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화려한 드레스와 마카롱을 좋아하던 프랑스 소녀 [영화]

글 입력 2018.11.15 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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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하기에 앞서


영화 ‘마리 앙투아네트’를 택한 이유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들 중 하나지만, 이 영화는 프랑스 혁명이라는 역사적 맥락을 조명하기 보다는 마리 앙투아네트라는 한 여인의 삶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에 역사적 사실에 대해 좀 더 깊게 알기 위함이다.


이 영화를 처음 접하게 된 건 내가 초등학생 때 였다. 어렸을 적 어머니께서 역사에 관한 다양한 영화들을 자주 보여주시곤 했는데, 다른 역사 영화들과 달리 사치와 향락의 이미지가 강했던 주인공을 잘 표현해낸 화려하고 영화의 분위기는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막연히 아름다운 색감으로 기억되던 이 영화를 최근 다시 보게 되며 궁금해진 역사적 사실들을 영화 내용과 더불어 제시하고, 현대적 관점에서의 이에 대한 해석을 알아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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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의 촌뜨기 공주, 프랑스로 시집 오다


오스트리아와 프랑스의 동맹을 위해 프랑스의 황태자 루이 16세와 정략결혼을 하러 가는 마리 앙투아네트의 모습으로 영화는 시작한다. 유럽의 패권을 놓고 싸우던 그 당시, 미개한 섬나라라고 불렸던 영국은 어느새 대영제국이 되었고, 독일 내에선 프로이센의 성장으로 오스트리아와 프랑스 양국은 더 이상 소모적인 전쟁을 그만두고 동맹관계를 맺기 위해 정략결혼이 성사되었다고 한다.


그녀가 프랑스 사람들과 처음 마주하자, 데리고 온 애완견 몹스를 뺏기는 모습을 보며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한 나쁜 예감이 들었다. 실제로 결혼은 했지만 정작 자신에게는 별 관심이 없던 남편 루이 오귀스트, 기 센 프랑스 왕실 귀족들, 그리고 무엇보다 빨리 후계자를 낳길 재촉하는 오스트리아의 가족들은 그녀를 힘들게 했다. 천진난만하고 밝았던 그녀의 눈에서 외로움과 고독함을 읽을 수 있었고, 그녀는 사치와 향락의 길로 빠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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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자 부인’으로 알려져 있는 그녀의 진실과 거짓


영화가 막바지로 접어들 때 쯤, ‘적자 부인’, ‘부채가 웬 말이냐’ 라는 마리 앙투아네트의 별명이 초상화에 쓰이는 모습이 비춰진다. 철저히 그녀의 입장에서, 그녀의 관점을 조명한 이 영화를 보며 앞서 그녀가 여자로서 겪었던 수모를 생각하니 그녀의 과소비적 행태가 약간은 이해가 되기도 했다.


프랑스인들의 증오를 받고 처형당하는 운명을 맞게 된 그녀는 프랑스 혁명 당시엔 이미지가 상당히 안좋았다. 하지만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이는 그 당시 혁명군에 의해 상당 부분 왜곡된 결과라고 밝혀졌다. 역사가이자 소설가로 유명한 안토니아 프레이저는 책 ‘마리 앙투아네트’에서 “그녀의 결점들이 명백하긴 하지만, 그 불행과 저울질해볼 때 하찮은 것에 불과했다"고 평했다고 한다. 영화 ‘마리 앙투아네트’를 보며 나는 영화가 언뜻 그녀를 미화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영화는 그녀를 특별히 미화하고자 하는 목적은 없고, 그녀의 주관적인 생각들을 그녀의 눈빛과 행동을 통해 객관적으로 드러내고자 한 것 같다.


알고 보니 이 영화의 감독은 본연 그대로의 마리 앙투아네트를 묘사하기 위해 프레이저의 책을 집중해 읽었다고 한다. 마리 앙투아네트의 낭비로 프랑스의 국민들이 굶어가자, 그녀는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지”라고 말했는데, 사실 자주 회자되는 이 말은 정작 그녀는 그런 말은 한 적이 없다고 밝혀졌다. 사실 마리 앙투아네트는 역대 왕조와 비교했을 때 더 사치스럽지 않았다고 밝혀졌다. 실제 그녀가 재위 중 사용한 예산은 공식적으로 책정된 왕실의 예산 중 1/10에 불과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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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무엇이 그녀를 단두대로 이끌었나


물론, 그렇다고 그녀의 잘못들을 부정하려는 의도는 없다.


영화에서 부하가 그녀에게 정세 보고서를 읽으셨냐고 묻자, 그에 대한 대답 대신 자신에게 어울리는 드레스를 골라달라는 말에 정말 나는 어이가 없었다. 프랑스의 국모로서 자신의 직위와 책무를 외면하여 국민을 굶주리게 한 것은 명백한 잘못이다. 이렇게 사실인 내용들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그녀의 죽음은 각종 루머들에 의한 대중들의 분노가 폭발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당시 프랑스의 재정 상태는 이전 세대 왕들이 벌인 여러 전쟁들로 이미 좋지 않은 상태였다고 한다. 특히 영국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의 독립전쟁을 막대하게 지원한 것이 재정 악화의 계기가 되었다. 이런 상황에 기근까지 들자 프랑스의 경제는 최악이었고, 결국 국민의 화살은 화려하고 돈 쓰기 좋아하는 왕실로 가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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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 앙투아네트와 우리나라의 한 정치인의 평행 이론


최근 우리나라의 한 정치인의 탄핵 사건이 국민들의 분풀이 대상이 되어버린 과거의 마리 앙투아네트와 유사하다는 견해들이 여럿 보인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그 둘은 절대 닮은 꼴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2016년, 유난히 추웠던 겨울의 촛불 혁명과 마리 앙투아네트 시대의 프랑스 혁명은 ‘아래로부터의 혁명’이라는 점에서 유사해 보인다. 하지만 그 과정은 명백히 다르다.


1789년의 프랑스 혁명은 자유, 평등, 박애를 이념으로 내세우며 현대 민주주의 국가 건설의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혁명의 이면에는 로베스 피에르와 같은 여러 혁명 지도자들이 떠오르고, 지롱드파와 자코뱅파의 대립을 비롯한 각종 정치적 싸움이 끊이질 않았다. 여기서 알 수 있듯, 혁명은 결코 순수했던 과정이 아닌 이해관계가 얽힌 부정 부패로 얼룩진 모습을 띄기도 한 것이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실제로 그 당시 활발히 전개되던 포르노그래피 산업의 희생양이 되어 그녀를 주제로 한 포르노그래피 출판물이 쏟아져 나왔다고 하는데, 이는 최근 인터넷에서 흔히 보이는 ‘악플’ 이나 ‘가짜 뉴스’의 일종으로 해석될 수도 있을 것 같다.


반대로 우리나라의 촛불 혁명은 그와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 대의 민주주의를 행하고 있는 우리 나라에서는 국민을 대표할 수 있는 대표자들을 선출해 그들을 통해 국민의 뜻을 전하지만, 그 과정에서 생기는 의구심을 촛불 집회로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직접적으로 정치적 의사 표현을 한 결과이다. 즉, 마리 앙투아네트의 죽음은 피에 굶주린 일부 국민들의 희생양이 된 결과이고, 논란의 우리나라 정치인은 자신의 무능으로 나라의 정세를 농락한 것에 대해 죗값을 치르는 행위이다. 이 둘은 결코 같지 않다.



 

살아생전에 수많은 사람들의 미움을, 현재엔 재평가를 받은 불운의 왕비



“인간은 불행에 처해서야 비로소 자기가 누구인지를 알게 됩니다.” 마리 앙투아네트가 말년에 보낸 편지에 쓴 말이다.


사람들은 마리 앙투아네트라는 이름을 프랑스 혁명과 관련 지어 생각하지만, 역사적 사건보다는 개인의 삶에 초점을 맞춘 이 영화를 통해 비로소 그녀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볼 수 있었다. 앞서 말했듯, 그녀가 나라의 대표자로서의 역할을 다하지 않은 것에 대한 잘못은 분명히 있다. 하지만 그 정도에 있어서 그녀를 죽음으로 이끌 정도의 수준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프랑스 혁명 속 마리 앙투아네트의 이야기에서 알 수 있듯, 역사는 우리의 뿌리이다.


진실을 향해 찾아가는 과정을 통해 답습하고, 반성하고, 개선하는데 지표로 역사를 활용해야 한다.



[오지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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