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폭력성과 색 [영화]

<시계태엽오렌지>에서 색의 미장센이 폭력성을 나타내는 방법
글 입력 2018.11.13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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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리 큐브릭과 미장센


 

미장센은 영화에서, '카메라에 찍히는 모든 장면을 사전에 계획하고 밑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해석되며 '카메라가 특정 장면을 찍기 시작해서 멈추기까지 화면 속에 담기는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작업'이라고 정의된다. 즉, 화면 속에 담길 모든 조형적인 요소들을 고려해야 하는데, 세트, 인물이나 사물, 조명, 의상, 배열, 구도, 동선, 카메라의 각도와 움직임 등 화면을 구성하고 감독이 배치한 모든 것이 바로 이러한 미장센을 의미한다.


미장센은 단순히 한 화면, 한 장면에서 그치는 것이 아닌, 특정한 감독의 영화 연출 전반을 아우르는 개념이며 이는 곧 영화의 스타일과 디자인을 결정하는 아주 중요한 요소이다. 즉, 미장센은 영화의 형식일 뿐 아니라 내용 그 자체이기도 하다.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한 감독의 상상은 프레임 속에서 눈으로 볼 수 있는 실상으로 재현된다. 그렇기에 영화를 이야기할 때, 미장센을 빼놓고서 영화를 완전히 이해했다고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영화사에 있어 대단한 거장으로 거론되는 스탠리 큐브릭 또한 위와 같은 미장센을 아주 잘 구성함에 따라 걸작으로 불리는 영화들을 만든 감독이다. 완벽주의자로 불릴 만큼 영화에 있어서 높은 완성도를 추구한 그는, 창의적 촬영기법과 함께 화면 안의 모든 것은 의미부여의 결과일 정도로 세밀한 미장센을 가진 영화들을 만들었다. 그렇기에 큐브릭의 수많은 작품 중, 인간의 가장 날카로운 욕망인 폭력성을 담아낸 ‘시계태엽 오렌지’의 미장센은 어떻게 배치되었을지 궁금증을 느꼈다. ‘시계태엽 오렌지’ 안에는 수많은 미장센이 존재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게 본 ‘색’을 중점으로 미장센을 분석해보려 한다.



 

시계태엽오렌지



인간의 순수한 폭력성에 관해 이야기하는 <시계태엽 오렌지>는 보다 다채로운 색이 존재하는 영화이다. 먼저, 영화 전반에 걸쳐 등장하는 흰색과 검은색, 아주 다른 색깔로 보이는 대비된 두 색은 일반적으로는 완전히 반대되는 색상이다. 그러나 백과 흑은 '진실'한 반대 색깔인가? 백과 흑은 대치되나 그렇기에 또한 공존한다. 흰색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검은색도 존재할 수 없다. 회색에 대치되는 색깔이 없듯 말이다. 이는 검은색이 단순히 폭력의 소실, 폭력의 반대-즉 평화라는 간단한 답이 아님을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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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스의 ‘순수한’ 폭력성은 흰색으로 상징된다. 어떠한 이유도 없이, 본인의 쾌락만을 이유로 폭력 자체를 즐기는 알렉스의 욕망은 아주 순수하다. 그와 그의 패거리의 옷, 알렉스의 방, 코로바 밀크바의 마네킹과 곳곳에 서 있는 직원들의 옷은 온통 흰색이다. 그들 또한 순수한 폭력성을 즐기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자살 시도 후 억눌러졌던 폭력성을 되찾은 알렉스는 이전 교도소에서, 사회에서의 검은 제복을 벗고 온몸에 흰 붕대를 감고 있다. 알렉스의 순수한 폭력성이 흰색으로 대변됨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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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색의 순수한 폭력성은 병원의 의사들에게서도 나타난다. 그들은 모두 흰색 가운을 입고 있다. 이들이 무슨 폭력성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의문이 생길 수도 있으나, 결국 그들 또한 알렉스의 자유의지를 실험으로 제거하며 인간의 존재 이유 중 하나인 자유의지를 오로지 인간을 교화시키겠다는 신념을 통해 앗는 폭력성을 영화에서 보인다. 알렉스의 폭력성을 제거하기 위해 사용된 또 다른 순수한 폭력의 형태이다.



 

시계태엽오렌지, 폭력성, 색


 


우리 본성의 어두운 면, 그림자를 인식하고 나서야 우리는 세계의 실로 부당한 것들에 대해 어떠한 일들을 하는데 착수 할 것이다.

 

- 스탠리 큐브릭


 

과연 인간의 욕망이란 무엇인가? 욕망은, 그 어떤 인간에게나 나타나지만, 또한 그 누구에게나 억압되는 본성이기도 하다. 이 욕망에 대한 이해 없이는 인간을 논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결국 인간은 원하는 욕망을 이루는 자유의지가 있는, 그렇기에 끊임없이 주체적인 행동을 하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 대해, 스탠리 큐브릭은 끊임없이 영화에 - 다소 염세적이고 기괴하다는 비판을 받으나 - 욕망과 관련한 자신의 가치관을 담아내었다. 그의 가치관이 반드시 정답이라 이를 수는 없다. 그리고 그의 가치관을 반드시 수용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그의 가치관을 영화를 통해 접하고, 비판적으로 수용하며, 욕망의 존재에 대해 눈 돌리지 않고 바로 마주해 논의하는 순간 우리는 인간에 대해 좀 더 넓은 시각으로 관찰할 수 있다.



[김지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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