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크지슈토프 보디츠코의 프로젝션 [시각예술]

글 입력 2018.11.11 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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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예술 활동을 펼치고 있는 크지슈토프 보디츠코(Krzysztof Wodiczko)의 수많은 작품 중, <티후아나 프로젝션>은 이틀에 걸쳐 돔 형태의 문화관 건물에 사회에서 고통받는 소수자들의 얼굴을 투사하며 그들의 이야기를 공론화시킨 작품이다.


이 작품에는 두 가지 흥미로운 점이 존재하는데, 첫 번째는 화면에서 ‘귀’와 ‘머리카락’이 보이지 않는 것, 두 번째로는 특이한 각도로 인해 ‘코’, 특히 ‘콧구멍’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는 것이다. 과연 보디츠코는 이러한 ‘숨김’과 ‘노출’을 통해 우리에게 무엇을 전달하고자 했을까?


  
Krzysztof Wodiczko, The Tijuana Projection (2001). Organized and commissioned by INSITE 2000, part of the project in the Border Art Festival of San Diego and Tijuana. Photo courtesy of Krzysztof Wodiczko.jpg
Krzysztof Wodiczko, The Tijuana Projection (2001).
Organized and commissioned by INSITE 2000,
part of the project in the Border Art Festival of San Diego and Tijuana.
Photo courtesy of Krzysztof Wodiczko.



‘귀’와 ‘머리카락’이 없다는 것


사람의 귀는 제2의 지문이라고 여겨질 만큼 사람마다 그 모양새가 다르다. 아무리 세월이 흘러 얼굴이 변한다고 해도 귀의 크기, 귓불의 크기와 두께는 변하지 않기 때문에 여권 사진을 찍을 때 귀를 꼭 드러내고 찍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원선우, 조선일보, 2015.02.07)

머리카락 또한 마찬가지로 우리가 개인을 식별하는 근거로 사용될 수 있는데, 머리카락의 색, 결, 길이 등을 통해 우리는 한 사람의 얼굴을 보지 않고도 그 사람을 다른 사람과 구분 지을 수 있다. 즉, 귀와 머리카락은 각각의 개인이 갖고 있는 신체적인 ‘개성’이며, 우리는 머리카락과 귀를 숨기는 행위를 한 사람의 ‘개성’을 숨기는 행위로 간주할 수 있다. 그렇다면 ‘개성’을 숨긴다는 것은 또 무엇을 의미할까?

<티후아나 프로젝션>은 각종 폭력으로부터 고통받는 ‘소수자’들의 이야기를 기록한 작품이다. 오늘날의 사회에서 우리가 소수자들의 목소리를 들을 기회는 아주 적다. 그로 인해 우리는 우리 주변에 소수자가 있는 것조차 모르고 살아가는 경우가 다분하다. 따라서 작품에서 ‘귀’와 ‘머리카락’을 숨기고, 소수자와 우리를 구별 지을 수 있는 ‘개성’을 지움으로써, 보디츠코는 소수자를 더 이상 우리와 상관없는 ‘특정 개개인’이 아니라 우리와 닮은, 또 우리와 같은, 서로서로 비슷한 보편적인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내 고통받는 이들이 바로 우리의 곁에 있으며, 언제든지 우리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나타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콧구멍’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는 것


전통적으로 예술가는 가장 강조하고 싶은 것을 화면의 중앙에 위치시켜왔다. 즉, 대부분의 경우에 중앙에 있는 것은 가장 중요한 것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이 작품을 처음 보았을 때,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오는 것은 다름 아닌 중앙에 위치한 사람의 ‘콧구멍’이다. 사람의 눈, 손 또는 입술을 강조한 예술품은 아주 많다. 하지만 사람의 콧구멍을 이토록 강조한 작품을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보디츠코는 왜 눈도, 손도, 입술도 아닌 사람의 콧구멍을 강조했을까?

한 사람의 얼굴을 살펴볼 때, 우리가 가장 보기 힘들고, 대부분의 경우 볼 수조차 없는 부위가 바로 콧구멍이다. 대개의 경우,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콧구멍을 드러내는 것을 꺼리며, 콧구멍을 보이는 것을 수치스러워한다. 즉 콧구멍은 얼굴의 각 부위 중, 우리가 가장 숨기고 싶어 하는 부위이며 노출을 꺼리는 부위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콧구멍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는 것은, 치부를 드러내는 것과 동일시될 수 있으며, 상징적인 의미로 ‘숨겨왔던 비밀’을 공개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보디츠코는 ‘비밀’로 상징되는 ‘콧구멍’을 강조하고 노출함으로써, 우리가 평소 볼 수 없었던 소수자들의 숨겨진 고통을 대놓고 보여준 것이다. 다시 말해, 그는 소수자들이 상처를 감춰야만 살아갈 수 있는 사회에서, 그들의 비밀과 고통을 많은 사람이 지나가는 공공장소에 투사하여 공개하고, 외부적인 힘으로 인해 감춰졌던 소수자들의 고통을 우리가 보고, 느끼고, 반성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불쾌와 충격?


어찌 보면 엽기적이고 기괴한 <티후아나 프로젝션>은 감상자에게 일차적으로 시각적인 충격을 주고, 소리와 이야기를 통해 이차적으로 감정적인 충격을 가져다준다. 사람에 따라 이 기이한 형태의 작품이 주는 시각적인 불쾌함은 단점이 될 수도 있지만, 오히려 이러한 불쾌함이 작품을 더욱더 훌륭하게 만들 수도 있다. 왜냐하면 상처는 언제나, 또 누구에게나 불편한 것이고, 어떤 힘으로도 미화될 수 없고, 미화되어서도 안 되기 때문이다. 이 작품을 통해 우리는 비로소 소수자와 '나'를 구별 짓던 과거를 반성하게 되고, 그들을 나와 상관없는 ‘남’이 아니라, 나와 비슷한 모습을 공유하는 ‘우리’라고 재인식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또한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어쩌면 사회적, 정치적 요인으로 인해 표면적으로만 ‘행복하고 건강하게’ 유지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이면에는 드러나지 않는 많은 사람의 고통과 상처가 존재한다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한선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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