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인생을 발견하는 물음표의 힘 [사람]

내게 가장 인상 깊었던 강의 '문학과 인생'
글 입력 2018.11.02 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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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문학 뒤에 인생이라는 거창한 단어가 붙었을까. 우리는 대개 수업을 선택하기 전 수업의 이름을 통해 내가 그 수업을 통해 배울 것들을 짐작해보곤 한다. ‘자바 프로그래밍’이나 ‘경영학원론’같은 직관적인 이름이 아니더라도 그렇다. ‘영어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면 적어도 이 수업에서 영어를 배울 수 있겠다고 예상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문학과 인생’은 이름만 들으면 참 알쏭달쏭한 과목이다. 문학을 배우겠다는 건지, 문학을 빙자한 교수님의 인생 개론을 듣는다는 건지. 다른 이름으로 시작했지만 결국 교수님의 인생 특강으로 끝났던 과목을 들은 적이 몇 차례 있었던 뒤라 더욱 감을 잡기 어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러한 미지의 과목을 수강한 이유는 단 하나였다. 이 과목을 강의하시는 분이 이승준 교수님 이셨기 때문이었다.


내가 교수님을 처음 뵀던 건 입학해서 처음 들었던 ‘교양 글쓰기’ 과목이었다. 대학에 가면 모든 수업을 자유롭게 들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막상 입학하고 나니 1학년은 그럴 수 없었다. 더군다나 정시로 입학한 내게 처음 마주한 1학년 시간표 속 과목들은 충격적이었다. ‘경제학’, ‘ 경영학’, ‘경영 수학’….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지금껏 내가 경영학과에 입학할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오히려 경영학과보다 인기가 없다고 알려져 있는 철학과나 국문학과가 내 적성에 맞았다. 사유의 폭을 넓히는 과정이 즐거웠고 그것을 언어로 표현하면서 기쁨을 느꼈다. 세상이 돌아가는 근본 원리를 알고 싶어서 대학에 왔는데 경영학과에서는 그것을 돈의 흐름이라고 정의했다. 경영학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세계는 돈으로 환산되는 것이었고, 나는 수업을 들으며 내가 이대로 열심히만 한다면 어떤 목적이든 실현시킬 수 있을 만한 힘을 기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모순적이게도 그것은 돈은 절대 그 자체로 목적이 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더 많은 것을 배울수록 공허해졌다. 경영학은 내 삶과, 앞으로 내가 하게 될 일의 방법을 제시해주는 유용한 도구였다. 하지만 그 속에 포함된 수많은 구성 가치들의 방향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 건지, 내가 왜 그 일을 해야 하는 건지는 그를 통해 배울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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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더욱 수요일이 기다려졌던 지도 모른다. 3시부터 어린 왕자를 생각하던 여우처럼 나는 수요일마다 ‘교양 글쓰기’ 수업이 되기를 고대했다. 수업은 단순했다. 처음엔 고등학교 때 배웠던 국어 문법을 다뤘다. 참고로 말하자면 나는 앞서 말했듯 국문학과와 언어학과에 지원했을 정도로 국어를 사랑하는 학생이었고 그 중에서도 특히 언어의 구조적 측면에서 매력을 느꼈다. 고등학생 때 혼자서 국어 맞춤법 정리 책자를 만들었을 정도였다. 원래 잘하면 흥미가 저절로 생기는 법이기에 나는 내가 아는 내용이 나올수록 신이 났다. 교양 과목이어서 그런지 내용이 고등학교 때의 그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고, 나는 교수님이 질문을 던지실 때마다 곧잘 손을 들고 대답하곤 했다. 시간표 속 과목 중에 유일하게 내가 인정받을 수 있는 과목이었다. 경영학과 전공 교수님들께 나는 문제아 비슷한 존재였지만, 이때만큼은 우등생이 될 수 있었다. 그렇게 열정적으로 임하다 보니 어느새 수업의 주제가 궁극적인 목표였던 ‘글쓰기’로 들어서게 되었다.

글을 쓴다는 행위는 나 자신을 모두의 앞에서 발가벗기는 것과 같다. 머릿속에서 떠다니던 나의 생각들을 어떠한 주제 아래에서 구체적으로 표현하여 그를 타인과 공유할 수 있게 실체화시키는 일이다. 그렇기 위해선 가장 솔직한 모습의 나와 마주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두 편의 글 작문 과제였다. 교수님께서는 어떠한 주제도 제시하지 않으셨다. 그저 네가 쓰고 싶은 글을 아무거나 쓰라고 하셨는데 대신 너만이 쓸 수 있는 글을 쓰라고 말씀하셨다. 그렇기에 과제를 하기 위해선 그 전에 먼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야만 했다. ‘나는 무엇을 가장 쓰고 싶은가?’ 또 ‘무엇을 쓸 수 있는가?’ 아무 것도 쓰여 있지 않은 백지를 바라보다가 문득 그걸 알려면 우선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불과 1년 전이었지만 고등학생 때의 나는 꿈이 있었다. 그것은 단지 대학이라는 이름으로 한정 지을 수 없을 만한 거대한 것이었다. 하지만 막상 대학에 와 보니 그 때 내가 꿈꾸던 나는 없었다. 그가 있던 자리엔 순간순간을 살아 내기 급급한 현재의 나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나는 어떤 것을 위해 살아가고 있었지?’ 이렇게 시작된 모든 의문은 결국 나 자신에 대한 궁금증으로 귀결됐다. 단지 글 하나를 쓰는 것도, 그렇게 알고 싶었던 세상의 근본 원리를 아는 것도 주체인 ‘나’에 대해 잘 모른다면 할 수 없는 일들이었다. 이 두 편의 글을 쓰기 위해 나의 취향, 의견, 경험들을 되짚어 보던 과정은 진짜 나를 발견하는 과정과도 같았다. 비록 내가 선택한 주제는 이러한 내용을 직접적으로 내포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이 과제는 내게 그 자체로 하나의 계기가 되어 주었다. 앞만 보고 달리던 나를 멈춰 세우고 뒤를 돌아보게 만들었던, 사소하지만 대단한 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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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것은 내가 인문학을 배움으로써 기대했던 막연한 무언가와 상당히 유사했다. 오랜만에 자유롭게 글을 쓰면서, 그리고 교수님께 그 결과물에 대한 세심한 피드백을 받으면서 교수님의 다른 수업 또한 듣고 싶어졌다. 그래서 다음 학기에 들은 강의가 ‘문학과 인생’이다. 수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었다. 문학과 정신분석학. 문학은 주로 시 작품들을 함께 읽으며 단어 속에 숨겨진 뜻을 깊이 파고드는 작업이었고 정신분석학은 프로이트의 이론을 전반적으로 살핀 후 동화를 그의 관점으로 재해석하는 것이었다. 겉보기엔 비슷한 듯 전혀 다른 둘이었지만 알고 보면 그들은 어떠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시 작품 속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각자의 삶의 한 순간에서 느꼈던 감정들이 담겨 있었고, 프로이트는 무의식을 통해 스스로가 알지 못했던 내면의 욕구들을 알려 주었다. 그것들은 각자의 이야기가 담긴 집합체라는 점에서 인생과 비슷해 보였다. 나는 수업의 내용에 공감하며 그들이 나의 인생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느꼈다. 그들을 배우며 내가 알지 못했던 내 모습을 인식하게 되었고 외면하던 나의 내밀한 모습을 똑바로 바라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이 결코 ‘인생’ 그 자체를 배우는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나는 아직도 왜 그 강의의 이름이 ‘문학과 인생’인지 모른다. 인생을 이렇게 살아야 한다며 가르쳐 준 것도 아니고 단지 우리가 배운 것들이 교수님이 생각하시는 인생의 개념과 이렇게 연관되어 있는 건 아닐까 추측해 볼 뿐이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내가 이 수업을 들으면서 내 인생에 대해 고민해보게 되었다는 것이다. 인문학 강의와 공학 강의를 동시에 듣는 학생으로서 느낀 가장 큰 차이점은 공학 교수님은 핵심적인 개념을 하나로 정의 내리며 수업을 시작하지만 인문학 교수님은 하나의 개념을 정의 내리려는 과정 자체가 한 학기의 수업이 된다는 것이다. 이 수업도 마찬가지였다. 교수님은 인생이라는 제목을 가진 강의를 가르치시면 서도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한 번도 언급하신 적이 없었다. 그렇기에 그런 방식이 익숙하지 않은 공대생들에게 이 수업은 조금 힘들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만약 교수님께서 인생을 하나의 의미로 명확히 정의 내리려 했다면 나는 지금처럼 수업에 공감하지 못했을 것이다. 오히려 각자의 인생에서 서로 다른 의미를 스스로 찾아낼 수 있도록 단지 방법만 알려 주셨기에 이 수업에서 더 많은 걸 생각해 보고 얻어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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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수업은 끝까지 내게 물음표 같은 존재였지만, 동시에 그 ‘물음표’가 결국 인생을 살게 하는 힘이라는 것을 알려 주기도 했다. 우리는 끊임없이 의문을 가지고 질문해야만 한다. 그럴수록 더 많은 것을 알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도 인생에 대해 잘 모르지만, 그렇기에 질문할 것이다. 인생이란 무엇인가? 이 질문이 바로 인생을 발견하게 하는 힘이다.



[서혜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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