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인간은 고귀하다고 말할 수 있는 힘, 소년이 온다 [문학]

글 입력 2018.11.07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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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독 나를 약하게 만드는 서사가 있다. 웬만하면 잘 울지 않는데, 이상하게 그 서사가 담긴 콘텐츠를 보면 금세 눈물이 차올랐다. 바로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 ‘양심’에 의해 영웅적인 면모를 보이는 경우가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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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사진이다. 지하철과 승강장사이에 낀 사람을 구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지하철을 미는 사건을 보여줌으로써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전해주었다. 이처럼 타인을 살리기 위해 사람들이 힘을 합치는 장면을 보면 찡하게 코끝을 찌르는 울림은 피할 수가 없다. 이러한 ‘영웅스토리텔링’, 특히 평범한 사람이 영웅이 되는 구조는 꽤나 보편적인 서사이며 사람들에게 쉽게 감동을 전할 수 있다. 여기다 아픈 역사까지 더해지면 감정이입은 극대화되며 호소력은 더욱 짙어진다. 그래서인지 5.18 광주 민주화운동, 일제강점기 등 아픈 역사를 다룬 작품을 볼 때면 거의 오열한다. 그 작품이 아무리 신파로 칠해져 있어도 말이다. 그래서 영화 택시운전사를 볼 때는 머리가 아플 정도로 울었던 거 같다.(택시운전사가 신파로 칠해졌다는 말은 아니다.)
 

이러한 서사에는 무언가가 있었다. 단순히 슬픔과 분노, 감동을 넘어서 나의 온 정신을 점령하여 눈물을 쏟아내게 할 수 있는 그런 힘. 그리고 그 힘이 무엇인지 한강의 「소년이 온다」을 읽고 비로소 알게 되었다. 「소년이 온다」는 무엇보다 그 힘에 주목했다.




그날의 광주, 거기서 발견한 유일한 빛



「소년이 온다」는 총 6개의 장으로 나누어져있으며 각 장마자 주체가 달라진다. 5.18 광주민주항쟁의 상황을 복원하고, 5,18 이후 항쟁에 참여했던 살아남은 자들의 이야기를 그려낸 작품이다. 당시 5월의 광주는 시민들이 계엄군에 의해 “신체가 수차례 대검으로 그어지고 곤봉에 맞아 두개골이 움푹 함몰돼 뇌수가 보일 정도로”(한강,「소년이 온다」, 창비,11p)폭력을 당해 죽음을 맞이하고 그 수는 합동분향소의 공간이 죽은 사람들로 빡빡이 메워질 정도로 처참한 상황으로 묘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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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상황에서 사람들은 계엄군에 맞서 싸운다. 계엄군이 시내로 진입해 모든 시민들을 총살한다는 소리를 듣고 도청에 남은 사람들은 “유서를 써서 이름과 주소를 적고는 찾기 쉽도록 셔츠 앞주머니에 넣을”(110p)정도로 죽을 각오를 하고 말이다. 결코 이들이 본래 남들보다 특별히 용감하거나 두려움이 없는 자들이어서가 아니다. 이들은 대학 신입생, 복학생, 중학교 3학년생, 고등학생들이 섞인 평범한 삶을 살아가던 자들이었다.

우리와, 우리의 이웃들과 다르지 않은 사람들이 어떻게 이런 용기를 낼 수 있었을까?


4장의 주체인 “나”는 군인들의 힘만큼이나 “강렬한 양심”(114p)이 자신을 압도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 강렬한 양심은 부상당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 병원 입구에 끝없이 줄을 서 있던 사람들, 사람들을 치료하기 위해 들 것을 들고 빠르게 움직이는 의사와 간호사들, 바리바리 싸 든 음식을 전해주던 여자들 그리고 군인들의 총구 앞에 같이 선 수십만의 사람들이 보여준, “마치 자신의 껍데기 밖으로 걸어 나와 연한 맨살을 맞댄 것 같던 그 순간들”(116p)로 형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만든 그 순간들은 하나의 거대하고 숭고한 심장의 혈관을 형성하여, 같은 맥박 하에 고동치는 자신을 “완전하게 깨끗하고 선한 존재”(116p)로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인간의 깊숙한 내면에는 절대적으로 이타적인 용기가 존재한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이러한 용기를 가지고 5월의 광주에 닥친 비극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그들이 있어야 할 세계를 만들기 위함을 향해 가는 모습은 단연코 영웅의 모습이었다. 이들이 그날이 광주에 유일한 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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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택시운전사>




그 뒤의 이야기까지



보통 비극의 역사를 다룬 이야기는 그 인물들을 영웅으로 만들고 거기서 이야기를 끝낸다. 그러나 「소년이 온다」는 5.18광주민주항쟁에 참여했던 자들의 살아남은 뒤의 이야기까지 다루어, 그들이 보여줬던 강렬한 양심을, 그들이 느꼈던 고통을 그날의 광주에만 머물게 있게 하지 않는다. 현실로 끌어온다.
 

3장 ‘일곱 개의 뺨’의 주체인 ‘김은숙’은 ‘동호’와 시신을 함께 수습했고 민주항쟁 당시 계엄군과 싸우기 위해 도청에 남아 총대를 멘 세 명 중 한 명이었다. 김은숙은 5.18이후 분수대에 물이 나오는 것을 보고 날마다 도청 민원실에 전화를 걸어 “어떻게 벌써 분수대에 물이 나오냐고, 얼마나 됐다고 벌써 그럴 수 있냐며”(69p) 5월의 광주를 잊은 듯한 사회에 항의한다. 또한 죽은 사람들에 대한 생각으로 먹는 행위에 대해, 허기를 느낀다는 것에 치욕을 느끼고 생명을 이어지지 않기를 바라며 삶에 고통을 느끼는 모습을 보인다. 4장 ‘쇠와 피’의 주체인 ‘나’와 또 다른 참여자 ‘김진수’는 교도소에서 당한 비녀 꽂기, 통닭구이, 물고문, 전기 고문, 정신 고문 등으로 차라리“몸이 사라져주기를”(121p) 바랄 정도의 고통을 받는다. 출옥한 이후에도 이들을 운전면허를 위한 문제집을 보지 못할 정도로, 간단한 계산을 하지 못할 정도로 두통에 시달리고 원인 없는 치통에 진통제를 먹으며 소주 두 병이상을 마시지 않고서는 단 한순간도 잠을 깊이 자지 못한다. 5장 ‘밤의 눈동자’의 주체이며 계엄군에 맞서 도청에 남았던 인물 중 한 명인 ‘임선주’는 악몽을 꾼다. 죽기 위해 옥상에서 아무리 낙하해도 죽지 않는, 거대한 빙하가 온몸을 내리눌러 으스러지게 만드는 악몽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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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테 콜비츠 作>

 


인간의 존엄성, 삶을 살아가라고 할 수 있는 힘



그날의 광주는 점차 잊히는데, 그날의 고통은 지독한 회의감과 상실감과 함께 이들을 괴롭힌다.


“인간은 무엇인가, 인간이 무엇이지 않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95p) 김은숙은 이 문장을 기억하며 오로지 끈질긴 의심과 차가운 질문들 속에서 인간을 믿지 않는다. 살아남은 ‘나(4장)’는 질문한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잔인한 존재입니까?”(134p)라고. “굴욕당하고 훼손되고 살해당하는 것, 그것이 역사 속에서 증명된 인간의 본질”(134p)이라면 ‘나’는 자신이 인간이라는 사실과 “죽음만이 그 사실로부터 앞당겨 벗어날 유일한 길“(135p)이란 생각과 싸운다고 말한다. 이들이 믿지 않는 ‘인간’은 억압적 규범을 받아들이면서 정당화의 토대들을 쌓은 인간이었다. 이들이 싸우는 ‘인간’은 그런 인간에 길들여져 순종하며 훼손당하고 굴욕당하는 인간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단순히 고통을 겪는 데에서 멈추지 않고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는 ‘동호’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동호’는 1장 ‘어린 새’의 주체로 도청에 남았다가 계엄군에 의해 총살당한 중학교 3학년 아이다. 김은숙은 5월의 광주를 재현하는 연극 속 ‘동호’를 연상케 하는 소년의 모습을 보고 아랫입술 안쪽을 악문 채 “동호야”라며 소년을 호명한다. 그러나 그 소년이 객석을 향해 몸을 돌리자 얼굴을 보지 않기 위해 눈을 감는다. ‘동호’를 도청에 남겨두어 죽게 만들었다는 모든 고통과 죄책감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임선주는 밤마다 “느린 춤의 스텝을 연습하는 아이처럼”(138p) 자신을 찾아오는 가벼운 발걸음 소리를 듣는다. 그 발걸음 소리가 누구의 것인지는 모르지만 “오후 해가 드는 창을 보다가 문득 동호의 옆얼굴이 흐릿하게 떠오를 때, 눈앞에 어른거리는 그게 혼을 아닐까”(174p)라며 발걸음 소리의 주인을 동호로 예측한다. 결국 여기서 동호는 ‘강렬한 양심’의 형상화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김은숙은 동호를 맞이한 순간 두려움에 눈을 감았다. 그러나 이내 감았던 눈을 부릅뜬다. 그녀의 독백이 그녀가 그 얼굴을 마주할 준비를 쭉 해왔다는 것을 말해준다.



네가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다. 네가 방수 모포에 싸여 청소차에 실려간 뒤에, 용서할 수 없는 물줄기가 번쩍이며 분수대에서 뿜어져나온 뒤에, 어디서나 사원의 불빛이 타고 있었다. 봄에 피는 꽃들 속에, 눈송이들 속에. 날마다 찾아오는 저녁들 속에. 다 쓴 음료수 병에 네가 꽂은 양초 불꽃들이 (102p)



한편, 임선주는 죽기 위해 다시 광주를 찾았지만 죽은 동호의 사진을 마주하게 된다. 동호를 직면한 그녀는 “그 순간 네가 날 살렸어. 삽시간에 내 피를 끓게 해 펄펄 되살게 했어.”라며 살기로 결심한다. 5월의 광주를 직면하고 증언하는 것을 회피했던 임선주는, 더 이상 도망치지 않았다. 그해 봄과 같은 순간이 다시 닥쳐온다면 비슷한 선택을 하게 될 거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자신이 발현했던 용기와 그날 보았던 결코 훼손될 수 없었던 인간의 고귀함과 존엄성. 그것이 남아있는 사람들에게도 이 삶을 살아가라는 힘이 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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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테 콜비츠 作>


그리고 이는 분명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나를 고통과 공감의 연대로 끌어오며 더 나아가 인간의 존엄하고 고귀한 부분, ‘강렬한 양심’으로 나를 움직이게 한다.



* 대표이미지의 저작권은 Artist 'Baki'에게 있습니다.





[김량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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