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사랑'과 운명, 그 사이 [영화]

나는 내일, 어제의 너와 만난다
글 입력 2018.11.06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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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만나."

- 나는 내일, 어제의 너와 만난다 中 -


 

사랑하는 사람과의 나날들이 언제나 한결같다고 말할 수 있을까? 대개 그렇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예쁘게 만나면서도 때로는 토라지고, 상대방 때문에 웃고 우는 시간을 사랑하면서 우리는 겪게 된다. 이때, 이러한 과정을 ‘함께’ 겪는다는 사실을 한번 생각해보자. 사랑이라는 표현에는 나와 타자가 동시에 시간과 기억을 공유하면서 추억을 만들어간다는 사실이 내재하여 있다. 어떤 사람을 매우 아끼고, 소중하게 여기려면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을 테니 말이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더라도 어떠한 형태로든지 ‘함께’ 시간을 보내지 않는다면, 관계가 자연스레 멀어지고 감정이 사그라질 일은 불 보듯 뻔하다.

마키 타카히로의 『나는 내일, 어제의 너와 만난다(ぼくは明日, 昨日のきみとデートする)』는 그러한 관점에서 ‘함께’하지만 ‘함께 하지 못하는’ 두 남녀의 연애를 그려냈다는 점에서 꽤 흥미롭다. 스무 살인 타카토시는 지하철에서 우연히 본 ‘에미’를 보고 첫눈에 반하고, 그녀에게 고백하면서 둘의 사이는 급속도로 연인 관계로 발전한다. 에미는 타카토시와 관심사나 취향, 버릇이 너무나도 많이 닮아 있었고, 타카토시는 이를 단순한 우연의 일치라고 생각하면서도 굉장히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다만, 고백을 이야기하거나, 둘 사이의 특별한 호칭을 붙이는 등 연인들 사이에 있을 사건들의 포인트마다 에미는 어째서인지 항상 눈물을 보인다. 그럴 때마다 울음을 애써 감추는 듯 “내일, 만나.”라고 말하는 그녀의 대답은 전반적으로 의미심장한 느낌을 사뭇 풍긴다.


[크기변환]1화 제대로!!.jpg
 


결국 타카토시가 우연히 시간이 거꾸로 적혀 있는 에미의 일기장을 보게 되면서 그녀의 시간은 보편적인 사람들과는 반대로 흘러가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다시 말해 타카토시에게 내일은 에미에게는 과거가 되는 것이다. 더불어 둘이 만날 수 있는 주기는 5년마다 30일로 제한되어 있으며, 두 사람이 연애하는 현재의 순간이 유일하게 서로가 스무 살인 상태로 만날 수 있는 기간이라는 사실 또한 깨닫게 된다. 한 마디로 연애를 하며 타카토시가 그녀를 점점 알아갈수록, 에미는 그와 함께한 시간을 나누지 못하고 하루씩 점점 어려진다는 셈이다.

 

사실 그 이전에 타카토시가 만났던 에미는 그러한 사실들을 모두 알고 있었다. 그녀의 입장에서 시간이 전개될수록 타카토시는 함께한 나날들을 기억하지 못한 채 처음 만났던 이전으로 되돌아간다. 애써 붙잡고 싶어 노력해도 조금씩 엇갈리기 시작하는 서로의 시간을 바로잡을 방법은 그들에겐 없었다. 좋아하는 대상과 함께 나눈 첫 순간이, 상대방은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을 마지막 순간이었다. 그런데도 서로를 사랑한다고 계속 말할 수 있을까. 타카토시가 이러한 사실을 깨닫고, 결국 둘 사이의 관계가 에미의 일기에 적힌 대로 일어나는 연극이라고 생각했던 이유도 이 때문인지도 모른다.


자칫 정해진 운명에 의한 일련의 사건처럼 느껴질 수 있는 둘 사이가 정점에 이를 때, 그래서인지 타카토시는 아래와 같이 말한다.



"우리는 엇갈리는 게 아니야.

끝과 끝을 맞붙인 고리가 되어 하나로 이어져 있어.

(...)

우리는 엇갈리지 않아.

하나로 이어져 있어.

우리 둘은 하나의 생명인 거야."



두 사람이 맞닥뜨려야 하고 바꿀 수 없는 거대한 운명을 애써 좋게 표현했지만, 그에 따라오는 슬픔과 외로움까지도 괜찮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실제로 두 사람이 각각 과거의 상대방을 만나면서 눈물이 많다며 슬퍼하는 모습이 자주 보이는 점은 이를 잘 나타낸다. 흔히 시간을 나누고 행복하고 즐겁다고 생각되는 보편적인 사랑을 두 사람은 채 한 달도 제대로 하지 못하였다. ‘누군가와 무언가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 때’를 타카토시는 사랑이라고 말했지만, 그러한 감정을 표현할 수 없는 채 마음으로만 겉도는 상태 또한 마찬가지로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는 모를 일이다.

 

니체는 ‘운명을 사랑하라(Amor fati)’라고 말한 바가 있다. 아무리 기구하고 비참한 삶이라도, 그 자체가 또 다른 자신이기에 아껴주어야 한다는 정도로 받아들이면 되겠다. 흔히 자신을 먼저 사랑하지 않으면 타인을 사랑할 수 없다는 말처럼, 있는 그 상태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 자체만큼은 중요하고 필요하다. 이러한 시각에서 접근해 보면, 서로가 상대방을 사랑한다는 말 이면에 남은 사랑해야 했던 것은 ‘운명’일지도 모르겠다. 불가피한 현실을 받아들이고, 자신을 알지 못하는 상대방을 거슬러 올라가는 현실을 버틸 수 있는 유일하다시피 한 위안일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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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으로는 그렇기에 두 사람의 관계가 더 깊은 여운을 남기는 것 같다. ‘함께’ 하지만 ‘함께할 수 없’으면서도, 일단은 ‘사랑한다’고 주저 없이 말해 보일 수 있다는 것. 두 사람의 관계를 정말로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를 뒤로하더라도, 스스로가 처한 운명을 여과 없이 받아들이고 사랑하고 있으니 말이다.

어쩌면 “내일, 만나.”라는 그 둘 사이의 암묵적으로 정해진 인사는 각각이 상대방과 같은 시간을 함께하고 싶은 바람이 은연중에 깔린 표현인지도 모른다. 그럴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러기 위해 각자의 시간에서 부단히 노력하고 있으니까.


[원종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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