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런던 프라이드> 추천합니다! [영화]

글 입력 2018.11.18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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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에 우연히 심리학자 김태형씨의 강연을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나에게 날아와 꽂힌 말 한마디가 있었다. “인류의 역사를 통틀어 가장 행복했던 사람은 동지가 있었던 혁명가들이었을 겁니다.” 이 말이 한동안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영화 ‘런던 프라이드’를 보는 동안에도 내내 이 말이 떠올랐다. 유쾌하게 그려진 분위기도 한몫을 하지만, 순간순간 등장인물들의 눈에서 반짝이는 기쁨에 영화의 핵심이 있었다. ‘런던 프라이드’는 너무나도 다른 성격의 두 소수자 집단이 연대를 해나가는 과정에서, 성 고정관념이 어떻게 깨져나가는지 보여준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하나가 되어 정부에 대항하고, 동시에 자신들을 옭아맸던 성 역할로부터 해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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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olidarity Forever



영화를 보며 Solidarity, ‘연대’라는 주제에 관해 여러 생각이 스쳤다.


내가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도 바로 이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이었다. 논리로 운동을 이해하려는 마크에게 다이는 노동운동이 어떤 의미인지 설명한다. “서로를 지지하고, 당신이 누구든, 어디서 왔든, 어깨를 맞대고 손을 맞잡는 거에요.” 간단하지만 많은 사람이 놓치고 있는 운동의 본질을 잘 짚는 대사이다.


LGSM의 시작은 어쩌면 정치적 이해관계에 있었을지 모른다. 마을 주민들도 다른 것들에 가려져 그들의 진심을 보지 못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은 연대의 가장 기본적인 의미를 몸으로 부딪혀가며 배웠고, 비로소 하나가 될 수 있었다. 진심과 상식은 언젠간 통한다는 교훈을 주며 영화는 끝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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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가 나에게 감동적으로 다가온 데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아마 내가 경험했던 연대의 기억들이 합쳐졌기 때문일 것이다. 대학에 들어와 농민, 노동자, 원전주변지역 주민, 세월호 유가족, 광주 5.18 생존자와 등 많은 분을 만나봤지만, 영화처럼 진정한 의미의 연대를 경험해 본 적은 없었다. 망설임이 앞섰던 과거의 나에게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늘 모든 일은 환상과 현실 그 중간쯤에 있다고 생각하는데, 나에게 연대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에게 홀대를 받거나 성차별적인 발언을 들으면 환상은 깨지고 상처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 부당한 것들을 말하고, 끊임없이 진심을 확인하며 조금씩 단단해져 가는 수밖엔 없다. 생각해보면 연대를 방해하는 건 아마 ‘소수자다움’, ‘피해자다움’이라는 프레임인 것 같다. 소수자도 다 똑같은 사람이고, 같은 소수자 정체성을 지니고 있다고 해서 만나자마자 연대할 것이라는 생각은 환상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하나 분명한 건, 역사의 변화를 가져온 정신은 편견, 배제, 분열과는 거리가 멀다. 당신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손을 맞잡는 것, 바로 그것이 모든 변화의 힘이었을 것이다.




# 빵과 장미



게이에 대한 세상의 편견에 부딪힌 LGSM이 택한 방법은 재밌게도 ‘받아들이고 내 걸로 만들기’였다. ‘Slut Walk’와 같은 운동을 보면 이 전통은 현재까지도 이어져 오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이처럼 이 영화의 흥미로운 점은 게이 커뮤니티의 문화와 전통을 충실하게 보여준다는 것이다. 게이는 21살부터 성인이라는 것, 혼자 모금하지 않는다는 것, 집을 떠난 동지를 보살펴준다는 암묵적인 룰 같은 것 말이다.


그들이 세상에 어떻게 대항하는지보다, 그들의 세계를 보여주는 데 집중한 것이 인상 깊었다. 그럼으로써 관객들이 그들의 유대감에 자연스럽게 공감하도록 만든다. 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동지가 있는 혁명가인지 충분히 공감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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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중반부쯤에 ‘Bread and Roses’라는 노래를 합창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곡은 여성 노동운동가들이 부르던 곡으로, 생존권과 더불어 인간의 존엄성을 노래한다. ‘우리는 빵을 위해 싸우지만, 장미를 위해 싸우기도 한답니다’ 이 장면은 등장인물들에게 그들이 무엇을 위해 싸우고 있는지 다시 깨닫게 한다. 그건 바로 ‘인간다운 삶’이다. 빵과 장미. 어느 하나 덜 중요한 것은 없다. 둘 다 반드시 함께 성취되어야 한다. 특히 성소수자에게 ‘장미’는 곧 그들의 존재와 직결되어있다.


성 해방은 인간의 가장 핵심적인 ‘자아실현’이다. 카메라는 이러한 주제의식을 몇몇 인물을 따라가며 보여준다. 운동을 통해 서서히 자신의 정체성을 받아들이는 새내기 게이 브롬리, 커밍아웃을하지 못한 채 오래전 고향을 떠났지만 용기 내 다시 어머니를 찾아가는 게딘, 부당한 건 참지 못해 지역구 최초의 여성 의원이 되는 샨, 보수적인 탄광 마을에서 평생 자신이 게이인 걸 숨기며 살아가야 할 줄로만 알았던 클리프. 이들은 공통적으로 성 해방을 통해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인식하게 된다.


자아실현은 행복의 가장 기본적인 단계이며, 페미니즘의 중요한 지향점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성은 부수적인 것이 아니다. 성이 곧 삶이고 행복이다. 광부들의 일자리 투쟁과 마지막 장면의 게이 프라이드는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영화는 말하고 있다.


*


그렇다면 현재의 페미니즘 운동은 어디로 나아가야 할까. 한국에서 약 3년간 빠르게 진행된 페미니즘의 흐름을 거시적으로 바라봤을 때, 아쉬운 점이 많은 건 사실이다. 왜곡된 성 대결이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는 지금의 결과는 뼈아픈 대목이다. 우리가 분명 무언가를 놓치고 있다는 게 확실해지고 있다. 운동에도 철학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많이 드는 요즘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런던 프라이드’를 보며 많은 감명을 받긴 했지만, 내가 사는 현실을 보면 가슴이 답답해지곤 한다. 성에 근거한 억압과 차별이 근본적으로 없어질 수 있을지에 대해 회의가 들 때도 많다.


하지만 무력감에 빠져있어 봤자 변하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걸 안다. 상식은 언젠간 통하게 되어있고, 세상은 변화할 것이다. 단, 그 변화의 속도를 조금이라도 높이자는 게 투쟁의 목표라고 생각한다.


영화 ‘런던 프라이드’에서 결국 사람들을 하나로 뭉치게 하는 건 ‘사람에 대한 연민과 애정’이다. 사람에 대한 연민을 포기하지 않고, 마음을 나눈 동지들과 함께한다면 변화시키지 못할 것은 없다고 낙관하고 싶다.



[김초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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