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더 많은 <코코>가 필요하다 [영화]

글 입력 2018.11.07 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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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아웃>이후로 오랜만에 본 애니메이션 영화였다. 올해 초 <코코>는 국내에서 약 350만 명의 관객을 불러 모으며 흥행에 성공하였다. 영화의 리뷰에는 호평이 자자했다. 어떤 영화이기에 흔히 어린이들의 영화로 여겨지는 애니메이션 영화에 성인들이 더 열광하고 감동한 것인지 궁금했다. 영화를 보고 나니 <코코>는 다음과 같은 매력을 지니고 있는 영화였다.
 
<코코>는 영화관에서 보지 못한 것이 아쉬울 만큼 시각적으로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강렬한 색감이 돋보이는 영화의 그래픽은 어린아이뿐만 아니라 어른들의 시선을 사로잡기에도 충분하다. 영화의 OST 또한 매력적이다. 주제곡인 'Remember me'는 영화의 주제를 관통하는 동시에 아름다운 선율로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한다. 이에 멕시코의 ‘죽은 자들의 날’에서 착안한 사후세계에서 벌어지는 가족의 사랑을 주제로 한 스토리를 더하며 아이들에게 교훈과 감동을 전해주는 애니메이션 영화의 본분도 잊지 않는다. 이렇게 눈과 귀를 적절히 만족시켜주는 <코코>는 아이부터 성인까지 극장에 불러 모으기에 손색없었다.


코코 스틸컷.jpg
 

그러나 누군가가 영화를 보고 난 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난 화려한 그래픽이나 감동적인 OST도 아닌 ‘나 자신’이라고 답할 것이다. 다소 생뚱맞은 이 대답은 이 영화의 배경에서 비롯된다. <코코>는 멕시코를 배경으로 하여 멕시코 문화, 캐릭터, 언어로 내용을 그려낸다. 그동안 보기 드물었던 멕시코 배경의 영화에 나는 아이가 낯을 가리듯 영화를 어색해했고 초반에는 약간의 거부감마저 느꼈다. 물론 유색인종을 주인공으로 하는 애니메이션 영화는 이것이 처음은 아니다. <공주와 개구리>, <모아나>와 같은 작품들이 이미 제작되었지만, 애니메이션 영화를 즐겨 보지 않는 터라 나에게 나와 같은 동양인을 제외한 유색인종이 등장하는 애니메이션 영화는 <코코>가 처음이었다. 그래서일까, 나는 너무나 당연히 <겨울왕국>의 엘사와 같이 매끈한 영어를 쓰는 백인 주인공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문득 한 기사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미국의 한 어린아이에 관한 기사였다.
 
어린 딸을 둔 브랜드 베너는 배변훈련을 무사히 마친 딸 소피아에게 축하 선물을 사주기 위해 마트에 갔다. 소피아는 한참 살펴본 후 의사 가운을 입은 ‘흑인 인형’을 골라 계산대로 갔다. 점원은 소피아를 본 후 다시 인형을 쳐다보며 "네가 원하는 인형이라고 확신할 수 있니? 꼬마야."라고 물었고 소피아는 “예.”라고 당당하게 말했다. 그러자 점원은 "그러나 이 인형은 너처럼 보이지 않아. 우리는 너와 더 비슷하게 보이는 다른 인형이 많이 있단다."라며 다른 인형을 고를 것을 권했다. 소피아는 이렇게 대답했다. "예, 그래요. 이 인형처럼 저도 같은 의사예요. 저는 예쁜 아가씨이고, 인형도 예쁜 아가씨예요. 인형의 예쁜 머리와 청진기를 보았나요?”베너는 점원의 말에 무척 화가 났지만, 소피아가 먼저 멋진 답변을 해주는 바람에 웃으며 넘어갔다. 베너는 다음과 같은 말로 마무리했다. “우리는 모두 소피아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피부, 머리카락, 눈의 색깔은 다양하고 아름답습니다.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아요.”
 
소피아가 대견했다. 동시에 어쩌면 나도 어린 시절에 소피아와 비슷한 일을 겪으며 자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점원이 소피아에게 피부색으로 사람을 구분해야 한다는 편견을 심어주려 한 것처럼 다양성이 결여된 주변 환경이 은연중에 편협한 사고를 심어준 것이 아닐까.



돌이켜보면 어린 시절부터 보았던 애니메이션 영화의 주인공들은 나와 같은 동양인이거나 백인이었다. (물론 동양인인 경우는 주로 한국 또는 일본애니메이션 영화였다.) 혹은 백인의 생김새를 한 동양인이거나. 어릴 때 가지고 놀던 인형도 별반 다르지 않다. 항상 머리를 빗겨주고 옷을 입혀주며 금이야 옥이야 아끼던 인형은 금발, 하얀 피부, 푸른 눈을 가진 몸매 좋은 완벽한 백인 인형이었다.
 
만약 내가 어릴 때 보던 애니메이션 영화에 다양한 인종의 주인공이 등장했다면 어땠을까? 만약 어린 시절 가지고 놀던 인형에 흑인 인형이 있었다면? 그렇다면 난 성인이 되어서 애니메이션 영화의 주인공이 백인이 아니라는 사실에 당황하지 않고 유연하게 받아들였을까? 만일이라는 가정이 자꾸만 머릿속을 맴돌았다.
 
최근에는 그래도 변화의 움직임을 보인다. 디즈니 픽사는 <모아나>와 내가 본 <코코>를, 마블은 <블랙 팬서>를 제작하며 다양한 인종과 문화를 반영하려 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부족하다. 너무 부족하다. 내가 겪은 낯섦을 지금 자라나는 아이들이 20년 후에 고스란히 느끼지 않기 위해서는 더 많은 다양성이 필요하다. 소피아와 같은 자라나는 아이들은 더 넓은 세상을 접할 권리가 있다.

 
[정지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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