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팔이] 1화: 그냥 부유하는 중입니다.

영화 <졸업>: 아무 생각이 없다. 왜냐하면 아무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글 입력 2018.11.16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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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그냥 부유하는 중입니다.


요즘 인생이 재미없다. 딱히 기쁘지도 않고, 딱히 슬프지도 않고, 별다른 감정의 변화도 없다. 그냥 잔잔한 호수 위에서 떠다니는 느낌이랄까.

이유는 대충 안다. 학년이 올라가면서 친했던 동기들이 모두 여기저기로 흩어져 학교를 계속 혼자 다닌다. 덕분에 수업 들을 때도 혼자, 밥 먹을 때도 혼자, 뭐든 다 혼자다. 놀아달라니까 친구들은 다 바쁘단다. (그래놓고 지들 남친이랑은 잘만 논다. 이러려고 친구했나 자괴감이 들고 괴롭다.) 나는 혼자 있는 걸 좋아하긴 하지만 그래도 무엇이든 너무 과하면 별로다. 요즘은 격하게 좋은 사람들 틈에 섞이고 싶다.

미세먼지 탓도 있다. 나는 날씨에 꽤 민감하다. 비가 오면 축 처지는 머리카락과 함께 기분까지 축 처져버린다. 그런데 요즘은 비가 내려도 미세먼지 섞인 비가 내린다. 세상도 말세고, 내 기분도 말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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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인의 부재도 한 몫 한다. (이렇게 말하면 어디 외국 간 줄 알겠지만 그 친구는 사실 1년 반째 이 세상에 부재하고 있다.) 제니가 SOLO라는 곡을 발표했던데, 그래도 나는 COUPLE이 좋다. 더군다나 곧 있으면 크리스마스다. 작년 크리스마스 때는 카페에서 시나리오랑 씨름하느라 너무 처참한 기분이었다. 다행히 이번 크리스마스는 유럽에서 친구(얘도 솔로)와 함께 보낼 예정이다. 사실 9월부터 이미 크리스마스 때도 솔로일 것을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기에 일부러 그 때 유럽에 가있는 걸로 일정을 잡았다. 예감이 적중할 듯하다. 역시 난 영특하다.

사상 최고의 취업난에 열심히 해봤자 별 수 없을 거라는 해탈하는 심정도 있다. 난 지금까지 정말 열심히 살았는데 대체 뭘 그렇게 잘못했길래 이런 취업난에 내몰려야하는지 정말 모르겠다. 어른들이 바라는 대로 열심히 공부하고 착실하기 시간 보냈는데 일하고 싶다는데도 일을 안 시켜준다. 그래놓고서 모든 잘못을 청춘의 탓으로 돌린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어른들 정말 무책임하시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큰 요인은, 내가 좀 별거 없어 보인다. 일 년의 막바지에서 지난 한 해를 돌아보니 그렇게 열심히 달려놓고서도 정작 자랑스럽게 내보일만한 성과가 딱히 없었다. (아트인사이트 빼고.) 지금까지 뭐했나 싶은 생각이 든다. 너무 빨리 성과를 보채고 있다는 걸 알기에 스스로를 혼내고 싶은 마음도 있는데, 또 한 쪽에서는 가뜩이나 고생한 애 다독여주지는 못할망정 왜 혼내냐면서 필사적으로 보호하고 있다. 둘이서 아주 잘 싸운다. 정작 말려야 할 나는 생각하기도 귀찮아서 먼 산만 보고 있다. 맘대로 싸워라. 이기는 편 내편이다.



영화 <졸업> (1967)


1960년대의 미국 영화산업에서는 New Wave의 시대가 열리기 시작한다. 1920-50년대를 주름잡았던 헐리우드 전성기가 막을 내리고 사회비판적 성향의 신세대가 등장해 헐리우드를 이끌어 가는데, 이 시기가 바로 New Wave시기이다. 아름다운 남녀 주인공, 무조건 해피엔딩, 꿈과 낭만이 가득한 스토리라인 등의 기존 관습을 뒤트는 영화들이 이 때 우후죽순으로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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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 니콜스 감독의 영화 <졸업> 역시 이 시기의 작품이다. 엔딩이 워낙 유명해 많이들 아실 것이라 생각한다. 현실적인 결혼이 아닌 낭만적인 사랑의 도피를 찾아 드레스 차림으로 일단 결혼식장에서 뛰쳐나오긴 했는데, 막상 나와 보니까 사람들도 이상하게 쳐다보고 땡전 한 푼 없는 거다. ‘아, 우리 x됐구나’싶은 두 주인공의 표정이 압권이다. 이렇듯 이 시기의 작품들은 터무니없는 긍정, 낭만을 거부한다. 현실의 x같음을 충분히 표현해내는 것이 이 시기 영화들의 공통된 특징이다.

영화의 주인공, 벤자민은 허무하다. 어른들의 온갖 기대에 따라 엘리트가 될 것을 강요받던 자신의 인생에 회의감이 든다. 그래서 맨날 멍-한 표정을 짓고 있다. 로빈슨 부인을 만나면서부터는 자신의 멍-한 운명을 본격적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해서 복세편살(복잡한 세상 편하게 살자)의 시초라고 볼 수 있는, 다음과 같은 대사를 내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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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뭐하니?”
“그냥... 부유하는 중이에요.”


죽기 살기로 파닥거려봤자 물 위를 걷겠다는 기똥찬 꿈을 이뤄주지 않을 배신쟁이 현실에 대한 60년대 신세대의 해탈 가득한 마음이 엿보인다.

난 요즘 저 말이 유독 자주 떠오른다. 현재의 내 상황을 너무 잘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나의 부유는 비단 사회에서 비롯된 것뿐만은 아니다. (물론 사회 탓도 있다. 요즘 뉴스를 보면 정말 답답한 마음에 헛웃음밖에 안 나온다.)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없어진 것이 가장 큰 이유를 차지한다. 돌아보니 이뤄낸 것이 별로 없고, 그래서 내가 별로인 것 같다. 해서 의욕도 없어지고, 그냥 멍하다.

이뤄낸 것이 왜 없냐고, 성과가 항상 눈에 보이는 것만은 아니지 않느냐고 혹자는 말씀하실 수도 있다. 맞는 말이다. 100% 동의한다. 하지만 난 내년이면 死학년이다. 슬슬 스스로 밥 벌어먹고 살 능력을 갖춰야 하는 거다. 그러니 초조해하는 것이 어느 정도 당연하지 않나.

맞다. 마인드 컨트롤 못하고 있다. 그런데 어떻게 사람이 항상 마인드를 컨트롤하면서 살아갈 수 있겠나. 맘대로 안 되니까 맘인거다.(?) 가끔은 스스로를 통제하는 것에서 벗어나 그냥 되는 대로 떠맡겨 보고 싶을 때도 있는 거다. 어떻게 그렇게 완벽하게만 사나. 인간미 없이. 불완전하게 살아도 삶은 삶이다. 나를 나약하게 보는 사람들, 뷁이다.





중간에 그만두지 않고 여기까지 읽으셨다면 당신이 이 끄적거림에 어느 정도 공감이 가신다는 뜻일 테니 다행이면서도 걱정스럽다. 나 혼자 부유하고 있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동질감이 생기면서도, 당신도 참 힘들겠다 싶어서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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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밖을 보니 미세먼지가 걷혀서 구름이 나왔다.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하늘이 온통 잿빛이었는데 지금은 푸릇푸릇한 게 꽤 예쁘다. 나는 저게 내 미래라고 믿어 볼란다. 신세대들이 그렇게 싫어했던 터무니없는 긍정을 나 역시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그래도 요즘 들어서는 긍정을 믿지라도 않으면 어떻게 살아가겠나 싶은 생각이 든다. 나의 2019년은 노력의 결실도 좀 맺어지고, 애인도 생기고(유럽 가서도 많이 만난다더라. 나 자신에게 파이팅을 보내본다.), 감정도, 열정도 모두 살아나는 멋진 한 해가 될 것이다. 당신의 2019년은 어떠한가. 무엇을 꿈꿨던, 모두 그대로 될 것이다. 근거는 없지만, 그래도 속는 셈 치고 한번 믿어보시라.

당신도, 나도. 우리 모두 잘 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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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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