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꿈이 없는 사람 [공연예술]

글 입력 2018.11.07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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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한 기회로 대학로 뮤지컬 드림스쿨을 보았다. 대략적인 줄거리는 이렇다. 불의의 사고를 당한 주인공 수아는 AI 인공지능 칩을 이식받는다. 다양한 지식, 과거의 추억 등은 인위적으로 주입할 수 있지만 꿈만큼은 그럴 수 없다. 그녀는 드림스쿨을 통해 자신의 꿈을 찾고 다른 이들의 꿈을 응원하며 서로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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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찾지 못한 꿈

학창시절 장래희망을 써내는 종이를 받을 때마다 나를 속이는 기분이 들었다. 과학자, 선생님, 소설가, 검사, 펀드매니저, 파일럿 등의 다양한 직업을 써 내왔지만 그중 정말로 내가 간절히 꿈꿨던 미래는 없었다. 멋있어서, 돈을 잘 벌어서, 부모님이 원해서가 그 이유의 전부였다. 그렇게 나는 꿈 없이 살아왔다. 주어진 상황에 딱 그 정도의 일을 하며 큰 굴곡 없이 살아왔다.

그저 가만히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더 높은 곳을 원했기에 재수를 선택했고, 무언가 찾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로 인도 배낭여행을 떠났다. 그러나 국내 자전거일주, 12박 13일의 홀로 히말라야 트레킹에서조차 그 답을 찾진 못했다. 단단한 꿈 콤플렉스가 나에게 자리 잡았다.

20년이 넘도록 찾지 못한 꿈을 2시간의 공연을 통해 무언가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거라고는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이 공연 또한 꿈이 있는 자들을 응원할 뿐 꿈이 없는 자에게 손을 내어주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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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을 준비하며 여러 자기소개서를 썼다. 그중 가장 힘들었던 부분이 취미, 특기 그리고 비전에 관한 질문이었다. 좋아하는 것은 어떻게든 쓸 수 있었지만 잘하는 것, 이루고 싶은 것과 마주할 때는 벌거벗은 기분이 들었다. 마음 깊숙한 곳 꿈 콤플렉스가 꿈틀거렸다.

물론 원하는 게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관심 있는 누군가의 호감을 얻고 싶고, 오래 기다리던 공연을 보고 싶고, 바라던 여행을 떠나고 싶다. 하지만 내 인생을 통틀어 지향할만한 무언가가 없다. 그 점에서 공허함을 느낀다. 그렇기에 오디션 프로그램 같은 방송을 즐겨 본다. 그들이 울고 웃고 화내고 즐기는 모습을 보며 나의 공허함을 채운다. 일종의 대리만족이다.

그러다 문득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우승자가 아닌, 꿈을 이루지 못하고 다음 기회를 기약해야 하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뮤지컬 '드림스쿨'에서는 꿈꾸는 건 공짜니까 마음껏 누리라고 한다. 이루지 못할 꿈이라도 꿈꾸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꿈을 꾼다는 게 과연 행복하기만 한 일일까. 오늘의 나를 움직이는 원동력이 될지는 모르나 반복되는 오늘에 지쳐서, 현실적인 벽에 부딪혀서 꿈을 접게 된다면 그건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일까.

꿈은 사랑과 닮았다.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고 그녀에게 잘 보이기 위해 오늘의 나를 가꾼다. 그녀의 웃음 하나에 하루가 즐거워지고 말 한마디에 피로가 싹 가신다. 사랑은 사람을 움직인다. 하지만 이루지 못한 꿈처럼 이루지 못한 사랑도 상처를 남긴다. 후회와 미련 속에 하루하루를 앓기 일쑤다. 차라리 애초에 사랑하지 않았더라면 같은 생각을 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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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꿈꾸고 싶다


"첫 번째 보았을 때는 여운에 자리를 뜨고 싶지 않았다. 두 번째 보았을 때는 어서 돌아가 뭐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영화 라라랜드는 판타지이다. 두 주인공은 서로를 열렬히 사랑한다. 상대가 좋아하는 것을 자신도 좋아하게 된다. 상대의 꿈이 이루어지기를 그 누구보다도 바라고 믿고 끝까지 응원한다. 결국 나로 인해 너의 꿈을 이루고 너로 인해 나의 꿈을 이룬다.

세바스찬(라이언 고슬링)이 부럽다. 미아(엠마 스톤)가 부럽다. 꿈을 이뤘기에 부러운 것이 아니라 나에겐 이룰 꿈이 없기에 그들이 부러웠다. 그 꿈을 지지하는 사랑 또한 부러웠다. 내가 이 영화를 판타지라 칭한 것은 영화가 끝나고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나를 마주했기 때문이다. 나와는 너무나 먼 그들만의 라라랜드다."



2016년 12월, 대학교 졸업을 앞두고 영화 라라랜드를 만났다. 영화 속 주인공들 또한 현실에 막힌 꿈과 엇나가는 사랑에 고통받았다. 나는 그들을 동경했다. 그들이 꿈을 이뤘기 때문이 아니라 꿈을 꿨기 때문이었다. 그들처럼 사랑하고 그들처럼 꿈꾸고 싶었다.

한 번 사는 인생 막연한 항해를 하고 싶지 않다. 비록 풍랑에 막혀 도달하지 못하더라도, 그래서 고통받더라도 꼭 도달하고 싶은 등대의 초록 불빛을 보고 싶다. 2018년이 저물어간다. 20대도 얼마 남지 않았다. 나는 아직도 꿈을 찾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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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동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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