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소꿉놀이>하는 여성, 이전의 그 사람 [공연]

글 입력 2018.11.18 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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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

우리는 살아가면서 각자 역할을 맡는다. 딸, 아들, 어머니, 아버지, 상급자, 하급자, 동료, 친구, 연인, 청년, 기성세대, 신세대 등의 역할들은 서로 교차하며 한 사람을 이룬다. 여기에 사회가 관형어를 붙이며 그 사람이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기를 기대한다.

연극 <소꿉놀이>를 보러가며 나는 다양한 역할을 무겁게 수행하고 있는 여전사들을 만날 것이라 생각했다. 직장인, 아내, 딸, 며느리, 엄마, 이웃, 선배/후배 등의 역할 사이에서 다중 정체성을 짊어진 사람들을 상상했다. 그들이 우연한 방식으로 혹은 필연적으로 만나 얽힌 사건들을 풀어가는 시나리오를 써보며 극장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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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촌극장 서로

정각에 바로 보게 된 연극은 예상과 달랐다. 우선 어떤 하나의 큰 줄기, 익숙한 내러티브가 없었다. 갑자기 요가로 시작해서 관객에게 말을 걸고, 그들끼리 수다를 떨고 길을 헤매고 다시 요가하며 마친다. 조금은 뜬금없었지만 연극이 말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금방 이해했다. 소꿉놀이는 “내가 엄마, 네가 아빠”라는 암묵적인 규칙에 따른 놀이다. 규칙을 따르지 않으면 놀이는 깨진다. 여성의 역할도 그렇다. 다만 그 결과가 놀이의 파행이 아니라 실제 다툼으로 이어지는 것이 문제일 뿐.

연극을 모두 보고 생각을 정리하며 가장 인상적이었던 세 부분에 대해 리뷰하려 한다.


요가, 결혼, 성애





요가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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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세를 하면 허벅지가 아주아주 아프다)


작년 약 6개월 정도 요가를 한 적이 있었다. 할 때마다 느껴지는 것은 내가 정말 뻣뻣하고 힘이 없다는 것이다. 근력의 문제도 있겠지만 그보다도 몸의 부분들이 자기주장이 강했다. 머리, 경추, 척추, 요추, 골반, 배, 허벅지 앞/뒤, 발목, 손목 등 하나하나 세심하게 신경 쓰고 신경 쓰인 경험은 이때 처음 해봤다. 그리고 하타, 빈야사, 아쉬탕가, 핫요가, 힐링요가 등의 종류별 요가를 모두 해보면서 깨달았다. 호흡과 흐름, 그것이 얼마나 기본이면서 유지하기 어려운지 말이다.

이런 의미에서 세 배우의 동작은 대단했다. 사람들이 보든 말든 자신의 호흡과 근육에 신경을 집중하고 정해진 시퀀스에 따라 요가를 마쳤다. 부드럽게 이어지는 동작들을 보며 얼마나 오랜 기간 동안 요가를 해왔을지 짐작이 갔다. 호흡 소리부터가 숨쉬기 벅찼던 내 호흡이 아니라 깊은 곳에서 끌어올려진 음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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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요가 매트만큼의 세계 (사고싶다)


요가가 필라테스와 같이 몸매 유지에 좋은 운동으로 많이 홍보되고 있지만 사실 그게 본질은 아니다. 몸매가 다듬어지는 것은 부수적인 효과일 뿐 요가는 소홀히 했던 내 자신, 특히 몸과의 대화를 이끌어내는 화법이다. 극 중에서 언급한 ‘요가매트 만큼의 세계’처럼 요가를 하는 순간 나는 약 60 cm X 180 cm 공간 내에서 신체를 통제하고 움직인다. 아픈 통증과 삐걱거리는 동작은 곧 내 몸이 나에게 건네는 소리 없는 말이다.

젊음의 절정을 지난 삶을 말하기 위해 극의 시작점을 요가로 잡은 것은 좋은 연출이었다. 기혼 30~40대, 20대의 혼자살이를 벗어나 자신이 만든 또 다른 가족들의 틈바구니에서 적응하는 단계는 혼란스럽다. 일하고, 남편과 애들을 챙기고, 집안일 하며 방치할 수밖에 없었던 나를 찾기 위해 여러 모임에 가입해도 다시 역할이 씌워진다. 누구 엄마, 어디 직장인이라는 부름 속에서 익숙하고 불편한 방식으로 나를 놓친다.

그래서 요가로, 신체와 정신에 집중해야만 간신히 자세를 유지할 수 있는 극한 운동에 몰입하다보면 그 순간만큼은 역할들에 가려져있던 것이 보인다. 그 이름은 아마 ‘개인’일 것이다.



결혼이 주는 새로운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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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 - 폐백 - 신혼여행 - 그리고..)


극 중에서 선녀와 나무꾼 얘기가 나오며 배우들은 “결혼 해”와 “결혼 하지마” 사이에서 갈등한다. 나는 굳건히 “하지마” 쪽이지만 “해” 측도 일리는 있다. ‘한번 뿐인 삶이니까 결혼도 해보면 좋다. 어차피 인간관계는 결혼이 아니어도 서로 맞추어 가는 것이니까.’ 결혼으로 기댈 수 있는 누군가가 확보되고 누군가에게로 돌아갈 수 있는 집이 생기는 점은 좋다. 하지만 남들이 하니까 나도 한다는 식으로 결정하기엔 그 대가가 무섭다.

결혼을 하게 되면 나는 아내이자 며느리, 새댁, 아줌마가 된다. 새로운 역할이 몇 개 추가되는 것일 뿐이고 여전히 나는 ‘나’라고 말할 수 있으면 아무 문제없으련만 현실은 아니다. ‘나’라는 사람 앞에 붙는 저 역할에게 일반적으로 기대되는 덕목, 성격, 말투, 행동은 나에게 강한 압력으로 작용한다. 내가 소화할 수 있는 선 너머로 넘치는 물결들에 압사당하기 싫어 자신을 찾으려는 몸짓을 취하면 이기적이라고 비난받는다.

여기까지가 “하지마”에 대한 내 생각이었고, <소꿉놀이>는 이런 논의에서 한 발자국 옆으로 걷는다. <소꿉놀이>는 부여받은 역할의 초점을 ‘여성’에게만 집중하지 않는다. 삶과 타인, 살아간다는 것에 타인은 빠질 수 없다. 우리들의 고민도 상당수가 인간관계 고민인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연극은 뒤로 가며 세 가지 상황극으로 역할에 혼란스러운 여성과 더불어, 그 상대에 대해 보여준다.


엄마 vs 아들
서로 불통, 거의 다른 언어로 말하는 두 사람
아빠의 대타로 화풀이한다고 생각하는 아들과 너를 위해서라고 말하는 엄마

엄마 vs 딸
딸 뒤를 쫓아가며 잔소리, 해보지 못했고 받아보지 못한 사랑의 답습
사랑을 강요하는 엄마와 텅 빈 말에 지긋지긋한 딸

아내 vs 남편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 했어” / “무시한다고 생각 했어”
사랑해라는 말을 듣고 싶어 하는 아내와 말을 건네지 않는 아내를 두려워하는 남편


엄마이기 이전에, 아내이기 이전에 ‘나’지만 상대가 기대하는 ‘나’에는 엄마/아내가 빠질 수 없다. 그런데 나는 상대가 원하는 만큼과 사회가 기대하는 만큼의 모습을 보여줄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아들과의 대화에서 엄마는 헛도는 잔소리를 하고 딸과의 대화에서는 자신도 그 의미를 모르는  말을 하고 남편과의 대화에서는 서로 다른 이해를 보여준다. 어떻게든 내 역할을 다해보려 하지만 그럴수록 더 안통하고 상대를 사랑하는 데도 오히려 멀어질 때, 어떻게 하지?

극 속에서 직접적으로 말하지는 않지만 보는 관객 입장에서 도출할 수 있는 결론은 있다. 강요된 역할이해를 벗어나 ‘나’를 중심으로 둔 새로운 이해와 함께 내 역할의 짝꿍인 상대방이 그의 역할 대로만 움직이는 사물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결혼을 시작으로 열린 새로운 삶의 길에서 누구나 처음이고 낯선 자신을 발견한다. 나도 너도 부족하다는 것에 손 놓지 말고 ‘엄마는 이래야 해, 자식은 이래야 해’ 같은 역할의 명령을 넘어서 진솔하게 다가가야 한다.

말은 쉽고 실천은 어렵다. 이것에만 집중하기엔 또 나를 괴롭히는 외적인 요인들이 참 많으니까 말이다.

그럼에도, “더 나은 우리의 삶을 위해 고민해야 한다.” <소꿉놀이>는 이렇게 말했다.



성애용품 두근두근

자신의 오르가즘을 찾는 여행을 떠난 한 여자의 영상이 상영되었다. 그녀는 오르가즘-행복을 찾고 느끼는 것을 꾸준히 하겠다는 자신의 다짐을 지키기 위해 어려운 발걸음을 떼었다. 도착한 성인용품 샵에서 자위도구를 하나 사고 작동하는 것까지 보여주는 것으로 영상은 끝났다. 아직도 잊혀 지지 않는다. 앨리스. 생각보다 세련된 핑크였고 겉보기에는 무엇인지 잘 모르겠는 매끈한 진동딜도였다. 성인용품하면 떠오르는 불건전한 이미지보다 장난감처럼 생겼고 진동음(?)도 부드러웠다.

여전히 성애용품, 혹은 성인용품은 나에게 미지의 영역이다. 조신한 여자, 부끄러워하는 여자라는 예쁜 이미지에 맞춰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에 이런 도구는 금기처럼 느껴진다. 사용이 아니라 생각하는 것조차 잘못된 것 같다. 여성의 쾌락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고 이상한 것이 아니라고 하지만 오랜 시간 나를 사로잡았던 명령에서 벗어나는 것은 쉽지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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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이태원에서 본 이후,
최근 대구에서 동성로 위쪽 금은방 거리 근처에서 발견한
성인용품가게


나도 언젠가 <소꿉놀이>의 배우가 내었던 용기처럼 이런 가게에 출입하는 날이 올까? 그리고 당당함을 넘어 당연하게 내가 원하는 소품을 고르고 쾌락을 선택하는 것 역시도.

... 여전히 상상이 되지 않는다.



Outro

연극의 끝은 수많은 불빛들이 점멸하는 가운데, 정신없이 헤매며 육아, 남편, 아들 등을 외치는 여성의 모습이었다. 정부정책이 친여성으로 향하고 페미니즘이 예전에 비해 인식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 아직도 당연한 것을 당연하지 않다고 외치는 데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증오하거나 격하게 다투지 않고,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며 공존하는 날이 미래에 올 것을 믿는다. 다만 전제조건이 붙는다.


여성도 똑같이 고민하고 괴로워하고 기뻐하고
쾌락을 즐길 줄 아는 사람으로 인정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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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지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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