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넥스트 투 노멀, 평범함을 갈망하는 그들 [공연예술]

예원예술대학교 제6회 졸업공연
글 입력 2018.11.07 0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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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금요일과 토요일, 이틀에 걸쳐 예원예술대학교에서 ‘넥스트 투 노멀’을 학생 공연으로 무대에 올렸다.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안고 버티며 살아가는 다이애나와 어떻게든 가정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가장 댄, 다이애나가 너무나 사랑해 마지않는 아들 게이브, 그런 부모님 아래서 언제나 그늘 속에 홀로 자랐던 딸 나탈리, 나탈리 곁에서 꾸준히 그를 사랑하는 헨리까지, ‘넥스트 투 노멀’은 평범함 근처 어딘가에라도 닿고 싶어 하는 이들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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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뮤지컬은 톰 킷과 브라이언 요키가 2008년 처음 오프 브로드웨이에서 선보인 작품이다. 깔끔한 연출과 참신한 시놉시스, 그리고 세련된 밴드 연주를 기반한 넘버까지, 이 작품은 등장과 동시에 토니상 여우주연상과 최고 음악상, 그리고 최고 오케스트라상을 거머쥐었다. 이러한 작품성은 제작자들의 피나는 노력이 있었기에 완성된 것이었다. 1998년 킷과 요키가 제작한 10분짜리 뮤지컬 ‘Feeling Electric’이 ‘넥스트 투 노멀’의 모태가 되었다. 이 작품이 입소문을 타고 흥행하자, 무려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정신과 의사들과 환자들의 자문 및 검토를 거쳐 이 작품을 완성했다.

이 작품의 주인공 다이애나는 조울증 및 과대망상증을 겪는 정신질환자이다. 무려 17년 동안 수많은 약을 복용하고 상담을 받았다. 다이애나의 혼란스럽고 불안한 정신세계는 그대로 무대 위에 표현된다. 잔잔하고 부드러운 전주곡 ‘빛’이 무대 위를 흐르다가 어느 순간 일렉 기타의 굉음이 관객들의 귀를 때린다. 그와 동시에 무대는 급격히 암전되고,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을 서서히 조명이 밝히면 다이애나가 아들 게이브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장면이 보인다. 첫 넘버의 제목은 ‘그저 또 다른 날’이다. 너무나 평범하고 행복해 보이는 굿맨 가족이 외치는 말은 “그저 또 다른 날, 하루하루 버텨내기”이다. 겉으로 보기에 남들 같은, 아니, 남들보다 더 행복해 보이는 굿맨 가족이 사실은 벼랑 끝에 매달려 겨우겨우 삶을 살아간다는 암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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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애나의 심리치료 과정 또한 독특한 연출로 표현된다. ‘내 신경정신과 의사와 나, 이건 묘한 로맨스. 은밀하고도 뜨거운 춤을 추지. 안아주지 않아도 내 전화 받아줘. 의사 선생님 말씀, 어느 발레리나도 혼자는 날지 못해.’ 상담 과정에서 흔히 일어나는 ‘전이(환자가 의사에게 본인의 결핍을 채우려고 의지하는 현상)’가 언뜻 보이는 가사다. 상담 시간이 경과되면 가차 없이 다이애나를 돌려보내는 장면 또한 실제 상담 현장과 비슷하다.


“수많은 약을 주며 나를 묶어왔던 그들, 확신도 없이 괜찮다 했죠. 하지만 바로 그때, 어찌된 거냐 묻자, 아무도 모를 일이라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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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년 동안 약을 복용하고 심리치료를 받아 온 다이애나가 혼란을 느끼는 것도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평생 나아지지 않을 지도 모른다고, 이미 난 미친 건지도 모른다고 고백하는 다이애나의 모습이 어쩌면 제일 ‘평범한’ 모습으로도 보인다. 이렇듯 이 극은 정신질환자의 고통과 의사들의 치료, 그리고 그 과정에서 주위 사람들이 겪는 아픔까지 어느 하나 경솔하게 다루지 않는다. 그게 이 극의 가장 큰 매력이다.

어떻게 하면 극을 더 재미있게 만들 수 있을까, 어떤 소재가 더 자극적이고 인기 있을까, 창작자들이라면 누구나 거치는 생각의 관문이다. 하지만 그 어떤 극이라도 창작자에게 가장 중요한 마인드는 신중성이다. 소재가 자극적이고 예민할수록 창작자들은 책임감을 가지고 임해야 한다. ‘넥스트 투 노멀’이 10년간의 조사와 통찰, 검증을 거친 이유는 자극성이나 인기를 위한 것이 아니었던 것처럼 말이다. ‘넥스트 투 노멀’이 한국에서 올라온 지 2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학생 공연으로도 올라오고, 많은 사람들이 추억하며 그리워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굿맨 가족을 옆에서 지켜보며 나탈리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는 헨리도 ‘노멀’과는 거리가 있다. 하지만 이 극은 ‘노멀’을 외치지 않는다.


“나 비록 바보, 왕따에 게으른 약쟁이지만 하지만 너에겐 완벽할 수 있어. 딱 맞는 짝. 모서린 깎아내며 맞추면 돼.”

“널 위해 나, 완벽한 짝이 될게. 네가 미쳐 가면 같이 미쳐줄게. 그래. 때론 삶은 광기, 미치는 건 나 자신 있어. 광기와 엉망이 완벽일 수 있어. 그러니 난 너의 완벽한 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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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함을 향해서 나가는 과정, 그 안에서 찾을 수 있는 우리만의 완벽. ‘네가 미치면 같이 미쳐줄게’라고 말하는 짝 옆에서 나탈리는 조금씩 마음을 연다.


“넌 내 문제 3순위야.”
“순위도 정해?”
“걱정 마. 넌 내가 가장 좋아하는 문제니까.”



이 극은 문제없는 삶을 외치지 않는다.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맞이하는 해피엔딩을 그리지도 않는다. 광기도 완벽이 될 수 있고, 문제 가득한 삶이라 해도 사랑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이 극의 메시지다. 극 초반에 전주곡이 시작될 때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암전이 무대를 채웠다면, 극의 마지막 넘버가 연주될 땐 무대가 점점 밝아져 환하게 빛이 차오른다.


“알잖아, 해 뜨기 전, 칠흑 같은 어둠. 긴 밤이 지나면 한 줄기 빛.”



햇살 가득한 양지까지는 필요 없다. 한 줄기 빛이면 된다. 넥스트 투 노멀, 평범함 그 주변 어디면 된다. 언젠가는 내 스스로 빛을 켤 수 있는 날이 올 테니 말이다.


[정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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