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말 같지 않은 말, 말없이

변명과 합리화로 보여주는 능글맞은 '말'
글 입력 2018.11.06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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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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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개월째 에디터로 활동하면서 문화초대를 꽤 받았지만, 서촌은 처음이었다. 이전에 서촌은 한 두 번 정도 가본 적이 있다. 어떤 미술관을 구경하러 가고 싶어 걸어가다가, 시간을 놓쳐서 결국은 통인시장만 구경하고 돌아왔었다. 엽전을 갖고, 원하는 만큼 음식들을 교환하는 그 거리가 나에겐 서촌에 대한 이미지로 남아있다.

많이 봤다고 생각했는데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나는 얼마나 경험이 없어 보일지를 알았다. 많은 곳에 갔다고 생각했지만, 아직도 내가 모르는 곳투성이였다. 다르게 말하면 더 많이 보고, 더 많이 배울 기회가 있다는 것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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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 있는 세 명의 주인공


공연이 언제 시작되는지 어떤 신호도 주지 않고 갑자기 걱정스러운 얼굴을 한 여자가 나와서 달력을 체크하고 책상을 마른걸레로 닦는다. 인상을 찌푸리며 밤늦게까지 앉아있다. 발달장애가 있는 아이를 일반 학교에 입학시키려 했으나, 입학시험에 떨어진 뒤에 입시에 부정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후에 학교 교감이 직접 찾아와서 입학포기서를 써줄 것을 강요한다.

극에서는 세 명이 등장한다. 발달장애가 있는 아이를 혼자서 키우는 효선, 그리고 효선의 동생 지선이, 둘을 설득하고 있는 교감 이렇게 세 명이다. 효선은 걱정스러운 얼굴에 조심스럽고, 사태를 아무것도 몰라서 속상해하고 최대한의 예의를 갖추는 사람이다.

그에 비하면 지선은 언니에게도 아무런 충고도, 조언도 하지 않고 언니가 하고 싶은 대로 내버려두는 스타일이고, 교감에게 딱히 예의도 차리지 않는다. 교감의 말에 상처를 받은 듯이 보이지만, 자기들은 그럴 수밖에 없는 처지라는 것을 알고 있어 눈시울을 붉혀도 따지지는 않았다. 어쩌면 가장 현실적인 인물일 수도 있겠다. 효선이 아이를 일반 학교에 보내려고 할 때도 왜 그렇게까지 하냐고, 다른 애들과 다른 걸 왜 모르느냐는 식으로 이야기한다. 자신의 조카지만, 타인의 눈으로도 그 조카를 바라볼 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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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감은 정말 엄청나게 능청스럽게 연기를 해서 가장 큰 환호와 감탄을 받은 인물이다. 이 시대에 높은 자리에 있는 인물들이 하는 그럴듯한 변명을 하면서, 또 그러면서도 자기가 한 말의 앞뒤가 맞지 않는 논리의 오류를 보여주기도 한다. 사실은 자기도 자기가 하는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고 인정하면서도 그 자리에 오래 살아남기 위해 악착같이 남을 깎아내리고, 이득이 되는 사람들에게 이득이 될 행동을 하는 부류의 사람이다. 교감을 연기하시는 분이, 말끝마다 특유의 억양을 살려서 뒤의 말과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능청스러움을 연기했기에 <말없이>가 더욱 완성도 있는 연극이 될 수 있었던 것 같다.



결말



교감의 설득에 지친 효선은 결국 입학포기서에 서명하고 보기도 싫다는 듯 재빨리 내어준다. 그제야 교감은 그 능청스러운 간절함을 벗어던지고, 도도한 교감선생이 되어 안경을 똑바로 쓴 채 "그러게, 왜 그런 애를 우리 학교에 보내려고 해서"라는 말을 던진다. 그 말을 들은 효선은 분노로 울고, 지선의 눈시울도 따라 붉어진다. 분노와 수치심, 그리고 그것에 아무런 반박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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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감은 비타500을 두 박스 들고왔었다. 입학포기서를 다 쓰고 교감을 보낼 때, 효선이 그걸 갖고 가라고 그러자 한 박스만 갖고 간다고 해서 사람들은 다 웃음에 터진다. 남은 한 박스에는 5만 원짜리 지폐가 수백개가 돌돌 말려서 들어있었다. '성의 표시'였다. 입시부정을 한 학부모들과 학교 선생들이 다 모은 돈이었다. 놀란 지선과 효선에게, 입학포기서를 쓴 뒤에 줬으니 상관없는 돈이라고 하면서 교감은 쓰레기통에다가 버리고 나간다. 그 돈을 쓰레기통에 버린 거니 준 게 아니라는 말 같지도 않은 말을 남기고서 떠난다.

지선은 5만원 지폐들이 가득 든 쓰레기통을 식탁에 내려놓으며 효선에게 어떻게 할 거냐고 묻는다. 효선이 다시 물어보자, 지선은 "언니가 받은 거잖아. 언니가 어떻게 할지 결정해"라는 말을 남기고 떠난다. 다시 무대는 처음처럼 효선만 걱정스런 얼굴을 한 채 식탁에 앉아 점점 암전된다.

나는 사실, 교감이 이야기하는 동안 지선의 자신만만한 표정을 보고 녹음을 한다거나 뭔가 대책이 있을 줄 알았는데 전혀 그런 것도 아니었다. 효선도 마지막에 통쾌한 일을 할 줄 알았는데 그런 것도 없이 그저 가만히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권력에 희생당했다. 개인적으로 마음이 편하지는 않지만, 효선과 지선의 행동은 가장 현실적인 피해자의 모습일 거라는 생각은 든다.

효선은 그 중에서도 감정적으로 상처받지만, 자신의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은 여전하면서도 다른 사람이 더이상 희생되기는 바라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또 자신의 아이가 일반 학교에 다니기를 바라는 마음은 있어 그 마음마저도 역설적이지만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지선은 피해자의 가족이지만, 가해자가 주는 조건을 곰곰이 따져보고 이성적으로 접근하는 듯했다. 그럼에도 피해자의 가족이기에 감정적인 상처는 받는다. 그들은 피해 상황에서 다른 방식으로 행동했지만, 그럼에도 가해자의 힘을 이기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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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교감이 사과를 명목으로 효선의 집에 오지 않았다면, 어쩌면 효선은 부정입학 이야기를 tv에서만 듣고 억울해했을 수도 있겠지만 그런 사건의 경과는 알지 못했으니 더 나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교감으로서는 어떻게든 사건이 커지는 걸 막아야 했기 때문에, 효선의 집에 올 수밖에 없었다. 모든 것은 특별하게 일어난 일이 아닌, 과거의 원인이 있어 발생한 미래의 사건들이었다. 효선은 그 지폐들로 어떤 선택을 할까. 자신의 아이가 중증장애아라는 이유로 일반 학교에 가지 못하기에 받은 뇌물이라고 생각하면 무슨 느낌일까. 그것을 돈으로 환산해버리고, 괜찮다고 위안하는 사회에 극도의 경멸을 느꼈겠지.



어리둥절


그러나 문화 초대를 받을 때만 해도, <말없이>라는 공연이 엄마와 아빠가 말을 하지 못하는 아들을 하나 키우는데, 말없이도 서로 소통할 수 있다는 줄거리를 읽고 preview도 작성했기도 했다. 게다가 나는 원래 팸플릿을 제대로 읽지 않는 편이라서 공연 내내 의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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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말없이>라는 공연을 처음 생각했을 때, 중증장애아동을 키우는 부부의 이야기를 하려고 했지만, 시놉시스와는 다른 이야기가 자꾸 펼쳐졌다고 한다. 교감은 자꾸만 아이가 입학시험에서 떨어진 게 입시 부정이 아니라고 하지만, 그건 명백한 변명에 불과했다. 작가는 변명과 장애를 연결해서 생각했다고 했다. 장애가 사람 사이에서 소통을 원활하게 하지 못하게 하는 것과 같이, 변명과 합리화는 사람 사이의 소통을 차단한다는 인식이었다. 그러나 막상 작가는 관객과의 대화를 하다 보면 말문이 막힌다고 했다. 잘 모르겠다고, 그냥 마음 가는 대로 만들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고.

그런 작가의 마음은 이해가 간다. 나도 Opinion을 쓸 때, 어떤 글을 쓰고 싶다고 제목을 정하고 잘 나오는 날도 있는가 하면, 어떠한 내용을 써야지 생각했는데 내 속에서는 전혀 그것에 대한 글이 나오지 않아 전혀 다른 글이 되어버릴 때도 있다. 어떨 때는 공연의 Preview에서도 내 마음속에서 꽂힌 이야기를 쓰지 않으면 다른 글은 아예 나오지 않을 때도 있다. 그게 나에게만 일어나는 문제는 아니었구나, 하면서도 자기 직업을 가진 사람인데 공연의 직전에 대본을 바꾸는 일도 일어날 수는 있는 거구나. 아주 조금의 실수, 조금의 방황쯤은 다른 사람들도 이해해준다는 것을 알고 안심도 했다.



말없이


연극을 다 보고 나서 <말없이>에서 원래 다루려고 했던 의미의 '말'이 없이 일어나는 소통과 지금의 상황은 어떤 공통점이 있는지를 생각해봤다. 교감과 발달장애아의 엄마는 말은 서로 하고 있지만, 전혀 소통은 일어나지 않는 상태다. 말이 있지만 말이 통하지 않는 상태. 쓰레기통에 버렸다고 준 것이 아니라고 하는 말 같지도 않은 말. 말을 해도 차라리 말이 없는 게 나은 상황이다.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는 것 자체는 잘못되었다. 그게 '장애'라는 기준을 놓고 본다면 특히 그렇다. 그렇다면 장애를 갖지 않은 교감은 정상인가, 비정상인가? 그것도 누가 보느냐에 따라서 다르게 말할 것이다. 교감은 윤리적으로 잘못된 생각을 하고, 도덕적으로 옳지 않은 행위를 했지만, 그것을 보고 정상이다 비정상이다 판단할 수는 없다. 저마다의 다른 가치 기준을 갖고 세상을 살아가기 때문이다. 또 그렇다면, '정상'과 '비정상' 사이의 소통은 가능한가. 정말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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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자체는 매우 친근하고, 늘 일어나는 가해자와 피해자, 그리고 그 옆에서 언제까지나 방관하는 사람들의 일을 다뤘다. 그러나 그 속에 담긴 질문들의 깊이가 너무 깊고 애매해서 어떤 결론을 내려야 할지 모르겠다.

그냥 딱 한 가지 생각나는 건, 교감이 아이를 해외대학으로 보내라고 추천을 했을 때 효선이 한 말, "그럼 원래 그 학교에 가기로 했던 아이의 기회를 저희가 빼앗는 거잖아요?" 교감은 끝없이 '교감 같은' 생각만 했고, 효선은 너무나도 공감을 잘하는 인물이어서 그때마저도 이기적이지 못했다. 효선이 어떤 선택을 했든 피해자는 꼭 생기게 되는 아이러니. 효선의 입학포기서로 자신들이 피해자가 되어버렸지만, 자기들은 피해자를 만들지 않는 선택을 했다. 세상과 사람들이 저질러놓은 모든 책임을 그렇게 한 사람이, 한 가정이 다 떠맡을 수가 있을까. 그들이 얼마나 큰 상처를 지고 살아갈지 그것도 정말 모르겠다.




[박지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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