 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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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영화가 끝난 다음, 거의 바로 일본으로 떠났다.


영화 <괴물의 아이>는 시작부터 숨 쉴 틈을 주지 않는다. 어둠 속에서 불이 인다. 짓궂은 목소리를 한 내레이션이 괴물 세상인 주텐가이에서 뽑게 될 단 한 명의 후계자에 대해 얘기한다. 이내 소란스러운 시부야 교차로, 오프닝 타이틀, 골목의 더벅머리 아이, 정적과 다시 오프닝 타이틀. 방향을 함부로 예상할 수 없는 시작에 숨을 죽인다.


나는 대학교 4학년이 되어서도 회사에 다녀야겠다는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빠른 속도로 대기업에 입사하여 당당하게 제 길을 걷는 친구들 사이에서 나는 어색했다. 막학기에는 취업계만 덜렁 제출하고 학교에서 떠났다. 대신 커피를 배웠다. 가로수 길, 새로 오픈한 카페에서 시작했다. 마알간 얼굴을 하고 우아하게 머신을 다루는,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를 가진 매니저가 있었다. 커피 공부와 일은 모두 즐거웠지만 자주 괴롭힘을 당했다. 책상머리에 앉아있던 범생이 주제에 멋대로 커피 필드에 덤벼든 게 건방지다고 했다. “여긴 박봉에 잔업은 기본이야, 애송아. 얼마나 견디나 보자.“ 난 더 억척스럽게 일했고 술자리에선 못 먹는 술도 꾸역꾸역 넘겼다. <괴물의 아이>의 주인공 렌이 구역질을 누르며 계란밥을 오기로 퍼먹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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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처럼 우뚝 솟은 에도시대 고봉밥에 날달걀을 잔뜩 깨 넣고 비벼먹는 장면이 있다. 인간세상에서 괴물 세상으로 넘어온 주인공 렌은 비위가 약해 좀처럼 밥술을 뜨지 못한다. 자신이 살아온 환경과 너무나도 다른 그 곳에서 날 것의, 거칠어빠진 음식은 낯설기만 하다. 입에 넣기는 커녕 보기만해도 소름이 돋는다. 자신을 이곳으로 이끈 쿠마테츠가 결투에서 처참히 무너지는 진 날, 렌은 조용히 식탁에 앉는다. “제자가 되어줄 수 있어.” 한 마디를 뱉고선 타마고카케고항, 날달걀에 끈적하게 버무려진 밥을 전투적으로 먹는다. 머리털이 쭈뼛 선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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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세 렌은 의도치 않았지만 자꾸만 사건에 휘말린다. 영화의 시작에서 그는 이미 부모님의 버림을 받는다. 집에서 뛰쳐나온다. 골목에서 짐을 맨 노새를 피하려다 주텐가이로 들어선다. 막무가내로 제자가 되라고 우기는 성질이 더러운 괴물과 살게 된다. 사건을 이끌고 나가는 것은 철저하게 모두 렌이다. 제자가 되기로 결정하고, 성실하게 수련을 하고, 마침내 강해진다. 괴물 세계와 현실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현실세계로 돌아온다. 자신의 세상에서 대학 진학과 아버지와의 재회를 결정한다. 영화의 모든 사건은 그의 의지와 선택으로 이루어져있다.


그는 강하고 실력이 있었지만, 좋은 스승은 아니었다. 커피를 내릴 때만큼은 고상했지만, 그 외엔 입이 거칠었다. 쿠마테츠는 가르치는 데 서툴다. “뷰웅- 점프해서 퍼억!하고 공격해.“가 전부다. 매니저의 교육은 의성어가 주를 이룬다. ‘적당히’ 커피 가루를 담아서 ‘딱’보고 균형을 맞춘 다음 가스캣에서 ‘탁’소리가 나도록 장착해. 카푸치노용 우유 스팀은 ‘치칙’이 아니라 ‘샤샥’이 되어야해. 혼자서 강해진 경우였다. 그들이 공통으로 가진 재능이자 불행이었다. 누구 말도 안 듣는 대신 그 누구도 절대 충고를 할 수도 없다. 고등학생때부터 아르바이트로 생을 꾸렸고, 동네 가장 큰 클럽에서 파르페를 만들고 서빙을 했다. “남의 얘기들 들어봤자 자신을 잃을 뿐이야.” 가진 거라곤, 믿을 거라곤 자신의 몸 뿐인 그들은 그래서 나 하나 바라보고 똑바로 앞으로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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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큐)살이라서 큐타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 렌은 하루 종일 집안일을 한다. 그 와중에 곁눈질로 쿠마테츠의 움직임을 연구한다. 꽤나 성실히 수련한 결과로 괴물인 스승과 대적해도 지지 않을 만큼 강해진다. 이내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그 동안 밀린 공부를 한다. 렌이 성장하는 모습은 설렌다. 당시 나는 커피를 하겠다는 말을 부모님께 드리지 못해서 차라리 잠수를 탄 채였다. 카페에 온 친구들이 “여기서 알바해?” 하며 놀랄 때. 나는 골목에 주저앉은 첫 장면의 빈털털이 렌의 기분이 되었다. 그가 뭔가 열심히 하는 동안, 나는 위로를 받았다. 몸이 커지고 한자가 섞인 일본어 책을 수월하게 읽어나가게 된 것은 말할 것도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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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나가떨어지리란 비웃음이 싫었다. 늦게까지 남아 카푸치노를 소복하게 만들게 해달라고 고집을 부렸다. 보란듯이 잘 이겨나가고 싶어서 재고정리나 주방청소까지 가르쳐 달라고 성가시게 굴었다. 힘든 일과 후, 술자리에선 우린 가족이라고 말했지만 이내 알게 되었다. 인생은 각자의 몫이다.


감독 각본을 맡은 호소다 마모루는 <극장판-디지몬 어드벤처>, <극장판 원피스>,<시간을 달리는 소녀>의 감독이다. 그가 <괴물의 아이>를 만들도록 이끈 사건은 그가 아들을 낳은 것. 그 사건은 호소다 마모루로 하여금 아이가 세상 속에서 어떻게 성장하는가 골똘히 관찰하게 하였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절실한 고민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다고 그는 말한다.


영화가 하려는 말은 명확하다. 기승전결은 더할 나위 없이 단순하다. 몇 분 몇 초 부터라고 끊어내는 것도 가능할 지경이다. 호소다 마모루 감독이 하려는 메시지는 ‘교학상장’. 가르치는 스승과 배우는 제자가 함께 자란다는 교육적 메시지와 ‘내가 응원하는 놈이 착한 놈’의 액션이 섞인 권선징악.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주체적인 삶을 살라는 정도의 추가적 메세지가 있을 수도 있다. 분명 보편적인 구조를 가진 평이한 영화다. 엄마가 초등학교 고학년 아들에게나 보여 줄 만 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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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이 남았다. 이야기를 반복하고 확산시키는 상징성으로 영화엔 고래가 등장한다. 거대하고 어두운 존재의 등장으로, 영화를 보는 모두는 렌이 도서관에서 읽던 <모비딕>을 떠올리게 된다.


흰 고래에게 한 쪽 다리를 잃은 뒤 오직 복수하겠다는 일념에 불타는 에이허브 선장은 다른 모든 상황은 무시한 채 오직 복수에만 집착한다. 선원들의 안위와 본업인 고래잡이는 이미 아웃 오브 안중. 그에게 고래는 복수의 대상이자 삶에 대한 집착이다. 그 과정에서 관계의 의미는 형성된다. 각자의 역할에서 상호의존과 독립을 반복하다가 우리는 홀로서기를 완성해 나가는 것이다. 누구나 살다보면 고래를 만나고 고래와 지독한 싸움을 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변화, 성장한 다음 또 다른 고래를 만나고 그렇게 삶은 흘러가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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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영화가 끝나고 곧 또 다른 고래를 만나러 떠났다. 렌이 살고 있을 도쿄로.





[조서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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