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감정과 이성의 딜레마 속에서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영화]

글 입력 2018.11.13 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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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가르 파르하디 감독의 영화 <세일즈맨>은 자본주의 사회 속 한 외판원의 파국을 다루는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과 상당 부분에서 닮아있다.


연극 제목에서 따온 영화의 제목 ‘세일즈맨’은 물론, 영화 속 주인공들은 실제 <세일즈맨의 죽음>을 연기하는 극단에 속해 있으며 영화도 연극의 내용과 형식의 흐름을 교차하며 전개되고, 한 인물이 무너져가는 것을 그리는 스토리 또한 유사하다. 한 마디로 영화 <세일즈맨>은 보수적인 이란 사회 속에서의 ‘세일즈맨의 죽음’을 다루고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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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앞으로의 비극을 예고하는 외적, 내적의 ‘균열’로 시작한다. 옆집 공사로 인해 주인공 부부 에마드와 라나의 집은 무너지고, 그들은 동료가 추천해 준 새 집으로 이사한다. 그곳에는 전 세입자였던 한 여자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다. 에마드가 집을 비운 사이, 라나는 이로 인해 예기치 못한 사고를 당하게 되고, 이는 부부의 마음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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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나는 수치심으로 신고를 하지 못하고 결국 부부는 사건을 잊고자 한다. 그러나 트라우마로 인해 사건 현장이었던 욕실을 이용하지 못하고, 범인이 남긴 돈으로 모르고 음식을 먹는 실수를 하는 등 이미 사건의 영향력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 있다. 더 이상 이전으로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화가 난 에마드의 분노의 화살은 범인에 대한 복수로 향하고, 혼자 힘으로 범인을 추적한다.


그러나 생각지 못한 곳에서 마침내 마주한 범인의 모습은 매우 초라한 노인이다. 에마드는 생각했던 것과 다른 범인을 보고 잠시 당황하지만, 일단 인질로 삼고 가족들과 라나를 한 곳에 불러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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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모두 모인 장소는 부부가 예전에 거주하던 바로 그 ‘무너져가는’ 건물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가족들까지 이곳에 도착했을 때, 에마드는 복수심으로 가족들에게 범인의 범행사실을 모두 폭로하겠노라하지만 범인은 한없이 초라하고 약한 모습으로 제발 그러지 말아달라며 간청한다. 설상가상으로 공황장애에 호흡곤란 증세까지 오고, 피해자인 라나마저 에마드에게 복수를 그만둘 것을 부탁한다. 복수와 용서 사이에서 에마드는 갈등하고, 결국 범인의 얼굴을 한 대 치는 것으로 그만 둔다.


그러나 범인은 충격으로 갑작스럽게 죽어버리고, 부부의 삶 또한 망가져 버렸음을 암시하는 엔딩장면(연극이 끝난 후 무표정한 모습으로 분장을 지우는 부부의 얼굴 클로즈업)으로 영화는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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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의 ‘세일즈맨’을 연기하는 에마드는 영화의 ‘세일즈맨’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 초반에서 그는 건물이 무너져 가는 상황에서 동료를 업어 나르고 학생들의 존경을 받는 선생이며, 여자로부터 억울한 누명을 당할 때에는 오히려 사과하는 남자로 그려진다. 그러나 ‘사건’ 이후, 원망으로 동료를 탓하고, 학생들의 장난에 화를 참지 못하며 피해자인 부인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답답해하며 화를 낸다. 결국 조절하지 못한 분노의 복수는 부부의 삶을 더 이상 돌이킬 수 없게 무너뜨려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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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몇 가지 의문이 든다.


첫째, 도대체 왜 이들은 경찰에 신고하지 않은 것일까? 영화의 배경은 이란이다. 우리나라조차 성폭행 신고율은 여전히 낮은데, 히잡을 쓰고 다니는 이란 여자가 신고했을 때 이웃과 동료들의 수근거림을 도저히 견딜 자신이 없었을 것이다.


둘째, 그렇다면 에마드가 범인을 용서하고 그냥 보내주는 것이 옳은 선택이었을까? 이 질문이 바로 감독 아쉬가르 파라하디가 영화를 통해 관객들에게 묻고자 하는 것이었을 것이다. 에마드가 범인의 모습을 보고 불쌍해서 그냥 보내줬다면? 부부는 예전처럼 살 수 있었을까? 영화 속 범인의 모습을 보면, 동정심이 생길 지경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내가, 내 주변인이 그런 끔찍한 일을 당했을 때, 나라면 그를 불쌍하다는 이유로 용서해 줄 수 있을까. 오히려 한 대 치는 것으로 끝낸 에마드가 성인군자처럼 보이지는 않을까.


셋째, 이 모든 비극의 시작은 어디부터 잘못된 것일까? 라나를 집에 홀로 보낸 에마드? 의심 없이 문을 열어 준 라나? 물건을 두고 간 전 세입자? 옛 집을 무너뜨리게 만든 옆 건물의 공사? 사고를 신고 할 수 없게 만드는 이란의 사회적 분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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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OST가 흘러나오는 동안, 이 질문들에 대한 해답을 고민해보았다. 답은 ‘당신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를 질문한 감독의 의도에 따라, 관객들 각자가 이를 생각해보고 고민해보는 것 자체인 듯하다. 정해진 해답은 없으며, 내 생각을 정리해보는 시간을 가진다면, 그것만으로도 이 영화에 시간을 투자한 데에 대한 가치가 분명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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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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