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그 날의 분위기 [문화 전반]

글 입력 2018.11.14 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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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수학능력시험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매년 수능 날이면 입시한파라는 불청객이 찾아왔는데, 올해는 입시한파 대신 입시먼지가 온다고 한다. 한 기사를 보았다. 수능 시험장이 없는 울릉군의 학생들은 지난 11일에 이미 배를 타고 포항으로 나왔다. 그리고 경북도교육청이 마련한 포항 청룡회관에서 숙식을 하며 막바지 공부를 하고 있다는 기사였다. 학생들은 자습실이나 교실이 아닌 태극홀에 앉아, 후드티와 트레이닝 바지를 입고 공부를 하고 있었다. 원탁과 식탁보, 츄리닝과 문제집의 조화라니. 색다른 모습이었다.


그런데 사진을 가만히 보고 있으니 눈물이 툭- 떨어졌다. 요 근래 몇 가지 일들로 마음이 심란한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마치 조건 반사처럼 눈물이 나는 데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 수능과의 애증 섞인 관계는 끝이 난지 오래지만, 생각만으로도 센치해지는 전남친 같은 존재인가 보다.



 

어김없이 찾아오는 가을의 어느 날



가을은 우울하다. 나는 1년 중 요즘이 가장 쓸쓸하고 무기력하다. 해야 할 일들이 번호표를 뽑고 기다리고 있는데 자꾸만 자고 싶다. 나에게 가을은 업무태만, 두문불출의 계절이다. 흔히 ‘가을 탄다’고 표현되는 이러한 증상은 일조량의 감소로 인한 계절성 우울증이라고 한다. 계절성 우울증에 의한 증상들을 살펴보면, 나를 지켜보고 나의 하루일과를 옮겨 적었다고 느껴질 정도이다. 따라서 이러한 의학적인 설명에 매우 공감하는 바이다. 하루에 30분 이상 햇볕을 쬐고, 야외 활동을 하고, 엽산이 든 음식을 먹으면 나아진다고 한다. 전문적인 의학 지식에 따른 조언이므로 가을을 세차게 타는 이들이라면 믿고 따라봄직하다.


그러나 나의 가을맞이를 일조량의 변화가 신체에 미치는 영향으로만 설명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의사 선생님들의 말씀만으로는 누군가에게는 끔찍하게 우울하고 두려울 수 있는 여름과 충만하고 여유로운 겨울을 이해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내가 가을을 타는 것을 자연현상보다는 사회문화현상으로 설명하려 한다. 매년 이맘때면 죽지도 않고 또 돌아오는 그날 때문이다.



 

기대는 무겁다



고등학교 내내 문과 1등이었던 나는 구체적인 목표가 있어서 공부한 것이 아니었다. 단지 공부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을 뿐. 첫째, 우리 때문에 햇빛도 안 드는 공장에서 일하시는 어머니가 감히 안타까웠다. 과목석차와 등급이 1로 도배된 성적표를 팔랑거리며 집에 돌아와 내보였을 때 어머니가 기뻐하셔서, 또 기뻐하실 것 같아서 열심히 공부했다. 그렇다고 어머니가 내가 어찌되든, 나에게 1등만을 바라셨다는 말은 아니다. 꾸역꾸역 현실의 무게를 버텨내시는 어머니를 그냥, 자발적으로, 어떤 이유로든 기쁘게 해드리고 싶었다. 둘째, 우리 집은 어려웠다. 심화반의 야간자율학습이 끝나면, 운동장에 진열된 친구들 부모님의 차를 지나쳐 시내버스를 타러 갔다. 학원을 여러 개 다니던 심화반의 한 친구가 ‘수학은 각 단원마다 잘 가르치는 학원과 선생님이 다르다’고 했던 말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그러나 비싼 학원을 다닐 생각도, 성적이 안 나오면 재수를 할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래서 기를 쓰고 공부했다.


열심히 공부했고 다행히도 내 노력이 인정받은 덕분에 나는 우리 집과 우리 학교의 기대주가 되었다. 그러나 ‘내’가 없고 자신이 없는 기대는 무거웠다. 사실 무서웠다. 나는 대학교에 가서 배우고 싶은 것이 별로 없었다. 고등학교 때 이미 공부라면 지긋지긋해져버렸기 때문이다. 쏟아지는 잠을 억지로 참는 것이 괴로웠고, 친구들과 함께 밥을 먹고 같은 교실에서 공부하는데도 외로웠다. 학교의 친구들과 선생님들은 밝고 건강하며 공부도 잘 하는 아이라고 나를 칭찬해주었지만, 내 방 책상에서는 문제집을 펴 놓고 소리 없이 울곤 하였다.


어머니가 시켜서 한 공부는 아니었지만, 어머니가 기대하실 것은 분명했다. 어머니는 매 번 티끌 없는 성적표를 들고 오는 딸이 ‘수능 때도 그래주었으면’ 하고 충분히 기대할만 했다. 한 편으로는 공부를 잘 하면, 나는 당신처럼 고생하지 않을 수 있다는 어머니 세대의 가치와 소망에서 나온 기대이기도 했다. 어머니께서는 기대가 나에게 부담이 될 것을 아시고 항상 조심하셨지만, 나는 어머니의 마음을 충분히 알았다.


학교의 선생님들도 기대하셨다. 어떤 선생님은 나만 보면 ‘S대 가야지’라는 말을 장난처럼 하셨고 다른 친구를 앞에서 티를 내면서 나를 챙겨주시기도 하셨다. 어렸지만 그런 무례한 호의에 기분 좋아할 만큼 철이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진심이 느껴져 더 버거운 기대도 있었다. 집안사정을 잘 모르셨던 한 선생님께서는 학교에서 열리는 비싼 논술 특강을 추천해주셨다. 혹시 모를 수능 날의 변수를 대비해, 수시 논술도 병행하며 마음을 편히 먹으라는 뜻에서였다. 심지어 수능이 끝나고서도 담임 선생님께서는 일단 합격한 대학교에 다니다가 반수를 하라는 조언을 해주시기도 했다. 내 능력이 최대한 발휘되지 못한 것이 아쉬울까봐 해주신 말씀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선생님들을 나를 진심으로 생각해주셨고, 경험에서 나온 조언을 해주셨다. 그렇지만, 다 알지만, 목표가 없던 나에게 이런 기대는 버거웠다.



 

그래도 지나갔다



우리나라의 수능은 불행히도 1년에 한 번이다. 재수가 없으면 1년 중 딱 그 날 컨디션이 안 좋을 수 있다. 그럼 해온 것과는 달리 망칠 수도 있다. 나에게는 수능이 1년 중 하루인 것이 다행이기도 했다. 어쨌든 지나가기 때문이다. 나는 수능과의 끈질긴 관계를 두 번에 걸쳐서야 정리할 수 있었다.


수능 전날은 예비 소집일이였던 걸로 기억한다. 배정받은 학교에 가기 전에 사물함에서 필요한 책과 짐을 챙겼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진심으로 3학년 교무실을 찾아갔다. 진심으로 존경했던 문학 선생님을 뵙기 위해서였다. 나에게 쓴소리를 자주 하시는 무뚝뚝한 선생님이셨지만, 그 선생님의 말씀에는 항상 애정이 느껴졌다. 내가 느끼는 압박감과 비례하는 가방을 메고 서 있던 나를 안아주셨다. 그 품이 얼마나 따뜻했는지 그만 엉엉 울고 말았다. 정말 한참을 울어버렸다. 다 울고 고개를 드니 선생님께서는 장난기 어린 눈으로 “너 독한 줄 알았는데, 영 아니네. 이딴 걸로 쫄았냐! 별 거 아냐. 괜찮아.”라고 말씀해주셨다. 신기하게도 불안감에 요동치던 마음이 조금은 진정되었다.


그리고 수능 당일, 2014년 11월 13일의 새벽 냄새를 아직도 기억한다. 배정받은 고사장은 버스를 타면 막혀서 늦을 것 같고, 택시를 타기에는 값이 꽤 나오는 먼 거리였다. 우리 집은 차가 없었기 때문에 외삼촌의 오래된 트럭 앞자리에 앉아 학교로 향했다. 가는 길 내내 말이 없던 삼촌께서는 하던 대로 하고 오라는 한 마디와 함께 내려주셨다. 눈물이 또 나오려던 걸 정말 억지로 참았다. 11월의 해는 늦장을 부리고 있었고, 나는 오바해서 일찍 나온 탓에 학교에 도착하니 여전히 어둑어둑했다. 심지어 내가 시험을 볼 교실에는 불도 켜져 있지 않았다. 남의 학교에 와서 깜깜했던 교실에 불을 켜며 이 학교를 접수한 것 같은 우스운 생각을 했다. 긴장을 풀기 위해 수능 생각만 빼고 이런 저런 생각을 했다.


19년 인생에서 가장 맘 졸였던 시간이 지났다. 결국 수능도 끝났다. 제 2외국어까지 마치고 천천히 짐을 싸며 같은 교실에 있던 친구와 짧은 수다를 떨었다. 수고 했다고, 얼른 맘 편히 놀자며 인사를 주고받았다. 교실에서 내려와 정문을 나서는 순간, 아차 싶었다. 어머니와 동생이 내가 어디서 나오는지, 언제 나오는지 조마조마해하며 기다리는 눈빛을 보자마자 아차 싶었다. 초조한 마음으로 너무 오래 기다리게 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나에게 어떤 것도 묻지 않으셨다. 얼른 집에 가서 따뜻한 밥을 먹자고 하셨다. 나중에 들어보니, 어머니께서는 ‘다른 아이들은 다 나오는데 내 딸만 안 나오니까, 수능 결과 때문에 혹시 나쁜 생각을 하고 있을까’ 걱정하셨다고 했다. 나오면 해주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았는데, 내 얼굴을 보자마자 그냥 무사히 돌아와 줘서 그저 고마웠다고 하셨다. 바보 같지만 삶의 편안이 아닌 불안 속에서야 비로소 나를 안아주고 기다려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깨우쳤다. 이렇게 나는 내 사람들의 품에서 수능과 첫 번째 이별을 하였다.


수능 결과가 나왔고, 나는 충분히 감사한 대학교에 입학했다. 상경에 성공한 새내기의 1학년은 정신없이 흘러갔고, 나는 내가 수능과 관련된 모든 서늘한 감정들을 까맣게 잊은 줄 알았다. 그러나 재수를 한다는 고등학교 친구들의 소식과 반수에 성공한 동기의 소식을 전해들을 때면 이따금씩 가슴이 답답해졌다. 반수를 하라는 선생님의 말씀을 듣지 않은 것이 잘못이었을까. 덜컥 겁이 났다. 동시에 너무나 외로웠던 시간을 지금이라도 다시 겪을 생각을 하니 또 겁이 났다. 그토록 지겨워했던 ‘수능’이라는 단어가 여전히 나를 짓누르고 있음을 깨달았다. 잘 지내고 있는 줄 알았는데, 그저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을 뿐이었다.


2학년 2학기가 되던 때에 ‘심리학의 이해’라는 교양을 수강하였다. 나는 치열한 수강신청 경쟁을 뚫고, 듣고 싶었던 교수님의 강의를 들을 수 있었다. 프로이드의 심리성적 발달 단계에 대한 수업을 하던 때였다. 교수님께서는 자기 인생의 불행을 ‘서울대를 못 간 것’에서 찾는 한 중년의 이야기를 해주셨다. 그 분은 직장과 가정이 생긴 후에도 몇 년 동안은 매년 수능을 보러 갔다고 한다. 교수님께서는 이를 늦깎이 수험생의 열정과 용기라고 설명하지 않았다. 각 발달 단계에서 마땅히 획득해야 할 가치를 얻지 못해서 과거의 특정 시기에 욕구가 고착된 것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이야기를 덧붙이셨다. 교수님께서도 서울대 학생들에 대한 열등감, 박사학위를 해외에서 받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을 꽤 오래 갖고 있었다고 한다. “해결되지 않은 욕망의 덩어리가 있다면, 자꾸 꺼내서 마주해야 한다. 스스로에게 의식적으로 지나간 일은 지나갔다고 말해주어야 한다.” 우리에게 이제는 성숙한 개인으로서 이루어야 할 일과 좋은 관계를 맺는 것에 집중하라고 하셨다. 수업시간에 졸까봐 핸드폰 녹음기를 켜놓고 수업을 듣곤 했는데, 그날 수업의 녹음 파일은 여전히 지우지 못했다. 아마 실수로 파일을 삭제하지 않는 이상 계속 가지고 있을 것 같다. 그날 수업 이후로 과거의 불안감에 사로잡히지 말라고, 마음 쓰지 말라고 계속해서 나에게 말해주었다. 나를 옥죄었던 기대, 결과에 대한 앞선 두려움, 지루하고도 외로웠던 시간과 헤어지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끝내 수능과 안전 이별을 하였다. 아직도 가끔 수능 보는 꿈을 꾸면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깨긴 하지만.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우리 다 함께 노래합시다.

후회 없이 사랑했노라 말해요.



2014년의 수능 한 달 전 이 무대를 보고, 수능 당일까지 하루에 5번씩은 꼭 들었던 것 같다. 매년 가을, 어쩌면 매일, 매순간 나는 시험을 치른다. 그 중에는 수능보다 더한 시험들도 있었다. 그러나 어떤 시험이든 결국 끝날 것을 안다. 또한 식은땀으로 차갑고 눅눅하게 절어버린 나를 따듯하게 안아줄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안다. 앞으로 치를 시험들이 얼마나 많을지, 또 얼마나 어려울지 가늠조차 가지 않는다. 하지만 또 그래서 내일 수능을 치를 수험생들에게, 앞으로의 나에게 잘 하라는 말보다 이 말들을 꼭 전해주고 싶다. 부디 잘 돌아왔으면 한다. 내일도, 앞으로도 화이팅!





[최희선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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