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view] 사막 속의 흰 개미 - 우린 무엇을 믿고 사는 걸까

글 입력 2018.11.02 0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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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뭘 믿고 살아온 걸까,
또 뭘 믿고 사는 걸까
우린, 우리가 뭐라고 믿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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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오늘까지 정신없는 시험기간과 대체과제에 시달리던 내가 지나가듯 보았던 이 연극의 메인 카피가 나를 사로잡았다. 한창 삶의 허무를 몸으로 체감하고 있었을 때다. 하루 하루 열심히 살아가던 한 생명이 잔인한 방식으로 사라졌고, 운이 좋아 살아남은 사람인 나와 친구는 그 섬뜩함에서 놓여나지 못했다. 코앞에 닥친 수많은 '해야하는 것들'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렇게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란 질문을 계속 되뇌었다.

무서웠다. 한 생명이 이렇게 꺼져가는 사회도, 늘 그런 위험을 안고 가야하는 우리 들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상황에서 해야하는 것들에 치여 슬픔조차 느낄 틈이 없던 현실도.

아마 그래서 내가 이 연극을 선택했을 것이다. 매일 밤을 새는 날들이 이어지고, 하루 하루 주어진 과제를 쳐내는 와중에도 저 문구는 나를 사로잡았다. 어쩌면 가장 본질적인 삶은 관통하는 물음이기 때문에.


서울시극단_사막속의흰개미_석필_에밀리아_지한.jpg


무어라 구체적으로 형용할 순 없지만 끌리는, 그런 느낌들을 이 극에 대해 찾아보면서 꽤 많이 받았다.


개미지옥
페어리 서클(Fairly Circle)
모래 여인 
집을 갊아먹는 흰개미
무너져가는 고택 
인생의 의미 
우리사회의 가치 


이들을 모두 관통하는 서사는 어떤 식으로 전개될까?


[시놉시스]

100년 된 고택이 있는 한 마을. 문화재연구소 연구원들은 이 마을에 갑자기 흰개미가 출몰했다는 소식을 듣고 더 큰 피해를 막고자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 날은 석필의 집을 살펴보는 날이다. 석필의 집은 심한 가뭄으로 메말라가는 마을에서 유일하게 수풀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고택. 대형 교회의 목사 석필은 교회 내부의 시끄러운 상황으로 머리가 복잡한 상태다. 헌데 연구원들이 흰개미 피해 여부를 살피겠다며 불시에 집에 들어온 모습을 보니 석연치가 않다. 더군다나 연구원 에밀리아는 이 집에서 나타나는 현상이 페어리 서클이라고 주장하는데...

잠시 후, 묘령의 여인 지한이 석필의 집을 방문한다. 만난 기억조차 없는 그녀가 자신을 만나기 위해 찾아왔다는 이야기에 석필은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난감하다.

그런 석필에게 지한은 15년 전 이 집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이야기하고, 석필은 그동안 잊고 있던 집의 과거와 마주하게 된다.

 


개미지옥

이 극을 구성하는 주된 요소 중 하나는 개미지옥이라는 개념이다.

개미지옥은 말 그대로 늪과 같은 공간이다. 한 번 빠져들어가면 왠만해선 나오기 힘들다. 흔히 개미지옥은 개인을 구속하는 너무나 커져버린 사회를 비유하기도 한다. 사회가 강요하는 체계와 일반화가 가지는 영향력이 개인의 존재를 지워버리는 것이다. 사회에 속한 개인은 빠져나오고 싶어도 사회가 정의한 틀을 쉽게 빠져나오지 못한다. 심지어 개미지옥에 들어간 개미처럼 속절없이 빨려들어가며 결국엔 그 미궁 속으로 빠져들어버린다. 가장 안타까운 건 여기에 발을 들이게 된 개미든 개인이든 그들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개미지옥'에 빠졌다는 사실이다.

이 글을 쓰는 나도 역시 나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사회에서 규정한 틀을 벗어나지 못하니까.



모래의여자

'개미지옥'이라는 단어 뒤에 내가 떠올린 건 아베코보의 《모래의 여자》였다. 이 소설은 매우 간단한 서사를 가지지만 그 의미가 너무나 무겁다. 희귀곤충을 잡아 표본을 만드려는 나름의 야심찬 꿈을 가진 남자는 재수없게도, 한 마을 사람들의 계략에 넘어가 빠져나갈 수 없는 모래 구덩이에 갇히고 만다. 그 구덩이에는 한 여인이 있었는데, 남자는 그 여인과 함께 끊임없이 모래를 퍼날라야만 하는 노동의 굴레에 갇히게 된다.

간단하게 이야기하면 인간노예 설정이다. 사실 소름끼치는 건 결말이다. 남자는 끊임없이 탈출을 시도하지만, 어느샌가 실패를 내면화하고 자신을 가둔 마을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노력한다. 과거의 자신과 꿈을 버린 것이다. 심지어 그는 뻔히 탈출을 할 기회가 있음에도 더 이상 탈출을 시도하지 않는 단계에 까지 도달하게 된다.

과연 남자의 선택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이 소설이 던지는 의문은 심오하다. 남자는 어쩌면 지속적으로 실패하는 현실에 지쳐 일종의 방어기제로 마을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려 발악하는 건지도 모른다. 그의 변심은 한편으로는 어리석고 멍청한 선택이지만, 이 극단적인 플롯을 현실에 가져와 반영한다면 과연 그와 같은 선택을 하는 사람들(인간노예의 삶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이 없다고 할 수 있을까.

이 이야기는 개미지옥이라는 단어와 연결된다. 도저히 빠져 나올 수 없는(혹은 그렇게 여겨지는) 공간과 규율, 압박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할까? 개미지옥이라는 단어는 사회를, 인간을, 삶을 사는 태도와도 연결될 수 있다. 나는 개미지옥에서 이 모래의 여인으로, 그리고 다시 이 극의 메인 카피로 시선을 옮겼다.



페어리 서클 (Fairly Circle)

페어리 서클은 대체로 사막지역에서 나타나는 현상인데 '요정의 춤'이라 불릴 정도로 매우 신비로운 자연 현상 중에 하나다. 사막 위에 둥글게, 원 형태의 자국이 남아 있는 것이다. 지구 상에서는 호주의 필바라 지역, 아프리카의 나미브 사막에서만 나타나는데, 이 현상이 어떤 원리로 나타나는지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고 있다. 이 신비로운 현상이 이 극의 주축을 이루는 마지막 개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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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뜬금없이 나온 이 페어리 테일이란 개념이 '우린 뭘 믿고 살아온 걸까, 또 뭘 믿고 사는 걸까. 우린, 우리가 뭐라고 믿는 걸까'라는 이 극이 내건 물음에 대한 대답을 주지 않을까 생각한다. 더 나아가서는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할까라는 물음에 대답도 줄 것이다.  자연의 미스터리를 인간 세상에 가져와 해석하는 방식은 꽤나 독특할 것이다. 나는 이 부분이 가장 기대되는 부분이다.

다만 걱정되는 건, 내가 이 시나리오 자체를 처음에 잘 이해하지 못한 점이다. 개미지옥, 페어리서클, 교회의 목사, 묘령의 여인, 여러 요소들이 겹쳐서 등장하는데 정말로 시나리오를 여러 번 다시 읽었다. 어떻게 저 개념들이 연결지어지는 지 시놉시스를 통해서는 알 수가 없었다. 인간세상과 자연을 서로 비유의 대상으로 삼는 상징의 차원인지, 인과의 관계인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그러니 가장 기대되면서도 걱정스러운 부분이겠지. 나는 인생을 살아가는 태도에 대해서, 사람들의 인식에 대해서 많은 궁금증을 지니고 산다. 허무감에 젖은 요즘의 내 일상에 과연 어떤 텍스트로 자극을 줄 지 기대해 본다.





+) 추가로 한번 더 TMI를 주자면 이번 극은 새롭게 생긴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의 개관기념작이며, 11월 ‘2018 서울시극단 정기공연 창작대본 공모’를 통해 최종 선정된 황정은 작가의 창작극이기도 하다. 이번에 새로 개관한 S씨어터가 블랙박스 형 소극장이라 사면이 트인 구조이다. 이 구조가 어떤 독특함을 줄 지도 기대해본다.


[세종] 서울시극단_사막속의 흰개미_포스터_ver.final.jpg





사막 속의 흰개미
- 세종S씨어터 개관기념작 -


일자 : 2018.11.09(금) ~ 11.25(일)

시간
평일 - 오후 8시
토 - 오후 3시, 7시
일 - 오후 3시
화 - 공연없음

장소 :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

티켓가격
R석 30,000원
S석 20,000원

주최
(재)세종문화회관

주관
서울시극단

관람연령
만 13세이상

공연시간
100분




문의
서울시극단
02-399-17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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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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