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섹슈얼리티라는 바다로의 제1 항해, 「멀리 갈 수 있는 배」 [도서]

무라타 사야타가 선사하는 성 관념에 대한 충격적 소견
글 입력 2018.11.12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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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섹슈얼리티(성별)'는 무한한 바다다. 최근에야 인간은 이 망망대해를 관찰하고, 연구하고, 비전을 찾기 시작했다. 그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나는 그것이 사회의 변혁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성(性)을 남성 / 여성의 두 가지로 생각한다. 이제서야 인간은 그 이분법에 의문을 던지기 시작한 것이다. "왜 여성은 '여자라는 성'으로 인해 고통받는가?"라는 질문은 절규로, 분노로, 슬픔으로 표현되어 '공감'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이 공감을 통해 이루어진 '연대'로 사람들은 모이고 모여 사회에 정중한 '변화'를 요청한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페미니즘 운동의 양상은 그렇게 진행되고 있다. 「멀리 갈 수 있는 배」는 이와 똑같이 "왜 여성은 '여자라는 성'으로 인해 고통받는가?"를 고민하지만, 최근의 베스트셀러들처럼 사회 운동을 장려하거나 페미니즘에 대해 친절히 알려주는 도서는 아니다. 기존의 방식과는 달리, 이 책은 독자가 개인의 차원에서 안으로, 더 깊게, 성 평등과 섹슈얼리티에 진입하고 탐구할 수 있게 만든다.


등장인물 리호, 츠바키, 치카코는 비교적 단순하게 설정된 인물이다. 또한 책은 현실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거나 분석하여 메시지를 던지지도 않는다. 그러나 그 단순한 설정은 오히려 소설의 주제를 명확하게 만들어주고, 작가는 이 단순한 이해관계들로 그렇게도 휘몰아치며 강렬한 장면들을 창조해낸다. 독자에게 순식간에 몰아치는 흡입력과 강렬한 경험을 선사할 수 있는 건 작가가 책의 주 소재로 '섹스'를 이용했기 때문이다. 확실히 섹스는 이 소설의 주제다.


왜 섹스인가? 우리가 성 평등을 논하는 데 있어서 섹스는 우리를 성별에 대한 근본적인 논쟁으로 이끌어줄 가장 중요한 소재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정작 우리에게 섹스에 대한 깊은 고찰과 논의는 부족했다. 그런 면에서 무라타 사야카는 이 시대를 주도적으로 만들어가려는 우리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을 놓치지 않도록 알려준 셈이다. 이 책은 섹스(성행위)를 통해 섹슈얼리티에 대한 근본적인 탐구를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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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리호가 성 정체성을 스스로 탐구하기로 마음먹은 결정적 계기는 "섹스가 고통스럽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만의 섹스'를 찾기로 한다. 당연한 수순이다. 그러나 츠바키는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보려는 리호를 곱게 바라보지 않는다. 츠바키에게 리호는 그저 자신이 '여성'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싫어서 떼쓰는 어린아이다. 그래서 리호에게 "넌 여자야."라고 말하며 그녀가 틀렸음을 단언한다. 개인에 대한 이해가 없는 차갑고 상식적인 말로 고정적인 성관념에 대한 진지한 접근을 무력하게 만드는 것이다. 츠바키는 다양성을 인정하지 못하는 보수적인 기성세대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하지만 이 통념을 재고하는 일이 결국에는 유의미하고 필연적인 일임을 우리는 소설을 통해 알 수 있다. 이는 츠바키의 '목주름'이라는 상징적 요소에서 나타난다. 시간이 흘러 늙고 주름지는 것은 그저 '진리'다. 그러나 츠바키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어한다. 이는 우리 사회의 고정적인 성관념이 얼마나 나약하고 실은 너무도 형편없는 논리적 토대로 이루어져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러나 희망은 역시 리호에게 있다. 리호가 욕정을 느끼는 것이 바로 츠바키의 목주름이다. 남자와도, 여자와도 섹스를 실패한 리호가 어떻게 그것에 욕정을 느끼는 걸까? 결국 리호가 원하는 것은 성별을 벗어던진, 오로지 그 육체 자체로서 서로 사랑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곳은 여자도 남자도 아닌 츠바키가 지금까지 살아온 증표가 스며들어 있는, 인간의 살갗이었다." 리호는 그 '목주름'에서 성관념으로부터 벗어난 츠바키라는 인간 자체를 찾아낸다. 한 가닥, 의문이 풀렸다. 리호가 인간 그대로 서로 사랑하는 단순한 행위가 불가능했던 것은, 스스로도 성이라는 기호 속에 갇혀있었기 때문이라고 그녀는 혼자 깨닫는다. 이게 바로 의식의 성장이다.


독자가 리호처럼 기존의 성관념을 타파하게끔 쉽게 이끌어주는 것은 치카코의 역할이다. 치카코라는 인물은 자신을 거대한 우주의 일부에 불과한 아주 작은 물체로 생각하는 우주적 세계관의 소유자다. 그러나 우주에 대한, 즉 전체에 대한 생각은 그녀를 완전히 집어삼키고 있어서, 그녀는 아예 인간세계에 속해 있다는 느낌을 받지 못한다. 치카코에게 사회와 그 속에서 필사적으로 살고 있는 인간들은 모두가 그저 소꿉놀이를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녀는 인간세계에서 완전히 떨어져 있고, 현상을 지켜볼 수만 있다. 그녀가 연결되어있다고 느끼는 것은 오로지 거대한 지구와 우주다. 이런 그녀를 잘 알지는 못하지만 리호는 그녀를 부러워한다. 그녀는 인간적 고통에서도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인간 초월적인 치카코는 리호의 고민을 전혀 이해할 수 없다. 왜 저리도 성별이란 구분에 고통스러워하는지, 그건 인간 사회에서 정해놓은 룰일뿐인데. 하는 거다. 즉, 독자는 치카코의 관점을 통해 쉽게 "성별을 굳이 구분해야 하나?"라는 생각에 도달할 수 있다. "여성과 남성을 굳이 구분해야 하나?"라는 진지한 질문을 독자의 머릿속에 만들어내는 것이야말로, 이 책이 위대하다는 증거다. 우리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성별'의 구분선을 무너뜨려버린다. 우리 사회의 오래된 기준이 무너져내리는 것은 두려운 일이지만, 이런 파괴적인 질문이 바로 철학의 시작이며 변화의 씨앗이 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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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호는 섹슈얼리티라는 바다로 출항하기 위해 독서실이라는 작은 배를 골랐지만, 그녀는 스스로 배에 탈 수조차 없었다. '아무도 타지 않는 노아의 방주'라고 츠바키는 말한다. 그러나 결국에 리호는 문제점을 알아내고야 만다. 스스로가 여전히 성관념에 갇혀있었음을 깨닫고야 만다. 그러자 그녀는 그동안 자신을 옥죄고 있었던 세계에서 살짝 떨어져 나와, 치카코의 세계 쪽으로 한 걸음, 내딛는다. 그러나 우리가 희망이라고 붙들 수 있는 인물은 바로 치카코가 아닌 리호다. 치카코는 고통에서 살짝 벗어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 즉, 아예 인간성을 상실해버렸기 때문에 그녀는 인간 미래의 본보기가 되지 못한다. 그에 반해 리호는, 철저히 인간적인 인물이다. 그녀는 인간이 삶 속에서 경험하는 희로애락을 필사적으로 겪어낸다. 그리고 온전히 자기 자신이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진실한 성장을 해낸다. 이제서야, 리호는 새로운 배를 찾아 정비하고 진짜 항해를 준비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옛날, 플라톤은 진리를 강구하는 방식으로서 '감각의 보고'에 의존하는 기존의 원칙을 버리고, '인식'이라는 새 방법을 찾아 이데아를 향한 '두 번째 항해'를 감행한다. 리호의 '두 번째 항해'가 시작된다면, 그것은 절대로 아무도 타지 않는 노아의 방주가 되진 않을 것이다. 그것은 분명히 미래사회의 새로운 비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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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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