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저널이 선정한 편집자 기획노트 Vol.9

편집자가 직접 들려주는 '기획노트'
글 입력 2018.11.08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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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저널이 선정한

편집자 기획노트 Vol.9



선정 및 정보 제공 - 출판저널



<출판저널>이 선정한 [편집자 기획노트]는 편집자가 직접 들려주는 '기획노트'를 통해 책의 기획 의도와 제작 후일담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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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와 용서

사상과제로서의 아시아

평화의 규칙

가난한 아이들의 선생님

내 친구 마르

너희는 꼭 서로 만났으면 좋갔다




분노와 용서




 

나는 왜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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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의 대한민국은 분노를 자극하는 사회다. 스트레스가 극도에 달한 이 사회에서 한국인들은 직장에서도, 전철이나 버스에서 잠깐 스쳐가는 사람을 상대로도, 온갖 분노를 느끼고 삭이고 때로는 폭력적인 방식으로 표출하며 살아간다.


사실 누스바움 교수의 《혐오에서 인류애로》라는 책을 출간한 내력이 있는 출판사인지라, 그 책의 번역자 강동혁이 누스바움의 또 다른 책을 소개해주었다. 2014년 옥스퍼드대학교에서 진행된 ‘존 로크 강좌’의 강의록을 기반으로 2016년에 출간된 책이 있다고. 그것도 제목이 무려 ‘분노’와 ‘용서’였다. 생각해보라. 2016년에 우리가 얼마나 ‘분노’할 일이 많았는지…. 당연히 계약과정은 순조로웠다.


강의를 기반으로 하였으니 조근조근 이야기한다지만, 법철학자답게 묵직한 주제와 개념을 전방위적으로 풀어간다. 그러니 잠깐 집중력을 잃고 한 템포를 놓치는 순간 친절한 강의는 개뿔, 카오스의 세계를 만날 것이다. 그러니 이 자리에서는 내가 교정을 보다가 피식 웃었던 내용을 인용하는 데에서 그치기로 한다.


만약 당신이 이 글을 읽다가 누군가를 떠올렸다면 나랑 통한 거다.


“정치를 보면, 보통 욱하는 성질이 있는 정치인은 머잖아 곤란을 겪게 되지만 프랭클린 델러노 루스벨트, 빌 클린턴, 로널드 레이건 등 밝고 침착한 유형은 훨씬 더 오래 버팁니다. 성질을 터뜨리는 버릇이 있는 사람들이 최상류층에서 발견되는 사회는 보통 민주주의 사회가 아닙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그런 일이 일어나더라도 문제의 인물이 상당히 빠른 시간 안에 제거됩니다.”


덧 1.

김영란 전 대법관에게 추천사를 부탁한 건 작년의 일이다. 출간 시기를 조율하면서, 출판사 내부에서도 이런저런 논의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반년 이상 출간 시기를 고민한 점, 이해해주시길. 사실 세상이 참 시끄러웠다. 촛불에 탄핵, 그리고 남북정상회담까지… 당장 출간할 것처럼 호들갑을 떨다가 재판 일정에 맞춰보겠답시고(쿨럭!) 또 미루고 하면서 김영란 전 대법관에게 큰 빚을 졌다.(그럼에도 너그럽게 다시 추천사를 써주신 점, 감사드린다.) 분량 때문에 책 뒤표지에 실리지 못한 김영란 전 대법관의 생략된 추천사 글은 다음과 같다.


“김수영 시인이 어느 날 고궁을 나서면서 붙잡혀간 소설가, 언론의 자유나 월남파병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못하면서, 설렁탕집 주인이나 이발장이, 동사무소 직원에게만 화를 내는 자신의 옹졸함에 대해 개탄한 시를 떠올려본다.”


여기서 나오는 김수영 시인의 시는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이다. 이 시의 첫 구절은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이다.


덧 2.

그러고 보니 진짜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 걸까?


박윤선 뿌리와이파리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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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과제로서의 아시아




 

지知의 연쇄, 혹은 ‘대동아공영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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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약 18년 전, 이 책의 저자인 야마무로 신이치는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책을 시작했다. “아시아란 무엇인가? 그것은 무엇이었는가?” 그러나 2018년, 한국에서 이 책을 집게될 독자들이 내심으로라도 묻고 싶은 것은 아마도 이러한 내용일 것이다. “‘아시아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무엇인가? 일본인은 그 질문을 어떻게 묻고, 대답하는가? 우리는 그 문답을 어떻게 읽을 수 있겠는가?” 독자에게 해답이 아닌 문제를 내어놓는 책이 문제작이라고 한다면,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문제작’이라 할 만하다.


《사상과제로서의 아시아》는 저자가 밝히듯 아시아에 대한 연구인 동시에 일본의 ‘자기인식사史’에 대한 탐구이다. 근대, ‘서양’과 대립되는 의미에서의 ‘동양’ 곧 ‘아시아’란 무엇이었으며 무엇이 되어야 했는가? 다른 어떤 국가보다도 이러한 질문과 먼저 대면해야 했던 일본은 그에 대답하기 위해 아시아의 형태를 그리며 자연스레 일본 자신을 그 중심에 놓았다. 이른바 ‘대동아공영권’의 초안이다.


이 책은 일본 국민이 아시아를 매개로 어떠한 사상을 전개했는가를 근대 국민국가 형성의 관점에서 살펴본 것이다. 근대사는 국민국가의 형성사이며 역사와 사상의 주체는 국민이고, 그 주체인 국민은 일국의 문제로만 사상을 전개한 것이 아니라 이웃나라, 나아가 아시아와 세계와의 관계 속에서 역사와 사상을 전개했다는 것이 이 책의 전제이다. 그 전제에 동의 할지 그렇지 않을지에 대해서는 많은 의견이 있겠지만 적어도 방대한 자료와 그것을 일정한 방법론으로 엮어내는 솜씨 만큼은 이 책의 커다란 미덕이다. 수많은 문서들, 일본 문부성의 공식 기록부터 유학생 명단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종류의 자료를 망라하며 저자는 일본에서 ‘지知’가 형성되던 시기를 그려낸다. 당연하지만, 그 속에는 ‘맹주’ 일본과 함께 식민지 조선이 있다. 비록 같은 아시아라는 지도 위에 있다 한들 ‘아시아가 무엇이었는가’에 대한 대답은 결코 제국 일본과 조선이 같을 수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아시아란 무엇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대답 역시 일본과 대한민국이 같지는 않다.


뿐만 아니라 이 책의 번역이 처음기획되었던 15년 전과 지금 대한민국은 또 다른 국면을 맞고 있다. 누군가는 이 책이 단순한 ‘문제작’이 아닌 ‘오답’이라고 말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감히 말하건대 역사에, 사상에 ‘오답’이란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여기 우리가 아직 풀지 못한 질문-20세기의 ‘아시아’란 무엇인가, 제국 일본은 무엇인가, 개화란 무엇인가, 문명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하나의 해석을 제시한다. 2001년, 일본인 학자가 읽어냈던 해석이다. 이 해석을 또한 어떻게 읽어낼 것인지의 몫을 독자의 몫으로 남기며 새로이 이어질 사상의 흐름을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린다.


장혜정 소명출판 기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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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규칙




 

신생 출판사의 무모한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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훗날 역사책은 2017년을 ‘한국전쟁 종전 이후 한반도에 가장 치명적인 전쟁 위기가 조성된 해’라고 기록할 수도 있겠다. 이전에도 한반도 전쟁 위기가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2017년 상황은 재래식 군사력을 넘어 핵무기가 사용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질적인 차이가 있다. 북한과 미국 두 나라 정상은 거리낌없이 상대방을 ‘늙다리 미치광이’, ‘로켓맨’이라고 비난했고, 서로 핵 버튼을 거론하며 공공연하게 위협을 가했다.


《평화의 규칙》은 바틀비의 랜드 마크 도서로 삼기 위해 출판사 신고필증을 받자마자 가장 먼저 기획에 착수한 책이다. 민족 전체의 생존이 걸린 위기에도 불구하고 한반도 상황을 제대로 진단하고 평화를 모색하는 신간이 없다는 점에서 출판사의 첫 번째 미션으로 삼은 것이다.


사안이 각별한 만큼 한반도 문제의 국내 최고 권위자를 찾기 시작했다. 남북 관계 전문 언론 ‘통일뉴스’에서 18년간 북한 방문 취재만 20회 이상 경험한 김치관 편집국장, 대통령 외교안보 특보로 해외 언론이 한반도 이슈가 나올 때마다 인터뷰 1순위로 꼽는 문정인 연세대학교 교수, 남북 및 국제 정치 전문가로 국회에 입성한 홍익표 의원을 차례로 섭외했다. 돌이켜보면 이런 전문가들이 아직 책 한 권도 내지 않은 신생 출판사의 제안에 적극 응해준 것이 놀랍고 고마울 따름이다.


저자 대담은 2017년 12월부터 2018년 2월까지 7차례 진행되었고 3월 하순에 책으로 묶어낼 예정이었다. 그런데 대담을 진행하는 사이,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남북 관계가 급속도로 풀리기 시작했고 3월 27일 남북 정상회담, 6월 12일 북미 정상회담 일정까지 잡혔다. 역사적인 이들 정상회담 내용까지 담아 책을 내자고 의견이 모아졌고 출간 일정은 6월말로 연기되었다. 두 차례 추가 대담을 더 진행하고 결과적으로 편집 과정도 손이 많이 갔다.


책을 내고 ‘평화의 규칙’이란 제목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았다. 한마디로 말해서 ‘우리는 평화를 어떻게 준비할 수 있는가’란 뜻이다. 지금까지 익숙했던 관점은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준비하라’는 패러다임이다. 4세기 로마의 정치전략가 플라비우스 베게티우스(Flavius Vegetius Renatus)가 남긴 말이다. 한민족은 이 낡은 관점의 대표적 희생자였다. 남북은 평화를 위한 다면서 서로 전쟁을 대비하느라 등이 휘었고 급기야 핵전쟁 위기까지 봉착했다. 베게티우스의 금언은 그럴듯하지만 사실은 평화를 담보하는 방식이 아니었다. 저자들은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다. ‘평화를 원하거든 평화를 준비하라’는 것이다. 북한을 올림픽에 초청하자 북은 정상회담 제의로 화답했다. 북한이 풍계리 핵실험장을 폐기하자 미국은 한미 연합군사훈련 중단 의사를 밝혔다. 불과 한해 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놀라운 변화가 실질적인 평화를 가져오고 있다. 우리 민족이 어떻게 평화의 길을 밟을 수 있는지 이 책은 한반도의 과거와 현재, 주변 4대강국의 목표와 전략을 차근차근 분석하며 설명한다. 시민들이 읽고 평화의 길에 나설 수 있게 하자는 것이 책의 목표였다.


책을 읽은 한 고등학교 사회과 교사는 “변화된 남북 관계를 어디에 중심을 두고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할지 막막했는데, 이 책은 새로운 남북 관계의 교과서나 다름없다”고 평가했다. 기획편집자로서 지난 9개월여의 노고를 말끔히 잊어도 좋을 만한 큰 격려였다.


정희용 도서출판 바틀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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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아이들의 선생님




 

사랑을 실천했던 신부님의 숲속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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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책이 편집자의 눈을 사로잡은 건 먼저 리얼리즘 양식의 판화를 연상시키는 그림입니다. 마치 흑백 영화를 보듯 어둡고 강렬한 그림의 첫인상과는 달리 책을 들여다볼수록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따뜻하게 보살피는 작가의 시선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이들의 표정이나 몸짓만 봐도 그들이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생생하게 전해질 만큼 그림과 글은 그렇게 서로 잘 어우러졌습니다.


거친 흑백의 선과 면으로 인물들의 내면을 섬세하게 표현한 시모네 마씨는 이탈리아 애니메이션계의 거장이자 세계적인 일러스트레이터로 200여 번의 수상 경력이 있습니다. 또 글을 쓴 파브리치오 실레이는 인종차별주의와 파시즘, 인권 운동 등과 같은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은 아동문학가로 2012년 이탈리아 최고의 아동문학상인 안데르센상과 2014년 어린이문학 최고 작가상을 수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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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책은 로렌초 밀라니 신부님의 교육과정에 참여했던 한 학생의 성장 이야기입니다. 로렌초 밀라니 신부는 1923년 5월 27일 이탈리아 피렌체의 명문가에서 태어났습니다. 신학 대학교에서 사제 서품을 받은 후 산 도나 교구로 부임한 밀라니 신부는 그곳에서 가난한 농민과 노동자 자녀들을 위해 야학교를 운영하던 돈 다니엘레 푸지 신부를 도와 같이 일합니다. 1954년 다니엘레 푸지 신부가 세상을 뜨자 로렌초 밀라니 신부는 전기와 수도도 들어오지 않는 오지 마을인 바르비아나 교구로 가서 6명의 학생들을 데리고 세상에서 지금껏 본 적 없는 새로운 학교를 시작합니다.


밀라니 신부의 산속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토론에 참여하고 스스로 생각하고 문제를 해결하도록 이끌었습니다. 밀라니 신부는 아이들과 신문을 함께 읽으면서 세계에서 일어나는 사건에 관심을 갖게 하고, 아이들도 이 세상의 일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했습니다. 이런 산 교육을 통해 아이들은 사회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갖는 동시에 책임감도 갖게 되었습니다. 함께 읽고, 함께 생각하고, 함께 글쓰는 교육을 중시했던 밀라니 신부는 빈곤층 청소년들이 교육 현장에서 내쫓기는 현실에 맞서 온몸으로 사랑, 정의, 평등 정신을 실천했던 교육자였습니다.


그래서 이 그림책을 보는 내내 이런 질문들이 떠올랐습니다.


우리 사회는 아이들을 주체적인 인간으로 교육하고 있는가? 정의와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으로 키우고 있는가? 비판적 시각을 갖도록 장려하는가? 가난이나 장애를 이유로 교육 현장에서 소외시키고 있지는 않는가?


정경임 지양사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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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 마르




 

마르와 같은 마음을 가질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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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2월 인성교육진흥법이 국회를 통과, 이듬 해 7월부터 시행됐다.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정부에서 인성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했다는 것에 대해 그나마 다행이다.


이 법이 시행되자 인성에 관한 동화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이 책 역시 학이사에서 ‘학이사어린이’라는 임프린트를 만들고 기획한 그림 인성동화 3권 중의 하나였다. 협동, 소통, 배려, 우정, 효도 등 모든 덕목이 중요하지만 소통, 협동, 효도 세 부문만 우선 선정 해 이 그림동화를 엮게 됐다.


살아가는데 필요한 인성의 덕목은 여러 가지다. 그래서 이 책은 기획 단계부터 어린이들은 물론 어른들이 함께 읽을 수 있는 차별화된 인성동화로 만들기로 했다. 그래서 마르라는 친근한 캐릭터를 만들고, 잘 알려진 설화에서 모티브를 차용하는 방식으로 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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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는 「마르와 박각시 나방」, 「마르와 소리 나는 책」, 「마르와 황금빛 종소리」 등 세 편의 동화로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원래는 네 편으로 구성하려고 했다. 그런데 삽화를 그리던 화가가 마지막 작품의 그림을 그리던 중 아버지의 병간호차 고향으로 내려가게 되었다. 결국 미룰 수가 없어 결국 한 편을 빼기로 하고 세 편으로 편집에 들어갔다.


나무 인형인 주인공인 ‘마르’는 만들다 말고 버려져 눈, 코, 입, 꼬리, 갈퀴도 제대로 없는 외로운 존재이다. 비록 미완성이지만 누군가가 힘들어할 때 망설이지 않고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가슴이 따뜻한 캐릭터다.


주황색 노을을 배경으로 박각시 나방과의 ‘소통’을 그린 이야기 「마르와 박각시 나방」은 다른 친구들과 나의 서로 다름을 이해하게 하고, 「마르와 소리 나는 책」은 ‘김수로왕 설화’에 상상력을 보태 마르의 활약을 그렸다. 이 이야기로 김수로왕 탄생 설화가 나타나게 된 또 다른 가설이 생긴 셈이다. 「마르와 황금빛 종소리」는 손순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하고 있다. 마르가 할아버지 귀리과자를 몰래 훔쳐 먹다가 종소리에 실려 낯선 곳에 도착했다. 이내 할머니 밥을 뺏어 먹었다고 아이를 묻으려는 손순을 발견한다. 용감하게 나서서 아이를 구하고 임금으로부터 후한 상을 받게 된다는 내용이다.


이야기의 주인공과 마르가 함께 활약하는 그림 동화다 보니 이미 내용을 알고 있던 독자에게도 새롭게 읽힐 것이라 확신했다.


조상들의 효의 방식과 자라는 아이들이 생각하는 효에 대해서 깊이 생각했다. 아이들이 동화를 읽으면서 마르의 측은지심이나 용기, 역지사지 같은 마음을 가질 수 있다면 더 없이 좋겠다.


신호철 학이사어린이 매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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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꼭 서로 만났으면 좋갔다




 

춘하 씨가 그린 사랑하는 얼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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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과 함께 그림을 그리며 나눴던 이야기를 모아 첫 그림책 《쑥갓 꽃을 그렸어》를 낸 유춘하 할아버지가 이번에는 가족의 얼굴을 그렸다. 딸 유현미 작가는 아버지의 말을 모으고 골라 글을 쓰고, 나머지 그림을 그려 한 권의 그림책으로 엮었다.


할아버지가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건 딸네 집에 다니러 왔을 때다. 딸이 옆에서 “아버지, 그림 그려 볼까?” 하고 부추기면 할아버지는 마지못해 일어나서 앉는다. 그런데 막상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 이보다 즐거운 일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그림에 몰두한다. 옆에서 부추기는 딸과 귀찮아하면서도 딸의 말을 잘 들어주는 아버지. 이 부녀의 다정한 이야기가 그림책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아흔이 넘어서 돌아보니 할아버지 인생에서 가족들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가 없다. 할아버지는 정겨운 말로 가족들이 함께 살아온 시간을 표현하고, 강렬한 색감의 크레파스로 가족들의 얼굴을 색칠했다. 앞에 앉혀 놓고 얼굴을 보고 그린 것도 있고, 사진을 보고 그린 것도 있다.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며 그리다 보니 그 사람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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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사위는 ‘착한둥이’, 셋째 딸은 ‘우리 집 문제아’, 큰딸은 ‘신통하고 똘똘하고’ 하며 이야기하다가, 여전히 성미가 안 맞아 티격태격하는 아내를 ‘사랑하는 남례’라고 할지, ‘내 사랑하는 남례’라고 할지 고민한다. 쌍둥이 손주들이 부쩍 자란 모습에 깜짝 놀라고, 큰 병을 이겨 내고 씩씩하게 사는 손녀딸은 기특하고, 각자 자기의 자리에서 열심히 사는 자식들은 고맙고 든든하다. 할아버지는 한마디씩 툭툭 던지지만, 그 말은 식구들을 향한 할아버지의 따뜻한 사랑 고백이다.


힘들어서 그만둘까 하다가 ‘누구는 그리고 누구는 안 그리면 서운하지 않갔냐’ 싶어서 할아버지는 딸 셋과 아들, 사위와 며느리와 손주들까지 다 그렸다. 그리고 “이제 다 됐지?” 했지만, 할아버지가 그리지 않은 얼굴 하나가 남아 있었다.


전쟁 때 헤어진 딸내미 ‘숙녀’. 돌쟁이 때 본 게 마지막이라 아득해도 안 그릴 수가 없다. 살아 있으면 일흔 살 가까이 되었을 테지만, 다른 딸의 얼굴을 보고 상상을 더해 그려 본다. 딸이 살아 있을 거라고 믿으며 얼굴을 그리고 색칠을 하는 할아버지의 마음을 그 누가 짐작할 수 있을까. 어느 날 갑자기 헤어져서,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른 채,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지 기약하지 못하고 살아온 기나긴 세월이었다. 충분히 오래 살았다고, 언제라도 즐거이 떠날 수 있다고 말하는 할아버지에게 남은 바람이 있다면, 그건 황해도 고향 땅을 한번 밟아 보는 것이다. 그리고 딸 숙녀를 만나 미안하고 고맙다고 말하는 것이다.


역사적인 남북 정상 회담이 열리고 한반도에 평화의 바람이 불어오고 있다. 할아버지의 마지막 소원이 이루어지는 날은 언제쯤일까? 하루라도 빨리 할아버지의 소원이 이루어지면 좋겠다. 그래서 할아버지의 새로운 이야기를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조진령 낮은산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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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재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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