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지나갈 어느 날 [도서]

우연이라 부르고 싶은 김지원과의 만남, 지나가버리는 감정에 대한 아쉬움
글 입력 2018.11.09 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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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원

金知原


1942.11.10∼2013.1.30

소설가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 출생. 시인 김동환과 소설가 최정희 사이의 맏딸로 태어났으며 1965년 이화여대 영문과를 졸업했다. 1973년 미국 뉴욕으로 이민 갔으며 1975년 [현대문학]에 <사랑의 기쁨>과 <어떤 시작>이 황순원의 추천으로 발표되면서 문학 활동을 시작했다.




우연이라 부르고 싶은 김지원과의 만남


 

김지원의 작품들은 나에게 우연, 또 우연이다. 우연이란 그 인과관계가 없는 만큼 다른 말로 하자면 아무런 관계가 없는 두 일들을 엮어놓는 과정이다. 엮음은 오로지 행동자의 의미부여로 행해지며 이는 일종의 낭만적인 지어냄이라 생각한다. 동네에서 길거리를 가다 친한 친구를 만났을 때조차도 우리는 일상적으로 '우연'이라는 단어를 쓴다. 내가 이 장소를 걷고 있는 상황과 그가 동일한 장소를 걷고 있는 상황이 겹칠 경우는 따지고 보자면 그다지 희귀하진 않다. 같은 생활반경의 동네 주민, 비슷한 나이대의 한정된 방문 장소와 비슷한 생활 패턴 등을 생각하면 내가 구리의 큰 마트에서 저녁에 친구를 본다 한들, 충분히 자주 벌어질만한 상황이며 그와 나의 만남은 결코 '우연'으로만 치부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그를 보려 의도하지 않았을 때 본다는 상황은, 그리고 그가 더더욱 만났을 때 기쁜 사람이라는 사실은 '우연'이라는 낭만적인 단어를 부여하기에 충분하며 우리 사이의 만남에 한층 운명적이고 신비로운 무언가를 부여하기에 알맞은 단어이다.

다시 책으로 돌아가, 내가 김지원의 작품들을 우연으로 접했다고 말하는 것도 위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분명 내가 중고 책 서점에서 97년 이상 문학상을 고른 데에는 소비의 합리적인 이유가 있을 테며 미국을 다녀온 이야기도 한 달에 한 번은 꼭 꺼내니 그렇게 드물지 않고, 추석 때 추석 즈음의 이야기가 써진 작품을 읽은 것 또한 어떠한 선택과 그 이유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설명해 줄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상황을 논리적으로 설명하기보다, 너무나 마음에 들고 참 잘했다 싶은 상황을 가끔은 우연에 빗대어 그 신비로움과 낭만을 느끼고 싶을 때가 있다. 김지원의 작품은 그런 우연을 느끼고 싶은 연속이다.



 

김지원의 <지나갈 어느 날>을 읽고,

지나가버리는 감정에 대한 아쉬움과 미안함




..저녁에 땀 밴 옷을 입고 남편과 아이들은 싱싱해서 돌아왔다.


추석 달이 밝은 밤이 되었다.



지나갈 어느 날. 우리는 끊임없이 지나갈 어느 날, 어느 순간을 살아가고 있다. 순간은 현재라고 부를 수 없게 시시로 지나간다. 내가 음악을 듣고 있는 이 순간 또한 현재라고 보기에는(아주 엄격하게 따지자면) 어렵다. 시간은 항상 흘러가고 있는 직선적이고 유동성 있는 무엇이기에, 우리는 계속해서 지나간 순간의 잔상만을 떠올리곤 현재라고 착각한다. 마치 별똥별에 뒤돌아 타고 빛의 꼬리만을 보고 별똥별이 있구나 느낌과 같다.

지나가버린다는 말은 이처럼 당연함에도, 어쩐지 희망을 북돋아 주기도 하고 서글픈 애상을 자아내기도 한다. 그건 아마 인간의 삶이 한 가지 감정- 좋거나, 싫거나 만으로 채워지지 않기 때문이다. 좋은 시기가 가버린다는 사실에는 슬퍼지며 싫은 시기가 가버린다는 사실에는 희망차게 기뻐함이 자연스러운 마음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고 좌우명으로 삼는 말 중, '이 또한 지나가리라' 가 있다. 이 시기가 지나간다는 말은 너무 당연하기에 칼날같이 서있다. 어느 때, 어떤 감정을 가지던 항상 삶의 긴장을 놓치지 않고 행동하게 된다.

주인공은 스스로에게 이 날은 아직 때가 아니라고, 이 날도 지나갈 어느 날 뿐이라 말한다. 그러나 작품의 끝까지 주인공에게 안타까운 것은 아직은 시기가 아니라고 생각하며 하루 하루를 지나갈 날이라 생각하다 보면 어느 날, 그 시기-내가 찾던 그 때 그 날이 오더라도 정작 나의 마음은 그만 지나가버렸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지나가버린 날들뿐 아니라 나의 감정이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감정에 대해서 한없이 미안해진다. 시기를 핑계로 지나갈 날을 빌미로 감정을 털지 못한다면 그 누구보다 나 자신이 안타깝고 슬퍼진다.

어쩌면 김지원은 그런 감정의 무뎌짐 마저도 예상을 하고 글을 썼는지도 모르겠다. 어떤 말을 할 어느 날까지 기다림을 감내함이 아니라, 감정이 무뎌질 어느 날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말하고 싶었을 수도 있다. 무엇이던 답은 없다. 오로지 선택하는 사람의 몫이며, 어떤 선택이 누구에게나 좋은 결과 혹은 나쁜 결과만을 가져다 주지도 않는다. 하지만 언제나 선택의 기로에서, 감정의 휩쓸림에서, 무수한 순간들을 지나쳐오며 시간은 항상 흘러간다는 아주 당연하고도 중요한 사실을 잊지 않음은 중요하다. 시간은 감정을 기다려주지 않으며, 감정 또한 시간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 사이에서 무엇을 지나갈지는 오로지 나 자신의 선택이다.



[김지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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