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가장 우세한 감각은 촉각이어야 한다. [문화전반]

글 입력 2018.11.14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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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미디어 붐이 불기 시작하고 유튜브에 다양한 채널들이 생겨날 때, 유독 눈에 띄던 콘텐츠가 있었다. 흐물흐물하고 끈적거리며 손에 찰싹 달라붙는 것. 바로 ‘액체괴물(슬라임)콘텐츠였다. 액체괴물 콘텐츠는 ‘무민콘텐츠’라고 불린다. 아무런 의미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저 액체괴물을 만들거나, 액체괴물을 만지작거리는 것뿐이었다. 그래서인지 콘텐츠의 주를 이루는 것은 다양한 재료로 액체괴물을 만드는 영상이나 ASMR(자율감각 쾌락반응)영상이었다. 그럼에도 액체괴물콘텐츠는 어린이부터 성인까지 큰 인기를 끌었다. 이제는 인터넷, 플리마켓, 문방구 등 어디서나 다양한 액체괴물을 쉽게 구할 수 있다. 내가 주목한 것은 여기에 있었다. 사람들이 액체괴물에 빠진 것. 그리고 그 액체괴물은 그저 ‘촉각’만이 중시되는 무정형의, 무균형의 물질이라는 것이었다. 직접 맨손으로 주물럭거리는 것밖에 요구되지 않음에도, 그 자체가 목적이라는 것이 내가 중요하게 여겨왔던 일련의 사고들과 맞닿아 있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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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 느낌, 신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은근하게 멸시가 되어왔던 것들이다. 이러한 것들은 객관성, 지성, 이성 아래에 부차적인 것들로 쉽게 치부되어왔었다. 거쳐왔던 교육의 과정들만 보더라도, 정적인 자세로 책상에 앉아 수많은 지식들을 그저 눈으로만 보고, 귀로만 듣는 데에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왔다. 더하여 나의 모든 사고와 활동은 너무나 쉽게 숫자화되어 하나의 결과로만 나타났다. 그에 따라 무엇이든지 이성적인 사고에 의해 의미가 있는 것이 가치가 있는 것이 되어버렸고, 단순히 정서에 의해 움직이면 비합리적이며 자칫 이기적인 행동으로까지 여겨졌다. 점차 판단하고 정의 내리는 것에 몰두하기 시작했으며, 모든 사람들이 ‘00은~한 사람이다. 그러므로 ~한 행동을 해야 한다’라는 명제 아래에 고정되기 시작했다. 나조차도 말이다.


그러나 인간은 무엇보다도 몸의 존재이다. 애슐리 몬터규의 ‘터칭’에 따르면, 촉각은 인간 배아에서 가장 먼저 발달되는 원시적인 감각이며 피부 자체가 몸 전체에서 가장 넓은 면적을 차지한다. 그뿐만 아니라 시각, 청각, 후각 등 모든 감각 기능뿐만 아니라 운동 감각기능, 그리고 기억 기능을 관장하는 뇌의 대뇌피질의 가장 넓은 부분과 관계하면서 그 부분의 지점들 각각에 대응하고 있는 것은 피부의 촉각들 각각이다. 이는 인간이 결정하고 행동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정보로부터 가장 추상적인 촉각으로의 환원, 즉, 촉각으로부터의 반응, 정서 영역이 활성화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하면, 인간은 근본적으로 촉각적일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이다.


몬타규는 타인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촉각’이 매우 중요하다고 보았다.  부모와 자식 간의 애착, 연인 간의 뜨거운 사랑 등은 결코 데이터로 설명할 수도, 복사될 수도 없다. 이는 타인과 접촉하는 것을 통해 나의 감각, 느낌이 외부를 향해 발산됨으로써 형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성으로만 타인을 바라본다면 이는 타인을 함부로 규정하고 일반화하여 언제든지 타인을 버릴 수 있는 준비가 되어있는 거나 다름없게 된다. 결국, 사회를 서로에게 열려있는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온몸으로 온 감각으로 외부와 접촉해야 한다.

그리고 여기, 온몸으로 외부와 접촉을 시도한 예술가가 있다.



온 몸으로 접촉하기, 윌리엄 포프엘의 ‘기어가기 퍼포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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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이름은 윌리엄 포프엘. 시각예술가인 그는 1970년대부터 활동했으며 특히 행위예술로 유명하다. 포프엘은 마요네즈, 밀가루, 우유 등 하얀색을 가진 음식을 소재로 하여 사진, 조각, 글, 회화등을 제작하거나 인간의 피부색을 드로잉하여 연대순으로 기록하는 등 보통 인종,  계급, 정체성 등과 같은 사회의 고정관념에 도전하는 예술을 펼쳤다. 또한, 직접 몸을 사용하거나 사람들이 참여해야 완성되는 거리 퍼포먼스를 하는 등 그의 예술은 항상 도발적이고 예상할 수 없었기에 ‘개념미술’의 성격이 강하다고 할 수 있다.

이 글에서 소개하고 싶은 것은 그가 선보인 프로젝트 중 하나인 ‘기어가기(crawling)’다. 70년대 후반, 그는 미국의 길 한복판에서 바닥을 ‘기어가기’ 시작했다. 심지어 당시 사회에서는 절대 용납될  수 없는 ‘슈퍼맨 복장을 입은 흑인’의 모습을 하고 말이다. 가장 높이 하늘을 날던 슈퍼맨은 순식간에 누구보다도 밑에서, 천천히 기어가는 비참한 꼴로 전락하고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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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빠르게 밟고 지나갔던 땅의 표면에 온몸을 밀착하여 ‘기어간다’는 것. 이는 거리에 존재하는 모든 통증과 굴욕을 받아들인다는 것을 의미한다. 울퉁불퉁하고 거친 땅의 촉감, 몸을 적시는 더러운 구정물, 곳곳에 있는 돌부리의 통증. 그리고 더 이상 날지 못하는 슈퍼맨, 흑인, 노숙자까지도. 그를 바라만 보고 있던 사람들 또한, 잊고 있었던 그 모든 것을 상상하게 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나아갔다는 것이다. 나아갈 수 없을 것만 같은 자가 그럼에도 나아가는 모습은 당연하게 생각했던 사회의 프레임을 환기시켜준다. 애초에 인간은 모두 기어가며 앞으로 나아가는 존재였다. 우리는 그때의 그 평형성에 대한 감각을 상실해서는 안 된다. 포프엘은 이렇게 외치는 것 같았다. 그는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모든 수직성의 특권들에 온몸으로 투쟁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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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에 들어서도 여전히 그는 거리를 기어가고 있었고, 심지어 그 뒤로 몇몇의 사람들이 그를 따라 길을 기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여러 명의 사람들이 길 한가운데에 기어가기 시작하자, 도시 전체에 변화가 생겨났다. 빠르게 움직이던 사람들이 이들의 행위에 당황하여 가던 길을 멈추고, 이들의 표정을 보기 위해 같이 몸을 낮추거나 이들을 따라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의 ‘기어가기’를 통해 순간적으로 분주하게 움직였던 도시의 속도가 느려진 것이다.

이처럼 포프엘의 퍼포먼스는 몸을 씀으로써, 직접 접촉함으로써, 우리의 이성과 지성이 아닌 정서에 영향을 줌으로써 견고하게 고정되어버린 사회에 틈을 만들어낸 시도라고 볼 수 있다.



가장 우세한 감각은 촉각이어야 한다.

인지심리학에서 “emodiversity”라는 용어가 있다. 정서의 다양함, 풍부함, 정교함이 수명, 지능, 창의성을 결정한다는 뜻이다. 우리는 지혜로워지기 위해, 통찰하기 위해 끝없이 우리의 정서를 억압하며 이성적으로 되길 노력하지만 사실 통찰은 감수성을 통해 나오며 지혜로운 사람은 정서가 잘 발달된 사람이라는 것이다.

액체괴물은 경계가 없고 형태가 없다. 그렇기에 어떤 액체괴물과 만나더라도 섞일 수 있다. 마치 인간의 원시적인 모습과 같은 액체괴물, 그런 액체괴물의 말랑거리고 기분좋은 촉감. 자꾸 접촉하게 만들고 싶게 만든다. 액체괴물은 아무런 의미도 담지않고 그저 정서만을 건드린다. 그러나 우리는 기꺼이 액체괴물을 만져야 한다. 액체괴물을 만지면 만질수록, 잊고 있었던 우리의 감각이 되살아나고, 이는 외부에까지 우리를 접촉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익숙한 무언가를 낯설게 바라볼 수 있게 되기 위해서는, 가장 우세한 감각은 촉각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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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량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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