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사랑'을 사랑하다 [영화]
-
“천둥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오고
구름이 끼고, 비라도 와준다면
그대가 돌아가지 않도록 붙잡으련만”
- 언어의 정원 中 -
페르디낭 드 소쉬르(Saussure, Ferdinand De)가 ‘랑그’와 ‘파롤’을 나누어 정의한 것처럼, 언어는 형체와 단어가 결합하며 실질적인 의미를 얻게 된다. 언어는 특정한 형체 없이는 대체로 존재하지 않으며, 우연히 그렇게 불리게 된 자의성을 토대로 답습되며 체계를 구축한다. 그래서 때때로 우리는 느낌으로는 어렴풋이 알 것 같지만, 구체적인 단어로 표현하기에는 어려운 상황을 종종 겪는다. ‘썸’이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겠다. ‘썸’이라는 현상은 이전부터 존재해 왔지만, 단어가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이를 보다 명확하게 알고 인지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한 관점에서 볼 때, 언어의 부재로 비롯된 불확실성은 어떠한 대상을 ‘인지’하는 것과 ‘표현’하는 것은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게 만든다.
그래서일까. 신카이 마코토의 『언어의 정원』이 보여주는 ‘사랑’의 모습은 어딘가 투박하다. 우리가 흔히 말하듯 정열적이지도, 헌신적이지도, 또는 알콩달콩하다고도 느껴지지 않는다. ‘사랑, 그 이전의 사랑 이야기’라는 부제가 나름 어울린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영화가 그려 낸 사랑은 밋밋하면서도 순박하다. 적극적으로 다가가지도 않으면서도, 그렇다고 멀어지지도 않는 그 사이에서 학생인 ‘타카오’와 선생님인 ‘유키노’는 서로에 대하여 알아간다. 그런 감정을 서로가 알면서도, 닿지 않을 듯 닿을 듯한 여지를 남겨 놓는 그들의 사랑은 무어라 정의 내리기 어려운 은은한 형태로 그려진다.
이러한 둘의 사랑은 ‘비’라는 특정한 날씨에만 만남이 이루어지는 독특한 상황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비가 내릴 때, 그들은 평소의 일상에서 벗어나 서로를 만날 수 있을 것 같다는 직감 하나만으로 신주쿠 공원으로 향한다. 제대로 된 연락 교환도 없고, 어떠한 약속도 없이 말이다. 날씨는 예측하더라도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는 ‘불확실성’이 있다는 점에서 볼 때, 둘의 만남은 몽환적이면서도 신비한 모습이 한층 강화된다. 조금만 더 다가가면 서로를 잡을 수 있을 것 같으면서도, 그러지 않는 모습은 우리가 보편적으로 아는 ‘사랑’과는 다른 사랑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실제로 ‘타카오’가 선뜻 ‘유키노’에게 좋아한다는 내심을 밝히며 둘 사이가 더 가까워질 요소는 있었다. 이를 ‘유키노’는 간접적으로 거절하였지만,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따돌림을 당해 절망적이었던 삶을 덕분에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다며 호감을 내비친다. 하지만 이후 영화에서는 그 둘 사이의 관계를 어떠한 상태로도 단정을 짓지 않는다. 다만, 먼 곳으로 전근을 간 ‘유키노’ 선생님을 만나기 위해 언젠가 꼭 찾아가겠다는 ‘타카오’의 독백만 잔잔히 보여줄 뿐이다.
그렇다면 왜 그들은 서로를 향해 발걸음을 내딛지 않는 걸까. 서로에 대한 호감을 확인하였는데도 둘의 ‘사랑’은 우리가 보편적으로 인지하는 ‘사랑’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것인가. 앞서 말했듯이, 정의되지 않고 존재하기만 하는 형태는 불안정하다고 볼 수 있다. 영화를 보면, 두 주인공이 처한 환경과 그에 대한 생각은 이들의 ‘사랑’과 마찬가지로 실존하지만 불완전하다. 타카오는 최고의 구두장이가 되고 싶으면서도, 아직 능력이나 기술이 미흡하다. 유키노는 학교에서 학생들로 받는 따돌림으로 인해, 삶 자체에 대한 생각이 끊기지 않는다. 다음에 적을 유키노의 대사는 그러한 생각을 더욱 잘 나타낸다.
“27살의 나는 15살의 나보다
조금도 현명하지 못해.
나만이 평생 같은 곳에 머물러 있어.”
- 언어의 정원 中 -
자신에 대한 상황을 ‘인지’하지만, 이를 ‘표현’해내는 게 서툰 두 사람의 모습은 사랑에도 그대로 투영된다. 두 사람은 서로를 느끼면서도, 이를 제대로 표현하기에는 아직 성숙하지 못했다. 나이와는 상관없이 그들이 처한 환경으로부터 비롯될 일임에는 분명하다. 특히, 타카오가 만드는 ‘걷는’ 수단인 신발이 유키노에게는 ‘말하는’ 방식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는 명확해진다. 타카오를 만나면서 조금씩 ‘걷는(말하는)’ 법을 배운 유키노가 마지막에 어떻게든나마 자신의 감정을 토로한 사실은 서툴더라도 표현을 하면서 그나마 명확해진 두 사이의 관계를 잘 그려낸다.
물론 이러한 표현이 지속해서 이어졌는지에 대해서는 여지가 있다. 다만, 조금이라도 표현되기 시작한 형태는 더욱더 그 대상을 잘 이해하게 돕는다. 감독이 제목을 『언어의 정원』이라고 지은 이유도 그와 비슷한 의도가 조금은 있다고 추측한다. 사랑, 그 이전의 사랑을 특정한 ‘언어’로 표현하지 않고 하나의 스토리로 담아내었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사랑은 ‘사랑’해야 한다. 어쩌면 우리가 자연스레 느끼고 있을 법한 사랑이 막상 표현될 때 이질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으니 말이다.
영화 예고편
[원종환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