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둥지를 벗어나 날아오른 순간 비로소 깨닫게 되는 것들 [영화]

영화 <레이디 버드>
글 입력 2018.11.08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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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부모님과 갈등을 빚은 적이 있는가? 흑역사로 남은 첫 교제의 경험은? 혹은 대입의 쓰라린 상처라던가? 성인이 되기 직전의 전초전, 그 당시에 당신을 괴롭혔던 고민과 감정을 당신은 기억하는가? <레이디 버드>는 성장통을 앓던 그때 그 시절의 자신을 회상할 여지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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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크리스틴은 캘리포니아의 평화로운 동네 새크라멘토에 사는 가톨릭계 고교생이다. 졸업을 앞둔 그녀에게는 이성 관계, 친구와의 갈등, 실직한 아버지와 사사건건 부딪히는 어머니, 대입 문제까지 현실적인 문제들이 넘쳐난다. 이렇게 누구나 겪을 만한 평범한 사춘기를 보내는 그녀에게 남다른 부분도 있다. 가령 자신을 스스로 지어준 이름 ‘레이디 버드’로 부르기를 요구하는 점이 그렇다. 부모가 지어준 이름을 거부할 정도로 그녀는 자신의 선택으로 자기 정체성을 완성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사람들이 그녀를 ‘레이디 버드’ 라고 불러주는 만큼 다른 문제도 쉽게 풀리지는 않는다. 로맨스 소설에 나올 법한 완벽한 첫 남자친구는 성 정체성이 게이, 인생 베프와 예상치 못한 절교, 두 번째로 만난 음모론자 남자친구의 최악의 첫 섹스, 아버지가 실직하여 더욱 어려워진 집안 사정, 나를 좋아하기는 하는지 의심스러운 어머나와의 잦은 다툼 그리고 특별히 빼어난 점이 없으면서 욕심은 나는 대학 진입까지. 사소한 것 하나마저 그녀가 상상하는 대로 이뤄지는 일이 없다.

그녀가 겪는 에피소드가 관객의 경험과 일치하지 않더라도 사건들을 관통하는 정서와 감정은 모두가 한 번쯤 겪어보았을 만하다. 그렇기에 우리는 레이디 버드의 모습에서 과거의 나를 찾게 된다. 이 영화에서 주요하게 다루는 이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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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로 가족과의 관계에 주목해야 한다. 특히 엄마와의 관계 – 이 영화의 원제는 엄마와 딸이라고 한다 -에서 딸이라면 너무나 공감할 부분이 많다. 한 사람의 정체성을 형성하는데 가족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가족은 선택의 여지가 없기에 독립하기 전까지는 그들과 살며 관계를 이어나갈 수밖에 없다. 사춘기 때 우리는 절대적으로 든든하게만 느껴졌던 부모님이 사실은 그렇게 대단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무조건적으로 부모님을 존경하던 시절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을 때, 우리는 ‘반항’이라는 형태로 부모와 틀어진다. 부모는 나를 실망시키고 나는 부모님을 실망시키며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는 루프에 빠진다.

가령 크리스틴의 부모는 딸이 자신들이 준 이름을 거부했을 때 어떤 심정이었겠는가. 이런 상황은 내내 되풀이된다. 여유롭지 않은 집안 사정으로 대학 진학 시 대출을 고려해야 하고, 변변치 못한 거주지를 들키고 싶지 않아 거짓말을 하는 행태는 그대로 부모에게 화살이 되어 상처를 입힌다. 특히 뉴욕행을 자신에게 비밀로 했다는 것을 알게 된 어머니의 배신감은 너무나 컸을 것이다. 그러나 그만큼 크리스틴도 상처를 받는다. 엄마는 ‘이게 내 최선의 모습인데 그런 나를 좋아하냐’는 딸의 질문에 대답하지 못해 큰 상처를 주며, 계속되는 지나친 행동 검열로 딸과의 갈등을 불러일으킨다.

영화는 ‘사랑하겠지만 좋아하냐’는 질문에 답하지 못하는 이 애증의 관계를 집중적으로 보여준다. 우리 모두가 공감할 것이다, 부모가 밉지만 그들이 ‘사랑하기 때문에 - 자신들이 겪은 고난을 물려주고 싶지 않다는 명목 하에 가하는 행동을 무작정 비판할 수 없는 자식의 딜레마를. 하지만 레이디 버드의 선택, 그리고 우리가 부모를 ‘배신하고’ 우리의 의지로 결정했던 많은 것들이 잘못된 판단이라고는 할 수 없다. 필자 또한 레이디 버드의 선택을 존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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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는 고향에 관한 것이다. 내가 태어나고 살아온 공간이 미친 듯이 싫었던 적이 있는가? 레이디 버드는 그렇다. 그녀에게 세크라멘토는 너무나도 따분한 동네다. 특별히 잘하는 게 없고 애매한 성적에도 불구하고 고향을 벗어나기 위해 뉴욕에 있는 대학을 가려고 발버둥 친다. 그리고 엄마에게 큰 상처를 주면서까지 그녀는 결국 뉴요커가 되는데 성공한다. 그런데 웬걸, 뉴욕에서의 일상은 별게 없다. 마구 술을 마시고 처음 본 남자와 키스를 하는 것도 막상 해보니 별로 대단할 게 없다. 레이디 버드는 그렇게 자신을 얽매던 교회에 스스로 발을 들이며 언제나 이기려 들던 엄마에게 먼저 전화를 건다.


그녀는 더 이상 자신을 ‘레이디 버드’라고 소개하지 않는다. 대신 ‘나는 새크라멘토에서 온 크리스틴이야’라고 말한다. 둥지를 떠나 자신의 힘만으로 비상해야 하는 순간이 왔을 때 비로소 그녀는 자신의 정체성과 버팀목을 그녀의 둥지에서 찾게 된다. 어떠한 부가 설명 없이 존재할 수 있었던 고향과는 달리 낯선 땅 뉴욕에서 그녀가 기댈 수 있는 건 결국 그녀의 가족과 고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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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방황했던 청소년기를 거친 모든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특히 여성 관객은 특별할 건 없지만 스스로에게는 결코 가볍지 않았던 사춘기,마냥 밝지도 어둡지도 않던 그 시절의 성장통-그리고 현재의 삶을 살아가는 나로 성장시킬수 있었던 단계-를 돌이켜 보게 될 것이다.


[오유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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