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마린스키발레단 & 오케스트라 내한공연 발레 <돈키호테>

하필 처음 본 발레가 돈키호테? 눈만 높아진 발레 초심자의 본격 첫 발레 관람 후기.
글 입력 2018.11.19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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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년 이상의 긴 역사를 자랑하는 클래식 발레의 대가 마린스키 발레단의 내한 공연이라니. 발레 문외한인 나조차 알고 있는 그 유명한 발레단이 온다고? 심지어 오케스트라도 함께?"


이렇듯 화려한 프로필은 발레가 처음인 내게도 실로 엄청난 공연일 거라는 막연한 기대감에 부풀게 했다. 하지만 원래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 그래서 발레 생 초짜가 관람한 돈키호테는 어땠을까. 그 솔직한 이야기를 전해 본다.




실망 : 발레는 이런 거였어?



앞서 말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라고. 안타깝게도 나는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다. 나 자신에 대한 실망감. 우아하게 차려입은 사람들이 도도한 표정으로 공연장에 들어서는 것. 우습게도 ‘발레’하면 나는 이런 것만을 상상했다. 뭔가 거리감이 느껴지고, 나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은 봐도 이해하지 못할 것 같은, 괜히 어울리지 않는 곳에 와있는 듯한 어색함을 느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공연장에 들어서는 순간까지도 쭈뼛거리며 긴장감을 감추지 못했는데, 결론적으로 발레도 그냥 하나의 공연일 뿐이었다. 흔히 뮤지컬을 보던 장소에서 뮤지컬이 발레로 변화했을 뿐인데 왜 그렇게 발레를 어려워한 건지. 나 자신이 우스워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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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를 챙기지 못 한 것이 너무 안타깝다.




깨달음 : 발레, 아는 만큼 보인다!



발레는 언어가 아닌 몸짓으로만 표현하는 무언극이다. 대사 한 마디 없는 발레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스토리 정도는 이해하고 가는 것이 좋다.


돈키호테는 총 3막으로 이루어진 희극발레이다. 돈키호테가 환상 속 여인 둘시네아를 찾아 떠난 여정에서 찾게 된 스페인의 한마을에 살고 있는 ‘키트리’와 ‘바질’의 러브스토리를 담고 있다. 즉, 돈키호테의 주인공은 돈키호테가 아니라는 점!

1막에서는 키트리를 향한 바질의 구애와 그들의 사랑이 주를 이룬다. 하지만 키트리의 아버지는 보잘것없는 바질이 아닌 마을의 인기 많고 멋진 투우사 에스파다에게 키트리를 시집보내려 한다. 2막에서는 돈키호테가 꿈에서 마주한 환상의 세계가 펼쳐진다. 풍차에 돌진한 후 기절한 돈키호테는 자신의 꿈속에서 자신이 그토록 꿈꿔온 환상의 여인 둘시네아를 찾고 황홀경을 맞이한다. 마지막 3막에서는 바질이 자살 소동을 펼치며 키트리를 향한 사랑의 끈을 놓지 않는다. 이 과정에서 돈키호테가 바질과 키트리를 적극적으로 도와주며 결국 키트리 아버지의 허락을 받아낸다.



환호 : 순수하게, 그리고 솔직하게 스토리를 풀어내는 몸짓

스토리는 이걸로 충분하다. 나머지는 무용수들의 섬세한 손짓, 완벽에 가까운 테크닉, 표정만으로도 관객을 압도하는 시원시원한 연기력이 모든 부분을 채워준다.

1막에서 나를 사로잡았던 것은 투우사 퍼포먼스였다. 에스파다를 주축으로 투우사들이 단체로 망토를 입고 퍼포먼스를 펼치는데 발레를 보고 칼군무에 반할 줄은 상상도 못했다. 망토의 펄럭임 정도, 망토를 펼칠 때의 손의 각도까지 자로 잰 듯한 완벽한 칼군무는 발레가 우아함뿐만 아니라 웅장함마저 표현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또한 투우사 퍼포먼스와 어우러지는 스페인풍의 음악이 흘러나와서 이국적인 느낌과 박진감도 느껴졌다.


“이룰 수 없는 꿈을 꾸고, 이룰 수 없는 사랑을 하고, 이길 수 없는 적과 싸움을 하고,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견디며, 잡을 수 없는 저 하늘의 별을 잡자.“



세르반테스의 <돈 키호테> 속 유명한 구절이다.


이런 돈키호테의 낭만적인 모습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낸 것이 바로 2막이었다. 2막의 시작을 알리는 조명이 들어오고, 새로운 무대가 펼쳐지는 순간 입이 떡 벌어졌다. 파스텔톤으로 물든 아름다운 무대와 이를 능가하는 무용수들의 아름다운 의상은 정말 요정의 나라에 온 것만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켰다. 튜튜가 빵빵한 아름다운 의상은 연분홍빛, 연노랑 빛, 연 하늘빛 솜사탕을 그대로 의상으로 만들어 놓은 것만 같았다. 2막은 돈키호테의 환상 속이기도 했지만 나의 환상 속 무대이기도 하다. 나의 환상 속 발레의 이미지, 그러니까 우아하고, 아름다우며 요정 같은 사람들이 화려한 의상을 입고 깃털 같은 발걸음으로 마치 날아다니듯 걸어 다니는 나의 환상 속 그대로를 전해주는 무대였다.


3막에서는 2막에서 잠시 쉬어 갔던 박진감이 되살아났다. 바질이 자살 소동을 벌인 것. 키트리를 향한 사랑의 끈을 놓지 못한 바질은 자살 소동을 통해 키트리 아버지의 허락을 얻고자 한다. 그리고 이를 지켜본 돈키호테가 상황을 중재하며 그들의 사랑에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이를 돈키호테가 적극 도와주며 그들의 사랑이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3막에서는 특히나 무용수들의 연기력이 돋보였다. 능청스럽게 칼을 빼 들고 죽은 척 누워 버리는 능글맞은 김기민의 표정 연기나, 상황을 중재하면서도 키트리와 바질의 사랑을 뿌듯하게 지켜보던 돈키호테, 그리고 행복에 겨워서 사랑스러운 얼굴로 바질을 바라보는 키트리까지 모든 연기자들의 표정이 완벽했다. 말 한마디 없이 표정만으로 대사를 대신하는 점에서 왜 그들이 프로인지를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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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촬영이 허용됐던 커튼콜



환호 : 하나가 되어 호흡하다

바질 역을 맡은 김기민 발레리노는 발레를 전혀 모르는 내가 봐도 프로 그 이상이었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점프를 하더니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회전을 했다. 공중에서 발을 들어 올리고 또다시 점프를 시도하는 그를 보며 그는 혼자 무중력 상태에 빠져 있는 것인가, 그는 지금 혼자 우주 속으로 들어간 것인가 하는 착각마저 들었다. 키트리 역의 빅토리아 무용수 또한 마찬가지였다. 발끝만으로도 저렇게 강렬한 움직임을 구사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울 정도의 기교와 동작을 극대화하는 생동감 넘치는 표정은 그녀가 왜 최고인지를 증명하는 듯했다. 발레는 어려울 거라는 고정관념 없이 그저 눈앞에 보이는 황홀경을 즐기다 보니 어느새 나는 돈키호테 이야기 속에 들어가 있었다. 많은 관객들과 함께 손뼉 치고 환호하며 즐기다 보니 관객과 무용수, 오케스트라는 모두 하나가 되어 호흡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움은 존재한다.



덧붙여,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아쉬웠던 점이 있었다. 우선 프로그램북이 너무 부실했다는 것. 보도자료와 공연 설명을 그대로 옮긴 프로그램북은 그만의 특색이 없었다. 즉, 특별한 만한 콘텐츠가 없었다. 이번 공연만의 특별한 점이나, 내한 소감 등 좀 더 특색 있는 콘텐츠가 있었다면 좀 더 기념할 만한 프로그램북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두 번째로는, 음향이 너무나 아쉬웠다. 공연장이 너무 커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오케스트라가 정말 훌륭했음에도 불구하고 음량이 작은 탓에 녹음을 틀어 놓은 것처럼 느껴졌다. 오케스트라 라이브의 매력이 살아났으면 좀 더 생동감 있는 공연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 그 외에는 완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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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은 아쉬웠지만 기념품의 역할을 톡톡히 해준 프로그램북


앞으로도 발레 공연을 꾸준히 볼 의향이 있냐고 묻는다면, 단연 ‘yes!’라고 대답할 수 있다. 이미 우리나라의 발레단들은 어떤 공연을 준비 중인지 찾고 있으니 말이다. 언어가 아닌 몸짓으로만 표현하는 발레, 그렇기에 더 순수하고, 더 꾸밈없이 스토리를 전해주는 힘이 있었다. 발레, 더 이상 어렵지만은 않다.


[유다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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