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사막 속의 흰개미

글 입력 2018.11.19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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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서울시극단_사막속의 흰개미_포스터_ver.final.jpg

 
서울시극단 X 세종문화회관 세종S씨어터
2018. 11. 12. 월요일

※리뷰에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 이야기를 관통하는 큰 줄기

마을에 흰 개미가 출몰해 목조 가구들에 피해를 입히고 있는 사건과, 석필의 가족이 대면하고 있는 문제는 처음에는 별개의 사건으로 보이지만 결국 거슬러 올라가면 원인은 하나로 모인다. 마을 사람들의 원성을 그저 덮으려 하다보니 안에서부터 곪고 썩어버려 결국 석필의 대에 터져나온 것. 막힌 우물에선 흰개미가 서식하며 대저택을 대들보부터 갉아먹고, 아버지들의 죄는 쌓일 대로 쌓여 교회의 명성을 주춧돌부터 무너뜨린다.


2) 연극이 보내는 메시지

포괄적으로 봤을 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확고한 연극이었다. 매개체를 '종교'로 선택했을 뿐, 사회 곳곳에 만연한 문제들 어디에 대입시켜도 그 의미가 명확할 연극이라고 생각한다.

가물어가는 마을과 대조적으로 풍요로운 대저택, 저택을 둘러싼 높은 담벼락, 그 안에 살아가는 이들과 그 밖에서 살아가는 이들. 외과의사 이국종 교수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대한민국 의료계의 문제점을 토로하자 상대방이 했다는 말, "교수님, 지금 대한민국에 의료계에만 문제가 있을 것 같습니까?"


3) 인물들이 대변하는 목소리


대대로 쌓아 올린 성역(함부로 의심하고 파헤쳐선 안 될 곳/ 그런 위압적인 곳) • 알면서도 침묵해온 방관자 • 그에 혐오를 느끼며 죄의식을 가지고 살지만 역시 끊어내지 못하는 또다른 방관자 • 침묵을 강요받았으나 자기 자신으로 살기 위해 목소리를 내는 피해자 • 최대한 객관적으로 문제를 파헤치려는 제삼자 • 그에 동조하는 또다른 제삼자 • 가운데에서 이도저도 못하고 우선 덮으려는 제삼자.



제삼자 에밀리아를 완벽한 타인인 외국인으로 설정한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어떻게든 선에 걸쳐진 존재는 할 수 없는 돌발행동(담벼락을 넘어 가택침입을 강행하며 조사)이 문제를 깊이 파고드는 데 외려 도움이 된다. 그의 외골수적인 연구가 내보인 흰개미의 존재는 마을과 교회 사이의 관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서울시극단_사막속의흰개미_석필_태식.jpg
(공연 컨셉 사진 : 아버지와 아들/ 죄의식이 만들어낸 허상)


4) 블랙박스형 극장이라는 건

무대가 굉장히 실험적이었고, 단점도 분명히 있지만 나는 훌륭했다는 쪽에 점수를 주고 싶다. 대문과 본택이 끝과 끝에서 마주보고, 가운데 우물 막힌 자리에 모래가 쌓여 있다. 대문 뒤에 설치된 조명은 문이 닫혔을 때와 열렸을 때의 느낌이 각각 다르면서, 긴장감 있는 장면들의 분위기를 극대화시킨다. 양 가장자리로 두 줄의 객석이 있고 그 뒤에 정원수들이 있다. 객석이 엄연히 무대 안에 포함된 형태다. 블랙박스 형태의 극장 자체를 처음 가본 것은 아니지만, 블랙박스 극장 본연의 의미를 최대한 살린 연출은 이번에 처음 보았다.


사막속의흰개미 무대.jpg
(사진 : 이해를 돕기 위해 그린 것)


이렇게 객석과 무대의 경계를 허물었을 때의 큰 장점은 그만큼 관객들을 극 안으로 더 끌어들일 수 있다는 점이다. 마치 긴 직사각 테이블의 양 끝에 앉은 이들이 주고받는 설전을, 가운데에 앉아 구경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단점은 고개를 자주 틀어야 해서 목이 아프다는 점과, 나와 반대쪽에 위치한 배우가 뒤돌아 말을 하면 대사가 잘 안 들린다는 점이다.

가장 좋았던 연출은 중간중간 에밀리아가 학회 발표를 하는 듯 독백하는 장면. 빔프로젝터를 이용해 무대 바닥에 사진과 그래프 등 자료를 띄워 정말 학회 참가자가 되어 연구 발표를 듣는 느낌이었다. 또다른 장면은 절정이 지나며 천장에서 모래가 사그락 떨어지고 대들보가 내려앉는 장면. 대들보가 무너졌다는 것이 주는 이미지가 너무 강렬했다.



류소현.jpg
 

[류소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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