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영화가 끝나고 나서야 시작되는 것 [영화]

글 입력 2018.11.08 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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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5일,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액션 좀비물 <창궐>이 개봉했다. 죽은 자들이 살아나는 한국형 재난 영화는 2016년에 개봉한 <부산행> 이후 처음이다. 김성훈 감독의 신선한 발상뿐 아니라, 현빈과 장동건을 내세운 탄탄한 출연진, 그리고 조선판 좀비인 ‘야귀’들의 활약이 돋보였다는 평가가 있었다.

 
movie_image (12).jpg▲ 출처: 네이버 영화 <창궐> 포스터



‘야귀(夜鬼)’에 가려진 얼굴들

<창궐>의 ‘야귀’는 산 사람의 살덩이를 씹어 먹는 괴물이다. 제작부는 이러한 오컬트적 소재를 실감 나게 보여주기 위해서 분장에 무척 공을 들인 듯했다. 거미줄처럼 돋아나는 푸른 핏줄에, 컬러렌즈로 표현된 새하얀 눈동자까지.

본인은 괴물의 얼굴이 스크린을 채울 때마다 시각적 불쾌감을 느꼈다. 섬뜩하다거나 징그럽다는 인상은 엔딩 크레디트가 시작되고 나서야 끝이 났다. 비로소 객석에서 일어나 상영관을 나가려는데, 함께 영화를 봤던 일행이 잠시 후에 나가자는 말을 했다. 뒤늦게 안 사실이지만, 그는 엔딩 크레디트를 꼭 보고 나오는 유형의 관객 중 하나였다.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곤, 다시 자리에 앉아 검은 화면의 흰 글씨를 응시했다.

감독, 배우, 연출, 촬영, 음향, 배급, 세기도 힘들 만큼 많은 사람의 이름이 흘러갔다. 촬영 중 세상을 떠났던 고(故) 김주혁 배우를 추모하는 문장도 있었다. 예상외로 지루하지 않은 흰 글씨를 읽어내리는데, 이름 대신 누군가의 사진이 스크린을 빼곡히 채웠다. 턱을 괴고 있던 손을 내리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사진에는 ‘야귀’로 분장하여 맹활약을 펼친, 쉰 아흔 명의 맨얼굴이 있었다.


92645756.2.jpg▲ 출처: 영화 <창궐> 엔딩 크레디트



이야기가 끝나야 알 수 있는 것

엔딩 크레디트는 영화가 왜 종합적인 예술인가에 대한 답을 시청각적으로 제시한다. 작품의 프리프러덕션부터 포스트프러덕션에 참여한 모든 사람의 이름이 적히는 공간이다. 장편영화라는 대장정을 끝맺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이들이 고충을 겪었을지 짐작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창궐>의 엔딩 크레디트는 그런 의미에서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즐기기 위해 영화관에 온 관객은, 검은 화면과 흰 글씨를 보고서 오락적 재미를 얻기는 힘들다. (해외 영화 제작사인 마블 스튜디오의 경우, 일부러 엔딩 크레디트 이후에 쿠키 영상을 삽입하곤 한다.) 그래서 김성훈 감독은 59명의 프로필을 검은 화면에 채워 넣었다. 그는 추운 날씨에 무척 고생했던 ‘야귀’들을 위해 무언가를 해주고 싶었다고 했다. 관객 중 몇몇은 그들의 사진을 보고 마음이 따뜻해졌다는 글을 온라인에 남기기도 했다.

이야기가 끝나는 곳에서 다시 시작되는 이야기가 있다. 앞선 이야기도 흥미롭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땀방울을 흘리는 이들의 이야기 역시 인상적이다. ‘야귀’일 때보다 밋밋하고 맑은 얼굴들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세상에는 끝나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도 있으며, 어떤 이야기든 놓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movie_image (10).jpg▲ 출처: 네이버 영화 <창궐> 스틸샷



 



권령현.jpg
 



[권령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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