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독립영화를 만나다, <유라>와 <신기록> [영화]

전북독립영화제에서 만난 영화들
글 입력 2018.11.18 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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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전북독립영화제에 다녀왔다. 11월 1일부터 5일까지 진행된 이번 영화제는 올해로 18번째이다. 이번 영화제는 전북 지역의 독립영화 기반을 탄탄하게 받쳐주는 역할을 해오며 꾸준히 성장해오고 있다. 다른 지역에서 만들어진 영화들과 다양한 주제를 가진 작품들을 만나 볼 수 있는 곳이다.


독립영화에 관심을 가지게 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우연치 않게 <파수꾼>, <우리들> 영화를 접하게 되었고 나는 큰 감동을 얻었다. 그 작품들이 독립영화라는 것을 알고 그때부터 찾아보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러던 중 2018 전북독립영화제가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고 관객으로서 참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편과 단편을 넘나드는 여러 작품들 중에 나는 단편들로 구성된 지역초청부문을 관람했다. 총 4편의 단편영화가 상영되었고 그중에서도 인상 깊었던 2편의 작품을 소개해볼까 한다. <유라>와 <신기록>이다.


두 편 다 여성에 관한 이야기이다.




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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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학생인 유라는 소녀가장이다. 아직은 어린 남동생을 돌봐야 하는 어린 학생이다. 오늘도 전단지 아르바이트를 하며 하루를 버텨낸다. 사람들의 손에 맞아 떨어지고 밟혀지는 전단지를 보면서 유라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추운 겨울임에도 얇은 후드티 하나를 걸치고 거리로 나선다. 그런 유라에게 한 달에 한 번씩 찾아오는 그날, 바로 생리이다. 전단지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마트에서 장을 볼 때도 생리대 값을 보곤 내려놓는다. 유라는 그날의 불편함을 감수하며 버텨낸다.


예전에 이런 뉴스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생리대가 없어서 휴지로, 손수건으로, 신발 깔창을 생리대로 사용한다는 기사였다. 저소득층 여학생들에게는 생리가 생계적인 문제와도 관련되어서 또 다른 불편함이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24분의 짧은 단편 영화지만 나는 머리를 세게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내가 이전까지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화장실 변기에 앉아 남은 생리대 개수를 초조하게 세어보는 유라의 표정이 아직도 눈앞에 아른거린다. 생리대가 없어 잘 때 수건을 깔고 잠에 들던 유라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얼마나 큰 좌절감에 빠졌을까.


이 영화는 20분 남짓한 짧은 시간 내에 유라의 가난과 상황에 대한 이유를 찾기보다는 유라와는 조금은 거리를 두며 현실에 집중해서 보여준다. 카메라로 유라의 모습들을 담담하게 담아낸다. 유라가 느끼는 감정들 역시 잘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그 현실들을 외면하지 않고, 왜곡하지 않고 언젠가 꼭 해야 할 말들을 풀어 내준 영화가 고마웠다. 그럼으로써 뉴스로만 접했던 이전의 내가 유라와 같은 여학생들을 조금이라도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뉴스 포털에 막연하게 떠다니던 글자들은 현실이 되어 다가왔다.




신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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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공무원을 준비 중인 소진은 몇 번 만난 남자가 계속해서 문자를 하고 헬스장에도 찾아온다. 그러지 말라고 말을 해도 못 알아듣곤 계속해서 질척거린다. 두려움과 공포가 커져가는 소진은 한겨울, 철봉에 매달려 있는 현숙이 신경 쓰인다. 매일같이 운동장에 나와 철봉에 악착같이 매달려 있는 현숙의 발에서 신발이 떨어진다. 발목에는 알 수 없는 상처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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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처음에 보았을 땐 스토킹을 당하고 있는 소진, 가정폭력을 당하는 현숙. 정도로 이해를 했다. 엔딩크레딧이 나오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엔 영화제에서 받은 작은 책자를 읽어보았다. 그 안에는 작품들에 관한 연출 의도, 줄거리 등이 써져 있었다. 그 글들을 잠시 소개하자면 이렇다.



데이트를 할 때 지갑을 선물 받았다는 이유로 연애를 시작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자신과 모르는 이성이 직장에 찾아왔다는 이유로 남자친구라고 단정 짓는 사람, 타인이 느끼는 공포에 대해 깊이 공감하고 있다는 듯이 위로 대신 마치 연애 기술을 전수해주듯 툭 던져주는 사람. 소진 주위에는 젠더 감수성이 부족한 사람들이 너무 많다. - 정승오



이 글을 읽고는 영화 <신기록>이 몇 번이고 곱씹어졌다. 정말로 우리 주변에는 젠더 감수성이 부족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단 말인가. 그저 몇 번 만나본 남자가 계속해서 전화를 해대고 문자를 하고 심지어는 자신이 다니는 헬스장으로 찾아오고, 집 주소까지 알아내 선물을 준답시고 택배를 보내는 이 상황이 소진과 같은 수많은 여성들에게는 정말 짐작할 수도 없는 큰 공포로 다가온다. 이 공포는 어떻게 해야 끝이 난단 말인가. 요 며칠 새 여성이 살해되었다는 기사를 너무 많이 봤다. 헤어진 전남친이 일가족 살해, 헤어지자고 해서 살해, 혼수 문제로 다투다가 살해. 나는 이런 기사들은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


커져만 가는 두려움 속에 소진은 친구에게 고민을 털어놓는다. 친구는 이렇게 답한다. ‘사귈 때는 막하더라도 헤어질 때는 잘 헤어져야 해, 언제 칼 들고 쫓아올지 누가 알아.’ 위로와 공감은 못해줄망정 마치 해결책이라도 되는 듯, 연애 기술인 것처럼 말하는 친구의 말이 슬프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했다. 그래도 저게 현실이잖아. 그러니까 저 친구도 무슨 해결책이라도 되는 듯 툭 던져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경찰에게 말해도 완전히 해결이 되는 문제도 아니고 마음 어딘가 계속해서 공포를 안고 살아가야 할 텐데 말이다. 여성들만이 겪게 되는 이런 상황이 너무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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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정신적인 폭력 받고 있는 소진과 물리적인 폭력에 노출되어 있는 현숙을 교차하며 보여준다. 하루하루 폭력에 노출되어 있는 여성들의 삶이다. 허구한 날 술을 먹고 아내를 때리는 현숙의 남편, 스토킹을 당하는 소진까지, 이들의 이야기는 비단 영화 속만의 문제는 아니다. 명백한 현실의 문제다. 여성으로서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 이 사회, 언제든지 내 주변사람들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예민하게 반응하고 소리쳐야 한다.


*


이 글에선 두 편의 독립영화만 다뤘지만 같이 관람했던 <김녕회관>, <찾을 수 없습니다>의 작품들도 좋았다. 독립영화는 독립영화만의 매력이 분명하게 있다. 그렇기에 마니아층이 탄탄하게 자리 잡고 있는 것이 아닐까. 독립영화는 이익을 우선순위에 두는 상업영화보다 창작자의 의도를 중요하게 여긴다. 그렇기에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과 더욱 가까운 영화들이 많은 것 같다. 관람객들의 공감을 불러내고 돌아서도 생각나고 그 의미를 계속 생각하게 만드는 무언가 있다. 감독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들이 분명하게 느껴지는 것이 독립영화만의 매력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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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예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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