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던킨도너츠 in Broadway

행복의 무게를 확인하시겠습니까?
글 입력 2018.11.03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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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show), 너는 정말인지



벌써 2년 전이다. 난 뉴욕 브로드웨이에 있었고, 고개를 돌리면 화려하게 반짝이는 극장의 조명에 열광했다. 10년 가까이 그리던 꿈 한복판에 두 발로 서 있는 순간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극장이란 극장은 모조리 들어가 특등석에서 관람하고 싶었지만, 역시나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나는 가장 먼저, 6일간의 일정 중 5일 저녁 시간에 모두 뮤지컬 쇼를 배치했다. 공연을 고집부린 만큼, 나머지를 내려놓아야 했다. 12시간 이상 공항에서 대기하는 것은 물론, 하루에 만원 꼴인 브루클린의 호스텔식 에어비앤비로 숙박을 해결했다. 음식은 내가 가장 과감히 포기한 것 중 하나였다. 하루에 한 끼, 심한 날은 음료 한 잔만 마셨다.

그날의 요깃거리는 하얀 설탕 가루를 묻힌 딸기잼 던킨도너츠와 오렌지주스였다. 당일 할인 티켓을 판매하는 TKTS부스 줄을 기다리던 중, ‘오늘 풀리는 좌석이 뭐가 있을까’ 궁금해하며 먹은 그 도너츠가 자꾸 생각이 났다. 너무 배가 고파서였을까? 그 순간 나는 새삼 정면으로 인지할 수 있었다. 온종일 돌아다니며 주린 배를 움켜쥐던 내가 밤만 되면 기대에 부풀어 브로드웨이 극장가를 찾는 이유를 말이다.



어디까지 내려놓을 수 있나요? - 내가 발견한 행복



우리 주변에 찾을 수 있는 행복은 많다. 하지만 위의 경험을 빌어 말하자면, 우리는 각자 포기하는 정도를 통해 행복의 존재와 무게를 실감할 수 있다. 최근 내가 이 부분에 입각해 느낀 행복으로 크게 세 가지가 있다. 공연장 안내원으로 일하는 아르바이트, 글 쓰는 카페 생활, 그리고 최근 마무리한 연극동아리가 그것이다.



1. 관객의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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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장의 안내원으로 일한 것도 어느덧 2년 3개월이다. 공연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시작한 일이지만, 서비스업이 쉽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다. 기초적인 질서를 지키지 않거나, 명시된 안내 사항을 거부하는 사람들, 사전에 협의되지 않은 부분을 우기며 너도나도 입버릇처럼 요구하는 그 ‘융통성’까지……. 하물며 손님과 관계자 응대를 제외한 공연장 내부의 사정까지 개입되자 두 손을 들게 되는 경우가 허다했다.
 
공연이 많은 요즘, 매일 같이 출근하며 느끼는 이런 감정은 날 지치게 만든다. 그곳에서만 얻을 수 있는 ‘행복’을 진작 찾지 못했더라면, 서비스업에 미련이 있는 것도 아닌 나는 아마 다른 일을 찾았을 것이다. 내가 공연을 사랑했기 때문에 시작한 일이고, 안내원이기 이전에 관객이었으니까 가능했다. 내겐 매일 찾는 근무지이지만, 누군가에겐 그날만을 위해 손꼽아 기다리던 장소이다. 나름의 기대와 설렘으로 찾는 공연이 불쾌한 타인으로 인해 얼룩지지 않도록, 나의 친절함으로 그날이 더욱 기분 좋게 포장될 수 있도록 노력한다. 내가 얼굴 가득 띠는 미소가 그들의 소중한 시간을 한층 더 만족스럽게 만들도록.
 
이렇게 오늘도 나는 일하는 장소에 기반한 행복으로 스트레스를 버틴다. 어딜 가나 받는 스트레스라면, 이것을 상쇄시켜줄 행복이 있는 곳에 머무는 것이 현명하니까 말이다.



2. 카페는 나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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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덟번째 넘버(NUMBER): 그리스 표지


현재 나는 아트인사이트에서 칼럼 “넘버(NUMBER)”를 연재하고 있다. 글을 쓰는 데 있어, 집이나 도서관보다 카페를 선호하는 나는 늘 집 앞 24시 탐앤탐스를 찾는다. 한 회차 연재하는데 기본 20시간 이상, 오래 걸리면 이틀을 넘어간다. 모든 시간에 100% 집중한다고 말할 수 없는 것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자료수집 및 내용 정리를 위한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하다. 특히나, 글에 착수하기 전 몰입하는 데까지 일정 시간이 소요되는데, 다음 날로 미루고 다시 이어 쓰려는 순간 이를 재차 겪어야 하는 것이 상당히 소모적이기 때문에 한번 시작하면 끝날 때까지 카페를 나가지 않으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음식이며 잠 등을 포기하고 글만 신경 쓰는 탓에 몸이 지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주목할 점은 그 와중에 해당 회차의 작품을 탐미하는 것에서 참으로 확실한 행복을 느낀다는 것이다. 분명 몸이 매여 있다는 것을 아는데도 그때의 감상을 떠올리고, 귀 기울여 넘버를 들으며, 집중해서 실황을 참고하면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를 짓는다. 한순간에 눈물을 떨구며 코를 풀고 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그 이상으로 아늑한 집과 침대를 바랄 수 없게 될 때쯤, 힘겹게 한 회차를 완성하고 나면, 그보다 그 작품을 사랑해 마지않을 수 없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3. 극강의 영어연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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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국대학교 영어영문학과 제 40회 영어연극 정기공연


칼럼 기고를 위한 카페살이가 연재 주기에 맞춰 겪는 것이라면, 올여름에 걸쳐 두 달 남짓 연출로서 진행한 영어연극동아리는 하루도 빠짐없이 신체적 고통은 물론, 정신적인 부담감까지 그야말로 정점을 찍는 경험이었다.

우선 영어영문학과의 소모임으로 40년 이상 건재해 왔으나, 무대, 의상, 소품, 조명, 홍보물 제작 등 업무가 분담되어 있던 과거는 더 이상 없고, 연출이 일당백을 도맡아야 하는 열악한 환경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배우로 참여했던 1학년 때와는 천지차이였다. 알고 있었다. 그리고 적어도 지금까지 경험한 것 중 제일이 되리라는 것을 각오하고 있었다. 돈 한 푼 떨어지지 않는 열정의 산물인 ‘대학생활’을 마지막으로 진하게 남기고자, 또 잡지 않으면 후회할 것을 알기에 수락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초집중을 요구하는 5시간의 연습 시간을 놓고, 나머지 공백은 모조리 일, 일, 일이었다. 기본적으로 매일 밤을 새울 각오였다. 당연히 집보다 카페에 있는 시간이 길었고, 밥과 잠은 이미 내 스케줄에서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런데도 나를 버티게 한 것은, 잠깐 등장하는 소품 하나를 찾기 위해 밤새 인터넷을 뒤지면서도 ‘행복했기’ 때문이다. 소품뿐만 아니라 의상과 가구, 그 모든 색의 조합, 무대의 구성과 구현, 작품의 탐구 및 전달, 그리고 동선 하나하나를 고민하는 순간이 모두 행복 안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여러모로 내가 만신창이가 되는 줄은 알았지만, 단 한 번도 후회한 순간이 없는 이유다. 참 힘들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그 도중에 존재한 행복이 매우 분명했다.



Know what you want, 똑바로 알고 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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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들에게 내가 감수하는 부분을 이야기하면 놀라곤 한다. “그렇게까지 해야 하느냐”고. 내가 충분한 고민을 거쳐 시작한 일들이고, 꽤나 긴 시간 동안 놓지 않고 진행한 일들이다. “왜 그렇게까지 하느냐”가 아니라 “그렇게 할 수 있는 이유”에 초점을 두었으면 좋겠다. 힘겨운 부분을 수반하는 것이 맞지만 전부 좋아서 한 일이니까 말이다. 내가 무언가를 얼마나 사랑할 수 있는지, 또 얼마나 열정적일 수 있는지를 몸소 느끼게 해주는 특별한 경험이니까 나는 그 고통이 소중하다. 그 고통에도 불구하고 사랑할 수밖에 없는 무언가를 가진다는 게 참 다행이고 그로써 또 한 번 행복하다.

그날, 브로드웨이 거리에서 먹은 하얀 가루의 던킨도너츠는 내게 그런 것이다. 날 흔들리지 않게 잡아주고, 내 마음과 행동을 증명하는 존재다. 앞으로 살면서 내 삶의 또 다른 던킨도너츠가 무엇인지, 그것으로 지탱하려는 것은 결국 무엇인지를 제대로 알아야겠다고 다짐한다. 내 행복의 무게를 가슴에 와 닿게 느낌으로써, 좀더 뚜렷한 발걸음을 내딛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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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승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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