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무너진 콜로세움을 상상하다 [여행]

글 입력 2018.11.13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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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18 / StoneHenge, Salisbury, UK)


나는 여행을 할 때 항상 유적을 찾는 편이다. 나에게 여행이란 새로운 장소에서 처음 보는 사람들과 색다른 음식을 즐기는, 일상에서의 일탈이라 할 수 있다. 대체로 그곳의 역사가 그대로 남겨진 유적을 찾을 때 그 일탈감은 최고조에 달한다. 특히 해외에서는 그 의미가 더욱 남다르다.

어렸을 때부터 역사를 좋아했다. 몇 년 전에도 뉴스가 소설보다 재미있던 시기가 있었듯 수천 년의 인류역사 속에는 그보다도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넘치기 때문이다. 9와 4분의 3 승강장에서 호그와트 급행열차를 타는 상상을 해보라. 유적을 찾는다는 것도 다를 바 없다. 이야기의 숨결을 직접 느낄 수 있는 매력이 그곳엔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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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04 / Hampi, In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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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16 / Ajanta, Aurangabad, India)


로마를 여행하던 때였다. 기대하던 콜로세움 앞에 도착했을 때 원형 경기장 3분의 1 가량을 차지하는 거대한 철근구조물이 나를 맞이했다. 2천년 가까이 자리를 지켰기에 자연스러운 풍화를 피할 수 없었을 테고 이 때문에 보수작업을 하고 있던 것이었다. 흉물스러운 구조물을 요리조리 피해가며 사진을 찍다 문득 아쉬움이 들었다. 나는 2천 년 전에 건설된 콜로세움을 보러 왔지 현대기술의 도움을 받은 콜로세움을 보러 온 것이 아니었다.

"금이 가면 금이 가는 대로, 무너지면 무너지는 대로 두면 안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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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25 / Athene, Greece)


캄보디아 씨엠립에는 수많은 앙코르유적이 있다. 그중 가장 유명한 앙코르와트는 곧 무너질지도 모르니 한시라도 빨리 와서 보라는 명성에 걸맞게 상당한 보수작업이 진행 중이었다. 수많은 관광객과 구조물에 둘러싸인 사원은 나에게 어떤 감흥도 주지 못했다. 오히려 외곽 인적 드문 이름없는 작은 유적에서 과거 프랑스 탐험가가 느꼈던 신비감을 체험할 수 있었다. 그곳의 유물들은 성한 데 없이 여기저기 굴러다니고 있었고 기둥은 기울었으며 벽은 무너져 절반도 채 남아있지 않았다. 현지인으로 보이는 어린아이들이 술래잡기를 하고 있었고 한 여행객은 평평한 돌 위에 누워 책을 보고 있었다. 그 자연스러움이 너무나 좋았다.

콜로세움을 뒤로하고 팔라티노 언덕에 올랐다. 로물루스가 로마를 세웠다는 이곳엔 남아있는 것이 많지 않았다. 무성히 자란 풀 위에 덩그러니 남아있는 로마의 잔해들이 나를 반겼다. 한쪽에선 잔햇더미 위에 걸터앉아 이야기 나누는 연인이 있었고, 다른 한쪽에는 이곳의 지난 영광을 스케치하는 한 무리가 보였다. 나는 때맞춰 불어온 시원한 바람과 함께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기분을 만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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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18 / Roma, Italy)


보존, 보수 그리고 복원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보존에 대해서는 마땅히 동의한다. 관광객의 입장을 제한한다거나 온도 및 습도를 조절하는 방법 등으로 유적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가능한 한 오래 지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보수와 복원은 다르다. 유구한 시간의 유산에 직접적인 손을 가한다는 것은 역사적 맥을 끊는 듯했다. 날 것의 유적만이 온전한 역사적 가치를 지닌다고 보았다.


테세우스와 아테네의 젊은이들이 탄 배는 서른 개의 노가 달려 있었고, 아테네인들에 의해 데메트리오스 팔레레우스의 시대까지 유지 보수되었다. 부식된 헌 널빤지를 뜯어내고 튼튼한 새 목재를 덧대어 붙이기를 거듭하니, 이 배는 철학자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자라는 것들에 대한 논리학적 질문’의 살아있는 예가 되었는데, 어떤 이들은 배가 그대로 남았다고 여기고, 어떤 이들은 배가 다른 것이 되었다고 주장하였다.

- 플루타르코스


하지만 이런 보수, 복원작업을 안 좋게만 바라보지는 않는다. 유적에는 크게 세 가지 가치가 있다. 첫 번째는 역사적 가치이다. 나는 보수, 복원을 거친 유적의 역사적 가치는 상당한 훼손을 받는다고 생각하지만 2000년 전부터 논쟁이 된 테세우스의 배 역설에서도 드러나듯, 답은 정해져 있지 않다.

두 번째는 경제적 가치이다. 소위 조상 덕을 보았다고 부르는 대표적인 나라로 이탈리아와 그리스가 있다. 이들의 관광수입은 상당한 수준이다. 실제 캄보디아의 경우 앙코르와트에 관련된 수입만으로 국가 전체 GDP의 15%를 차지하는 정도이다. 그들에게 유적의 보수작업은 말할 필요 없는 당연한 일이다.

마지막은 예술적 가치이다. 나는 타지마할을 보았을 때 처음으로 보수작업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마침 네 개의 첨탑 중 하나가 철근 구조물에 둘러싸여 있었다) 이른 아침 옅은 안개 사이로 만난 타지마할은 지금껏 보아온 그 어떤 건축물보다도 신비롭고 아름다웠다. 그건 반드시 지켜야만 할 아름다운 예술작품이었다.

이렇듯 다양한 이유로 과거의 유적, 문화재들은 붕괴의 운명을 유예받고 있다. 무너진 콜로세움과 안간힘을 써가며 버티는 콜로세움을 상상해보았다. 어느 것이 바람직하다고 확언할 순 없으나, 한 가지 확실한 건 어찌 됐건 그곳이 가진 서사는 동일하다는 것이다. 나는 역사의 이야기를 들으러 내일도 유적을 찾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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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27 / Taj Mahal, Agra, India)




[정영동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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