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순수예술의 발명』 시리즈: ① 고대 그리스의 '순수예술'? [시각예술]

샤이너의 책 '더' 쉽게 읽기
글 입력 2018.11.17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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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래리 샤이너의 『순수예술의 발명』은 우리가 현재 이해하는 ‘예술’이라는 것의 체계가 자연적으로 존재했던 것이 아닌, 200년 전 유럽인들에 의해 ‘발명’된 것이라는 입장에서 순수예술의 체계가 발전될 수 있던 ‘예술분리’의 과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과거의 광범위하던 예술의 체계에서 18세기에 예술의 체계가 형성되기까지, 그리고 이러한 체계가 깨지고 제 3의 체계가 태동하고 있는 현재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사용하는 '예술'이라는 말은 여전히 우리의 생각하는 의미로써 존재하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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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의 '순수예술'?


고대 그리스 사람들이 예술작품을 바라보는 시선과 우리의 시선은 어떻게 다를까? 우선, 우리에게 연극이란 무엇인지 생각해보자. 누군가에게 연극을 보는 것은 여가시간을 보내는 하나의 취미일 수도 있고, 그저 시간 낭비를 하는 무의미한 행위일 수도 있다. 하지만 고대 그리스인들은 연극을 그런 식으로 가볍게 소비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있어 연극이란 “신들에 경의를 표하고 공동체의 결속과 사기를 북돋는 의식들에 딸린” (샤이너 지음, 조주연 옮김, 순수예술의 발명 p.61)것이었다. 따라서 그들에게 연극이 이토록 심각한 의미로 받아들여진 것을 알고 나면, 우리가 오늘날에 와서 고대 그리스의 연극작품을 현대적 의미의 연극이라고 부르는 것이 다소 부적절해보이기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연극의 예시를 통해, 우리는 우리의 현대적 시각을 버리고 고대 그리스인들의 시각에 맞춰 당대에 제작되었던 예술작품을 바라보는 것이 그것을 온전히 이해하는 방식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오늘 날 바라보는 그리스의 조각상은 ‘예술’이 아니었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사용했던 예술이라는 말인 Techne는, 구체적인 어떤 대상의 범주를 가리킨다기보다는 오히려 다양한 것을 제작하거나 만들 수 있는 인간의 ‘능력’에 초점이 맞춰진 용어였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가 오늘날 예술이라는 범주 하에 묶어두는 회화, 조각, 건축, 시, 음악 등의 개별 장르는, 고대 그리스 시대에는 동류의 활동이라고 인정된 바가 없었다. 굳이 이들을 동류로 묶고자하는 관습이 있었는지를 살펴본다면, 그나마 회화, 서사시, 비극은 ‘모방’의 예술이라는 키워드로 비슷한 성질을 가진 개별 활동으로 취급된 사실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샤이너의 말처럼, “순수예술 이론을 찾아내려고 계속 노력하는 학자들의 시도는 ‘예술’이라는 말도 ‘예술가’라는 말도 우리가 사용하는 방식으로는 고대나 고전주의 전성기의 그리스어로 번역될 수 없다는 사실을 무시하는 것이다”(위와 같은 책, p.64)

그러나 우리는 고대 그리스에서 현대적 개념과 유사한 모습을 갖춘 유일한 예술 분류를 찾아볼 수 있는데, 그것이 바로 리버럴아츠와 벌가 아츠의 구분이다. 이 두 개의 분류의 차이점은 전자는 정신을, 후자는 육체를 사용한다는 것인데, 시각예술이 후자에 속해 가끔 농경술이나 항해술과 같은 ‘중간 예술’에 범주에 함께 묶였다는 점을 통해, 우리는 다시 한 번 고대 그리스인과 우리의 예술에 대한 시각 차이가 얼마나 큰지를 확연히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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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더불어, 고대 그리스인들이 생각하는 예술가와 오늘 날 우리가 생각하는 창작의 주체로서의 예술가의 개념 또한 분명히 다른 것이었고, “의술과 군사 전략에서부터 도자기 만들기와 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예술에 종사했던 고대인들은 현대적 의미의 ‘장인’도 ‘예술가’도 아니었으며, 기술과 요령을 겸비한 장인/예술가였다."(위와 같은 책. p.67) 그리고 이러한 장인/예술가가 지녀야할 역량 중, 놀랍게도 상상력, 독창성, 자율성 같은 것은 고려된 바가 없었다. 고대인들이 예술가에 대해 감탄했던 것은 그들 자체의 뛰어난 창조성이 아닌, 똑같이 만들어낼 수 있는 그들의 기술적 능력이었고, 돈을 받고 주문제작을 받는 다는 점에서 그들이 아무리 지적이거나 ‘영감’을 받아 훌륭한 결과물을 선사한 다해도, 그저 업신여겨지고 편견이 담긴 시선으로 바라봐질 수밖에 없었다. 이 점에서 나는 문득 조선시대의 문인 화가들이 떠올랐다. 동양의 예술론에서는 작품뿐만 아니라 화가 본인의 인격 또한 매우 중요시 된다. 북송대의 훌륭한 문인화가들이 지녀야할 조건 중 하나가 바로 타인에게 그 지위의 고하를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작품을 감상할 기회를 부여하되, 절대 작품을 판매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는데, 서양에서나 동양에서나, 돈을 받고 회화나 조각 같은 시각적 결과물을 제작한다는 것이 제작자 본인의 도덕적 지위와 가치를 훼손한다고 인식했다는 점이 흥미롭다.

그렇다면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의 사람들은 정말로 아름다운 회화나 조각을 마주했을 때, 우리와 같이 이를 미적으로 관조하는 경향이 조금도 없었을까? 샤이너는 그렇게 생각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두 가지의 이유를 제시하여 자신의 관점을 설명했다. 첫째, 그리스 로마 시대의 (우리가 보기에) 순수예술작품(으로 분류될 수 있는 것)은 사회적, 정치적, 종교적, 실용적 맥락에서 각종 행사의 ‘보조수단’ 역할을 수행한다. 따라서 순수하게 감상의 목적으로 제작된 오늘날의 순수예술품은 존재하지 않았다. 둘째, 이러한 사회적 기능을 제쳐두고도, 당시에 현대적인 ‘미적’태도가 없었다는 것을 우리는 그들이 아름다운 조각상과 시를 볼 때나 훌륭한 정치적 연설들을 때나 동일한 정도에서 감동 받았다는 점에서 알 수 있다. “즉 두 경우 모두 그 도덕적 쓰임새가 절묘한 실행과 어우러진 점을 높이 평가했던 것”(위와 같은 책. p.71)이지, 자율적인 미적 즐거움에 대한 주목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다 헬리니즘 시대에 이르러, 도덕적 목적보다 시적 기교를 더 중요시한다는 등의 현대적 입장과 비슷한 경향이 나타나기 시작했지만, 헬리니즘과 로마 제정 말기에도 여전히 예술은 그 자체에 대한 관심보다는 정치적, 종교적 도구로써 주목되었고, 이후 1500년이라는 세월동안 이러한 인식은 지속되어 눈에 띄는 변화를 나타내지 않았다.


[한선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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